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87)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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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 강해(87)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타락한 정치체제들 분석(제8권-제9권) 

B. 정의로운 사람과 부정의한 자 가운데 누가 행복한가. : 정의로운 삶의 우월성 증명(제9권

576b-592b)

1) 첫 번째 증명 : 정치체제와 개인의 내적 구조에 기초한 증명(576b-580c)

 

[576b-580c]

* 소크라테스는 첫 번째 증명ἀπόδειξις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최악κάκιστον의 인간이란 한마디로 꿈ὄναρ에서나 가능한 상태를 깨어 있을 때도 가지고 있는 자이다. 가장 참주정적인 성향을 타고난 자가 독재자μόναρχος가 되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576b) 대중πολύς에게는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그러한 자가 가장 사악한πονηρότατος 자이자 가장 비참한ἀθλιώτατος 자이다. 그리고 나라와 개인이 닮았다ὁμοιότητος는 점에서 덕ἀρετῇ과 행복εὐδαιμονίᾳ의 문제도 나라와 개인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576c) 그리고 참주정체제의 나라와 왕정체제의βασιλευομένης 나라를 덕과 행복과 관련하여 비교 판정κρίνειν할 때는 그 주변의 몇몇 사람이 아니라 나라 전체ὅλος(576d), 나라 곳곳을 살펴보고서ἰδόντες 의견δόξα을 내놓아야 한다. 이 말에 글라우콘은 동의한 후 참주정체제의 나라가 가장 비참하고, 왕정체제의 나라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말한다.(576e)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비교 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사유διανοίᾳ를 통해 인간의 성품ἦθος 속을 꿰뚫어 볼 수 있고διιδεῖν, 참주와 한 지붕 아래 살면서συνῳκηκότος 공적 사적 모든 행동이나 모습을(577a) 모두 경험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바로 그러한 판정 능력과 경험이 있는 사람인 척 해보자’προσποιησώμεθα고 제안한다.(577b)

* 이렇게 비교 판정을 위한 준비를 마친 후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으로 첫 번째 증명을 시작한다. 그 내용을 정리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나라와 사람의 유사성ὁμοιότητα을 상기하면 참주정체제의 나라는 자유로운ἐλεύθερος 나라가 아니라 노예 상태δοῦλος에 있는 나라이다. 그곳에서도 주인δεσπότης들과 자유인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중 작은 부분에 불과하고 전체로 보면 그 나라는 가장 훌륭한 부분까지도 수치스럽고ἄτιμος 비참하게 노예 상태로 있는 나라이다.(577c) 사람이 나라와 닮았다면 나라와 동일한 구조τάξις가 필연적으로 사람에게도 있다. 그렇다면 그 나라를 닮은 참주정적 인간의 영혼은 숱한 예속δουλεία과 자유인답지 못함ἀνελευθερία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가장 훌륭한 부분들은 노예 노릇을 하는 반면, 작은 부분이자 가장 사악하고 광기 가득한 부분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 있는 나라는 그 어떤 나라나 보다도 원하는 바ἃ βούλεται를 못 하는 나라이므로 영혼 전체ὅλη ψυχῆς에서 보면 영혼 또한 원하는 바를 가장 못할 것이다.(577d) 그런 영혼은 폭력적인 욕망의 침οἶστρος에 늘 쫓기며 혼란ταραχή과 후회μεταμέλεια로 가득 차 있다.

2) 그리고 참주정체제의 나라는 부유하긴πλούσιος커녕 가난할πενομένη 수밖에 없어(577e) 참주정적인 영혼 역시 필연적으로 늘 가난하고πενιχρός 채워지지 않은ἄπληστος 상태로 있고 또 두려움φόβος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나라만큼 비탄ὀδυρμός과 한탄στεναγμός, 통곡θρῆνος과 고통ἀλγηδών이 더 많이 발견되는 곳은 없다. 이에 따라 사람의 경우에도, 참주정적인 인간보다 더 많이 욕망ἐπιθυμία과 욕정ἔρως으로 미쳐버린 경우 또한 없다.(578a) 그러므로 바로 이 나라가 가장 비참한 나라로 판정된다.(578b) 그리고 특히 최고로 비참한ἀθλιώτατον 자는 이들 사인(私人)ἰδιώτη으로서 참주정적인 인간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어떤 불운συμφορά을 만나 실제 참주가 된 자이다.

