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62-선택적 친화성

Spread the love

헤겔 형이상학 산책62-선택적 친화성

1)

앞의 글에서 척도 관계[또는 비례]를 다루었다. 그 대표적 예가 곧 음조다. 도미솔, 레파라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외운 음조 즉 장조와 단조다. 도레미파… 각 음이 이미 하나의 척도 즉 두 정량의 비율이다. 이런 척도들 가운데 어떤 특정한 관계가 이루어지니, 그것이 곧 장조와 단조다. 헤겔은 이를 척도 관계 또는 비례라고 한다.

척도 관계에서 음조와 구별되는 새로운 관계가 출현한다. 이제 예를 들어 화학적 결합을 보자. 예를 들어 산[H+]와 알칼리[OH-]은 서로 결합하며 물[H₂O]이 된다. (앞으로 간단히 산소와 수소의 결합으로 설명하겠다) 이 결합은 알다시피 전자값에 따른 결합이다. 수소와 산소는 원자가를 지닌다. 그런 원자가는 결합에서는 무관하다.

산소와 수소의 화학적 결합에서 두 가지 척도가 개입한다. 하나는 전자값이며 다른 나는 원자가이다. 여기서 두 척도의 관계가 성립하는데, 이 관계는 앞에서 말한 음조의 관계와 다른 특징을 지닌다.

2)

예를 들어 장조 즉 도미솔의 관계에서 그 관계는 다만 외적인 관계다. 그것은 그저 배음의 관계 즉 직접 비례하는 비례의 관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관계하는 음들은 그 고유성을 잃지 않으며, 다만 외면적으로 반복된다는 것 때문에 조화로운 관계로 나타난다.

그러나 화학적 결합은 다르다. 일단 여기서는 이중적 관계가 출현한다. 수소와 산소의 결합에서 그 원자가는 단순한 더하기로 끝난다. 물의 원자가는 결합한 수소와 산소의 무게의 단순한 합산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두 물체는 자신의 척도인 무게의 고유성을 잃지 않고 보존된다.

그러나 결합한 물에서 산과 알칼리의 전자 값은 서로 상쇄되어 사라진다. 그것은 양자가 서로 전자들을 공유하면서 전자 값에서 서로 부족한 것을 상대방의 전자 값을 통해 채우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공유를 통해 두 결합하는 물체는 자신의 척도인 전자 값을 잃어버린다.

이런 결합은 일정한 비율로 이루어진다. 수소와 산소의 결합은 2:1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반면 황과 산소의 결합은 1:2의 관계다. 더구나 이런 관계는 단순한 비율 이상으로 배타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수소는 산소와 결합하지만, 황과 결합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수소와 산소는 서로 +와 -라는 서로 결합하는 힘을 지니지만, 그에 반해 수소와 황은 같은 + 전기를 지니면서 서로 배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자 값으로 보면 양자는 배타적인 통일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이런 배타적 통일은 물체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물체의 다른 측면 즉 원자가의 측면에서 두 물체의 결합은 없다. 그것은 다만 공존할 뿐이다.

이런 물체에서 일어나는 배타적 통일의 관계가 헤겔이 말하는 선택적 친화성의 관계다. 그러나 선택적 친화성의 결합에서 결합은 물체의 전면에 걸쳐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결합은 물체의 원자와는 무관하게 다만 전자의 측면에서만 일어나는 부분적인 결합이다.

3)

우리는 오늘은 구체적으로 산과 알칼리의 결합, 일반화해서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는 이유를 위와 같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것은 원자의 구조가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겔 당시에는 아직 이런 원자 구조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다만 일정한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 화학적 결합이 전기력에 의한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선택적 친화성에 관한 설명에서 헤겔은 비중을 가지고 설명하는데 비중은 곧 무게와 부피의 비례다. 각 사물은 이런 비중에서 고유한 척도를 지닌다. 이제 두 사물이 결합하게 되면 이 결합 관계를 헤겔은 이렇게 설명한다.

비중을 무게A/부피B로 표현하자. 하나의 물체(예를 들어 수소)가 지닌 비중을 a/b 라고 하고 다른 물체(예를 들어 산소)가 지닌 비중을 c/d 라고 한다면, 결합한 물체의 비중은 a+c /b+d 가 된다. 이때 결합된(물)의 비중에서 분자를 이루는 두 물체의 무게는 결합 전과 결합 후가 동일하다.

