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5-개념이란 무엇인가?[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논리학 개념 운동5-개념이란 무엇인가?
1)
논리학 3부 개념론 1편 주관성은 흔히 ‘논리학’이란 이름으로 내려온 내용을 다룬다. 헤겔은 이 부분을 1장 개념, 2장 판단, 3장 추론으로 구성하는데, 이 가운데 개념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는 논리학에서 다루기보다, 인식론이나 존재론에서 다루어 왔다.
존재론에서는 개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 다만 이름뿐인 것인 그리고 마음의 재현인지, 대상적인 실체인지 하는 문제가 다루어져 왔으며 인식론에서는 개념이 경험적으로 주어지는지 타고난 개념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가 다루어졌다.
반면, 논리학에서는 개념에 관해 다만, 개념이 판단과 추론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모호하거나 불명확해서는 안 된다는 요청이나 어떤 조건 아래서 개념이 분명하고 명확하게 되는지, 정도만 다루어질 뿐이다.
헤겔은 1장 B절 특수성 끝에 달린 주석에서 전통적으로 논리학에서 다룬 개념의 성격 즉 분명함[klart]과 명확함[deutlich], 적합함[adaequat]의 조건이나, 단순 개념과 복합 개념, 반대 개념과 모순 개념, 종속 개념과 상응 개념을 구별하는 방식 등을 다루지만, 지나가는 투로 다룰 뿐이며 개념에 관한 헤겔의 논의 전체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헤겔은 이 주석에서도 개념에 관해 전통적으로 존재론에서 다루었던 문제 즉 개념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해서는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헤겔이 이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헤겔은 이 문제를 다시 논하지 않는 것은 이 문제가 이미 논리학의 앞부분에서 개념의 생성을 통해 다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2)
헤겔이 개념을 다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논리학의 개념론 즉 주관 논리학의 한계 내에서인데, 그렇다면 개념론에서 개념은 어떤 논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일까? 개념에 관한 헤겔의 논의는 두 가지 점을 전제로 한다.
우선, 개념은 이미 개별자에 내재하는 것이다. 이 내재하는 개념은 존재론과 본질론을 거쳐 생성하는 과정을 통해 마침내 자기를 드러내니, 이렇게 자기를 실현한 개념이 개념론에서 다루어지는 ‘개념’이다.
존재론에서 사물의 고유한 일반성[형상]이 다루어지고 본질론에서는 생명체의 종이 다루어졌다. 이제 개념론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실체 즉 주체가 ‘개념’으로 규정되면서 논의의 주제를 이룬다. 이 ‘개념’에 속하는 대표적인 예가 곧 인간의 선험적 통각, 자기의식이다.
이런 ‘개념’을 다룰 때, 헤겔은 ‘개념’에 이르기까지 논리적 범주로서 개념이 발전하는 과정을 다시 한번 서술한다. 여기서는 이 범주들이 ‘개념’을 이루는 계기로서 이미 이 ‘개념’에 지반을 두고 마침내 그 ‘개념’을 드러내는 과정으로서 다루어진다. 그 때문에 앞의 존재론과 본질론의 내용이 이 판단론에서 압축해서(그러나 개념적인 방식으로 서술되어) 다시 언급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개념’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논리적 범주는 이 장에서는 그저 개념으로 지칭된다. 헤겔은 1장 개념에서는 지금까지 논리적 범주 즉 개념이 지닌 일반적 의미를 다룬다. 모든 개념이 지닌 일반적 의미는 곧 마지막 범주인 ‘개념’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니, ‘개념’의 본성은 논리적 범주로서 개념의 일반적 의미가 된다.
3)
1편 주관성 장의 1장 개념 장에서 다루는 것은 이런 논리적 범주로서 개념의 일반적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곧 ‘개념’의 본성이기도 한데, 1장에서는 이 개념의 일반적 의미를 추상적으로 다룬다.
즉 여기서 개념을 이루는 계기는 아직 경험적 실재성을 지니지 않고 개념 속에 머무르는 내적 계기로서 다루어진다. 개념의 계기가 경험적 실재성을 지니게 되면, 개념의 계기는 판단을 형성한다. 이는 2장 판단론의 주제가 된다.
헤겔이 개념의 일반적 의미를 다루면서 우선 개념을 표상과 상징 또는 기호와 구별했다는 것은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상은 아직 일반적인 개념이 되기 이전에 경험에 직접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직접적인 감각은 기억을 통해 내면화하면서 관념화하니, 직접 주어진 구체적 관념이 곧 표상이다. 기억이 이미 일반화, 추상의 과정이므로 이 표상적 관념도 이미 개념화가 시작된 것이지만, 아직 그 정도가 미약할 뿐이다.
논리학에서 개념은 근본 조건이 분명하고 명확하며 적합한 것이어야 하니, 표상은 아직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헤겔은 논리학에서 그런 표상을 통해 사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추상적인 개념을 눈앞에 드러내는 구체적인 개념이 곧 상징이다. 상징은 하나의 기호[Zeichen]이다*. 상징이나 기호는 자기가 지닌 의미와 다른 것을 지시하는 것 즉 알레고리이니, 논리학에서는 이런 상징이나 기호의 사용은 판단과 추론을 혼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 헤겔은 <미학 강의>에서 이런 기호를 상징 외에 현상이나 가상을 포괄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쓰지만, 여기서는 상징과 기호가 같은 의미다.
