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형이상학 산책60-실재하는 척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Spread the love

헤겔 형이상학 산책60-실재하는 척도

1)

잣대는 어떤 정량을 측정하는 단위다. 어떤 사물의 정량은 그 잣대로 측정된 특정화된 정량 즉 몫수이다. 잣대나 사물은 양적 관계 외에 각기 고유한 질적인 측면을 가진다.

“정량은 그 이중적 존재 속에서 외적인 것이며, 동시에 특정적인 것으로서 존재하며, 구별된 양적인 것 각각은 이런 이중적 규정을 그 자신에서 갖고 동시에 단적으로 타자와 교차되어 있다. 질적인 것들은 오직 그 속에서만 규정된다. 이 질적인 것들은 서로에 대해 존재하는 현존 일반일 뿐만 아니라 분리될 수 없이 정립되어 있고 그런 질적인 것에 묶여 있는 크기 규정은 질적인 총수[Einheit]다. 즉 이런 질적인 것들이 개념상 본래 연관되어 있는 척도 규정이다. 따라서 척도는 두 질적인 것의 내재적 양적 상호 관계다.”

잣대와 사물의 정량 사이의 양적 관계에 관해서는 앞에서 설명했다. 이제 헤겔은 잣대나 사물이 양적 측면 외에 질적인 측면을 지닌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이 양적인 관계의 측면과 질적인 측면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앞에서 두 잣대를 비교했다. 하나는 비중(무게/부피)과 같은 잣대이고 다른 하나는 온도(열에너지/물체의 부피)와 같은 잣대다. 둘 다 두 정량의 관계로 이루어진 잣대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각 잣대는 두 정량의 비례이지만, 비중의 경우, 어느 사물에서나 두 정량은 동일한 비례 관계에 있다. 어느 사물에서나 부피가 늘면 일정하게 무게도 증가한다.

그러나 온도의 경우, 두 정량의 관계는 비례하지만, 그 비례지수는 사물마다 각기 다른데, 예를 들어 동일한 열에너지에 대해 철 온도가 돌 온도보다 몇 배 빨리 증감한다. 철은 빨리 뜨거워졌다가 빨리 식는다면, 돌은 천천히 뜨거워지며 천천히 식는다. 헤겔은 온도와 같은 잣대가 지닌 이런 특징을 일러서 “특정화하는 척도”라고 한다.

특정화하는 척도는 단순한 척도 즉 잣대와 달리 사물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단순한 잣대 예를 들어 비중은 물체에 대해 외적, 무차별이지만, 특정화하는 척도 즉 온도는 물체에 내적인 연관을 지니기 때문이다.

2)

내적인 연관은 발전한다. 온도만 해도 두 정량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직접 비례 또는 정비례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이런 직접 비례가 반비례를 거쳐 제곱에 이르게 되면, 그 관계는 더욱 밀접해진다.

기체의 압력과 부피는 서로 반비례한다. 그것은 압력과 부피가 동일한 분자 운동 에너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압력과 부피는 밀접한 연관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제 제곱 비례하는 경우를 들어보자. 예를 들어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전기에너지는 전류의 제곱에 비례한다.

이렇게 제곱의 관계나 비례에 있을 때, 헤겔은 그 관계를 통약할 수 없는 비례라고 한다. 제곱 관계는 앞에서 개별 정량을 다룰 때 이미 등장했다. 그때 거리의 제곱은 곧 면적이라는 명제가 다루어졌는데, 여기서 보듯이 하나의 질은 자기를 양적으로 제곱함으로써 새로운 질이 출현한다.

그러나 거리로부터 면적으로 새로운 질이 생성한다 할 때, 거리나 면적은 모두 공간의 일부라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질적 생성은 아니었다. 그것은 같은 정량이 좌표상 확장한 것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척도에서도 양적인 제곱의 관계가 다시 출현한다. 그러나 지금 다루어지는 관계에서 예를 들어 속도가 제곱해서 운동에너지를 낳는다고 할 때 양적인 제곱 관계에서는 서로 다른 새로운 질이 생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속도와 운동에너지는 서로 무관한 독자적인 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질’의 생성이라는 측면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개의 질적 존재가 관계한다. 그 관계는 양적인 제곱 관계이다. 예를 들어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이다. 그중 하나[속도]는 그 자체로 규정된 양이며 단위다. 다른 것[운동에너지]은 그 단위에 의해 특정화된 것으로 나타나는 정량이며 그 몫수이다.

