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63- 헤겔과 베르질리우스
헤겔 형이상학 산책63- 헤겔과 베르질리우스
1)
베르질리우스(1779-1848)는 헤겔과 동시대에 살았던 스웨덴 화학자이다. 그의 업적은 많다. 그는 달톤, 라부와지에의 원자가설을 옹호했으며, 엄격한 실험을 통해 많은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다. 특히 그는 동위원소[isomorphe]나 동소체[isomerische]의 발견으로 유명하다. 그는 오늘날 스웨덴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데 헤겔은 선택적 친화성을 논하는 실재하는 척도 A절 c항의 주석에서 이 탁월한 화학자 베르질리우스를 맹공하고 있다. 헤겔이 근대 과학자에 대한 비판은 유명하다. 앞에서 미적분을 논하면서 헤겔이 뉴턴을 어떻게 비판했는가를 소개했다. 헤겔에 따르면 뉴턴이 미적분에서 무한 개념이 비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지키지 못하고 다시 무한소 개념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비판했다.
후일, 미적분의 토대를 확립했다고 알려지는 바이어스트라스는 헤겔의 무한 비율 개념이 무한 수학의 토대가 된다고 말했으니, 헤겔이 논리학을 통한 과학의 이해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스웨덴의 국가적 과학자로 추앙받고 있는 베르질리우스를 헤겔이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화학적 결합을 전기적 힘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에 있다. 베르질리우스는 당대에 볼타가 발견한 전지에 주목했다. 그는 볼타의 방식대로 구리판과 아연판을 쌓아서 전지를 만들어 화학적 실험에 도입했다.
이런 실험 끝에 그는 모든 화학적 결합이 전기력에 의한 것 즉 +전기와 -전기 사이에 작용하는 힘 때문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산과 알칼리의 결합은 예를 들어 H+와 OH-의 결합에서 보듯이 전기력에 의한 견인으로 보이므로 베르질리우스의 주장은 광범위하게 옹호되었다.
그러나 헤겔은 화학적 결합을 전기적 힘으로 설명하려는 베르질리우스의 주장을 비판한다. 이런 비판은 원자론에 대한 헤겔의 비판과 연결되며 이를 통해 헤겔은 상호 침투라는 개념을 확립하는데, 그는 이를 주석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니, 이제 주석에서 헤겔이 전개하는 내용을 따라가면서 헤겔의 주장을 이해해보자.
2)
헤겔 당시에 라부와지에의 원자 가설이 확립되었다. 이는 원자량이 일정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어서 리터와 피셔는 실험을 통해 물질의 결합에서 원자량은 일정한 비율로 결합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예를 들어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서 물을 만드는 비율은 1:8이다. 여기서 수소의 원자량이 1이고 산소의 원자량은 8인데, 물은 수소와 산소가 2:1의 비율로 결합하니, 그 질량의 비율은 1:8이 될 수밖에 없다. 일반화하면, 원자량 a와 b의 결합은 결합비율 x:y의 비율이 곱해져야 한다. 그러면 결합비율은 a:(b*y/x)가 된다.
베르톨레는 실험적으로 같은 결합에서 질량 비율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소위 동소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결합에서 질량 비율의 차이는 외적인 상황에 의존한다고 생각했지 이를 결합 이율의 일정성을 부정하는 결과로 보지는 않았다.
“결국 그[베르톨레]는 이런 배제 작용이 발생하게 되는 사정 예컨대 응집의 강도나 고형화된 염산의 물속에서의 비용해성은 작용 인자의 본성에 있는 것이 아니며 더 나아가서 이러한 사정은 그밖에 또 다른 사정 예컨대 온도를 통해서도 그 작용이 지양될 수 있음을 밝혀 놓았다.”(논리학 재판, GW21, S. 356)
그러므로 이런 외적 상황을 제거한다면, 리터나 피셔가 주장한 대로 물질의 결합에서 질량은 일정한 비율에 따른다고 보았다.
3)
헤겔은 베르톨레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갑자기 베르젤리우스를 끌어들인다. 베르젤리우스는 베르톨레*가 일정 비율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주장했는데, 이는 베르젤리우스가 베르톨래를 곡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 베르질리우스는 1818년 파리에 들러 베르톨레의 실험실을 방문하여 그와 교류했다. 그러나 베르질리우스는 베르톨레의 견해를 비판한 결과 둘 사이는 서먹해졌다.
문제는 화학적 결합에서 일정 비율의 법칙이 아니다. 헤겔이 베르질리우스를 끌어들인 것은 그가 화학적 결합에서 일정 비율을 설명하면서 제시했던 원리다. 베르질리우스는 이런 화학적 결합은 결합된 원자가 결합하는 다른 원자에 의해 둘러싸이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렇게 둘러싸인다는 것은 결합하는 원자가 결합된 원자가 지닌 원자 사이의 공간에 끼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사이의 공간에 있다는 것은 결합하는 원자가 결합한 원자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결합은 외면적인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한다고 본다.
