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재배치가 필요한 시간 [청춘의 고전 시즌2]-⑧
[청춘의 고전 시즌2 /그림으로 읽는 철학] – ⑧
?? 일시: 2012. 7. 14.?(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기억의 재배치가 필요한 시간
– 코로의 <모르트퐁텐의 추억>과 베르그송의 예술 감정 –
강연:? 류종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예술적 감정과 베르그송의 사상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을 두고 흔히 ‘지속’의 철학자라고 한다. 베르그송의 사상에서 새로운 중요한 발견이 ‘지속’이라는 개념이다. 지속은 ‘변화’?’생성’?’흐름’을 뜻하고 이 지속은 ‘실재성’을 띈다. 그리고 이 실재성은 ‘기억’을 이루면서 지속과 기억은 “깊이에서 변화하고 운동을 겪는 ‘심층(深層)'”을 이룬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른바 ‘심층의 철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청춘의 고전 8번째 강의에서 베르그송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류종렬 교수는 강의 첫머리에 “오늘 강의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베르그송 사상과 더불어 그의 예술론 중에서 미적 감정과 회화에 관한 관점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조금은 복잡할 수도 있는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을 조금 확대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정리해서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지속(변화ㆍ생성ㆍ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움직이며 존재한다. 이런 지속은 크게 보면 변화하고 운동하는 자연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아, 세계, 세상은 지속하면서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다. 그래서 베르그송의 철학을 ‘생성의 철학’이라고도 한다. 생명에서의 진화처럼, 인격도 변화과정 중에 있고 또한 자연, 즉 본성도 변화하는 중에 있다. 이 변화 속에서 변화를 공감하며, 인식하는 ‘지각’이 있다. 이것은 감각기관의 오관(五官)만이 아닌 몸 자체로 내재적 인식능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이런 내부의 인식을 잘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다. 베르그송이 다른 화가보다 자연에 대한 변화(움직임)를 잘 포착하는 작가들을 높이 평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예술이라고 불렀던 것, 혹은 미술적 표현에 있어 19세기 말 베르그송이 구상하던 사상체계와는 다른 시기의 예술의 형태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같이 변화해 간 미술을 우리는 또 어떤 시각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류종렬 교수는 오늘 강연의 주제를 언급하면서 18~19세기 프랑스 혁명을 통한 사회적 변화의 내용을 이해하고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서양의 철학사를 다시 들추어 그 배치관계를 규명해 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철학사를 다시 보자
본격적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서양의 철학사를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류종렬 교수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철학사를 다음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상층(上層)의 철학’ ― ‘평면(平面)의 철학’ ― ‘심층(深層)의 철학’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세 단계의 철학의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 ‘상층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Plato)에서 르네상스에 이르는 시기의 철학이다. 우리가 흔히 이른바 형이상학이라고 이해하는 철학이다. 보이지 않는 천상의 변화하지 않는 궁극적인 진리가 있어 인간은 이 진리를 항상 모방하는 위치에 있었고 이런 의식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을 해석했다. 주인과 노예, 지배와 피지배의 이항논리를 구성하여 현실과 이상은 철저히 구분되었다. 이상은 ‘진리’이며 현실은 아류였다. 이 있지도 않은 천상의 철학을 하던 1500~2000여 년 동안 형이상학적 철학은 인간의 노동력과 피를 담보로 그 사유체계를 유지했다. 이와 같은 ‘진리'(‘진실’이 아니다)의 학문은 수학, 논리학과 관계한다.
두 번째 단계는 공중에 붕 떠 있던 ‘상층의 철학’을 땅으로 끌어내린 표면의 시기이다. 이때의 철학을 ‘평면의 철학’이라고 한다. 고대에는 천상의 변화하지 않는 것이 진리이고 지상에서 변화하고 움직이고 생성하는 것은 다 거짓이었다. 그러나 1632년 갈릴레오(Galileo)가 “하늘의 원리가 지상에도 동일하게 있다”고 언급하면서 관성의 법칙을 끄집어냈다. 이것을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가 철학적으로 정리한다.
데카르트는 물체에도 실체가 있다고 말한다. 즉 “물리학(physics)적 실체의 긍정”이다. 물리학적 실체를 얘기하니 실체의 주체와 객체가 구분된다. 그리하여 일원론적 사고에서 이원론적 사고로의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주체를 얘기했고 칸트는 객체를 얘기하면서 근대 서양철학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이런 ‘평면의 철학’은 물리학과 관계한다.
이제 세 번째 단계는 표면 아래 ‘심층의 철학’이다. 평면의 철학이 현상과 실재를 논쟁 삼았다면 심층 철학의 시대에는 자연내재를 탐구한다. 변화하고 움직이고 생동하는 자연의 참 의미를 찾기 위해 자연의 진짜 역사, 생명의 진짜 역사를 얘기한다. ‘심층의 철학’은 생물학(진화론, 분자생물학)과 가깝다. 생명은 신이 “있어라” 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1807년 라마르크(Lamarck, 1744~1829)가 생명의 진짜 역사에 대해 얘기했고 이미 프랑스에서는 1789년 혁명을 통해 가톨릭 성경의 천지창조의 기만과 전제군주의 학정(虐政)을 인민(人民)의 힘으로 전복시켰다.