이런 양적 관계를 맺고 있는 각각은 이런 양적 관계 바깥에 독자적인 질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운동에너지이며 다른 하나는 속도다. 여기서 운동에너지의 질적인 측면과 속도의 질적인 측면은 서로 무관하다. 어떤 현존(속도든, 운동에너지든) 양적 측면은 질적인 측면과 무차별하다. 양적 측면에서 서로 관계한다. 그런 점에서 양자에는 동일성이 존재한다. 반면 질적인 측면은 서로 무관계하다. 양자는 전적으로 다른 질적 성격을 지닌다. 서로 관계하는 양적인 측면은 무차별한 질적인 측면에 대해 외적이며 양자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관계를 맺는 현존 즉 질과 그 현존의 상호 양적 관계가 서로 무관하니, 이 관계를 통해 새로운 질이 생성되었다고 말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제곱 관계가 새로운 질을 생성한다고 할 때 제한적인 의미만을 지닌다.

제곱 관계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만, 한계가 있다. 길이가 면적으로 확장된다는 것은 사실 같은 것이 차원을 확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속도가 운동에너지로 확장한다고 할 때 그 질적 생성은 사실, 그 질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마치 동일한 것이 모양만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겠다.

속도는 운동에너지의 미분적인 힘이다. 어떤 한순간 지닌 운동에너지가 속도이며 이 운동에너지를 일정 시간에 걸쳐 적분하면 운동에너지가 나온다. 이런 점에서 운동에너지와 속도는 서로 동일한 것이다. 서로 동일한 것이 다만 한순간이냐 그것이 쌓여서 나타나느냐 하는 차이가 질적인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3)

비중은 물체와 무관하다. 그리고 온도의 전달은 물체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그 관계는 상당히 외면적이다. 나아가 운동에너지는 속도뿐만 아니라 물체의 무게와도 관계하므로 물체에 더욱 내면적이다. 양적 관계가 물체의 질적 현존에 대해 내면화되는 과정을 헤겔은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 설명한다.

헤겔은 두 질적 존재 사이의 양적 관계가 점차 고도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속도는 시간에 직접 비례한다[V=aT). 여기서는 두 정량은 단순 비례의 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낙하 법칙에서 거리는 시간에 대해 제곱 비례한다[S=1/2gT²]. 좀 더 발전하면 천체 운동에서 공전 속도의 제곱은 장 직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T² ⍶ a³ ]

헤겔은 속도와 같은 등속도 운동을 부자유 운동, 낙하 법칙과 같은 가속도 운동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운동이라 하며, 마지막으로 천체 운동과 같은 것을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운동이라 하는데, 그 까닭은 직접 비례에서 제곱 비례로, 나아가서 삼 제곱 비례로 발전하면서 운동이 물체 자체에 내재하는 운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침내 천체 운동에 이르면 이는 이제 개념 운동에 개념이 자기 자신을 구별하여 다시 복귀하는 운동에 다가간다. 이제 천체 운동에서 운동을 이끌어가는 ‘개념’은 곧 양자의 관계를 이루는 비례지수다. 즉 a³/T²이다. 이 지수가 자기를 분화하며 다시 통일한다. 그런 가운데 천체 운동 궤적 위에 모든 점이 형성된다. 그 점들은 비례지수라는 ‘개념’의 특정한 ‘현존’에 지나지 않는다.

