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거라투스트라 벌교에 가다(2) [자거라투스트라 벌교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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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MEGA 공동대표, e 시대와 철학 자문위원)

1.

자거라투스트라는 난감한 가운데서도 요즈음은 각 시, 군에서 자기 고장 관광지도를 만들어 배포하니까 혹시 거기에 표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우선 휴게소를 찾아야 하는데, 보통 거기에서 관광지도를 배포하니까.

차는 순천 시내를 지나 금방 벌교의 벌판에 이른다. 광활한 논에는 파랗게 자란 벼들이 바람에 일렁거렸다. 바람은 순천만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듯하다. 자거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는 순천만의 갈대 숲 사이로 흐르는 은빛 강물을 그려보고, 혀로는 오늘 점심으로 먹을 예정인 순천만 꼬막 맛을 느끼며, 눈으로는 도로 옆의 휴게소를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손과 발은 스스로 움직이면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었으니, 모든 감각이 각기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기묘한 환각상태에 빠져들었다. 들뢰즈가 말했다는 파편화된 감각이란 것이 이런 상태를 의미하지 않을까? 이 상태가 어쩐지 환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는 마치 꿈속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피카소의 몽타주 그림이 떠올랐다. 옆자리의 선배님은 깊은 침묵 속에서 아마도 나철 선생의 사상을 의미하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있으면서도 서로 교감한다. 공감각에 의한 공동의 세계가 차안에 넘치고 있었다.

드디어 벌교읍에 들어가기 직전 도로 옆에서 자동차 휴게소를 발견했다. 마침 벌교읍 관광지도가 마침 한 장 남아있었다. 자거라투스트라는 급히 지도를 펼쳐 눈으로 나철 선생의 생가를 찾는다. 야호! 정말로 나철 선생의 생가가 표시되어 있었다. 게다가 지도에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건 예상치도 않던 횡재이었다. 벌교에 오면서도 벌교가 바로 태백산맥의 무대였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니! 『태백산맥』을 생각하면 광활한 벌교의 벌판을 다시 보니, 이렇게 넓은 들판이라면 얼마나 많은 소작인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거라투스트라는 그 순간 관광지도에 대해 느꼈던 고마움 때문에 관광지도에 드리워져 있는 절망의 그림자를 예감하지 못했다.

관광지도란 것은 한 장 속에 모든 관광지를 표시해야 하니까, 실제 지형을 상당히 왜곡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거라투스트라는 그 순간 이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렸다. 벌교를 찾아오는 거의 전부는 『태백산맥』의 흔적을 찾는다. 이 흔적은 시내 한 가운데 있는 부용산의 오른편에 위치한다. 거기에는 김범우의 집이며, 소화의 집, 그리고 읍내홍교가 표시되어 있다. 관광객들을 위해 이 부분은 확대되어 그려졌다. 반면 나철 선생의 생가는 부용산 왼편에 위치한다. 그런데 지도는 이 부분을 축소시켜서 나철 선생의 생가가 마치 읍내의 왼편 부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아 걸어 다닐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안 것이지만 시내 가운데 그려진 부용산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이다. 실제 나철 선생의 부용산 왼편에 있지만 무려 15키로 정도 떨어져 있다.

이 관광지도 때문에 자거라투스트라와 선배님은 부용산 자락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면서 여러 번 돌아다녔지만, 생가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 혹시 부용산 산허리 어디에 있을까 하여 부용산을 걸어 올라 갔다. 부용산은 정말 이름 그대로 무척이나 예쁜 산이다. 『태백산맥』에서는 이 산에서 봉화가 오르는데, 그러면 정말 꽃봉오리처럼 보일 것 같다. 높이는 한 400미터 정도이다. 그런데 이 부용산을 거의 다 올라가도 유적지라는 것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은 나철 선생에 대해 전혀 모른다. 혹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실상은 알지 못했다. 그들의 부정확한 정보 때문에 10분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나철 선생의 생가를 찾는데 무려 두 시간이 걸렸다. 자거라투스트라는 포기하려고 할 무렵, 마지막으로 지도상에 표시된 나철 선생 생가 가까이 있는 벌교 소방서를 GPS 기계에 넣어보았다. 나철 선생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이던 GPS는 벌교 소방서는 단숨에 알아보았다. 소방서를 찾으면 바로 거기에서 나철선생 생가를 찾을 수 있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리하여 다시 기계에 몸을 맡기고 소방서를 찾아가보니 부용산 자락을 왼쪽으로 돌아서 무려 15 키로 이상을 돌아가서야 나철 선생의 생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두 시간 동안 헤매는 동안, 자거라투스트라는 어떤 깊은 절망감에 사로 잡혔다. 프랑스의 어떤 늙은 여배우는 혼자서 살다가, 접시를 깨뜨리자 절망감 때문에 자살했다고 한다. 자거라투스트라는 그때 여배우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될 것 같았다.