헤겔은 주석에서 흔히 상징은 개념을 예감하게 하고 개념의 여운이 된다고 하지만, 개념이 상징을 통해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상징이 개념을 통해 이해된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징을 둘러싸고 있는 감각적인 것이 제거되어야 한다.
4)
개념에서 헤겔은 이 개념을 주로 개념을 이루는 세 가지 계기의 측면에서 논의한다. 이 개념의 세 가지 계기란 곧 일반성과 특수성, 개별성이다. 헤겔이 개념을 왜 이 세 가지 계기로 나누었는지가 의문스럽다. 이 세 가지 개념의 연원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이 세 가지 개념 계기의 연원은 앞에서 실체의 운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개념’의 관계는 그 이전 실체의 관계가 생성하여 자기 내로 복귀한 것이다. 이 실체의 관계는 곧 절대자, 속성, 양상의 관계이다. 실체에서 절대자가 속성이 되고, 속성이 다시 양상으로 되면서 절대자로 복귀하는 운동은 어디까지나 외면적으로 일어난다. 즉 자기도 모르는 낯선 힘에 의해 부정되고 다시 부정되는 가운데 이런 절대자의 운동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실체의 운동에서 낯선 외부의 힘이라고 여겼던 이 운동은 ‘개념’에 이르게 되면 주체가 자기를 실현하는 내재적 운동이 된다. 바로 이 내재적 운동이 개념을 통한 추론의 운동이며 이 추론의 운동을 이루는 고리가 곧 일반성, 특수성, 개별성인 것이다. 여기서 일반성은 절대자에 상응하고, 특수성은 속성에 상응하며, 개별성은 양상에 상응한다.
그런데도 왜 헤겔이 절대자니, 속성이니, 양상이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성 특수성 개별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것은 헤겔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서 핵심적인 것인데, 사실 기존의 철학 전통에서 이런 방식으로 개념을 다루는 경우는 없었다.
이 세 가지 개념의 계기와 가장 가까운 논의를 전통 논리학에서 찾아본다면, 곧 추론을 이루는 세 개념일 것이다. 추론을 대표하는 삼단논법은 대전제, 소전제, 결론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대전제의 술어를 대개념이라 하고 대전제의 주어이면서 동시에 소전제의 술어가 되는 것을 매개념이라 한다. 그리고 소전제의 주어를 소개념이라 한다. 결론은 소개념과 대개념으로 이루어진다.
개념의 세 가지 계기가 추론을 구성하는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면, 헤겔이 개념의 계기를 다룰 때 헤겔은 이미 개념을 판단과 추론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헤겔은 개념을 고립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개념과의 연관 속에서 규정하고 있다고 하겠다.
사실 존재론에서 하나의 개념(논리적 범주)은 타자와 이행하는 관계 속에서 파악되며 본질론에서는 개념(논리적 범주)은 본질과 개체의 반영하는 관계 속에서 파악되었다. 그러나 이런 관계의 밑바닥에는 개념의 일반적 관계 즉 개념의 세 가지 계기가 지닌 관계 즉 개념의 관계가 있다. 개념론에 이르러 이런 개념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의 주제가 된 것이다.
5)
그런데 개념의 세 가지 계기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전통적으로 대개념, 매개념, 소개념을 다루는 방식과 구별된다. 전통적으로는 이 관계는 외연의 크기에 따라서 구분된다. 외연의 크기에서 대개념은 매개념을 포함하고 매개념은 소개념을 포함한다. 이런 포함관계가 추론의 정당성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헤겔의 세 가지 개념 계기는 한편으로 외연적 크기의 구별을 포함하지만, 이것으로 환원되기 어려운 또 다른 측면을 지닌다. 그것은 곧 질적 규정성의 차이이다. 질적 규정성은 단순하고 추상적이기도 하고 구체적이고 복합적이기도 하다. 그것에 따라서 추상적인 개념과 구체적인 개념이 구별된다. 이 단순한 추상적인 것을 헤겔은 개별적이라고도 하며, 복합적인 구체적인 것을 일반적인 것이라고도 한다.
헤겔에서 개념의 계기는 이런 두 가치 측면에서 이중적으로 규정된다. 즉 내포적인 측면과 외연적인 측면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측면은 서로 교차하면서 외연적 일반성이 내포적 개별성을 지니기도 하고 내포적 일반성이 외연적 개별성을 지니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개념은 한 측면에서 일반적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개별적이기도 하다.
그 결과 개념의 계기는 마치 삼위일체를 다루는 것과 같다. 삼위일체가 성부와 성자, 성령이 각자 총체성이 동시에 전체의 한 계기를 이루는 것과 같이, 개념의 세 가지 계기는 각자가 총체성이며 동시에 전체를 이루는 한 계기가 된다.
“정립된 것이 개념 속에서는 그 자체로 자기에 대해 존재하는 것과 동일하니, 개념의 계기 각각은 특정한 개념이며 개념의 한 규정성이자 그에 못지않게 전적인 개념이다.”(주관 논리학, GW12,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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