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보는 프리즘, 가족 2-④ [4人4色 책읽기]
주승일 (도서출판 그린비 편집자)
가족의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다. 혼자 생활하는 싱글과 결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명절 때나 되어야 가족이 간신히 한자리에 모이면 화제는 단연 ‘결혼’이다. 결혼적령기는 해가 갈수록 늦춰지고 있고, 사회의 만혼화?미혼화 역시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렇다고 결혼 생활이 솔로 생활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솔천커지’(솔로 천국, 커플 지옥)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미친 소리가 아니다. ‘이혼’은 TV 등 대중매체의 단골손님 아니던가. 이제 가족은 영원한 동반자이고 가정은 안정된 공간이라는 생각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원제와 같이 ‘가족의 구조조정’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일본의 가족은 어디로 가는가?
이런 가족의 위기는 우리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도서출판 그린비 펴냄)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이 책은 전후(戰後)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정착된 ‘남편-샐러리맨’과 ‘아내-전업주부’를 골격으로 하는 일본의 핵가족 구조가 경제 거품이 꺼진 후 해체되어 가는 모습을 분석해 주고 있다. 우리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와 함께 이 책을 기획한 것은 이러한 일본의 가족 구조 변화를 살펴보고, 이러한 현상을 우리의 시각에서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지 우리의 가족 구조와 비교하며 분석할 수 있는 논점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큰 틀에서 보자면 동아시아의 각종 문화 현상, 역사적 문제를 공유하고 서로 간에 교류를 더 넓히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일본의 가족은 1990년대 이후 급격한 노령화와 이혼율의 증가, 미혼화, 저출산 등에 시달리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부모를 모시는 걸 점점 꺼려하고,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관계 또한 꺼려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배우자 외에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기회도 늘고 있고, 이에 발맞추어 싫어진 배우자와 이혼하는 건수도 늘고 있다. 경제적 욕구로 결혼 상태를 마지못해 유지하는 ‘가정 내 이혼’ 빈도까지 고려하면 부부관계부터가 위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가족의 성립을 가져오는 결혼을 보자면, 그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평균 초혼연령 추이를 보면 전후 이래 점차 상승해 90년대 말에는 남성 28.6세, 여성 26.7세에 다다랐다. 이 책은 결혼이 늦춰지는 이유로 저성장으로 인해 젊은 세대의 경제력이 부모 세대만 못하게 되어 경제력 높은 부모를 가진 여성 및 경제력 낮은 남성은 결혼하기 어렵게 된 점, 그리고 결혼 상대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지게 되어 인기 있는 사람은 결혼 시기를 늦추고 인기 없는 사람은 상대를 만나기 어려운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경제력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의 고령화를 시스템을 통해 해소하지 못하고 여전히 가정 내 부양 책임에 의존한다는 점도 결혼 기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한다.
결혼 기피와 맞물린 저출산의 문제 역시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다. 대졸 미혼여성을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그 심리적 동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철이 들 때까지는 일을 쉬고, 아이가 크면 다시 일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아이 셋을 키우려면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쪼들려요.” “내 아이니까 직접 키우고 싶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고, 생활비 때문에 가능하다면 계속 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젊은이들은 경제력이 윗세대만 못하기 때문에 취업과 양육을 병행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자연히 아이를 많이(혹은 아예)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느는 추세다.