3) 하지만 가장 중대한 문제, 즉 좋은 삶과 나쁜 삶의 문제를 다루려면 이에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논의를 통해τῷ τοιούτῳ λόγῳ 보다 더 충실히 고찰해야 한다.(578c) 이를 위해 우선 나라에서 노예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πλούσιος 개개인ἑνὸς ἑκάστου τῶν ἰδιωτῶν들을 예로 들어보자. 이런 사람들은 많은 자를τὸ πολλῶν 다스린다ἄρχειν는 점에서 참주들과 닮았다. 그런데 이들은 나라 전체πᾶσα ἡ πόλις가 개개인을 돕고 있기 때문에 불안해하지도 않고 가노οἰκέτης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578d) 그러나 만일 어느 신이 오십 명 또는 그 이상의 노예를 거느린 한 사람을 그의 재산οὐσία, 노예, 가족과 함께 어느 외딴곳에다 갖다 놓았다고 해보자. 이 경우 그는 나라전체가 주는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으므로 자신과 가족이 노예들에 의해 살해되지 않을까ἀπόλοιντο 두려움φόβος에 떨게 될 것이다.(578e) 물론 그는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노예들 가운데 몇몇의 비위를 맞추고θωπεύειν 많은 것을 약속해주고 자유인으로 놓아주면서 그들의 아첨꾼κόλαξ이 되지만, 자기 주변에 다른 자가 주인 되는 것을 참지 못하여 그를 극형ἔσχατος τιμωρία에 처하려는 사람들이 이웃으로 살고 있을 경우 그는 온통 적πολέμιος들에 둘러싸여 감시당하면서φρουρούμενος(579a) 한층 더 엄청난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참주의 성향을 갖고 있는 자들은 온갖 종류의 숱한 두려움과 욕정으로 가득 차 감옥δεσμωτήριον에 갇혀 있는 삶을 보낸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탐심λίχνος으로 가득하지만, 여느 자유인들처럼 구경이나 하고 싶어 하는 그 어떤 것도 못한 채 여인네처럼 인생의 대부분을 집안에 틀어박혀(579b) 다른 사람을 시기φθόνος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 어떤 불운에 의해 실제 참주가 된 자는 이처럼 나쁜 것들을 더 많이 거둬들이면서 마치 어떤 자가 몸σῶμα이 병들어서(579c) 자기 자신도 제어하지 못한 채 그런 몸으로 일생을 다른 몸뚱이들σώματα과 경쟁하고ἀγωνιζόμενος 싸우면서μαχόμενος 고달프게χαλεπώς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런 자야 말로 완전히 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이다.(579d)

*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요컨대 진짜 참주는 가장 큰 아첨θωπεία과 굴종δουλεία에 매여 있는 진짜 노예δοῦλος이고 가장 못난πονηροτάτων 자들의 아첨꾼이며(579d). 또한 영혼 전체의 측면에서 그런 자는 자기 욕구들을 어떤 식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자이며,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결핍된ἐπιδεής 자이자 가난한 자이다. 결국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와 닮은 상태에 있는 참주는 평생 두려움으로 차 있고 경련σφαδᾳσμός과 고통ὀδύνη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579e) 이런 사람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자신이 잡은 권력 ἀρχὴ 때문에 이전보다 더 시기심 많고φθονερός 믿을 수 없고ἄπιστος 부정의하고ἄδικος 친구도 없고ἄφιλος 불경스럽고ἀνόσιος 온갖 나쁜 것κακία들을 받아들이고 키워내는 자이자 이 모든 것들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까지도 불운한δυστυχής 자로 만드는 자이다.(580a)

