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자, 소로우와의 만남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임명옥 (보령 책 익는 마을 회원)
방문객이 되어 길을 떠나다
나는 방문객이 되어 그를 만나러 길을 떠난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그를 방문하려 했을 때 사실 내 마음은 덜컹거리거나 삐걱거리고 우글우글 끓거나 오글거렸다. 안일함을 추구하는 자아와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는 자아가 만나서 갈등하고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히 깨어 있는 삶과 본질적인 삶을 추구했으며, 말과 글로써 만이 아니라 실천적인 삶을 살다 간 그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월든 호숫가로 이끌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고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이라 여겨지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모험과 실험 정신을 가지고 도전과 위험으로 가득 찬 인생길을 선택했다. 극심한 고통과 근심, 과도한 노동에 마음을 빼앗긴 이웃들에게 그리고 집의 노예, 재산의 노예, 일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에게 자급자족과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또 하나,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직면해 보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햇볕이 화사하게 내리쬐어 만물을 회생시키는 이 최초의 봄날 아침, 숲으로 들어선 나는 월든 호수 근처에서 개구리와 거북이의 마중을 받는다. 월든 호수는 웅장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묘사대로라면 여름날 청명한 날씨에는 청색빛, 폭풍우가 부는 때는 청회색빛, 사방이 눈으로 덮였을 때는 초록빛을 띤다. 호수에는 강꼬치고기, 메기, 퍼치, 피라미, 황어, 기름종개, 송어, 장어가 서식하고 봄과 가을에는 물오리와 기러기가, 여름에는 횐가슴제비가 물살을 가르며 날아오른다. 소로우에게 월든 호수는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친밀하며 가장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한 지형이자 대지의 눈이다.
소로우,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다
소로우는 1845년 3월 말 경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 때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마을에 통나무로 오두막 한 채를 지었다.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 속으로 들어가 혼자 힘으로 봄과 여름 내내 집을 지었다. 숲에 있는 호두나무와 소나무를 자르고 베고 깎는 일은 그에게 즐거운 노동이었다. 기둥과 서까래를 다듬고 굴뚝을 만드는 일은 그에게 재미있는 놀이였다. 점심으로 그는 버터 바른 빵을 싸 갔는데 송진이 묻은 손으로 만진 빵에서는 소나무 향이 풍미를 더 했을 것이다. 28달러의 비용으로 거주할 공간을 완성했는데, 그 비용은 그 당시 하버드 생이 학교에 내야 할 일 년 치 월세보다 더 싼 비용이었다. 즉, 소로우는 적은 돈으로 평생 살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나는 그의 오두막 집 문을 두드린다. 그는 노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이 가져 오는 맑으면서 풍부하고, 깊으면서도 예리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진지하면서도 신중해 보였는데,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 온 방문객을 성의껏 맞아 주었다. 그의 집은 폭이 약 3m, 길이가 4m 50cm, 높이가 2m 40cm 정도로 몇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작고 아담한 크기이다. 집 안에는 탁자 하나, 침대 하나, 의자 세 개, 책 몇 권, 그릇 몇 개 정도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벽난로를 놓았고 창문과 출입문이 있다. 소로우에게 주거 공간이란 기본 요건만 갖춘 간소한 집을 의미한다. 살아가는 데 필수품인 것들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릇이 몇 개 없으니 찬장이 필요 없고, 옷도 몇 벌 없으니 장롱도 필요 없다.
탁자는 책상이자 식탁이고, 집은 거실이자 침실이자 부엌이다. 커튼은 자연이 만드는 채광이 있으니 필요 없고, 창문을 통해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으니 그림이 필요 없고, 자고 일어나면 온 숲 속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랫소리로 음악이 필요 없다. 나는 그가 마련해 준 의자에 앉는다. 그의 집에는 의자가 세 개인데 하나는 고독을 위해서, 두 개는 우정을 위해서, 세 개는 사교를 위해서, 라고 그는 설명해 준다. 나는 그가 새벽마다 근처 샘가에 가서 떠 왔을 물 한 잔을 대접받는다. 물이야말로 현명한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음료라는 생각이 소로우의 오두막집 음식문화이다. 술은 그다지 고상한 음료가 아니고 아침의 희망을 한 잔의 뜨거운 커피로 꺼버리고 저녁의 희망은 한 잔의 뜨거운 차로 꺼버리기에 커피와 차도 불필요한 음료라는 게 소로우의 덧붙여진 설명이다.
하루에도 몇 잔씩 커피를 즐기는 나로서는 무색하고 난감해질 수밖에 없는데 기호식품은 생필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본질을 직면하고자 하는 그에게 기호식품은 사치품일 텐데, 나로서는 “이것마저 포기해야 해요?” 라고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물은 맑고도 향기롭다. 자연과 숲이 물속에서 교감하고 체화되어 순수함을 만들어 낸 듯하다.