 

2.

동네에 들어가자, 나철 선생의 유적지 표시가 보인다. 무슨 유적지인가 했더니 나철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다. 나철 선생의 생가는 동네 한 가운데 있다. 이제 비로소 나철 선생의 이름이 알려진 듯 생가는 새로 조성 중에 있었다.
나철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다. 1990년 3월 1일에 세웠다고 한다. 사진을 확대하면 대개 어떤 말인지 짐작될 것이다.전국 어디서나 위인들의 생가는 다 똑같다. 삼간 기와집, 나철 선생의 생가도 꼭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위인 생가의 기본 설계도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철 생가는 새로 지은 기와집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미처 공사가 마무리 안 된 듯 땅 바닥에는 아직도 시뻘건 황토가 내팽겨져 있었다. 물론 안내인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마을 개들이 낯선 사람을 보고도 짖지 않으니 아마도 가끔씩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자거라투스트라는 후일을 위해 사진을 찍어 두고 선배님은 방에 모셔져 있는 나철 선생의 영정에 절을 한다. 짱구가 튀어나온 나철 선생의 인상은 단호하기가 겨울날의 얼음처럼 느껴진다.
선배님의 나철 선생에 대한 존경심은 지극하다.결국 찾아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자거라투스트라는 선배님에게 점심 먹으러 가자고 했다. 자거라투스트라는 읍내에 들어가서 『태백산맥』의 무대를 밟아보고 다시 순천만 쪽으로 가서 꼬막 맛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배님이 거기서 강진 다산초당이 얼마나 먼지를 물어본다. 어림대중으로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을 거라 하니, 그러면 그리 가자고 한다. 이까지 왔으니 다산초당은 꼭 보고 가고 싶다는 것이다.

자거라투스트라는 우리나라에서 화엄사와 다산초당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며 그 소수에 선배님이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자거라투스트라는 아침을 늦게 먹었으니 점심 겸 저녁을 거기 가서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순천만의 꼬막만 꼬막일까, 강진만의 꼬막도 꼬막이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보성을 지나 강진만을 향해 출발했다. 길은 사차선 자동차 전용 국도, 호남지방의 도로가 다 그렇듯이 여기도 텅 비어 있다. 차를 몰면서 자거라투스트라는 물었다.

형, 대종교는 요새도 신도가 있어요?

그저 단군할아버지를 조상신으로 모시고 있는 종교, 민족주의적인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종교, 고조선 시대가 실재한다고 믿는 종교, 그러나 실상은 조상숭배의 일종인 종교, 그것이 자거라투스트라가 알고 있는 대종교이다. 요새 누가 이런 구닥다리 종교를 믿겠는가?

대종교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의 가장 주요한 단체를 이끌었지. 청산리 대첩을 이끌어낸 북로군정서가 바로 그건데, 알지? 그런데 이런 독립운동 때문에 오히려 대종교의 종교성이 사상적으로 간과되고 그저 국조 숭배운동으로만 격하되고 말았어.

그러면 대종교의 종교성은 어디에 있어요?

글쎄 나도 깊이 연구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흥미로운 특징이 있어. 대종교는 3분법을 중요시해. 대개 모든 사상은 이분법이잖아. 유교가 그렇거든. 태극, 무극, 음양, 4괘 등. 서구 구조주의도 이항 대립을 기본 골격으로 삼는다 하더라. 그런데 여기는 3분법이야. 대종교의 가장 주요 저서가 『삼일신고』인데, 셋이 하나이라는 주장이 그 핵심이라서 책 제목이 ‘삼일신고’이거든.

셋이 하나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삼신(三神)일체라는 뜻이지. 한배검(신)은 곧 환임(인), 환웅, 환검(단군)이라는 거야. 이 신들은 역사적으로 등장한 순서에 따라 나열된 신들의 계보가 아니야. 이 신들은 하나의 신 즉 한배검의 세 가지 위격이지. 환임은 조화의 신이고, 환웅은 교화의 신, 한검은 치화의 신이지.

뭐, 기독교의 삼위일체설하고 비슷하네요. 성령과 성신과 성자.

그러게 말이야.

기독교의 영향이라 보아야 하나요?