* 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이 첫 번째 증명을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 논의를 가무단의 공연에 비유하여 최종 판정관이 공연 후 최종 우승작과 순위를 발표하는 것처럼 글라우콘에게 최종 판정관을 맡긴다. 이에 글라우콘은 논의 순서 즉 가무단χορός의 공연에 등장했던 순서대로 순위를 판정하고(580b)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받아 ‘그들이 어떠한 자인지 인간들과 신들 모두가 알든 모르든 간에’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가장 뛰어나고ἄριστος 가장 정의로운δικαιότατος 자가 가장 행복한εὐδαιμονέστατος 자이며 그 사람은 가장 왕정적인βασιλικώτατος 사람이자 자신을 왕정체제로 다스리는 자이다. 반대로 가장 나쁘고 가장 부정의한 자가 가장 비참한 자로서 이 사람은 가장 참주정적인 사람이자 자신과 나라를 최대한 참주정체제로 다스리는 자이다.’(58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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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6e ‘누구에게나 자명한 사실’ : 소크라테스가 전체를 살펴보고 비교 판정과 관련한 의견을 내놓자고 했음에도 글라우콘은 결론에 해당하는 말을 미리부터 자명한 사실로 내세우고 있다. 이것은 비교 판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전에 정의가 어떤 것인지에 관해 동의한 것이 옳았다면’(576a) 지금까지의 논의로만으로도 대화자들끼리는 이미 논의의 결론이 충분히 공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중들 사이에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대중에겐 다양한 의견이 있다’(576c)는 소크라테스의 첨언은 앞으로 제시될 증명들이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펼쳐온 논의들을 마무리하고 재확인하는 결론적 논의이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을 가진 대중들을 최대한 설득하기 위한 목적도 크게 고려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가 주의하고 있지 않지만 트라쉬마코스는 제2권 이후에도 이 대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실제로 그는 제5권에서 대화에 끼어들기도 한다.(450b) 플라톤의 설정대로라면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곁에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트라쉬마코스를 의식하고 있다.

* 577b ‘우리가 바로 그것을 판정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자 참주정적인 인간들을 실제로 만나 본 사람인 척 해보길 바라나?’ :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증명에 들어가기 전에 그 증명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그 증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갖추고 있어야 할 자격에 대해 언급한다. 요컨대 사유에 기초한 이론적 판단력도 중요하지만 관련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겪은 경험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곳에서 자신과 대화자들이 그러한 경험 관련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바로 자신들을 그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인 양 전제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이것은 일단 형식상 논리적 비약이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처사이다. 어떤 척을 하자고 말하는 것도 소크라테스에게 어색한 일이다. 아마도 이글의 저자 플라톤 자신이 아테네와 시칠리아에서 직접 참주정의 참혹상을 경험한, 그것도 혹독하게 경험한 당사자임을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다고 여기고 그랬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이 언급은 판정에 있어 사유를 통한 판단력뿐만 아니라 경험이 갖는 중요성을 함께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 577c ‘가장 훌륭한 부분까지도’ : 타락하기 이전 정치체제에서 통치 및 수호자 역할을 했던 사람들, 즉 나라의 구조 상 통치자계층과 수호자 계층을 말한다.

* 577d ‘동일한 구조’ : 여기서 ‘구조’의 그리스어 원어는 taksis이다. taksis는 원래 공격 또는 방어에 가장 효율적인 전투 대형을 갖춘 상태 즉 질서 잡힌 ‘대오’의 뜻을 갖고 있는 군사 용어이다. 그래서 taksis는 문맥에 따라 이곳처럼 ‘구조’(577d, 618b)라는 뜻 외에 ‘대오’(468a, 471d, 522d,e, 525b), ‘질서’(561d,587a), ‘순서’(620d), ‘줄’(617d) 등으로 옮기기도 한다. 여기서 구조는 내용적으로 나라의 세 계층과 개인 영혼의 세 부분 간의 질서를 말한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 구조가 잘 잡혀있다는 것은 각 계층과 부분의 위계와 역할이 본성에 맞게 질서를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욕구 부분은 본성상 이기적 물질적 속성을 가지고 있어 타자의 이익을 배려하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이성 부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플라톤에게 지배 또는 다스림archein은 타자에 대한 억압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배려에 기초한 구성원 모두의 조화와 공존을 도모하는 일이다. 구조가 왜곡되면 다스림도 왜곡되어 조화와 공존은 무너진다.

* 577d ‘참주정체제의 영혼’ : 참주정적 인간의 영혼, 참주정적 인간의 극치가 참주라는 점에서 극명하게는 참주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 578a ‘참주정적인 영혼 역시 필연적으로 늘 가난하고 채워지지 않는 상태로 있을 것이네’ : <고르기아스> 416e, 493a-494e, 521a, <파이드로스> 279c, <편지들> 355c 참고.

