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이념』칼 야스퍼스 – 등록금문제와 대학의 이념[청춘의 서재]
이원혁(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한 학생이 이야기한다. “학업을 계속하려면 학업을 포기해야 해요.” 거짓말인줄 알았다. A를 얻기 위해 A를 포기해야한다니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마치 선문답이나 동화에서 말하는 교훈 속에 있는 이야기같았다. 그런데 이런 금도끼 은도끼이야기 속에 나오는 나무꾼들이 광화문광장에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 등록금을 벌어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오늘도 공부대신 ‘알바’를 하는 대학생, 그들의 젊은 이성은 오늘도 열심히 돈 번다.
등록금문제가 한참 이슈다. 하루 이틀된 문제도 아니지만 이번엔 뭔가 조금 달라 보인다. 철되면 돌아오는 제철음식처럼 으레 봄이 되면 하는 개나리투쟁도, 광우병 이후 오랜만에 잡은 소위 ‘껀수’도 아니다. 이번에 대학생들에게 보이는 비장함은 대학생이라는 실존에 대한 위협에서 나왔다. 대학생이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고 대학은 더 이상 이성이 아니라 돈벌이를 가르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처음으로 모두의 문제나 타인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거리에 섰다. 등록금문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서 있다. 그 금액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학생과 예비 대학생들의 진로도 좌우한다. 높은 등록금 덕택에 학생들은 자유로운 이성보다 시장논리에 더욱 익숙하게 대학생활을 보낸다. 높은 등록금 속에서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이 아닌 미래의 돈을 기대한다. 이성과 학문의 자유로운 연애에는 이제 대학에서 익숙하지 않은 낯선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대학생이 학문을 할 수 없는 사회, 대학은 취업만 할 수 있다면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어버린 사회는 이른 바 ‘대학이 위기’인 사회다. 대학이 위기라는 말이 함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대학과 학문의 위기에 대해 이미 수십 년 앞서 고민한 철학자가 있다. 바로 칼 야스퍼스(1883~1969)이다. 칼 야스퍼스가 활동하던 시대도 대학이 위기인 시대였다. 그는 유대인 아내와의 이혼을 거절하여 나치로 인해 대학교수직을 박탈당했다. 나치는 대학에 직접 개입하여 수백 년간 이어져온 소위 ‘대학의 이념’들에 덧칠을 하기 시작했다. 야스퍼스는 대학과 학문이 가지는 가장 큰 미덕은 보편적 앎에 대한 자유로운 탐구로 보았다. 대학의 목적은 근원적인 지적 욕구를 실현하는데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지적 욕구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며 그 앎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되는가를 발견하는데 있다. 그러나 야스퍼스 당시 대학은 나치는 물론이고 나치집권 전후에도 이미 자본에 의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유성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야스퍼스는 1945년 나치 12년간 굴복당한 대학의 이념을 다시금 바로세우고자 소책자를 발간한다. 이 책은 야스퍼스가 겪은 고통스러운 나치의 지배와 대학의 정신에 대한 그의 믿음 속에서 집필된 것으로 그 동안의 강연과 수기를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이 바로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누고자 하는 『대학의 이념』이다. 『대학의 이념』에서 야스퍼스는 학문과 대학의 목적, 그리고 그 존립 조건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야스퍼스는 대학의 위기를 학문의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한다. 그리고 학문의 본질에 대해 논하면서 서서히 대학의 존립의 문제를 고민한다. 그는 이 책에서 요란스럽지 않다. 대학의 이념과 그것을 침해하는 외적요소들에 대한 ‘스펙터클’한 공격을 기대한다면 이 책에선 잠시 흥분을 가라 앉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차근차근 대학의 이념에 대해 설명하지만 우리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듯하다. 이미 그가 60~70년 전에 말한 대학과 학문의 정신을 마주하면 그렇지 못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자꾸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취업 후 상환이라는 무책임한 대학등록금 대책을 무슨 은혜 베풀 듯 하는 나라님이 있는 나라에서는 대학생들은 어서 취업해야 한다. 취업이 잘되는 과로 전과도 빚쟁이에게 쫒기 듯 어서하지 않으면 돈 안 되는 학문을 4년이나 배워야한다. 대학의 역할 중 직업훈련도 분명히 한 축을 담당하지만 한 건물에서 한 기둥만을 위해 다른 기둥의 못을 뽑아버리면 건물 전체가 무너진다. 야스퍼스가 말하는 대학의 이념은 지적인 욕구에 부응하여 교수와 학생들의 공동체를 이루고 진리를 터득해 나가는 것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인격의 도야를 목적으로 한다. 그는 대학교육을 전인교육, 직업훈련, 연구 세 가지로 이루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대학의 교육을 이루는 요소지만 하나가 분리되어 그것만이 강조 될 경우 대학의 목적은 요원해진다. 야스퍼스는 대학이 학문의 미덕의 전체성이라 말한다. 대학의 이름이 university인 것처럼 대학은 하나의 우주이다. 그는 전체성과 결별한 학문과 학생의 생산에 대해 우려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문의 생명력은 전체와의 관계에 근거한다. 대학은 학문적 견해가 일생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그 기초를 갖추게 하고, 지식의 통합을 추구한다. 의사, 교사, 행정가, 판사, 목사, 건축가 등의 직업은 비록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직업을 위한 준비는 그 과정이 전인적이지 못하거나, 지각력을 계발시키지 못하거나, 안목의 지평을 넓혀주지 못하고 ‘철학적’사고를 형성해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지 못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들 것이다. 요즘 국가고시의 경우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전문지식의 부족은 직업적 실생활에서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학문적 교양의 기초가 결여된 사람으로부터는 어떠한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72~73쪽) 오래 전 글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참 와닿는 말이다. 고대그리스에서도 통했던,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처럼 그저 보편성을 가진 말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문화라는 폭력에 내몰리는 대학 학문의 위기라는 점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다.
