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빛으로 아들의 사랑으로, 영화 ‘맨인블랙3’ /강지은 [보고 듣고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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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생각하기]

아버지의 눈빛으로 아들의 사랑으로

영화 ‘맨인블랙3’

?글: 강지은(편집주간)

 

그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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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인블랙MIB, 그들이 돌아왔다. 검은 수트에 검은 선글라스. 자체 발광하는 A급 배우 윌스미스와 토미리 존스.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를 고르는 나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블록버스터이지만 1편부터 맨인블랙은 신선함을 주는 코미디 블록버스터였다.

대부분 영화에서 외계인은 소탕해야 마땅한 존재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외계인은 일종의 제국으로서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맨인블랙의 외계인은 지구가 좋아 또는 자신이 살고 있는 행성의 불화를 피해 이민 온 이방인들이다. 게중에는 불법 이민 온 외계인들도 더러 있다. 지구는 외계인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의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 외계인들을 감시하고 단속하는데 그걸 담당한 형사들이 검은 수트의 맨인블랙이다. 지구의 문명은 이 외계인들이 가지고 온 뛰어난 문명 덕택에 진화를 이루었다. 영화의 작동방식은 낯선 이방인을 필요에 의해 받아들이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의 핵심 영역에서 배제하는 인간사회와 꼭 닮았다. 그러나 외계인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살아간다해도 어떤 식으로든 티가 나기 마련인데 영화에서는 유명한 배우나 가수가 바로 외계인들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왠지 나도 설득당하는 기분이었다. 맞다. 그들이 외계인이 아니었던들 그리 뛰어난 재주를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

1편은 어떤 영화든 그렇지만 시리즈의 기본 설정을 모두 보여주는 베이스이다. 맨인블랙도 헐리우드의 영웅을 그리는 영화이니 당연히 악당이 등장한다. 1편의 악당은 바퀴벌레 외계인. 은하계를 손에 넣기 위해 우주에서 납작한 비행접시를 타고 날아왔다. 바퀴벌레가 달큰한 음식물을 좋아하는 것처럼 이 바퀴벌레 외계인도 설탕물을 좋아한다. 또 동족이 발에 밟혀 내장이 터지는 것을 제 몸 아파하는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감성도 지녔다. 은하계를 찾으러 온 또 다른 우주인들이 지구 밖 우주공간에서 지구를 폭파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급박한 상황. 맨인블랙 콤비는 외계인의 뱃속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않고(사실 어떤 유기체의 뱃속에 유기체가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활약을 펼쳐 바퀴벌레 외계인이 탈취한 은하계를 구해낸다. 그런데 은하계는 지구를 포함해 수십억 개가 넘는 거대한 별의 집단인데 그게 어떻게 뺏고 뺏기는 물건처럼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맨인블랙의 상식을 뒤집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우주란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크기라는 선입견에 얽매여 있으면 결코 자신이 처한 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 또한 자신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불교에서 속계의 모든 인연을 벗어나 해탈할 수 있는 길은 모든 선입견에서 벗어난 무아지경이다. 나도 없고 대상도 없는 상태. 결국 대상이 내가 되는 역전이 벌어지면서 나와 타인의 구분이 없어지는 대자대비의 부처가 되는 길을 불교는 이야기한다. 맨인블랙에서 은하계는 고양이의 목에 매달린 방울 속에 있다. 방울 속에 우주가 있으니 우주란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영화는 내 마음을 내가 어찌 못하는 현대인에게 ‘마음먹기에 달렸어’라고 속삭인다. 영화의 엔딩은 어쩌면 신일지도 모르는(부처님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손이 우주의 구슬을 가지고 놀다 주머니에 넣는데 그 속에도 구슬 우주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이 광대한 우주라는 것도 신들의 눈으로 보면 작고 앙증맞은 유리구슬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의 유대 vs. 가족?

맨인블랙 1편의 주인공 파트너 요원 K(토미리 존스)와 요원 J(윌 스미스)는 능력에 맞추어 이루어진 단짝이다. 맨손으로 외계인을 잡은 뉴욕 경찰 제임스(윌 스미스)를 MIB 요원으로 캐스팅한 자가 K이다. 둘은 좌충우돌 부딪힐 때도 많지만 결정적인 순간 나쁜 외계인을 물리치는 데에 기가 막히게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요원 K는 비록 무뚝뚝하지만 똑 부러지는 원칙과 행동 속에 믿음과 신뢰가 가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요원 J는 원칙대신 동정과 사랑으로, 기준 대신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판단한다. 궁합이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K와 J는 불일치 속에서 일치점을 찾아나가고 서로의 장점과 약점을 알고 이해해주는 인간적 유대를 1편과 2편에서 지속한다.