* 578e ‘오십 명 또는 그 이상의 노예’ : 기원전 5세기 고대 아테네에서 한 가구 당 노예의 수는 보통은 3명에서 많으면 12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50명 이상의 노예는 매우 부유한 소수 부자들의 경우일 것이다. 물론 대부호로 알려진 당대 니키아스는 1,000명에 달하는 노예까지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 579a ‘신이 또 다른 여러 사람을 그 사람 둘레에 이웃으로 살게 한다고 해보세.’ : 여기서 ‘참주 둘레에 사는 이웃’은 앞서 자유인과는 다른 여러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참주가 갖고 있는 패권욕, 또는 그 참주의 전제 정치를 못 마땅하게 여겨 그를 제거하기를 원하는 주변 국가들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앞서 참주가 노예들 가운데 풀어준 자유인과 달리 민주정 치하에서 전적인 자유에 길들여져 있어 여전히 간섭을 싫어하거나 참주의 착취에 시달리며 참주정에 적대감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자유인들 또는 과두주의자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579b ‘여인네처럼 인생의 대부분을 집안에 틀어박혀’ : 고대 아테네를 비롯해 당대 그리스 폴리스 일반의 관습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은 다 드러난 공간에서 공공연히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조차 금지되었다.(<법률> 781c) 이런 측면에서 보면 플라톤이 <국가>에서 여성을 통치계급의 일원으로 포함시키고 남성들과 함께 공동 식사하도록 한 것은 당대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플라톤은 오직 철학만이 그러한 관습적 편견과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고 여겼다.

* 579d ‘다른 몸뚱이들sōmata과 경쟁하고 싸우며 살아가도록 강제’ : 다른 몸뚱이들은 다른 참주정적인 인간들을 가리킨다. 지배 욕구에 찌든 참주정적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평생토록 서로 간 권력 투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580a ‘우리가 전에 말한 것들까지도’ : 이미 앞에서도 참주정적 인간들이 축복 받은 필연인 양 평생 대중들의 미움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567a), 그리고 그 누구의 친구도 되지 못한 채 주인 아니면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576a)이 언급된 바 있다.

* 580b ‘마치 최종 판정관kritēs이 결과를 발표하듯 자네도 내게 그렇게 해주게.’ : 당대 아테네인들은 가무단의 공연을 심사할 때 아래와 같이 매우 엄격하고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 심사위원을 선정했다. 먼저 축제가 열리기 전 평의원에서 후원자들과 함께 심사위원 후보들을 선발한 후 이들 명단을 부족별로 하나씩 총 10개의 항아리에 담았다가 경연 당일 각 항아리에서 한 명씩 총 10명의 심사위원을 뽑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중 다시 추첨된 5명의 최종판정관이 앞서 심사위원들이 적은 투표함을 열어 우승 가무단과 순위를 확정한 후 전령을 통해 발표했는데 이곳 최종 판정관은 위와 같은 가무단 공연 심사과정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최종판정을 자신이 아니라 글라우콘에게 맡기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플라톤의 대화는 대화자들을 향해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거나 알리는 것이 아니라 대화자들과 문답을 나누며 비판적인 설득을 통해 함께 진실에 도달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에게 최종 판정을 맡기고 그 내용을 받아 직접 다시 발표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함께 동일한 진실에 도달하였음을 보여준다.

* 580b ‘마치 가무단choros이 등장하듯 그들이 등장했던 순서라고 판정합니다.’ : 가무단 공연 심사의 경우 우승 가무단을 발표할 때 동시에 순위도 함께 발표하듯이 이곳에서도 그에 맞추어 최종 판정대상으로서 우승자인 철인왕정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논의된 타락한 정치체제들이 순서대로 함께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논의의 목표대로 철인왕정의 최종적인 비교 판정 대상은 최악의 정치체제로서 참주정이다.

* 580c ‘그들이 어떠한 자인지 인간들과 신들 모두가 알든 모르든 간에’ : 아데이만토스가 제2권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이 비교 판정과 관련한 답변을 처음으로 요청할 때 아래와 같이 말한 것을 환기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신들과 사람들에게 알려지든 그렇지 않든, 정의는 좋은 것이고 부정의는 나쁜 것인지도 보여 달라’(367e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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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소크라테스는 애초 계획한 대로 타락한 정치체제들과 그것을 닮은 사람들에 대한 논의를 토대로 정의로운 사람과 부정의한 자 가운데 과연 누가 행복한가를 비교 판정하는 논의(576b-592b 제9권 끝)를 시작한다. 소크라테스가 비교 판정을 위해 이곳에서 제시하고 있는 증명들은 아래와 같다.