이 역동적인 힘은 사회의 분위기를 바꿨고 인간은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혁명 이후 인간은 능동적이 되었고 인간 ‘내부’의 ‘심층’에 있는 ‘파토스(pathos)’를 드러낼 준비를 했다. 루소(Rousseau, 1712~1778)가 말했던 ‘연민(la piti?)’이라는 ‘공감’의 자발적 감정은 신을 바라보지 않고 인간을 향한다. 낭만주의적 사랑은 하늘이 하는 사랑이 아닌 인간이 인간에 대해 하는 사랑이다. 여기서 예술이 나오고 미적 감정이 나온다. 예술이란 인간의 내재적인 내면의 것을 표면으로 끄집어내서(드러내어) ‘실재화’ 시키는 것이다.
조금 장황할 수도 있는 설명이지만 류종렬 교수는 철학사를 다시 봄으로써 미술사에 있어 일련의 변화 과정이 매우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째서 베르그송이 유일하게 코로와 터너의 미술 작품을 인정하고 자신의 철학을 대입하려 했는지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미술이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프랑스 혁명이란 사회적 변화와 함께 철학적 관점의 변동을 거치며 자연주의 또는 사실주의의 표현에 더 많은 관심을 드러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추상적 관념의 미술에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로의 변화 – ‘코로’와 ‘터너’
류종렬 교수는 코로와 터너 작품의 특징이 자연주의적 표현과 함께 실재성의 표현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전의 미술을 상층을 모방해서 그리는 복사의 ‘시뮬라크르(형상모방=부족한 형상)’라고 한다면 코로와 터너의 작품은 심층의 두께를 밖으로 표현하는 ‘시뮬라크르(자연모방=창조적 형상)’라고 할 수 있다. “원본을 똑같이 찍어내는 것은 복사본이다. 들뢰즈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성의 두께로부터 자연을, 사물을, 인격을 모방해내는 ‘시뮬라크르’가 진짜 미술이라고 했다”
류종렬 교수는 코로와 터너의 작품을 보기 전에 몇 가지 그림 작품을 소개하면서 추상적인 관념의 미술과 그 단계를 벗어나고 있는 미술의 차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의는 추상적인 관념의 미술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작위적으로 표현된 여인들의 슬픔과 아버지의 권위를 상징하는 저 그림의 대상들은 누군가에가 뭔가를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다. 전형적인 유럽의 그리스 베끼기라고 할 수 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들라크루아(Delacroix)는 그림은 눈으로 보기 즐거워야 한다고 말했다. 류종렬 교수는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눈으로 보는 감각을 중심으로 그렸고 아직까지 감성에 대한 것을 애기하지는 못했다.”고 하면서 앵그르(Ingres)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거론한다. “이 그림은 살롱에서 퇴출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전형적인 그림의 구도에서 벗어난다. 형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은 형식적인 틀이 있다는 것이고 시각적인 틀에 맞는다는 것이다. 이 그림은 형상적 그림의 형식을 벗어나면서 ‘파토스’를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예술가들의 대단한 점은 여러 관점(장면) 중에서 가장 분명하게 빛나고 밝게 솟아오르는 시점을 포착해서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점”이라고 한다.
이제 예술가들은 형상적인 그림을 요구하는 귀족들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자신들의 그림 속에서 서서히 ‘파토스’와 ‘실재’가 드러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현실의 변화를 직감적으로 느끼고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현실에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류종렬 교수에 의하면 화가들은 변화하는 현실을 알아챘고 1830년 프랑스 혁명(7월 혁명) 이후 토지귀족이 몰락하고 쁘띠 부르주아들과 어울리면서 진정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원히 불멸할 듯이 보이는 추상적 관념의 그림에서 변화하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그림을 그린 이가 코로와 터너이다. 먼저 터너의 그림을 보자. 사실 베르그송의 철학과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작가는 터너이다. 터너의 작품들은 별 다른 설명이 없어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동적인 바다와 산악 등 자연의 변화하는 모습과 주변 풍경들을 생생하게 화폭에 그려내면서 자연의 ‘역동성’을 강조했다. 터너가 평생 여행을 좋아했다는 사실도 그의 그림 성향을 이루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또 <국회의사당 화재>와 같은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어떠한 곳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 화폭에 담았다. 이런 점은 그가 그림에 목숨을 걸었다는 말을 믿게 만든다.
