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운동22-현존(형식적) 추론의 모순[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운동22-현존 추론의 모순
1)
E-B-A라는 추론 형식은 현존 범주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추론 형식이다. 이를 명제로 표현하자면, 대전제 B->A와 소전제 E->B로부터 E->A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된다. 결론에서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매개하는 것이 곧 두 전제이며, 매개 항은 두 전제에서 주어와 술어에 동시에 관계하면서 결론을 매개한다.
여기서 추론을 이루는 세 가지 항, 소개념(결론의 주어 E), 대개념(결론의 술어 A), 매개 항[B]는 각기 고립적인 추상적 규정이며 서로 무차별하다.
판단을 외연적 의미와 내포적 의미로 분석할 수 있듯이 이 추론 형식 역시 외연적 의미와 내포적 의미로 분석된다. 외연적으로 본다면, 개별자가 특수자에 포섭되고, 특수자는 일반자에 포섭된다. 그러나 내포적으로 본다면, 개별자가 지닌 성질 가운데 하나가 특수자이며 이 특수자가 지닌 성질 가운데 하나가 일반자이다.
현존 추론은 내포적인 의미에서 현존 판단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수성이 개별성에, 그리고 일반성이 특수성에 우연적으로 속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개별성은 특수성 외 여러 성질을 가지며 그들은 서로 무차별하다. 따라서 이 특수성이 개별성에 속하는 것은 우연적이다. 또한, 특수성 역시 일반성 외 여러 성질을 가지고 그들 사이에 서로 무차별하다. 여기서도 일반성이 그 특수성에 속하는 것은 우연적이다.
여기서 특수성은 한편으로 개별성에 속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성을 자기에 귀속시키므로, 개별성과 일반성 사이를 매개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우연적이므로, 특수성을 통해 개별성과 일반성을 매개하는 것은 사태 자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추론하는 제삼자의 주관적 반성에 속할 뿐이다.
2)
추론의 형식은 사태 자체에 무관한 외적인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어진 동일한 개별자에 속하는 여러 성질 가운데 어느 것을 매개로 하고, 또 이 매개자의 여러 성질 가운데 어느 것을 술어로 할 것인지는 주관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이다.
동일한 형식이 여러 내용을 지닌 추론을 가능하게 하며 심지어는 이를 통해 서로 대립하는 추론, 모순적인 추론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주어인 개별자는 대립물의 통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동물적인 동시에 정신적이니, 어떤 주관은 ‘사람은 정신적 존재이며 따라서 선악을 안다’라고 추론하지만, 다른 주관은 ‘사람은 동물적 존재이며, 따라서 선악을 구별하지 못한다’라고 추론한다.
따라서 이런 형식을 거쳐 나온 결론은 한편으로는 전제로부터 나온 매개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관의 선택에 좌우되는 우연한 결론이며, 주관은 추론 이전에 이미 그런 결론을 내려놓고 거기에 맞추어 전제나 매개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이런 추론 형식이 독자적으로는 타당한 추론이지만, 그 내용상 모순에 빠진다는 것은 이 추론 형식이 담고 있는 내용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추론 형식 자체의 성격 즉 추론 형식에서 각 항이 우연적이며 서로 무차별하다는 성격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즉 그런 추론 형식 때문에 그런 모순적인 내용을 담게 된다.
“이제 형식적 추론에서 항들은 질적인 본성을 지니므로 구체적인 것[E]이 그에게 귀속되는 여러 규정 중 하나에 따라 파악됨에 따라서 추론이 [결론에서] 구체적인 것에 부여하는 술어는 매개 항에 상응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추론은 그에 반대되는 규정에 이르므로 그 전제와 그것의 결론 자체는 완전히 옳음에도 불구하고 그 추론은 그 때문에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다.”(주관 논리학, GW12, 96)
3)
이 추론이 모순에 부딪힌다는 사실은 아직은 정립된 것은 아니다. 이 추론의 표면적인 형식을 가지고 본다면, 이 추론은 타당한 추론이며, 자주 모든 추론의 대표적인 추론으로 여겨진다. 다른 모든 추론 형식은 이 대표적인 추론 형식으로 환원될 수 있는 한에서만 올바르다.
이제 이 추론 형식을 반성해 보면, 곧 그 추론이 지닌 모순이 출현한다. 우선 추론에서 전제는 증명된 것이 아니다. 추론의 전제 자체 즉 대전제든 소전제든 직접적인 판단이며,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이고 각 전제의 술어는 주어에 대해 우연적으로 관계한다.
전제가 증명된 전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 자체가 매개된 증명된 것이어야 한다. 우선 이런 증명은 그 전제가 동일한 추상적 추론 형식에 입증되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면 이 추론 형식의 전제가 되는 두 전제는 각기 두 전제를 통해 증명되며, 새로운 두 전제는 각기 또 두 전제를 가지게 되는 등, 무한한 진행 즉 악 무한이 일어나게 된다. 이 악 무한은 전제가 추상적인 직접적 존재라는 것과 입증된 것이어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 벌어지는 모순을 보여 준다.