1) 첫 번째 증명 : 정치체제와 개인의 내적 구조에 기초한 증명(576b-580c)

2) 두 번째 증명 : 영혼의 세 부분에 기초한 증명(580c-583a)

3) 세 번째 증명 : 참된 즐거움과 거짓 즐거움의 구분에 기초한 증명(583b-588a)

* 플라톤이 이 세 가지 증명에서 각각 사용하는 논거들은 크게 정치적 논거, 심리학적 논거, 그리고 형이상학적 논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첫 번째 증명은 정치체제로서 나라와 개인 사이의 유사성에 기초하고 있고, 두 번째 증명은 영혼의 3부분 즉 이성적 부분, 기개 부분, 욕구 부분 각각에 상응하는 즐거움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세 번째 증명은 플라톤의 존재에 관한 이론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 내지 방법은 사실 대화편 전체를 통해서도 사용된 것들이다. 그 내용을 크게 구분해보자면 제2권에서 제4권까지는 정치적 방법이, 제8권에서 제9권까지는 심리학적 방법이, 제5권에서 제7권까지는 형이상학적 방법이 채택되고 있다. 그 점에서 보면 이곳에서 플라톤이 지금 그러한 방법들을 모두 동원해 종합적인 관점에서 최종적인 마무리를 수행하고 있는 것은 매우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J. Adam. 해당 부분 노트 참고)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이 증명을 토대로 ‘부정의가 아니라 정의야 말로 이익’(588b-592b 제9권 끝)임도 덧붙인다. 이로써 정의와 행복이라는 <국가>의 기본 논제를 촉발시킨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이 형식에서나 내용에서 전적으로 잘못된 것임이 밝혀진다. 이번 강해는 우선 첫 번째 증명 부분을 다룬다.

* 첫 번째 증명의 핵심은 정치제제로서 나라와 개인이 갖는 유사성(577c), 즉 나라와 개인의 동형적 구조(577d)에 입각하여 그 내적 구조를 전체적으로 살피는 방식으로 참주정 체제의 비참성을 드러낸 후 그것을 근거로 그것을 닮은 참주의 비참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행복이건 비참함이건 나라와 개인의 동질적 구조가 빚어내는 양태들은 각기 그것을 구성하는 계층들과 영혼 부분들의 내적 관계를 ‘전체holos’(576d)로서 파악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이다. 요컨대 첫 번째 증명의 핵심은 나라와 개인이 갖는 유사성(577c)을 토대로 이와 같은 3계층 또는 영혼 부분들의 내적 관계 내지 질서를 개별차원이 아니라 ‘전체’ 차원에서 파악하는 방식으로(576d)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미 철학자의 행복은 이러한 영혼의 내적 구조가 전체적으로 조화와 질서를 갖추었다는 것으로 뒷받침된 바 있다. 그렇게 보면 참주의 비참성은 이러한 영혼의 내적 구조가 전체적으로 조화롭지 못하고 위계나 질서를 갖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본래 구조가 역전된 것이다.

* 이와 같은 방식에 따라 소크라테스가 첫 번째 증명을 통해 종국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참주의 비참한 삶의 양상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579d-580a)

1) 참주는 가장 큰 아첨과 굴종에 매여 있는 진짜 노예이다.

2) 참주는 자기 욕구들을 어떤 식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누구보다도 가난한 자이다.

3) 참주는 평생토록 친구도 없고 고립된 채 두려움과 경련, 고통으로 가득한 불운한 삶을 보낸다.