현대 일본사회의 기본단위가 되어 주었던 ‘가족’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이렇게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리고 이 위기의 주범으로 이 책은 ‘경제의 저성장’을 들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저성장’으로 포괄하기보다는 거시경제와 사회구조가 맞물린 문제라는 점, 특히 경제와 고용의 문제가 부각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핵심은 경제와 고용의 문제
일본에서 경제 불황의 여파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 있다. 그것은 1994년경에 있었던 일본의 유명 항공사가 스튜어디스를 계약직으로 채용한 사건이다. 스튜어디스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해야 가능한 직업이었기에 젊은 여성들에게는 동경하는 직업 중 하나였고, 스튜어디스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신분 상승의 효과가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기업에서조차 급여와 대우가 한참이나 열악한 비정규직을 둔 것이니 일본인들의 충격이 컸던 것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에 따라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크게 늘면서 ‘종신고용, 연공서열’ 등 일본 노동계의 상징이 무너진 것이다. 위 사건과 같은 직장 내 하청(사내하도급), 그리고 하청에 하청을 주는 등의 악성 고용 방식이 나타나 이른바 ‘유연하게’ 노동자들을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노동자들 간에도 위계가 뚜렷이 구분되어 갈등의 불씨를 안게 되었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할 것 없이 고용 불안, 심하면 실업 공포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고, 비정규직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재계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평생직장 개념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청년들 역시 높아진 취업 장벽에 가로막힌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1996년 이래 취직 빙하기의 파도가 바뀌지 않고 취직이 정해지지 않아서 우왕좌왕하는 학생, 취직 재수를 하겠다고 결의하는 학생 등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젊은 여성들이 ‘취집’(전업주부로서의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경제력 있는 젊은 남성들이 줄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쉬운 길이 아니다. 취업의 길이 어렵다 보니 일본에서는 기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뚜렷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는 ‘프리터’(free+arbeiter)나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적 싱글’(parasite single), 그리고 (직접적 원인은 아닐 수 있지만) 사회생활을 회피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 등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인간형이 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 큰 문제로 부각될 정도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정규직은 이미 전체 노동자 중 1/3 이상(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약 35%)을 차지할 정도인데 이는 일본과 비슷한 수치이며(2010년에 34%),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청년들의 실업 문제는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불법파견과 무단해고(정규직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훨씬 자르기 쉬운 상황이다)에 항의하기 위해 회사에서,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이런 힘조차도 없는 이들은 (‘비정규직 보호법’에 보호받기는커녕) 해마다 자리를 옮겨야 하고,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면서 고강도 노동과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청년들은 취직을 위한 일(공부)에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보내면서도 취업이라는 바늘구멍 뚫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청년들은 경쟁사회에 내몰려 있고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식’들만이 좋은 위치로 등극하고 있다. 빈부의 격차만큼이나 빈부의 되물림이 심화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지나친 경쟁의 피로감에 지친 청년 세대에서 일본과 마찬가지의 기형적 생활인이 탄생하여 사회문제로 부각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따로 또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을 꿈꾸며
가족의 위기는 사회의 위기이다. 역으로, 사회 문제가 가족의 위기를 불러 왔다. 기존 가족 구조의 붕괴는 구성원들 개인의 태도와 심리에 국한할 수 없다. 이 책은 주로 ‘불황’을 문제 삼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회 기저에 흐르는 구조적 모순이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지은이 야마다 마사히로는 다른 책에서 일본의 지나친 경쟁과 그 속에서 패배한 이들이 다시 일어서기 힘든 구조적 모순, 다른 꿈조차 꾸기 힘든 하류인을 양산하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가 연구하는 가족사회학은 ‘가족’만큼이나 ‘사회’ 전체에 초점을 두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제안하는 사회학적 처방은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이나 상대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을 포함하면서도 근대사회가 지향하는 합리성과 효율성, 제도적 정비와 방안을 강조하고 있다. 성별 역할의 분담이나 풍족한 생활에 대한 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한 애정으로 결합하고, 직장이나 자원봉사, 취미 등 좋아하는 영역에서 각자의 꿈을 추구해야 하고”, 자녀에게는 압력을 가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는 생활의 보장, 노동력의 재생산, 가족의 경제생활 보장, 성차별적인 노동환경 개선, 약자 보호, 여성 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 개선 등의 관점에 기반하여 제도적인 근본 대책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가족은 이래야 한다’라는 걸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삶의 보람을 느끼며 ‘더 좋은 가족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끝을 맺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가족을 거시적 안목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원리적인 수준이지만) 대안을 제시한 사회학 저서이다. 이제 이를 이어받아 가족과 연동된 질문들(예컨대 고용과 세대와 관련한 문제들)을 첨예하게 벼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 자체를 좀 다른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함께 사는 사람들’이나 ‘공동체’의 관점에서, 혹은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이라는 식구(食口)의 관점에서, 아직은 생소하지만, 가능한 가족의 형태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맹목성,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은폐된 폭력, 장애인이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같은 문제가 기존 가족 관념의 그림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더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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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시대와 철학>이 기획하여 진행하는 책읽기 코너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저자 혹은 역자, 학자와 전문가, 일반 독자와 편집자가 한 권의 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책 읽기, 세상 읽기를 보여주는 기획입니다. ’4인4색의 책읽기’의 두번째 책은, 야마다 마사히로 지음, <우리가 아는 가족의 종말>(장화경 옮김, 그린비 펴냄)으로 김세서리아(성신여대 연구교수), 조주영(서울시립대 박사과정), 이현숙(자유기고가), 주승일(그린비 편집자)의 글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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