“이 말은 곧 용해된 것이 용해 매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는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용해 매체의 사이 공간은 용해 매체가 비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해된 실에는 용해 매체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비록 그 용해 매체가 그것을 둘러싸고 에워싸고 있든가 아니면 그것에 의해 둘러싸이고 에워싸여 있든 간에 용해 매체 밖에 그러므로 확실히 그 용해 매체에 의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있다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357)
헤겔은 이런 주장을 통해 베르질리우스가 외면적 관계에 머무르는 입자론 철학을 옹호하면서 역동론적 철학을 부정했다고 한다. 역동론적 철학은 화학적 결합을 상호 침투의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인데, 이런 역동론은 물체의 결합에서 적어도 일정 부분적으로는 단순히 외면적 결합에 그치지 않고 내적인 통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베르질리우스는 상호 침투에 기초한 역동론적 결합 개념을 받아들이면, 물질의 결합에서 원자량이 보존되고, 그 결합이 항상 일정한 비율에 따른다는 비율 법칙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고 본다. 원자량 보존이나 결합 이율의 법칙은 이런 불면의 원자를 가정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헤겔에 따르면 화학적 결합에서 역동론적 개념은 사물의 부분에의 합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 사물의 모든 면에서 합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화학적 결합에서 원자량에서는 변화가 없지만, 다만 부피에서 변화가 생겨남으로써 비중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4)
화학적 결합을 이처럼 외면적 결합으로 보면, 이제 화학적 결합을 유지하는 힘이 문제가 된다. 베르질리우스는 이런 결합하는 힘을 전기적 힘으로 설명하려 했다. 이미 앞서 말했지만, 산은 + 전기를 띄고 알칼리는 -전기를 띠니, 양자의 결합은 마치 전기적 힘에 의한 결합처럼 보인다. 이를 일반화하면 모든 화학적 결합은 전기력에 의한 결합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베르질리우스는 이런 전기적 힘은 물질의 질량과는 무관한 것이며, 따라서 화학적 결합에서 일어나는 외면적 결합을 설명하는 가능성이 생겨난다. 더구나 그는 이 화학적 결합이 “다수간의 거리에서 작용하는 것이며 결합 직전의 견인과 결합을 통해 발생하는 연소의 현상을 잘 설명한다”(논리학 재판, GW21, S. 360)고 본다.
그러나 알다시피 화학적 결합에서 전자가 매개 역할을 하지만, 그 결합이 전자 공유에 의한 것이더라도 그 힘이 전기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 전자가 궤도를 이탈하거나 다른 궤도로 넘어가는 것에는 다양한 힘이 작용한다. 어떤 에너지라도 전자를 원자로부터 이탈해서 다른 원자의 궤도로 옮겨가게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전기의 힘도 작용할 수 있지만, 자주 화학적 반응에서 열을 가하거나 빛을 비추어서, 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헤겔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처럼 화학적 결합으로서 전자 공유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기적 힘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알았는데, 그는 이를 여러 가지 논증을 이용해서 설명한다. 이제 그가 제시한 논증을 열거해 보자.
① 전기적인 결합력은 중화되면 사라지는데 화학적 결합은 지속한다. 그것은 결합 후에도 지속적으로 결합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는 더는 전기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② 전기가 결합의 원인이더라도, 화학적 작용은 결합에 의거하는 것이다. 화학은 물질의 결합 때문에 변화하는 성질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전기력 외에 다른 결합을 일으키는 원인(열에너지나 빛 에너지, 심지어 운동 에너지 등)이 있을 수 있다.
③ 전기는 물체의 외면적 결합(일종의 혼합)을 이루지만, 화학은 질적 변화를 다루는데 그 질적 변화는 외면적 결합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질적 변화가 일어나려면 내적 연관성이 출현해야 한다는 것이 헤겔의 전제다.
④ 실험적으로 전기력에서는 같은 전기를 지닌 물질이 결합하는 경우가 대립하는 전기를 지닌 물질의 결합보다 더 강한 경우가 많다. 헤겔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황과 산소의 결합이 산소와 구리의 결합보다 더 강한 예를 들고 있다.
5)
이상 설명했듯이 화학적 결합은 여러 힘으로 일어날 수 있다. 전기나 열, 운동 에너지, 빛 등도 화학적 결합을 일으킨다. 이런 결합을 통해 물질의 상호 침투가 일어나게 되며 그 결과 물질에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헤겔은 라브와지에, 리터, 피셔 등이 원자량이 보존되고, 물질의 결합에서 일정 비율의 법칙이 있다는 주장은 올바른 경험 과학의 길이라 한다. 그런데 베르질리우스가 이를 원자론적 철학과 결합하고 다시 전기력을 결합 원인으로 끌어들인 것은 입자론적 철학에 사로잡힌 결과로 주장한다.
“올바른 이상에 이르는 실험적 길이 그런 비율에 그리고 리터 이래로 전면적으로 획득된 확장에 있었다면 그런 짓[베르질리우스의 전기화]을 통해서 이 위대한 발견이 경험의 길 밖에 놓여 있는 소위 입자론의 송가와 뒤섞이는 일이 그 자체로 더 확인된다. 그 출발점에서 경험의 원리를 내던지는 것만이 동기가 되어서 이전에 리터가 특별하게 시작한 착상을 받아들여서 전기적 양의 물체와 전기적 음의 물체의 확고한 질서를 제시해서 화학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가정하게 되었다.”(논리학 재판, GW21, S.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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