* 그리고 위와 같은 참주의 비참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몇 가지 논거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논거의 내용들이 상호 중첩되어 있어 분명하게 구분해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최대한 그것들을 차례대로 정리해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참주는 가장 큰 아첨과 굴종에 매여 있는 진짜 노예이다.(577c-577e)

참주정이 극단적인 자유로부터 생겨난 최대의 예속이자 가장 야만스러운 노예 상태의 정치 체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도 밝혀진 사실이다.(564a) 그리고 참주가 누군가의 주인 아니면 노예로 산다는 것도 이미 밝혀졌다.(576a) 나라와 개인의 유사성에 기초한 증명 방식에 따른다면 이것만으로도 참주가 진짜 노예라는 증명 과제는 증명된 셈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이곳에서는 정치체제의 내적 구조에 대한 전체적인 분석을 토대로 위계질서 붕괴에 따른 참주정과 참주의 노예 상태에 대한 증명이 수행된다. 즉 참주정은 그 내적 구조를 전체적으로 분석해 보았을 때 위계질서가 무너져 가장 작은 부분인 참주가 나머지 생산자 계층을 비롯해 가장 훌륭한 부분인 수호자 계층까지 노예로 만들어 버린 정치체제이다.(577c) 이에 따라 참주의 영혼 또한 참주정을 닮아 내적 구조상 위계와 역할이 전도되어 전체적으로 무질서 상태가 되고 만다. 물론 참주의 영혼에서 욕정에 사로잡힌 욕구 부분이 거꾸로 기개 부분과 이성 부분을 폭압적으로 지배한다는 점에서 이성과 기개 부분이 노예이지 참주의 영혼은 노예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참주의 영혼은 늘 욕망의 침에 쫓겨 다니면서 영혼 전체의 이익이 아닌 욕구 부분의 이익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주인다운 다스림과는 전혀 무관한 욕정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에서 ‘영혼 전체를 놓고 말한다면’(577e) 참주정 나라가 그렇듯이 참주의 영혼은 그 자체로 욕정의 노예일 뿐이다. 그래서 참주의 영혼은 혼란과 후회로 가득 차 있다.(577e)

 

2) 참주는 자기 욕구들을 어떤 식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누구보다도 가난한 자이다.(577e-

578a)

참주가 누구보다도 가난한 자임은 참주가 노예라는 앞서의 논거와 연동되어 있다. 그래서 내용도 짧고 간단하다. 한마디로 참주정 체제의 나라는 노예 상태에 있는 나라이므로 그 어떤 나라보다도 자유롭게 원하는 바를 못하는 나라이다.(577d) 그러므로 참주정 체제의 영혼, 즉 참주의 영혼도 원하는 바를 가장 못할 것이다.(577d) 요컨대 참주정 체제의 나라가 가난한 것이 필연적인 한, 참주정적인 영혼 역시 필연적으로 가난하다. 물론 참주정의 나라에서 나라 전체는 가난해도 현실의 참주는 풍요하면 풍요했지 결코 가난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부와 가난은 재물의 크기가 기준이 아니라 원하는 바를 이루냐 못 이루냐가 기준이다. 욕망의 노예가 된 참주는 아무리 많은 것을 원해도 그것을 못 이루는 상태로 늘 결핍상태에 있다. 가난하다는 것은 결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비록 적은 재산을 가졌을지라도 결핍을 못 느끼면 그는 결코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부와 가난 역시 결국은 영혼의 내적 구조가 질서를 갖추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이성이 아닌 욕구에 지배되는 참주는 그래서 늘 결핍에 시달리는 가난한 자이다.

 

3) 참주는 평생토록 친구도 없고 고립된 채 두려움과 경련,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보낸다.(579b-580a)

참주정의 나라와 참주정적 영혼은 욕망의 노예 상태에 있어 늘 가난하고,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나라보다 비탄과 한탄, 통곡과 고통이 더 발견되는 나라는 없다. 게다가 이런 나라와 그와 같은 사람은 두려움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578a) 이런 점에서도 참주정적인 인간은 단연 가장 비참하다.(578B) 특히 참주정적인 인간이면서 불행하게도 어떤 불운을 만나 사인이 아닌 실제 참주가 된 자가 한결 더 비참하다.(578b-c) 소크라테스는 참주가 늘 두려움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참주들과 닮은 부유한 개개인 즉 노예를 많이 거느린 자들의 경우를 예로 든다.(578e) 이들은 사실 나라에서 그 노예들을 두려워하며 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나라의 권력자들과 기득권자들은 제도와 법률을 통해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신들이 이 부유한 개개인들과 그들의 노예들을 나라가 그들을 도울 수 없는 상태, 이를테면 어느 외딴 곳에 떨어트려 놓았다고 가정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그곳에서는 노예들이 부자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 부자들과 가족들은 노예들에 의해 재산을 뺏기는 것은 차치하고 언제 살해당할지 모르는 두려움과 공포가 늘 상존해있다. 이것은 참주나 기득권자들이 나라의 제도와 권력에 기대어 자신의 사적 탐욕을 거침없이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정의한 그들의 삶 자체가 얼마나 많은 적대적인 사람들을 나날이 키워내고 있는지 또 그에 따라 주위 사람들에 대한 얼마나 많은 의심과 공포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다. 설사 이런 고립된 상황이 두려워 노예들 가운데 비위를 맞추어 어떤 자를 자유인으로 풀어주고 그들에게 아첨하며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도 날이 갈수록 전적인 자유에 길이 든 자유인들이 참주의 지배에 불만을 가질 경우, 또는 참주의 패권욕과 전제정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주변 국가들이 있을 경우, 참주는 그들과도 적대적이 되어 늘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의심과 공포, 적들의 감시 속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집에 틀어박힌 채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579a-c)

