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 ㊸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 ㊸
1. 정의로운 나라의 수립(375a-434d)
1-1 수호자의 성향(375a-376c)
1-2 수호자의 교육(376c-412b)
1-2-1 시가 교육(376e-403c)
1-2-2 체육 교육(403c-412b) – (3)
[410a-412b]
* 그리고 정의로운 나라의 젊은이들은 절제σωφροσύνη를 낳는다고 우리가 말한 저 단순한ἁπλός 시가μουσικῇ를 즐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재판술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410a) 그리고 시가 교육을 받은 사람은 같은 발자취를 좇아가며 체육 교육을 받기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의술이 전혀 필요 없게 될 것이고 이 체조와 운동γυμνάσιον καὶ πόνος을 열심히 하려는 이유 또한 다른 선수들이 그저 힘ἰσχύς만을 키우기 위해 운동과 식생활을 관리하는 것과는 달리 자기 천성 중 기개부분τὸ θυμοειδὲς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410b) 요컨대 소크라테스는 시가 교육과 체육을 제도화한 목적이 체육은 몸을 돌보기 위해서, 시가는 영혼을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둘 다 영혼을 위하는데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렇다고 시가 교육이 영혼에 관여한다 해서 체육보다 시가 교육에 더 치중해서도 안 된다.(410c) 왜냐하면 그 둘이 조화를 이룰 때 영혼 또한 가장 온전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즉 소크라테스는 체육만 평생 어울려 지내고 시가는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필요τὸ δέον 이상으로 ‘사납고ἀγριότητός 완고한σκληρότητος 상태의 마음’διάνοια을 갖게 되고 그 반대로 시가에 치우치고 체육은 소홀히 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부드럽고μαλακίας 온순한ἥμερος 상태의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410d) 사나움ἀγριότητός은 천성φύσις 중 기개적인 부분에서 나오는데 그것이 제대로 양육되면 용기ἀνδρεία가 되지만 필요 이상으로 조장되면 딱딱해지고 고약해지기χαλεπὸν 십상이라는 것이다.(410d) 그리고 온순함τὸ ἥμερον은 지혜를 사랑하는 성향τὸ φιλόσοφον이 지닌 것으로 이것 또한 너무 느슨해지면 필요 이상으로 부드러워지지만 훌륭하게 양육될 경우 온순하고 단정하게κόσμιον 될 것이라고 말한다.(410e) 그래서 수호자들은 성향상 격정적인 면과 지혜를 사랑하는 면 양쪽 측면을 다 가지고 있으므로 조화를 이루어ἁρμόζειν 절제τὸ σῶφρον와 용기를 갖추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영혼은 비겁하고ἀνάρμοστος 사납게 된다는 것이다.(410e)
* 소크라테스는 이어서 위와 같은 부조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한다. 즉 누군가가 시가에 자신을 맡겨 아울로스 연주에 심취하여 달콤하고 유약하며 구슬픈 화음ἁρμονία의 음악들을 마치 깔때기처럼 귀를 통해서 영혼에 쏟아붓는 경우, 처음에는 쇠를 무르게 하듯 기개의 경직된 상태를 무르게 하여(411a) 조금은 쓸모 있는 상태로 만들겠지만, 그가 계속해서 시가를 들이부으며 시가에 홀려있기만 한다면, 결국 그는 기개를 완전히 녹여버리고, 힘줄을 끊어내듯 그것을 영혼에서 끊어내어 ‘유약한 창병(槍兵)αἰχμητής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애초에 타고나기를 기개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일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고 반대로 기개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개를 허약해지게 해서 성마르게 만들어 사소한 일에 벌컥 성을 냈다가도 금세 사그라지게 만든다고 말한다.(411b) 그와 달리 체육에만 매달리고 시가와 철학은 손대지 않는 사람은 처음에는 몸을 잘 유지하고 기개로 가득 차 이전의 자신보다 더 용감해지겠지만 무사Μοῦσα 여신과도 어떤 관계도 맺지 않을 경우에는(411c) 비록 그의 영혼에 배움μάθημα을 사랑하는 면모가 좀 있다 할지라도, 배움과 탐구ζήτημα도 전혀 맛보지 못하고 논변λόγος이나 나머지 다른 시가에도 참여하지 못하여 마침내는 배움을 사랑하는 면모가 허약해지고 귀먹고 눈멀게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런 사람은 논변을 혐오하는μισόλογος 자가 되고 시가에 무지한 사람이 되어 무슨 일에든 논변을 통해 설득Πειθώ하는 법이 없고,(411d) 아무 일에나 짐승처럼 야만스러운 폭력을 사용하며, 장단에 맞지 않고 천박하게 무지함ἀμαθίᾳ과 서투름σκαιότης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신이 인간들에게 시가와 신체단련을 기개적인 면과 지혜를 사랑하는 면을 위해서 두 가지 기술을 부여하여 적합한προσήκοντος 정도에 이를 때까지 당기고 풀어ἐπιτεινομένω καὶ ἀνιεμένω 서로 간에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시가와 체육을 가장 아름답게 섞어서κεραννύντα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영혼에 적용하는 사람, 이 사람을 완벽한 의미에서 가장 시가에 능하고 가장 조화로운 사람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하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나아가 그는 이런 것들을 담보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정치체제가 나라에서 보존되기 위해서는 어떤 감독자ἐπιστάτης가 늘 필요하다고 말한다.