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철학을 위하여 [한철연 교육강좌]- 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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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연 교육강좌]- ⑬

연대의 철학을 위하여

 

강사 : 서 유 석(호원대 교수)
후기 :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연대(solidarit?)라는 말과 사상이 역사에 의미있게 등장한 것은 프랑스 혁명기이다. 프랑스 혁명기에 연대는 ‘자유(libert?)’, ‘평등(?galit?)’과 함께 혁명의 이념으로 제시된 ‘형제애(fraternit?)’의 유사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개념이 정치적 의미를 지니면서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로 정착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덕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연대에 큰 의의 부여한 까닭은 그것이 자본의 착취에 맞서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에게 연대는 투쟁 수단만이 아니었다. 연대(연대적 삶)는 동시에 미래 이상 사회의 구성 원리이기도 했다. 이상적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연대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68혁명을 전후하여 등장한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에서의 연대 역시 억압 구조의 타파를 이루기 위한 구성원들 사이의 정서적 결합과 상호협력을 의미했다. 사회주의 연대와 신사회운동의 연대는 양상의 차이(자본주의 타파냐 억압구조의 타파냐)는 있지만 연대 투쟁의 과정에 분명한 적이 있었고 목표(인간 해방)가 보편적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서유석 호원대 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연대의 원리는 사회보장 정책을 정당화하는 원리로도 작용한다. 현대의 사회복지정책은 빈민구제가 아니라 제도화된 상호부조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사회적 연대의 구현으로서의 사회권 쟁취 운동은 오늘날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사회보장 정책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사회보장정책은 체제 안정을 위해 지배자의 편에서 도입되었다. 독일의 사회보장이 비스마르크에 의해 제도화된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사회보장은 인권을 확보하는 투쟁을 통해 획득되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사민주의자들의 사회권 투쟁이 대표적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제기한 ‘해방 투쟁을 위한 연대’는 현실에서는 매번 좌절되었다. 맑스도 예상치 못한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인 복지국가 정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변혁을 위한 연대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었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체제 위기가 와야 하는데 실제는 아니었다. 국가가 국민을 달래고 적당히 동의하게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의 지배는 폭력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주민의 동의에도 일정한 기초를 두고 있다는 말이 된다. 사회 또한 노동자 대 자본가라는 단순 구도로 구조화되지 않았다. 구조가 단순하지 않으니 그것을 변화시킬 싸움도 단순하게 전개될리는 만무하다. 단순한 기동전이 아니라 끈질긴 진지전이 제시되는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변혁 세력은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도 기동전이 통하는 시기는 아니다. 자본주의적 체제의 자정 능력이 의외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동계급 중심의 사회주의적 연대가 아닌 다양한 계층의 실제적 삶 속에서 연대를 조직하는 진지전적 작업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유효할 것이다. 주민 자치 운동의 활성화를 통한 연대적 삶의 조직은 실천적 사례가 될 수 있다.

지역 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은 민주주의를 일상의 삶 속에서 그리고 나와 이웃의 삶 속에서 구현하는 운동이다. 전국 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대의제 정당 민주주의로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할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주민의 삶의 현장인 주거 공동체, 일터, 학교, 그리고 기초 단체의 행정 집행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어야 하고 삶의 제 분야인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이주 노동자, 교육, 먹거리, 교통, 환경 등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주민의 직접 참여에 의한 자치가 이루어져야 민주주의는 완성된다.

여기서 일본 ‘혁신 자치제’의 경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민주 세력들은 1960년 중반 이후 공산당, 사회당이 중심이 되어 환경, 생활, 복지를 지방자치의 핵심 의제로 걸며 지방 자치의 혁신을 시도한다. 이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활 문제의 해결을 정치의 핵심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집회, 도민실 운영, 심의회 등 주민 참여형 행정이 도입되었다. 중앙정부도 지자체가 선도한 조처들을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여 나가게 된다. 일본 지방 자치 연구소 스가와라 연구원은 이를 두고 당시의 전략은 “자민당이 주도하는 중앙 정부를 포위하는 구상”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등장한 주민자치운동의 사례도 진정한 연대적 삶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산본 쓰레기 소각장 건설 반대운동은 ‘군포자치시민회’의 결성과 ‘수리산 자연학교’의 건립으로 이어져 지속적 주민자치운동으로 발전했다. 마포 성미산 지역에서는 생협운동, 공동육아운동, 대안학교운동, 친환경급식운동, 지역 차원의 대안경제운동 등의 다양한 공동체 운동이 발생하면서 개별 운동 영역간의 폐쇄성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을 통해 주민들은 정치의 실제적 주체가 되고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지고 정치적 고민의 폭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 지역 주민만의 정치가 아니라 일반적 시민의 정치까지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은 정치적 무관심, 정치적 무임승차 의식, 계급 배반 투표, 박정희 신드롬 등의 현상이다.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보편적 복지 구현이라는 진보정당의 강령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세금 인상은 반대하고 있다. 세금과 규제는 피하고 각자 노력하여 많은 수입을 벌면서 제도적 혜택은 혜택대로 누리려는 무임승차 의식, 그리고 성장의 신화를 잊지 못하는 퇴행적 향수는 보수당에게 표를 몰아준다. 이런 이율배반 심리는 정치가 국민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진보 및 개혁 세력이 실제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지역 공동체의 주민자치 운동은 시민 스스로 무임승차심리를 극복하게 하고 박정희 신드롬을 극복하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최상의 학교요 교육의 장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주민자치운동은 중앙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내부 소통과 숙고, 실천과 참여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획득하고 시민운동으로 발전한다. 주민자치를 포함한 사회적 연대운동이 진정한 연대의 과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열린 연대운동이 되어야 한다. 집단 이기주의적 닫힌 연대는 배제되어야 한다. 노동 운동도 공동체 운동도 이 동질 집단에 대한 충성의 경향성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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