* 혹자는 현실에서 성공한 참주정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역사를 들여다보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지배를 통해 공포와 불안을 극대화시켜 아주 오래 동안 체제를 유지하고 지속한 참주정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플라톤이 이곳에서 드러내고 있는 참주정의 비참성의 핵심적인 요체들 즉 ‘욕정의 노예상태’, ‘영혼의 궁핍’, ‘공포와 고립’은 현실 세계 실제 참주들 모두에게 – 그들이 끝까지 권력을 유지했건 중도에 좌절되었건 상관없이 – 하나같이 두루 적용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영혼의 측면에서 보면 플라톤에게 성공적인 참주란 그 자체로 형용 모순이다. 플라톤 당대 가장 알려진 최고의 참주로서 제명을 산 디오뉘시오스 I세조차 평생 전쟁에 시달렸고 특히 암살 위협 때문에 꼼짝없이 성에 갇혀 지내는 신세라 당대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올림픽 구경조차 대리인을 보냈다고도 전해진다.(J. Adam. 해당 부분 노트 참고) 역사 속 폭력적 독재자들에 관한 전기에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증거를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반대로 처참하고 불행한 종말을 맞이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오늘날 자기 세상인 양 설쳐대는 우리가 알만한 현대판 참주들 모두 하나같이 권력 상실과 전쟁에 대한 공포, 자신과 가족에 대한 암살 위협에 시달리면서 폐쇄된 공간에서 잠도 못 이루면서도 욕정은 들끓어 늘 결핍과 불만을 끼고 산다. 무엇보다 권력을 독점하려는 참주의 욕망은 그 자체로 참주 자신을 배타적으로 고립시키고 타자들과의 관계 일체를 분열시켜 결국은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근본 원인이 된다. 현실 정치가 예외 없이 이러한 권력욕의 전쟁터일 수밖에 없다면 일시적인 평화는 몰라도 인류에게 불행이 그칠 날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곳 첫 증명에서 다루어진 노예 상태가 아닌 자유, 부(富), 그리고 공포로부터 해방 그 모두는(이것은 우연찮게도 각기 민주정 치하 민중들, 과두주의자들, 참주 포함 참주정 치하 시민들이 바라고 원하는 가치들이다.) 오직 철학자왕정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철학자왕정의 도래 가능 조건에 신적 행운과 영감의 도움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편지> 326a, <국가> 499c) 그 실현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 지성이 지배하는 나라를 향한 이곳 <국가> 논의가 얼마나 간절하고 처절한 것인지를 함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상의 실현은 어렵고 처절하다. ta kala tō onti chalepa.- 아름다운 것은 참으로 힘든 것이다.

* 이로써 첫 번째 증명이 마무리된다. 위 증명이 갖는 한계는 시작 전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전에 정의가 어떤 것인지에 관해 동의한 것이 옳다’(576a)는 것, 즉 본성에 따른 모든 계층 간과 영혼 간의 조화와 질서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증명이 나라와 개인 간 ‘동일한 구조’와 ‘전체 연관’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타락한 정치체제들 분석(제8권-제9권) 

B. 정의로운 사람과 부정의한 자 가운데 누가 행복한가. : 정의로운 삶의 우월성 증명(제9권

576b-592b)

1) 두 번째 증명 : 영혼의 세부분에 상응하는 즐거움에 기초한 증명(580c-58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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