(412a)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춤이나 사냥, 짐승몰이, 그리고 체육경기, 말들로 하는 경합들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교육παιδεία과 양육τροφή의 규범τύπος 즉 정신적인 교육과 신체적인 교육의 기본 틀이라고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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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 교육과 체육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술이 전혀 필요 없게 될 것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질병과 건강 모두 철저히 자기 관리에 달렸음을 강조한 말이다. 이점은 오늘날 우리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관리의 궁극 목표가 영혼을 보살피는 것에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체육 교육의 목표 또한 영혼의 돌봄에 있다는 생각은 당대의 체육 교육관과 차별하여 플라톤이 처음 제시한 것이다. 몸의 건강이 정신의 건강을 담보하지는 않더라도 그에게서 정신의 건강은 몸의 건강을 담보한다.
* 여기서 영혼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사나움ἀγριότης과 거칠음σκληρότης, 부드러움μαλακία과 온순함ἡμερότης, 단정함κόσμιον 등이 나온다. 우선 사나움과 거칢은 기개 부분의 양육 상태에 따라 용감함에 대비해서 나타나는 마음 상태들이다.(410d), 그리고 부드러움은 시가 교육이 가져다주는 영혼의 상태이고(410d) 온순함은 ‘지혜를 사랑하는 성향’τὸ φιλόσοφον이 지닌 것이고 단정함은 그 온순함이 훌륭하게 양육될 때 드러나는 마음 상태이다.(410e) 그러니까 사나움과 거칠음은 기개 부분에서 유래하는 마음 상태이고 부드러움과 온순함, 단정함은 지혜를 사랑하는 성향에서 유래하는 마음 상태이다.
* 그런데 부드러움μαλακία은 여기서 시가 교육이 가져다주는 것으로 나오지만 soft, mild, gentle의 뜻 외에 부정적인 의미로 morally weak, lacking in self-control의 뜻도 있고 실제로 <국가> 556c에서는 그런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부드러움을 기개부분이 약해지면 드러나는 마음 상태로 보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도 기개 부분이 노래에 매료되는 정도에 따라 부드럽게 되거나 지나칠 경우 아예 녹아 버리는 마음 상태로 언급되기도 한다.(411b). 단정함κόσμιον 또한 여기서는 온순함이 훌륭하게 양육되었을 때의 상태로 언급되고 있지만(410e) 질서, 절도well-ordered의 뜻은 물론(329d) 얌전함과 조신함of a patient, quiet, modest의 뜻도 있어 오히려 기개 부분이 지닌 용기에 대비되는 마음 상태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J. Adam의 해당 부분 Note 참고)
* 그래서일까, “온순함τὸ ἥμερον은 지혜를 사랑하는 성향이 지닌 것으로 이것 또한 너무 느슨해지면 필요 이상으로 부드러워지지만μαλακώτερον 훌륭하게 양육될 경우 온순하고 단정하게 될 것”(410e)이란 문장에서 ‘이것’αὐτοῦ이 가리키는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러저러한 논란이 있다. 여기서 우선 네 가지 특성 즉 사나움과 거칢, 부드러움과 온순함이 구별된다. 이 중 사나움은 기개 부분에 유래하는 것으로 제대로 양육되면 용기가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거칠게 된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그러나 의문도 생긴다. 앞의 문장(410e)을 언뜻 보면 ‘이것’은 ‘지혜를 사랑하는 성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J. Stallbaum 등) 그렇지만 이것은 문법적으로 ‘온순함’을 ‘필요 이상으로 부드러워지지만’μαλακώτερον εἴη의 주어로 새로 끼워 놓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 경우 또 ‘온순하고 단정하게’라는 말도 설명하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온순함’이라고 보아야 한다.( J. Adam의 해당 Note 참고) 물론 이 경우 내용상 ‘온순함이 온순하고 단정하게 된다.’는 역어 상 동어반복으로 보여 다소 어색하지만, 이 말은 온순함이 훌륭하게 양육될 경우 ‘제대로 온순하고 단정하게 된다’란 의미를 내포한다.