터너는 물론 역사적인 그림도 그렸지만 서사적인 역사성을 통해 교훈적인 메시지를 인간에게 새기려하지 않았다. 자연과 풍경을 그린 그 자체만으로 인간에게 감동을 느끼게 하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렸다. 이와 관련하여 류종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 한다. “바스키아(Basquiat)는 자신이 화가가 된 동기가 어릴 적 게르니카(Guernica)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받은 인상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고통, 슬픔을 보고 ‘공감’을 느끼게 하는 이런 그림이 진짜 그림이다”
코로의 그림은 터너의 그림에 비해 역동성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자연풍경의 아름다움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코로의 풍경화는 자연이 가장 빛나게 솟아나는 시점을 예술가의 관점으로 잡아낸다. <모르트퐁텐의 추억>을 그린 프랑스 ‘모르트퐁텐’ 지역의 자연환경은 예술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였고 많은 화가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작품 활동을 하였다.
사실 코로의 그림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은 <퐁텐블로의 숲>이다. ‘퐁텐블로’는 당시 살롱에 가서 미술하기를 거부하던 자연주의 화가들이 1830년부터 작품 활동을 위해 모이는 장소였다. 류종렬 교수는 “화가들의 이런 경향은 맑스(Marx, 1818~1883)가 1846년 프랑스에 와서 인민이 성립했다고(프롤레타리아트가 성립했다는 것) 말한 후 1848년 「공산당 선언」을 쓰던 시기와 겹친다.”고 설명한다. 1840년대 이후 사회질서가 바뀌고 서민 계층이 사회의 주축으로 등장하면서 자연주적 태도의 예술가 중 밀레(Miele)처럼 인민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도시에서 귀족이나 부자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당시 이러한 변화는 밀레와 쿠르베(Courbet)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에서 농부의 손에 한 줌 움켜쥐어 있는 씨앗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씨앗이다. 바로 프롤레타리아들이 성립하는 시기에 이 그림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를 두고 농촌의 목가적인 평화로움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런 해석은 다 사기다! 이 그림들에서 표현하는 것은 실제 인민들의 고통과 슬픔이다”
류종렬 교수는 이어 “쿠르베의 그림은 ‘특정한 위대한 인간’이 아닌 자연 속에 있는 ‘인민’ 그 자체를 가감 없이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쿠르베는 프루동(Proudhon, 1809~1865)과 친교가 있었고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기도 한 인물이다. 특히 그의 작품 <오르낭의 매장>에서 이전까지 전형적인 매장을 그린 작품에 보이는 엄숙한 귀족?성직자들의 얼굴을 모두 자기 동네의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이 “인민 의식”이다. 바로 이런 그림이 시대정신을 기만하지 않고 “시대를 바꾼 그림들”이었다.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철학과 예술을 위해
류종렬 교수는 코로?터너와 같은 자연주의ㆍ사실주의 화가들의 미술 경향과 이와 연결되는 베르그송의 철학을 두고 “‘자연에 의한’, ‘자연을 위한’, ‘자연 속에서’의 철학”이라고 하면서 이름을 붙인다면 “범자연내재주의”라고 부를 있다고 한다. 이는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이나 영미(英美)의 실험심리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가 우리 내부의 인식을 잘 드러내고 이러한 내재적 ‘지각’의 방식이 사람들끼리 상호 소통되어 ‘공감’을 이루어 낼 때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던 ‘상층의 철학’, ‘천상의 철학’을 전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혁명’ 과제이기도 하다. 류종렬 교수는 이 강의에서 베르그송의 사상과 사실주의적 회화의 경향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이것을 우리의 삶과 연계시켜 우리 사회의 모순을 깨뜨리고 개개 인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토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사회는 일제 강점기와 친미주의 시기를 겪으면서 일?미 ‘제국주의’의 영향 아래 ‘상층의 철학’만 가르쳤고 결국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을 발양시키지도 못하고 “신비주의와 동일성의 논리 아래 ‘착각’의 역사를 살아왔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은 철학사에서 처음으로 ‘상층의 철학’을 ‘착각’이라고 한 철학자이다. 베르그송?코로?터너와 같은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자연 속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던 자들이다. 류종렬 교수는 “링컨(Abraham Lincoln)이 단지 ‘ofㆍbyㆍfor the people’만 말하고 ‘민중(인민) 속으로’를 빠뜨린 것은 ‘리버럴리스트(liberalist)’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위마니떼르(humanitaire)’를 중심으로 ‘위마니떼(humanit?)’라고 하는 인생의 자유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의 말미에 류종렬 교수가 강조하던 ‘위마니떼’의 삶은 말하자면 현대 시장자유주의에 함몰되지 않은 ‘인도주의적 이성주의자’의 삶이라고 하겠다. 이런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연 속에서 자기에 의한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마치 자기 방식으로 자기를 내보여 자기가 드러나는 작품을 그리면서 살았던 코로와 터너의 삶처럼 말이다.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과 ‘생성’의 철학을 우리 삶에 실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류종렬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이번 강의를 끝맺었다.
“헉명의 시대를 구현하는 자질은 우리 안에 가려져 있다. 이 자질과 능력은 자연주의적 태도, 사실주의적 태도에 대한 긍정이 있어야 튀어나오고 바로 그래야만 사회의 이상성이 무너진다. 이제는 우리의 삶에 있어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제적이고 자연적인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후기: 진보성 (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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