헤겔 변증법 반성운동42-필연에서 자유에로(3)-절대적 필연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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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변증법 반성운동42-필연에서 자유에로(3)-절대적 필연성

1)

가능성이 실현되어 실제성으로 되는 매개는 곧 개체들의 관계다. 이 관계가 자립적이고 무차별한 실존으로 이루어지면, 이 매개는 우연한 것이 된다. 이 우연한 것은 추상적 필연성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곧 공허한 공간 속에서 서로 관계하는 양적인 것을 말한다.

이어서 이 관계가 자립적인 현상의 법칙 관계로 이루어지면, 이 매개는 구체적인 필연성 또는 상대적인 필연성으로 된다. 여기서 부분적으로 법칙이 성립하지만, 이들 법칙은 서로 우연적으로 만날 뿐이다. 우리가 흔히 자연계 또는 생태계라고 생각하는 집단이 그러할 것이다.

이것을 넘어서 이제 헤겔은 절대적 필연성에 이르는 매개에 이른다. 이제 절대적 필연성에 이르면 자립적 개체는 타자와 단순히 법칙 관계를 지닌 것은 아니다. 개체는 타자를 결여라는 방식으로 포함하고 있어서 이미 내적으로 타자와 통일되어 있다. 그러므로 타자를 자기의 목적으로 추구하게 되니, 여기서 가능성의 실현은 필연적이다.

2)

상대적 필연성에서 법칙 관계를 이루는 요소는 양적으로 척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하나의 정량은 자립적이면서도 다른 정량에 제약된다. 그런데 이제 절대적 필연성에서 등장하는 개체는 양적으로는 척도 관계에 해당한다.

그것은 마치 산과 알칼리의 관계와 같은 것인데, 여기서 산에는 알칼리를 통해 제공되는 것을 결여하며 거꾸로 알칼리에는 산을 통해 제공되는 것을 결여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절대적 필연성에서 개체는 타자를 결여라는 방식으로 포함하는 총체성이니,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 타자와 결합한다.

산과 알칼리가 배타적인 관계를 이루면서 동시에 선택적인 친화성을 지니고 있듯이 절대적 필연성에서도 두 개체는 배타적인 관계에 있으면서도 이런 선택적 친화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여기서 두 개체의 결합은 항상적으로 일어나는 필연성을 지니게 된다.

절대적 필연성에 두 개체의 관계는 자기를 결여한 것을 타자를 통해 채우려는 운동이므로, 그 운동은 합목적적으로 일어난다. 구체적 예를 들자면, 생명체에서 암수의 관계가 될 것이다. 양자는 서로 결여한 것을 타자를 통해 채우려 하는데, 이것이 자연적 방식으로 나타날 때 욕망이라 한다.

여기서 욕망은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자유 의지의 단초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아직 자동적인 것 즉 맹목적 필연성에 그친다. 이 자동적인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로 발전하면서 본질은 개념으로 고양되지만, 아직은 여기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3)

실체가 가능성에서 실제성으로 자기를 펼치는 운동에서 매개가 되는 것은 개체의 관계였다. 이 개체가 서로 완전한 통일을 이루면서, 가능성이 실제성으로 전개되는 것이 항상성 또는 일반성을 지닌 필연적인 것으로 된다.

상대적인(실재하는) 필연성에서 가능한 것은 현존하는 조건에 따라서 다양한 실제성을 실현한다. 또 하나의 실제성을 실현하는 가능성 역시 그 형식이나 근거에 따라서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절대적 필연성에서는 가능성을 실제성으로 매개하는 것이 배타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으므로, 가능한 것은 실제적인 것의 ① 근거이면서 동시에 조건이 되니, 절대적이다. 실제적인 것은 오직 그 가능성을 통해서만 실현되고, 그 가능성은 오직 그 실제성만으로 실현된다.

그러므로 가능성과 실제성이라는 두 대립하는 형식은 각자의 자립성을 잃어버리고 정립된 것으로 이행한다. 두 계기는 서로 직접적인 자기를 지양하여 타자의 계기가 되며, 이는 자기를 정립된 존재로 만들고, 타자를 직접적인 것으로 전제하는 운동이다. 동시에 각자는 자립적인 타자를 부정하면서 자기의 계기로 만든다. 이는 곧 자기를 전제하면서 타자를 자기의 계기로 즉 정립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연성은 이런 정립된 존재를 지양하는 것이거나 직접성과 잠재성을 정립하는 것인데, 그에 못지않게 그런 가운데 이런 [정립된 존재의] 지양을 정립된 존재로서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결과 필연성은 그 자체 우연성으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이 필연성은 이런 자신의 존재 속에서 자기로부터 자기를 반발시켜 이런 반발 속에서 그 자체 다만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이며 이런 자기 복귀를 통해 생성된 그 자신의 존재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기를 반발시킨 것이다.”(논리학, GW11, 390)

이런 ② 상호 자기 지양과 타자의 정립이라는 관계를 통해 가능성과 실제성이 통일을 이룬다. 이미 상대적 필연성에서 가능성과 실제성은 형식상 차이를 지닌 채 내용상 동일한 것으로서 통일되어서 필연성은 이 두 형식에 외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절대적 필연성에서 가능성과 실제성이 상호 타자를 통해 매개하면서 각자가 지닌 차별적인 형식은 투명해지며, 그들의 통일은 각자에게 내면적으로 되면서 ③ 형식과 내용의 구별조차 해소되고 만다. 헤겔은 이를 형식이 “자기 자신에 대해 무차별하게 되는”(논리학, GW11, 390) 것이며, 각자는 “내용으로 충만한 사태가 된다”(논리학, GW11, 390)고 한다.

