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슈티르너: 에고이즘의 위대한 철학자-2 <헤겔 좌파>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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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슈티르너: 에고이즘의 위대한 철학자-2

<헤겔 좌파>

 

박종성(한철연 회원, 건국대)

 

Svein Olav Nyberg [노르웨이 아그데르 대학교(노르웨이어: Universitetet i Agder) 부교수]의 글, Max Stirner: The Great Philosopher Of Egoism(2021)을 번역하여 올립니다.

헤겔 좌파는 헤겔 철학에 대한 대응, 특히 확립된 질서의 모든 측면을 지지하려는 헤겔주의 경향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헤겔 좌파는 헤겔의 방법, 특히 그의 변증법(dialectics)1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변증법에는 출발점이 있고, 이 출발점에서 관계들(relations)을 연구함으로써 변증법을 통해 해소되어야 할 이원론과 “일방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변증법에 대한 이전 활동의 결과는 새로운 변증법적 조사의 출발점이 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변증법적 진보를 갖게 됩니다.

그 결과 변증법은 특히 발전, 즉 비판(critique)을 통한 개념의 발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원론은 관계적 대립들 사이에서 발견되며, 때로는 순수한 “일방성” 또는 “숨겨진 전제”도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변증법의 대가인 헤겔 자신이 프로이센 국가와 루터 교회의 기독교에서 역사의 종말을 거의 선언했을 때, 그것은 얼마나 유혹적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계속해서 헤겔 자신의 조사의 최종 결과에 변증법을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유혹적이지 않습니까? “헤겔을 헤겔에 적용”하여 더 나은 헤겔주의자로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유혹적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정확히 청년 헤겔파가 했던 일입니다. 슈트라우스(Strauss)2의 『예수의 생애』(Leben Jesu)는 아마도 헤겔을 재-검토하는 이러한 과정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좋은 지표일 것입니다. 그의 작품에서 슈트라우스는 “그리스도”3-개념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가정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인류의 보편적 구세주(universal saviour)입니다. 그러나: 헤겔 자신의 방법론에 따르면, 보편성은 단일한 개인과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슈트라우스는 진정한 헤겔식 방식으로 이 문제를 수행했고, 결국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일 수는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개인으로서의 그리스도”는 그저 인류의 “진정한” 구세주, 즉 인류 그 자체(Mankind itself)에 대한 신화적 표현일 뿐입니다.

당연히 이 일은 신학자와 철학자 모두에게 상당한 대소동(a stir)을 일으켰습니다. 헤겔의 추종자들에게 이 일은 확실히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고, 결국 그들은 어느 한쪽 편을 들게 되었습니다. 슈트라우스를 대표로 하는 한 쪽에서는, 헤겔의 정신(Spirit)은 진전 운동을 위한 출발점이지, 최종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들, 특히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와 헤겔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우어가 관점을 바꾸고 선도하는 헤겔 좌파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슈트라우스의 작품은 문을 여는 열쇠였으며, 보수적 헤겔주의의 “결과”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작품들이 여럿 출판됐습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은 1841년에 처음 출판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포이어바흐는 헤겔주의에서 보편자(The Universal), 곧 단일 개인으로의 합체(incorporation)로 간주되는 신을 부정함으로써 슈트라우스의 논제를 발전시킵니다.

“우리가 어떻게 신을 안다고 말합니까?” 포이어바흐가 묻습니다. 그의 동시대 헤겔주의 신학자들은 신은 신의 속성(attributes)4으로 알려져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신은 사랑이시다”, “신은 진리이시다” 등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이 신은 직접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오히려 그의 속성을 통해(via) 알려집니다. 그렇다면 숭배 받는 것이 전혀 신 자신일 수도 없다고 포이어바흐에게 묻지 않습니까? 숭배 받는 것이 하나님의 알 수 있는 속성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주어와 술어를 거꾸로 바꾸면 이 진술은 진실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이 진술은 이제 다음과 같이 읽혀집니다. “사랑은 신성하다”(Love is divine), “진리는 신성하다” 등등 그리고 이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원래의 진술은 진실의 전도(轉倒)가 아닙니까? 포이어바흐는 우리가 사랑, 진실 등을 아는 곳이 어디인지 묻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 자신 외에 다른 곳이 어디 있습니까?