1편에서는 요원 K가 주축을 이루는 이야기의 중심라인이었다면(1997년) 2편(2002년)에서는 둘 이 대등한 중심점을 갖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3편에서는 요원 J의 과거사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1편에서 요원 J는 맨인블랙 요원 신참으로서 요원 K의 목숨을 사리지 않는 투혼에 감동받는다. 2편에서는 맨인블랙을 떠났던 요원 K를 요원 J가 다시 데리고 옴으로써 둘의 관계가 이전의 관계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2편에서는 샤크라의 빛을 손에 넣어 우주를 정복하려는 나쁜 촉수 외계인에 맞서 그 빛을 과거에 수호하려했던 요원 K가 요원 J를 돕는다. 맨인블랙의 실세가 된 J는 거북하게 원칙을 들이대는 K가 없으니 날개를 단 셈이지만 도무지 손발이 맞는 파트너를 찾을 수가 없어 난감하다. 카오스에도 인간이 알 수 없는 질서가 있기 때문에 카오스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성격이 좋은 파트너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예쁜 파트너라고 하더라도 손발이 맞아야 일을 할 수 있다. K와 J는 다시 합심하여 지구를 구한다. 인간적인 유대는 그렇게 생겨나고 유지된다. 출신 성분이나 인종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3편의 맨인블랙은 이러한 인간적 유대를 스스로 버렸다. 전편들에 비해 볼거리가 적은 것도 아니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 대목에서 힘이 빠질까. 그렇다고 막장 SF처럼 “내가 네 애비다”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K와 J는 처음부터 인종이 달랐으니 부자지간의 연을 맺기는 어려운 관계다. 하지만 이번 3편에서 K는 양아버지의 존재로 그려지며 J의 성장과정을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한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J는 어릴 적 지구의 위기를 구하는데 일조를 한 아버지의 죽음에 자책감을 느낀 K를 보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K를 향한 연민의 감정을 드러낸다. K는 J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며 그의 아들 J의 곁에 선다. 이제 맨인블랙은 아버지와 아들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읽혀진다. 아버지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엄한 법을 들이대고 아들은 반항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길을 따라간다. 숨겨왔던 부자지간의 인연을 말하려고 수화기를 든 K의 얼굴엔 한없는 아버지의 자애로움과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비장미가 드러난다. K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아니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결심한다. 자신이 달 감옥에 가둔 나쁜 외계인이 탈출해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는 지금 이 순간, K는 아예 그를 없애버리려 과거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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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미국, 미국인

?SF의 볼거리 생각거리를 총동원한 맨인블랙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미국과 미국인의 우월함을 한껏 과시한다. 맨인블랙은 소련보다 먼저 달에 우주인을 쏘아올리던 1969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영화에는 텔레비전으로 우주선 발사 장면을 보는 미국인,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놀이공원이 등장한다. 영화는 텔레비전을 집에 소유한 단란한 핵가족의 풍요로움을 여러 차례 화면에 등장시킨다. 그리고 전편들에서 뛰어난 지구인들은 거의 외계인이라는 설정이 미국인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스토리 라인에 현대 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을 등장시켜 그를 MIB 요원으로 설정한다. 이제 지구를 지키는 훌륭한 지구인은 MIB 출신이다. 게다가 영화의 흥미진진함을 반감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예지력을 가진 외계인이 조력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블록버스터의 정석은 영웅이 악당을 물리쳐 승리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과정에서만큼은 영웅도 좀 얻어맞고 관객은 그런 장면을 보며 “그가 죽을지도 몰라, 어쩌지”하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예지력을 가진 털모자의 외계인은 슬쩍슬쩍 정답을 흘리고 다니며 영화보는 맛을 떨어뜨린다.

 

그래도 MIB

?그래도 맨인블랙은 재미있다. 영화가 보는 이들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거나 인생을 되돌이켜 보게 해주어야만 명작은 아니다. 순간순간 빵 터지는 재미도 필요하고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도 있어야 하고 멋진 배우도 있어야 한다. 너무 무리한 주문인가? 맨인블랙은 이들을 고루 갖춘 블록버스터이다. 외계인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코믹적인 감각도 전편을 걸쳐 유지하고 있다. 우주가 어떤 거대한 존재의 구슬에 지나지 않는다는 1편의 엔딩과 지구는 무수히 많은 우주의 외계생명체에겐 물건을 담아두는 수많은 사물함 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2편의 엔딩은 내가 최고라는 지구인들의 오만함에 썩은 미소를 날린다. 또 한 가지, 영화 《아이 로봇》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그 자체 초콜릿 복근과 팔뚝 근육을 자랑하는 윌 스미스도 감탄을 자아낸다. 윌 스미스는 집에서 비디오게임을 하는데 왜 꼭 런닝 속옷만 입을까. 팬들에 대한 보답 말고는 답이 없다. 어찌 되었든 오늘도 외계인의 공격으로부터 안심하고 편안하게 잠잘 수 있게 해준 《맨인블랙3》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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