실험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지만, 결합한 물체의 부피는 결코 결합 후 부피는 결합 이전의 부피 합과 같지 않으며 오히려 축소된다. 즉 부피는 결합을 통해 가변적으로 된다.(이는 실험적으로 용액의 포화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일정 분자의 용액에 새로운 분자를 포화하면 부피는 동일하다.)

4)

이런 사실을 헤겔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비중에서 무게와 같은 것을 내재 존재[Insichsein]라고 한다. 타자와 결합 속에서도 자기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내재 존재는 플라톤적 이데아 개념에 가깝다. 물체의 무게가 물체의 고유성이라는 생각은 그리스 원자론자로부터 유래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받아들인 견해다.

“그러나 다만 무게는 결합 이전에 출현했던 무게의 합으로서 발견된다. 무게에 더해지는 측면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측면으로서 고정된 현존으로 되며 이를 통해 지속하는 직접적 정량을 지니게 되는 측면이다.”(논리학 재판, GW21, 348)

반면 부피와 같은 것은 외면적인 것이자 관념성[Ideelle] 즉 타자와 결합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두 특정화된 상이한 물질의 혼합에 따라서 더해진 부피에서 변화가 -통상적으로는 축소인데- 제시된다는 사실은 감각적 지각에서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 공간 자체는 병존하는 등장하는 물질의 존립을 이룬다. 그러나 대자 존재가 자체 내에 포함하는 부정성에 대립하여 존립하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 즉 가변적인 것이다. 공간은 이런 방식으로 진정한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서 관념적인 것으로서 정립된다.” (논리학 재판, GW21, 348)

여기서 헤겔은 일반적 공간과 비중 속에 있는 공간[부피]을 구분한다. 전자는 병존하는 공간이며 서로 외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이 경우 두 공간을 합하면, 단순히 더해진 공간만이 나온다. 그러나 후자는 결합하면 가변적으로 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이를 관념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비중의 부피는 공간인데 이처럼 가변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여기서 부피는 “대자 존재가 포함하는 부정성에 지배되는[gegen]” 것이기 때문이다. 즉 두 물체의 부피가 대자 존재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대자 존재라는 것은 통일하는 힘이다. 그것은 인력과 척력, 북극과 남극과 같이 서로 대립하면서 서로 작용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비록 아직 이 부피가 +전기와 -전기의 힘인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와 유사한 어떤 힘이 지배하는 한 계기라는 것을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화학적 결합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이를 대자 존재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즉 이 결합이 ① 사물의 내재 존재[사물의 이데아]와는 무관한 외면적 측면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 ② 또한 상호 대립하는 힘의 통일이라는 것만은 헤겔이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고 보겠다.

4)

헤겔은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두 물체 사이의 관계에 전기적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그는 이런 물체들 사이에 일어나는 결합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적 친화성의 개념을 끌어들인다.

선택적 친화성의 개념은 과학적 개념이 아니다. 이는 괴테가 문학적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1809년 선택적 친화성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이 소설에서 결혼한 부부가 서로의 친구를 초대함으로써 서로 교차적으로 재결합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 재결합은 부부였던 남녀가 헤어지고, 이성적이지만 부드러운 여성과 이성적이며 힘이 있는 남자가 서로 결합하고 감성적이지만 열정적 남자와 감성적이지만 우아한 여성이 서로 결합하는 것이다. 그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이런 자연적으로 출현하는 선택적 친화의 관계가 있어서 아무리 제도적 강제를 통해서도 이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 주장했다.

우리는 앞에서 두 대립하는 성질의 상호 작용을 통해 양이 생성되는 것을 보았다. 두 정량의 관계를 통해 비례 관계인 척도가 출현한다. 이제 두 척도의 결합 관계를 통해 두 개의 힘이 작용하게 된다. 이 두 힘이 상호 작용을 통해 마침내 본질이 출현하게 된다.

5)

앞에서 헤겔은 화학적인 결합을 두 척도 사이의 선택적 친화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이 선택적 친화성의 개념을 통해 두 물체는 일정한 비율로 결합하게 된다.

헤겔은 이런 계열이 물체의 한 측면이 대자적인 존재에 의해 결합하는 것이라고 본다. 음정에서 장조와 단조는 동일한 것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반해서 화학적 결합은 서로 대립하는 것의 상호 작용이다. 비록 이 힘이 전기력이라는 사실은 몰랐지만, 헤겔은 이 관계가 배타적인 통일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깨달았다.