포이어바흐는 인류는 그 자신의 그리스도(its own Christ)일 뿐만 아니라, 인류 자신의 신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결론을 내립니다. “신”은 인간 본질의 소외에 지나지 않으며, 이 본질은 어떤 외부의 대상으로 언급되어, 그 결과 인간(Man)과는 다른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전환으로 청년 헤겔주의자들은 신학을 인류학으로 축소시키고, 기독교를 인본주의로 대체했습니다. 인간이 모든 것의 척도입니다. 신의 본성에 대한 사색(Speculations)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색으로 대체됩니다. “신의 명령”과 신의 의지에 관한 질문은 인간의 명령과 의지에 관한 질문, 즉 도덕성에 관한 질문으로 대체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신을 인간다움(Humanity)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방금 신을 천국에서 데려온 포이어바흐는 인간 안에서, 즉 인간의 본질 안에서 신의 모든 속성들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신은 사랑이시다”, “신은 진리이시다” 등의 진술들이 “사랑은 인간의 본질이다”, “진리는 인간의 본질이다” 등으로 바뀌게 됩니다. 신이 인간 본질의 소외에 지나지 않는다는 포이어바흐의 설명이 옳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은 항상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며 항상 진실한 것도 아닙니다. 이는 포이어바흐가 이러한 진술들을 인간들에 대한 경험의 일반화로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포이어바흐의 관점은 “사랑”, “진리”가 되며, 그 결과 그것들은 개인의 소유들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인간의 규범적 본질이 됩니다. 포이어바흐에게 “인간”(Man)은 인간들(men)의 규범적 본질입니다.


옮긴이 박종성: 건국대학교에서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유일자와 그의 소유』(2023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체성』(공역)이 있다. 논문으로는 「유일한 사람의 사랑」, 「슈티르너의 ‘변신’ 비판의 의미」, 「식민지 조선에서 슈티르너 철학의 변용과 그 의미 및 한계-염상섭의 「지상선을 위하여」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현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이고 건국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1. 헤겔은 정반합(正反合)의 개념으로 변증법을 정형화하였다. 헤겔의 이러한 변증법은 후일 헤겔 좌파 철학자들을 거쳐 카를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변증법은 만물이 본질적으로 끊임 없는 변화 과정에 있음을 주창하면서 그 변화의 원인을 내부적인 자기부정, 즉 모순에 있다고 보았다. 원래의 상태를 정(正)이라 하면 모순에 의한 자기부정은 반(反)이다. 만물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운동하며 그 결과 새로운 합(合)의 상태로 변화한다. 이 변화의 결과물은 또다른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 이러한 변화는 최고의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된다. 헤겔은 정반합(正反合)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의 변증법을 설명하기 위해 하인리히 샬리베우스(Heinrich Moritz Chalybäus, 1796~1862)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표현 대신, “즉자-대자-즉자대자”, 혹은 “긍정-부정-부정의 부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2. 다비트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1808 -1874)는 중요한 첫 저서 『비평적으로 검증한 예수의 생애』>(2권.1835~36)를 썼다. 그는 거기서 복음서의 역사적 가치와 복음서의 초자연적 주장을 부인하면서 복음서의 초자연적인 기록들을 “역사적 신화”, 즉 2세기 복음서 저자들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대중적 기대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전설적인 형태로 창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3. 그리스도《구약 성서에서 예언된 구세주의 출현으로서 기독교 신도들이 믿은 나사렛 예수(Jesus)의 호칭, 뒤에 Jesus Christ로 고유명사화됨》. ② (the C-) (유대인이 갈망한) 구세주(Messiah).
  4. Mercy is an ~ of God. 자비는 하느님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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