글쎄, 대종교 자신은 상고 시대의 종교의 부활이라 하지만, 사실은 20세기 초에 발생한 종교로 보이는데, 그러니 기독교 영향을 배제할 수가 없겠지. 마치 동학처럼 말이야. 그런데 왜 굳이 삼위일체설을 빌려 올 생각을 했을까? 그게 멋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형도 아시겠지만,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은 그리스도가 인간이면서 신이라는 이중성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리이잖아요. 삼위일체설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신적인 지배 질서를 보존할 수 있었죠. 결국 기독교는 종교이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유일한 종교가 된 거예요. 헤겔은 그래서 기독교가 중세에 인간의 자유라는 개념을 사상적으로 보존해 왔다고 주장하죠. 이렇게 자유의지와 신의 질서를 종합하면, 세계의 타락과 신의 정의도 통일될 수 있죠. 전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한 타락이고, 후자는 신적인 질서의 관철이죠.

교주가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종교는 많지 않나? 하지만 그런 종교가 삼위일체설을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는데…..

신의 아들이라는 주장과 인간이면서 신인 그리스도라는 개념과는 좀 다르지 않아요? 신의 아들이란 자신의 신성을 가정하는데, 그것은 인간 속에 있지만 인성과는 독립된 본성이죠. 이 인성은 언젠가는 신성에 의해 사라져야 할 것이죠. 예를 들어 중세 기독교에 영향을 많이 끼친 배화교가 그렇지요. 그런데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에서는 인성이 그 자체가 신성이라는 주장이 됩니다. 이것은 엄청난 혁명적인 주장이죠. 예를 들어 육체적 욕망이 그 자체로서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잘 모르겠는걸. 그런 주장은 불교에서 평상심이 곧 도심이라는 주장과도 비슷하네. 동학이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하는 주장도 그렇고. 그런데 삼위일체설에 대한 그런 해석은 기독교를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글쎄요. 사실 기독교는 신성과 인성의 분리와 통일, 배화교와 삼위일체설 사이를 오가죠. 그 사이 어느 지점에 기독교의 제 분파들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신교는 신성의 분리 쪽으로 더 다가가고, 반면 구교는 신성과 인성의 통일 쪽으로 더 다가가죠.

그렇구나. 하여튼 대종교에서 이런 삼분법이 마치 만화경 속에서처럼 계속 확대재생산 되거든. 인간을 설명할 때가 특히 그래. 인간은 3眞과 3忘과 3途를 가지고 있어. 3진이란, 다시 셋으로 나누어지는데, 곧 성, 명, 정으로 이루어지지. 그것들은 자체 내에 어떤 대립을 가지지 않는 것들이야. 이 각각이 내부에서 구별을 가지면, 이제 3망이 되지. 그래서 성이 선, 악으로 나누어지면 心이야. 명이 청, 탁으로 나누어지면 그게 기이고, 다시 정이 厚, 薄으로 나누어지면 그게 身이야. 이 3망이 도착적으로 되면, 그게 感, 息, 觸인데 그 각각은 모두 6가지로 이루어져 있어. 그 외에도 모든 교리에 3이 기본 단위가 되어서 항상 그 배수로 진행되거든. 마치 3이라는 숫자가 대종교에서 자기 증식을 하는 것 같아.

그거 참 신기하네요.

예를 들어 성이란 선도 악도 아니야. 이것은 본질태이지. 그런데 이 성의 현상태가 마음이야. 그런데 이 마음은 선, 악으로 나누어지거든, 그러면 깨달음의 논리가 이렇게 전개되지. 우선 우리는 수련을 통해 악한 마음에서 선한 마음으로 나아가야지. 그런데 그것만으로 부족해. 선하다, 악하다는 것조차 넘어서야만 비로소 그 마음의 본성에 도달하지. 이런 설명은 불교의 공론에서 주장한 것과 같다. 유에서 무로, 그리고 유도 무도 아닌 것으로 나아가는 논리가 공론이잖아.

그것 참 흥미롭군요. 어떻게 수행하는지 아세요?

몰라. 주요한 것은 대종교 속에 인간을 설명하는 어떤 새로움이 있다는 거지. 아직까지 아무도 연구해 보지 않았는데, 나도 지금 연구 중이야.

김지하 선생은 한국의 사상의 특징이 3박자라고 해요. 서양음악의 기초는 2박인데, 한국음악의 기초는 3박이라는 거죠. 이런 3박에 맞추어 한국사상도 전개되었다 해요. 그런 3박의 개념이 대종교에도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글쎄, 하여튼 대종교가 특이하기는 해.
대종교의 주요 경전인 천부경이 새겨져 있는데, 자거라투스트라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차 안에서 토론 하는 사이, 차는 마침내 강진만에 도착했다. 다산초당 앞에 펼쳐진 강진만은 푸른 들판과 어울려서 싱싱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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