* 이어서 체육에만 매달려 시가와 철학을 게을리했을 경우 초래되는 여러 양태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시가 교육과 체육 교육의 조화를 강조하기 위해 제기된 언급들이다. 내용적으로는 지혜를 사랑하는 성향으로서 배움과 탐구 및 논변과 설득에 대한 사랑이 강조되고 그 반대의 경우로서 논변 혐오와 폭력, 무지함과 서투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 ‘신이 인간들에게 시가와 신체단련을 기개적인 면과 지혜를 사랑하는 면을 위해서 두 가지 기술을 부여하여 적합한 정도에 이를 때까지 당기고 풀어 서로 간에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411e)의 표현은 영혼이 음악적 이미지를 갖는 것임을 보여준다. 영혼은 기개적인 면과 지혜를 사랑하는 면이라는 두 가지 현χορδή들의 풀고 당김을 통해 조화롭고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하는 일종의 음악이고 그런 점에서 그와 같은 조화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은 실제 현악기의 현을 조율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시가적인 사람이다.(412a) (<라케스> 188d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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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도 언급했듯이 시가교육이나 체육교육 모두 영혼의 상태가 핵심적인 관심사항이다. 사실 나중(439d) 드러나겠지만 플라톤에게 인간의 영혼은 우리가 영혼 3분설이란 이름으로 익히 많이 들어 알고 있듯이 이성 부분τὸ λογιστικὸν과 기개 부분τὸ θυμοειδὲς과 욕구 부분 ἐπιθυμητικόν으로 나뉘어져 있다. 여기서 ‘지혜를 사랑하는 성향’τὸ φιλόσοφον은 내용상 이성 부분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여기에서 시가 교육과 체육 교육들 간의 조화가 이루어지 않았을 경우 나타나게 되는 영혼의 상태를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시가교육과 체육 교육의 조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 내용들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플라톤의 영혼론(434c-441c)의 예비적인 논의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 우선 소크라테스는 시가 교육과 체육 교육이 영혼에 미치는 대조적인 영향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그 영향에 따라 영혼의 기개부분과 이성부분이 드러낼 수 있는 아주 다양한 양상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선 기개부분에 시가 교육이 지나치면 기개를 허약하게 하여 유약한 창병으로 만들고 반대로 체육 교육이 지나치면 짐승처럼 야만적인 폭력을 휘두르게 만든다. 즉 영혼의 기개부분의 온전한 상태인 용감한 상태를 중심으로 교육 정도에 따라 유약함과 야만스러움, 이른바 비겁과 만용의 상태가 초래되는 것이다.(411e-a) 이것은 지혜를 사랑하는 성향 즉 이성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성향에 체육 교육이 지나치면 이전의 자신보다 더 용감해지겠지만 무사 여신과도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아 배움을 사랑하는 면모가 허약해지고 논변을 혐오하는 자가 되어 무슨 일에든 논변을 통해 설득하지 않고 짐승처럼 야만스런 폭력을 사용하며, 천박하게 무지함과 서투름 속에서 살게 된다고 말한다.(411d-e)
* 이것은 영혼의 이성 부분도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지혜를 가운데 두고 영악함과 아둔함 양쪽으로, 기개 부분도 용기를 가운데 두고 비겁과 만용 양쪽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며 여기서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욕구 부분 역시 절제를 가운데 두고 인색과 사치 양쪽으로 각각 다양한 영혼의 상태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성 부분과 기개 부분, 욕구 부분 모두 교육 여하에 따라 각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고 그에 따라 한 사람의 전체적인 영혼의 상태는 그러한 각 부분의 각기 다른 양태들 간의 다양한 관계로 나타나며, 또 그에 따라 각 사람들의 소질 또한 그것들의 다양한 상호 조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흔히 여기듯 ‘영혼의 이성부분, 기개부분, 욕구 부분 각각이 가장 완전한 상태들을 이룬 상태에서 그것들 간에 성립되는 조화’만이 조화의 유일한 상태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화 상태는 통치자가 가져야 할 가장 이상적인 영혼의 조화 상태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플라톤이 말하고자 하는 ‘조화로운 인간 영혼의 상태’가 갖는 다양한 양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를테면 이상적인 군인이나 이상적인 생산자는 조화의 양상은 다르지만, 이상적인 통치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고유한 소질을 구현하는 ‘조화로운 영혼의 상태’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처럼 이곳의 논의는 논의의 기본 취지대로 시가 및 체육교육의 조화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부차적으로는 그러한 시가 및 체육 교육이 결과하는 조화로운 영혼의 상태 또한, 비록 크게는 각자의 천성에 따라 세 가지 양태로 구분되어 나타나지만, 세부적으로는 같은 계층의 개인들끼리도 다양한 양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함께 일깨워 준다. 통치자 계층이나 군인 계층이나 생산자 계층이나 어느 계층에 속하는 그 누구든 조화로운 영혼의 양태가 로봇이 아닌 한, 계층별로 어찌 천편일률적이겠는가.