천체 운동을 위에서 개념의 현존으로 규정하기는 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직 천체 운동을 개념과 현존의 관계로 규정할 수 없다. 개념과 현존의 관계는 논리학 개념론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그 이전에 본질론에서는 유사한 관계가 본질과 현상의 관계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지금 이 관계는 아직 본질과 현상의 관계라고도 할 수 없다. 이 관계는 다만 대자 존재와 일자의 관계다. 질적 범주에서 이미 대자 존재와 일자가 출현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대자 존재는 질적 대자 존재와는 구별된 양적 대자 존재라고 보아야 한다.

4)

이미 설명했듯이 헤겔은 이 관계에서 양적 관계는 처음에는 두 질적 존재에 대해 무차별했다. 구체적으로 비중은 물체의 질적 측면에 대해 무차별하다. 그러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 사이에서 연관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열에너지는 사물마다 다르게 전달된다. 각 사물에는 열이 전달되는 고유한 척도가 있다. 이렇게 사물마다 달라지는 척도가 곧 특정화된 척도다.

직접적 척도는 다만 어떤 정량이며, 사실 질적인 것을 자기에 부착하고 있는 하나의 개별적 정량 일반이다. 선행하는 규정인 척도는 단순한 외면적인 정량을 질적인 것을 통해 변화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특정화하는 척도 속에서는 두 가지 크기 규정성의 구별이 정립되며 이와 더불어 일반적으로 공통적인 외적 정량에서 다수의 척도가 정립된다.”(논리학 재판, GW21, 337)

마침내 두 질적 존재 사이의 양적 관계가 직접 비례, 반비례, 제곱 비례로 발전하면서, 두 질적 존재의 양적 관계의 측면은 각각의 질적 측면과 더 긴밀하게 통일을 이루게 된다. 마침내 두 질적 현존 사이에 천체 운동의 법칙과 같은 관계가 출현한다. 이 천체 운동이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운동이듯이 두 질적 현존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서 두 현존의 양적 관계는 두 질적 현존에 내재하게 되며, 이를 통해 자유로운 관계가 출현하게 된다.

이 자유로운 관계에서 두 현존의 양적 비례지수가 개념이 된다. 이 개념을 헤겔은 부정적 통일성이라 하며, 관계를 맺는 두 측면은 즉 질적 현존은 이 개념의 자기 구별에 해당한다. 이 개념은 이제 완전한 자립성을 획득하며, 자기를 이중화하면서 두 현존이 된다.

처음에 직접 비례적인 양적 관계는 질적 현존에 대해 무차별한 관계다. 이때 질적 현존은 그 양적 관계와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운동에 이르면, 양적 관계는 질적 현존에 내재화하면서 이제 더는 양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관계가 된다. 그것은 이미 통약 불가능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제 질적 현존의 양적 관계를 넘어서 질적인 것 자체의 관계가 출현한다. 순전히 질적인 것들 사이에 어떤 상호 연관을 헤겔은 실재화된 척도라고 규정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화성의 관계다.

“그러나 좀 더 발전된 규정을 이루는 것은 척도가 이제 이런 방식으로 실재화된다는 사실이며, 그 두 측면이 하나는 직접적이며 외면적인 척도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내에서 특정화된 척도라는 점에서 구별되는 척도라는 사실이다. 이런 통일로서 척도가 이루는 관계 속에서 크기는 질적인 것의 본성을 통해 규정되고 상이하게 정립되며, 따라서 그 관계 규정성은 전적으로 내재하며 자립적이고 동시에 직접적 양을 구성하는 대자 존재 속으로, 직접 비례를 구성하는 지수 속으로 몰락하고 만다.”(논리학 재판, GW21, 462)

“부정적 통일성이 곧 실재적인 대자 존재이며 어떤 것의 범주 즉 척도 관계 속에 존재하는 질의 통일로서 존재한다. 이는 완전한 자립성이다. 두 가지 상이한 비례로 발생한 이 두 가지 질은 직접적으로는 이중화된 현존을 제공한다.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그와 같은 자립적 전체는 대자 존재하는 것 일반으로서 구별된 자립적인 것으로 반발하는 것이며 그것의 질적 본성과 존립(물질성)은 척도의 규정성 속에 있다.”(논리학 재판, GW21, 344)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