이런 배타적인 통일의 관계를 헤겔은 중화[neutralisieren]라고 한다. 이 중화는 한 측면에서는 단순한 혼합에 지나지 않는 것이 다른 측면에서는 대자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 비중을 지닌 두 물체의 화학적 결합에서 무게는 단순한 혼합이었으나 부피는 대자적인 통일이었다.

이런 중성화하는 배타적 통일에 의해 척도의 계열이 성립한다. 예를 들어 산소는 수소와는 2:1의 관계로 결합하고 황과는 1:2의 관계로 결합한다. 수소는 탄소와 1: 3의 관계로 결합한다. 이런 결합 관계는 수소를 단위로 본다면, 산소와 탄소가 각기 1/2, 1/3이라는 비율로 관계한다. 이제 산소를 단위로 본다면, 2개의 수소와 1/2의 황과 결합한다. 이런 비율을 헤겔은 비례 수라고 하며 이런 비례 수는 일련의 계열을 형성한다. 이것이 곧 척도 계열이다.

6)

이런 척도 계열은 특정한 계열이며, 다른 계열에 대해 고유성을 지닌다. 척도 계열의 고유성을 규정하는 것은 곧 이 척도 계열이 타자 즉 중화를 위해 결합하는 항과의 관계를 통한 것이다. 즉 이 중립화의 관계가 전개된 것이 이 척도 계열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비례 수 계열의 전체 속에 척도의 대자적으로 규정된 존재가 놓여 있다”라고 한다.

이제 척도 계열에서 항들의 관계를 보자. 앞에서 내포량을 규정할 때 그 정도는 비교되는 양을 지닌 다른 타자와 비교되면서 성립했다. 그것은 그저 크고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크고 작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동일한 양적인 측면에서 크고 작은 것이다.

반면 척도 계열에서 항들의 관계는 내포량의 관계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내포량이 그 계열에 속하는 항들 사이의 비교에서 나온 것이라면, 척도 계열에서는 자기 계열과 중화하는 계열에 있는 어떤 것과 관계하여 규정된다. 예를 들어 산소와 수소, 산소와 황의 관계에서 척도 계열을 이루는 각 항의 비례 수는 산소를 단위로 해서 수소와 황은 1/2: 2의 관계를 지닌다.

그런데 이런 척도 계열에서 각 항은 서로 독립적이다. 여기서 수소의 비례 지수가 1/2이고 황의 지수가 2라고 하더라도 황이 수소에 비해 더 크거나 작다는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비례 수의 크고 작음은 다만 비교되는 단위를 통해서 규정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례 수는 다만 중화의 특정한 규정성을 의미할 뿐이다. 이 점은 수소와 황이 산소를 단위로 하지 않고 다른 원소를 단위로 한다면, 그 비율 즉 비례 지수가 달라진다는 것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가 중화라고 불렀던 결합은 내포성의 형식일 뿐만 아니라 그 지수는 본질적으로 척도 규정이며 이를 통해 배타적이다. 수들은 이런 배타적 태도의 측면에서 그 연속성과 상호 융통 가능성을 상실했다. 부정적 성격을 유지하는 것은 크다거나 작다는 것인데, 하나ㄱ의 지수가 다른 지수에 대해갖는 우월성은 이런 크기 규정성에서는 머무르지 않는다.”(논리학 재판, GW21, 353)

7)

양적인 것은 자기를 벗어나 타자 속으로 연속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 부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척도 계열에서 등장하는 양적인 것에서는 이런 이행이 사라진다. 각 항은 다른 항으로 넘어가지 않으며, 자기 고립적인 것이니, 이런 측면에서 각 항은 다른 항에 대한 부정의 부정이다.

각 항은 양적인 것이면서도 이제 양성을 벗어나 질적인 차이를 가지게 된다. 헤겔 논리학은 질에서 시작하여 양적인 것으로 이행했다. 이제 양적인 것은 오랜 여정을 끝내고 척도 계열에 이르러 다시 질적인 것으로 이행하게 됐다.

“이 관계 속에 두 가지 특정화하는 것이 어떤 것 즉 제삼자인 지수에 대해 자기를 특정화하는데, 나아가서 이 관계가 함축하는 것은 일자가 그 속에서 타자로 이행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부정 일반일 뿐만 아니라 양자가 그 속에서 부정적으로 정립된다는 것이며 각자가 그 속에서 서로 무차별하므로 그 부정은 다시 부정된다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351)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