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 아픈 현대 미술; 근대 이후의 아름다움 [한철연 교육강좌]-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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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연 교육강좌]- ⑩

골치 아픈 현대 미술; 근대 이후의 아름다움

 

강사 :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오늘(5월 27일)은 이병창 회원(동아대 명예교수)의 강의를 통해 아방가르드 미학에 다가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현대 예술의 경향을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로 나누면서 후자를 ‘사기, 해체, 꿈’이라는 세 키워드로 풀이해 나갔다.

 

1)사기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그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①예술은 가상을 마치 진짜 현실인 양 만드는 눈속임이다. ②예술은 장난(유희)이다. 이 말의 의미를 풀이해보기 전에 우선 청계천에 있는 이라는 조형물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클라스 올덴버그라는 스웨덴 출신의 팝아트 작가의 것이다. 아이디어는 부인이자 동료 팝아트 예술가인 코샤 반 브룽겐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은 좋지 않다. 한국의 역사적 전통과 동떨어져 있으며, 조각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와도 거리가 멀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병창 회원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소라를 귀에 대보면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소라와 같이 생긴 이 작품도 자연의 소리, 생명의 소리(물소리)를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인공적으로 복원된 청계천의 기만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샘의 생명에 찬 분출력을 인공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 작품은 청계천이라는 거대한 인공 개천을 마치 자연 하천의 복원인 양 여기는 한국 사회의 기만적 행태를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예술은 사기이되 현실의 사기(기만성)를 사기라는 형식을 가지고 드러내는 사기라 할 수 있다.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또 다른 예는 삼성이 세운 리움 미술관이다. 삼성은 서구의 세 유명 작가(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에게 의뢰하여 각각 독립적인 건물을 세우게 하고 지하를 통해 세 건물을 연결했다. 각각으로 보자면 대단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전체적 관계성을 고려해서 보면 이 건물들은 사기이고 기만이다. 건축물은 언제나 그것이 거기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와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건축되어야 한다. 마리오 포타의 작품은 로마네스크 교회 양식이라는 역사적 전통과 현대성 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그 미적 가치를 웅변한다. 그러나 리움 미술관에 들어 선 마리오 포타의 작품은 특유의 긴장 관계가 소멸된 무맥락성 속에 있다. 이것은 그저 재벌가가 자신의 재력과 왜곡된 교양을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이 작품들은 한국 재벌들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그들 혹은 한국 사회의 무비판성과 몰취미(기만성)를 폭로하는 ‘예술의 간교한 복수’를 감행하고 있다.

2) 해체

해체라는 개념은 프랑스의 작고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대표적 개념이다. 우리는 세상을 개념틀을 가지고 본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을 볼 경우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 자체를 거부하려 한다. 이런 대상과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지닌 기존 개념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반성을 통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기존 개념틀의 구조를 새로 인식하게 되고 그것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해체란 자신이 은밀히 지니고 있던 개념틀의 토대를 드러내고 그것의 한계를 폭로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존 개념 구조틀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와 대면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이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파이프 그림과 파이프가 아니라고 진술하는 문장 간의 갈등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회화 작업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적 개념틀을 재검토하는 비판적 태도를 경험하게 한다. 라우셴버그의도 해체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당시 유명 화가였던 데 쿠닝의 작품을 사서 그의 그림을 지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오직 지우는 작업으로 채워진 이 작품은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회화 작업이라는 통념에 도전했다.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를 남기고자 삶의 모든 양식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지워나가는 작업에서 오히려 삶의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상념할 수 있다.

3) 꿈

예술은 꿈이다. 꿈은 우리가 무의식 속에서 소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꿈을 제대로 꿔내려면 무의식 상태에 진입해야 할 것이다. 무의식은 공포스럽다. 하지만 쾌락을 주기도 한다. 인간은 흔히 불온하고 금지된 것을 꿈꾼다. 그것은 처벌의 공포를 주지만 동시에 강한 쾌감을 선사한다. 무의식의 세계에 탐닉하는 자신은 의식 세계의 자아를 벗어나 변신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의식된 자아에서 해방됨으로써 우리는 자유를 만끽한다. 지금과 다른 존재로의 변신은 지금 상태에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보고 그것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에게 이해 불가능한 대상 중 대표적인 것은 자연이다. 예술은 언제나 자연과의 화해라는 불가능한 꿈을 꿔왔다.
이화여대의 ECC관은 도미닉 페로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건물이되 텅 빈 공간으로서의 인상을 준다. 어떤 공간을 채우는 형태의 건축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선사하는 건축 방식은 건축물 위에 공원이라는 자연 공간을 끌어옴으로써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 건물은 자연과 인공물이 공존하려는 꿈을 보여주기 위한 건축물로 변신했다. 이종호의 작품 박수근 미술관 또한 자연이 건물이 되고 건물이 자연으로 변신하는,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라는 예술의 꿈이 구현된 작품이다.

 

질문 1) 현대미술의 시기는?

연대 구분을 명확히 나눌 수는 없다. 대략 보자면 1920-30년대는 모더니즘, 50-60년대는 아방가르드, 70-8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라 할 수있다. 그러나 각 경향의 운동은 특정 연대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질문 2) 한국 사회 그리고 서울이라는 공간은 사실 전통 및 맥락과 단절된 곳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리움미술관의 무맥락성도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

맥락은 단절의 관계이다. 기존 전통과 경향, 사건들이 현재적 상황과 충돌을 빚고 일정한 단절의 긴장을 형성함으로써 맥락적 관계가 등장한다. 그러나 리움은 뜬금없이 불쑥 세워진 완전한 무맥락성에 있다. 전혀 다른 의도와 맥락 속에서 등장한 구현물들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아무런 긴장 관계의 형성도 없이 억지로 이어 붙인 것에 불과하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후기

철학과 예술 새로운 관점에서 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추천해 주신 한국 내 작품들을 보고싶어집니다.

건축은 예술 작품이지만 동시에 공공 생활을 책임지는 유산이 될 수있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도시 계획이 앞으로 더욱 성숙하고, 건축이 미래의 유산임을 염두에 둘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예술은 느끼는 것일까? 이해하는 것일까? 문외한으로서 먼저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 필요하다. 오늘 강의는 예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강의였다.

예술가는 ‘시작과 끝’만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5년동안 감상해오던 ‘바깥 미술회’의 작품들이 그동안의 시간과는 달리 나의 심상의 영향을 받아 크게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경험을 실제 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지난해 그들이 겪었던 쓰나미의 슬픔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건희 부인 홍라희가 비싼 예술품을 대중과 함께 즐기기를 바랍니다.

해체의 현 현상을 시적으로 살피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건축 미학에 대해 잘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강의를 통해 예술에 대한 새 시각을 갖출 수 있었다.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기술이 골치 아픈 대상이듯이 공학 종사자에게 에술이란 대하기 두려운 대상이다. 이병창 선생님의 사례 제시와 설명으로 예술에 대해 두려움을 덜어내고 재미를 심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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