소로우, 참다운 농부가 되다
소로우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오까지는 대부분 콩밭을 가꾸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콩밭을 매면서 소로우는 자문한다. ‘나는 콩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이며, 콩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자급자족해야 하는 그에게 콩밭 가꾸기는 그의 직업이 되어 심고 김매고 수확하고 도리깨질하고 추리고 팔고 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오직 호미 한 자루와 두 손으로만 일을 한다. 말과 소, 개량된 농기구들을 이용하지 않고 비료와 거름을 주지 않는다. 그의 농사일을 돕는 조수들은 단지 이슬과 비, 지력과 태양빛, 공기 그리고 새들의 노랫소리이다. 그렇게 하고도 그는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는 말한다.
“농사가 한때는 신성한 예술이었다. 지금은 농업의 여신이나 대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지 않고 지옥의 황금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 때문에……. 토지를 재산으로 보기 때문에 자연은 불구가 되고, 농사일은 품위를 잃고 농부는 비천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 .”
“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초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식사를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서 빵으로 만들어 먹거나 쌀로 죽을 끓여 먹거나 감자를 먹는다. 때로는 월든 호수에 나가 송어나 메기를 잡아 오기도 한다. 한번은 그에게도 육식에 대한 본능이 있어서 숲에서 우드척을 사냥했는데 육식을 먹기 위한 과정이 감자를 먹는 과정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력이 소모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는 감자나 옥수수 가루, 쌀을 먹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책상 위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비롯한 고전 몇 권이 놓여 있다. 그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의 거처는 사색을 하기 위한 곳일 뿐만 아니라 진지한 독서를 하기 위한 곳으로도 어느 대학보다 낫다. 고귀한 지적 운동으로서의 독서만이 진정한 의미의 독서인데, 고전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유일한 신탁이다……. 기록된 말은 역사적 유물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것으로 그것은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예술작품이다.”
간소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오전에 김매기나 독서나 글쓰기를 다 끝마치고 월든 호수에 몸을 담근 후 소로우는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오후에는 마을에 산책을 나간다.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듣거나 숲에 있는 새와 다람쥐를 관찰하듯 우거진 느릅나무와 플라타너스 밑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러 마을로 향한다. 어느 날 그는 마을에 갔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소로우로서는 인간을 가축처럼 매매하는 국가는 권위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러한 국가에는 세금도 낼 수 없었기에 세금 납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국민’보다 ‘인간’이 중요하고, ‘법’보다는 ‘정의’가 더 중요했다.
아직 흑인노예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소로우는 흑인노예제라는 야비한 제도에 빠져 있는 천박한 국민들과 악랄한 노예주인 남부의 농장주와 새로운 노예를 생산해 내는 북부의 공장주들을 함께 비판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노예로 삼는 것도 비판했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의 노예 감독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예리하게 관찰했다. 그래서 그는 과도한 노동에 얽매이지 말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간소한 옷과 집, 소박한 음식과 단순한 삶을 살게 되면 자기 인생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로운 주인으로 자주적인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본질과 진실을 찾아 가는 삶
소로우는 2년 2개월 동안 문명사회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실험해 보고 이 책 『월든』을 탄생시켰다. 그의 정신세계는 보다 높은 곳을 지향하지만, 그의 문장은 자연에 대한 예찬과 아름다운 묘사들로 가득 차 있다. 소로우는 자신이 살고 있던 19세기를 들떠 있고 신경질적이며 어수선하고 천박하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탐욕을 따르기보다는 절제된 삶, 소박하고 간소하며 단순한 삶을 추구했고, 진정한 문명인으로서 일과 돈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여유롭고 자유로우며 건강한 삶을 추구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나 돈, 명예가 아니라 진실이었다. 인생을 깊이 있게 사유하면서 순결함과 고귀함, 진취성과 용기, 선행과 겸손, 너그러움과 신뢰, 정직함과 모험을 사랑했고, 숲에서 호수에서 천국을 발견했다.
소로우의 집에서 나와 나의 집으로 향하면서 내 마음 속이 여전히 오글거림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그가 말하는 인생의 본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이다. 본질적인 삶으로부터 멀어져서, 그 길을 찾기가 어려워져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몰라 착잡하기도 하고 19세기와 21세기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라고 변명을 해 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본질을 찾아가는 삶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인간으로서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소로우가 말한 대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끊임없이 노력하지 말고,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게 진실과 가까운 삶일 것이다. 나는 소로우와의 만남을 통해 앞으로의 내 생이 지금보다 더 간소하고 소박해지기를, 그래서 자연과 우주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게 살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소로우식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나는 이 가증스럽고 허황되며, 탐욕스럽고 몰염치한 21세기에 사는 것보다는 이 시대가 지나가는 동안 서 있거나 앉아서 생각에 잠기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어떠한 힘도 나를 막을 수 없는 그런 길을 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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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셋째 글로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강승영 옮김, 이레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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