이런 악 무한을 피하려면 새로운 방식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 추론을 통해 증명된 결론을 전제로 삼는 방식이다. 즉 대전제인 B->A를 증명하기 위해 결론 E->A를 전제로 삼거나 소전제인 E->B를 증명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결론 E->A를 전제로 삼는 방식이다.
그렇게 결론을 전제로 삼아 그 결론을 끌어낸 전제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일종의 순환을 이루는 데 따라서 이런 방식은 추상적 추론 형식의 결함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상적 추론 형식이 지닌 한계나 모순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 된다.
4)
첫 번째 추론 형식의 전제를 매개하는 두 번째 추론 형식은 우선 대 전제를 첫 번째 추론 형식을 통해 매개된 결론 E->A으로 삼고, 소전제 E->B는 그대로 두는 형식이다. 이렇게 되면, 두 번째 추론 형식에서 매개가 되는 것은 개별자 E이다. 첫 번째 추론의 대전제였던 B->A가 이제 결론이 되는데, 이제 매개를 통해 나온 결론이다. 결론의 술어는 여전히 A이지만, 주어는 변화되었다. E 대신 B가 주어다.
E와 B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형식에서 서로의 자리를 교환한다. E는 결론의 주어이었다가 이제 B가 했던 매개의 자리에 들어서며, B는 매개였으나 이제 결론의 주어 자리에 들어서게 된다. E는 각자 개별자이면서 동시에 타자의 규정을 가지며 마찬가지로 B 역시 특수자이면서 동시에 타자의 규정을 가진다.
이처럼 E, B가 이중적 규정을 가지면서 개념 규정이 총체적이어야 한다는 추론의 요구 또는 목표에 조금 다가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규정의 변화는 어디까지나 외면적으로 즉 하나가 다른 것의 자리에 들어서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그 자체에서 타자로 이행하는 것은 아니니, 아직 개념 규정과는 거리가 멀다.
B->A라는 결론이 E에 의해 매개된다는 것이 이 두 번째 격이 지닌 의미인데, 이는 내포적으로 보면, 곧 B가 A라는 성질을 가지는 것은 B에 속하는 원소 E가 그런 A라는 성질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가 가운데 B가 아닌 B’는 A인지 아닌지는 판단에서 배제된다. 만일 B 가운데 E가 아닌 E’가 있다면, 그 경우는 이 추론 형식에서 논의에서 배제되어 있다. 즉 그런 경우라면 B가 A라는 성질을 가질지는 보장할 수는 없다.
이 두 번째 추론은 형식적으로 보면, 성립하지 않는다. 매개자 E가 대전제와 소전제에서 동시에 주어이므로 여기서 매개자는 결론의 주어와 술어를 매개할 수 없다. 매개라면 한번은 포섭하고 한번은 포섭되거나 한번은 타자가 자기에 내재하고 다른 한 번은 자기가 타자에 내재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는 대머리다’라는 전제로부터 ‘대머리가 철학자다’가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없다.
“첫 번째 추론의 매개는 그 자체로 우연적인 것이었으나 두 번째 추론에서는 이러한 매개의 우연성이 정립된다.”(주관 논리학, GW12, 102)
4)
이때 ‘E->B’를 특칭 명제 즉 ‘약간의 B는 E이다’로 바꾸면 이 추론 형식은 성립하지만, 결론 역시 특칭화 되어야 한다. 즉 ‘약간의 B는 A다’로 된다. 그러나 이런 특칭 판단은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이다. 즉 ‘약간의 B가 A라’면, ‘약간의 B는 A가 아니다’는 동시에 성립한다. 그러므로 이런 특칭 판단은 무규정적인 판단이라 하며, 그런 무규정적인 추론을 끌어낸다는 것은 추론으로서는 의미가 없다고 보면서 헤겔은 그런 특칭화를 통해 추론을 정당화하는 가능성을 무시한다.
“따라서 이런 이격의 결론은 특칭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특칭 판단은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므로 이러한 결론에는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주관 논리학, GW12, 101-102)
만일 이 결론을 성립하게 하려면, 매개자인 E와 B가 같아야 한다. 헤겔의 말로 하자면 “부정적 통일성이 특수성이라는 규정성을 그 특수자로부터 제거해야”(주관 논리학, GW12, 100) 한다. 즉 오직 E=B일 때, E->A라는 대전제에서 결론 B->A가 나올 수 있다.
즉 대머리가 소크라테스의 내적 고유성이어야 한다. 즉 대머리가 아니면 소크라테스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E가 곧 B와 같다는 것은 단순히 외연적으로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포적으로 E의 고유한 속성이 B라는 말이다.
이격에서 요구되는 동일화는 나중에 나오는 삼격에 요구되는 동일화와 더불어 현존 추론이 추상적 우연성이라는 규정성을 벗어던지고 고유성을 항으로 갖는 반성 추론으로 이행하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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