대학의 위기는 체계와 자본주의 본질의 문제이지 어느 한 현상적 문제로 귀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대학 등록금의 문제는 이러한 본질적 문제를 꿰뚫고 있다.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에서 대학이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전체성과 자율성이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의 목적은 인간의 지적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지적욕구는 항상 전문영역에서 실현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야스퍼스는 지적욕구의 본질은 지식의 통합과 전체성을 추구하는 것이고 대학은 바로 그 통합의 장으로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대학은 개별지식의 다양성과 그 통합을 추구하면서 university가 된다. 야스퍼스가 말하는 대학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학문에 대해 다시 정의하면서 학문을 수행하는 대학을 이야기하는데 그가 말한 학문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그 내용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며 보편타당성을 갖추는 것이다. 대학의 목적은 이러한 학문을 수행하면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대학의 이념이 갖는 전체성인데 이러한 전체성은 대학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자유로는 지위를 보장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에 그 자율성은 중요하다. 따라서 대학은 전체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가져야한다.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대학의 재정문제와 시장화는 이러한 대학의 전체성과 자율성을 심하게 침해하고 있는 듯하다. 자본에 의해 종속된 대학은 직접적으로 금화를 생산할 수 있는 학문만을 육성하고 그곳에 학생들이 모인다. 몇몇 학문에만 학생들이 모여들면서 대학학문이 가져야할 보편성과 전체성이 공격받는다. 이는 대학이 가진 ‘하나의 우주로서 학문의 장’이라는 자신의 역할은 물론 보편성을 추구하는 학문자체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또 몇몇 집중된 인력은 항상 공급과잉을 초래하여 적정 수의 산업예비군을 항상 유지하게 한다. “자본의 학문지배 -> 학문의 전체성 상실 -> 대학 학문과 교육의 다양성 상실 -> 자본의 노동 및 대학구성원(교수, 연구자, 학생)에 대한 지배강화 -> 자본의 학문지배”라는 악순환이 바로 대학과 학문의 위기의 본질이다. 자본에 대한 노동의 지배를 학문의 전체성 상실을 통해 이루고 있으며 강력해진 자본은 더욱더 대학과 그 학문을 간섭하며 전체성과 자율성을 침해한다. 현재 한국의 대학 등록금문제는 이러한 대학의 위기 속에서 그 문제가 심화되어왔다. 야스퍼스는 대학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로부터 오히려 보호받고 지원받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가와 사회가 이성적 결과물들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방안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할을 국가와 사회가 못해주고 있기 때문에 재정이 약한 대학은 무리해서 등록금을 인상하거나, 자기 자신이 바로 자본으로서 학문과 대학구성원의 적을 자임한다. 현재 한국대학의 취약한 재정구조, 특히 86%에 이르는 높은 등록금의존율은 대학에 대한 자본의 지배, 즉 대학자체의 총체적 위기를 이야기한다. 이것이 왜 지금껏 단순한 경제적 부담에서 불거졌던 대학생들의 등록금투쟁이 이제와 새삼스럽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왜 또 ‘조국통일이나 노동해방’과 같은 거창한 거시적 담론만을 투쟁의 담론으로 삼았던 대학생운동이 선배들의 투쟁 주제에 비하면 소소하기 그지없는 ‘등록금’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당면과제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다.
야스퍼스는 대학의 이념과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책의 목차를 유기적으로 구성했다. 그는 전체성과 보편성을 설명하는 학문의 본질을 앞서 이야기하고 이어 그 학문을 유지하는 지적 삶에 관한 문제, 그리고 대학의 조직, 마지막으로는 대학의 재정적 문제에 대해 논한다. 그는 마치 백의를 입은 선비처럼 대학의 목적을 순수한 앎의 추구라는 학문적 문제제기를 하며 글을 시작한다. 하지만 곧 현실 속의 사상가로 돌아와 국가와 사회의 역할 및 대학의 재정으로 『대학의 이념』을 마무리 짓는데 이는 대학의 위기를 단순히 ‘학문하기 어려움’으로 진단한 것이 아니라 이성과 학문의 자체의 위기에 대항해 자신이 생각한 ‘대학의 이념’을 다시금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대학은 지적양심과 욕구를 실현 할 수 있는 연구와 소크라테스식의 민주교육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이는 이상적이고 선언적일지 모르고 그것이 진정으로 가능한 것이 도대체 언제일까라는 고민은 남는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정의는 오늘날 대학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해준다. 대한민국 초중고 모든 교육이 대학을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학자체는 자신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며, 그 혼란을 높은 등록금이란 형태로 학생들과 공유하고 있는 ‘인심 좋은’ 대학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야스퍼스의『대학의 이념』은 대학이 본래가진 초심은 물론,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대학의 모습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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