가능성과 실제성은 각자 자기를 부정하여 타자를 통해 다시 자기로 복귀하니, 이 자기 매개적 자기 동일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 지양된 존재가 다시 지양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의 자기 부정성이며, 직접적인 것이 자기 매개를 통해 되돌아온다는 점에서는 자기 관계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절대적 필연성에서 ④ 순수 존재와 순수 본질이 통일된다. 즉 단순한 직접성과 절대적 부정성이 통일된다. 따라서 여기서 절대적 필연성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논리학, GW11, 391)이다. 바로 이것이 곧 실체다.

“절대적 필연성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실제성과 가능성이 그리고 형식적 필연성과 실재적 필연성이 복귀하는 진리이다. 이 절대적 필연성은 이미 밝힌 것처럼 존재가 자신의 부정인 본질 속에서 자기 관계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절대적 필연성은 단순한 직접성이거나 순수한 존재이며 그에 못지않게 단순한 자기 내 반성이거나 순수한 본질이다. 절대적 필연성은 양자가 동일하게 된 것이다.”(논리학, GW11, 391)

4)

우연성이나 상대적 필연성에서 가능성을 실제성으로 매개하는 것은 가능성 자체에 외적인 것이었다. 이제 절대적 필연성에서 이런 매개를 통해 가능성 자체가 자기를 실현하는 힘을 스스로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필연적인 실제성 즉 실체는 “자기 자신에서 나와서 자기에 이르는” 필연성이니 이는 곧 ‘자기를 근거로 하는 것’이다. (논리학, GW11, 390)

그러나 동시에 헤겔은 이런 점에서 곧 이 실체는 곧 우연적이며 공허한 것이라 한다. 왜냐하면, 자기에 근거한다는 것은 자기 외에 어떤 다른 근거나 조건을 가지지 못하니, 그것은 자기 발생적인, 자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헤겔은 이런 실체를 ‘맹목적’이라고도 하는데, “어느 것도 다른 것 속에서 빛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실체는 “타자에 관계한다는 흔적을 자신에서 보여주고자 하지 않으며” “자기 내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자신에서 필연적이다.”(논리학, GW11, 391)

여기서 본질은 “존재 속에 가두어져 있으며” 실체들 사이에는 서로 접촉함이 없고, 오직 “자기 매개하는 것이면서 타자를 통한 매개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존재와 동일한 것인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실체는 “다만 가능한 것, 공허하게 정립된 것”으로 규정된다.(논리학, GW11, 391)

“이 우연성은 자유로운, 본래 필연적인 실제성의 본질이다. 이런 실제성의 본질은 빛을 꺼려하니, 왜냐하면 이 실제성은 빛이나 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순수하게 자기에 근거하는 것이어서 독자적으로 형태를 갖추고 있고 다만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자유롭고 본래 필연적인] 실제성은 다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391-392)

이 실제성은 본질이 자기를 계시하는 것이다. 절대적 부정성은 단순한 존재이니, 본질은 “빛이 없는 직접성이 지닌 자유로움” 속에 사라지며 동시에 “이 실제적인 것들을 깨고 나온다.” 왜냐하면, 존재는 자기 속에 본질을 지니고 있어서 자기 모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질은 그런 실제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392)

본질은 실제성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이며, 이 무는 “실제성에 대립하는 자유로운 타자 존재”인 동시에 실제성을 산출하고 “그들의 존재”가 된다.(논리학, GW11, 392)

헤겔은 이런 자유로운, 필연적 실제성을 필연성이 등장하는 ‘기회[Mal]’(논리학, GW11, 392)라고 한다. 즉 절대자가 출현하는 때이다. 이 기회 속에 절대적 부정성으로서 본질이 자기를 계시하고 이런 자기규정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복귀하면서 이런 실제성을 “자유롭게 절대적으로 실제적인 것으로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392)

실체는 내면과 외면의 통일이며, 본질과 존재의 통일이다.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며 동시에 우연적인 것이니, 헤겔은 이를 기회라고 했다. 곧 절대자가 출현한 때이다. 여기서 실체는 절대적인 필연성인 동시에 절대적으로 우연적인 것 즉 자동적인 것이다.

이런 자동적인 것은 앞으로 등장할 자유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아직은 맹목적 필연성에 그치며, 이는 인간의 유적 본질에 관한 자각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실체 즉 사회 속에서 마침내 출현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제 본질론의 마지막 장인 실체적 관계의 장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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