* 그런데 플라톤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영혼 각 부분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시가교육과 체육교육 간의 조화이지 논의 전개상 아직은 영혼들 각 부분의 조화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살피게 되겠지만 영혼들 각 부분 간의 균형과 조화는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이 관장하고 그 이성적인 부분의 상태는 앞서 살폈듯이 교육 여하에 따라 사람마다 다양하다. 이를테면 통치자 계층은 이성적인 부분이 가장 발달하여 지혜를 가장 잘 발휘하기 위한 영혼의 상태를 보전하면서 그 지혜와 조화의 능력으로 사회적 계층들 간 최상의 조화도 구현한다. 그러나 그가 함께 가지는 영혼의 기개부분과 욕구부분은 이성 부분의 발달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생산자 계층은 욕구적인 부분이 가장 발달하여 스스로 생산 능력을 가장 발 발휘하기 위한 영혼의 상태를 보전하면서 절제의 능력으로 사회적 계층들 간의 조화에도 함께 참여한다. 그러나 그가 함께 가지고 있는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과 기개적인 부분은 욕구 부분의 발달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수호자 계층에 속하면서 통치자를 보조하는 군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이상국가 내의 각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영혼의 상태를 갖고 있으면서 모두 다 자기의 천성과 소질이 최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최상의 내적 조화를 구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통치자만 영혼들 간의 최상의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다른 계층은 그 보다 떨어지는 이른바 영혼의 부조화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다만 천성에 맞춰 그들이 구현하는 조화의 양상만 다를 뿐이다. 요컨대 이상 국가 내 사람들 모두는 영혼의 각 부분의 다양한 상태들이 각 부분 간의 무수한 상호 조합 방식의 차이에 따라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한 영혼의 양태를 갖고 있고 각기 고유한 특성에 따라 분업적 사회공동체의 다양한 직능들을 나눠 맞는다. 장차 밝혀지겠지만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비록 사회적 계층들과 구성원 간의 조화를 관장하는 통치자의 역할이 가장 중시되고는 있지만 단지 통치자의 역할만으로 성립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상 국가는 분업적인 사회공동체 내에서 각기 다른 본성과 그에 따른 역할을 가진 각기 다른 계층의 사람들 각각이 스스로 최선의 내적인 영혼의 조화를 보전하면서 사회적인 자기 직분을 다 했을 때 비로소 성립 가능한 것이다. 요컨대 각기 천성과 소질이 다른 사람들 모두가 자기다운 삶을 누리는 공동체가 이상국가론의 목표인 것이다. 개인의 행복감 또한 양상은 각기 달라도 각자 영혼의 조화 상태 그 자체라는 점에서 이상국가의 구성원들은 계층과 직능에 상관없이 모두 행복하다.
* 플라톤의 이상적 정치체제가 드러내는 위와 같은 모습들은 비록 영혼의 조화 양상 측면에서만 살펴본 단편적인 내용들에 불과하지만 어쨌거나 그 구상만으로도 이미 환상이라 할 정도로 현금의 우리들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오늘날의 현실을 돌아보면 현대 금융 자본주의는 확신에 차 있듯 인간의 본성을 오로지 물질적 욕망으로 환원하여 획일화해버렸고 그 결과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대부분 나라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이 초래한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날이 갈수록 더 벗어나기 힘든 고통과 갈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렇다고 이 상태를 절망적인 눈으로 지켜볼 수만도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우리가 이러한 현대사회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그 극복을 향한 몸부림의 하나로 철학적인 숙고도 끊임없이 감행해야 한다면,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비록 고대 저작의 한계에서 비롯된 시대착오적인 발상도 포함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각기 다른 소질과 욕망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서로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철학적 모색의 고전적이고 반성적인 지표로서 매우 의미 있는 논점과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플라톤 역시 이러한 논의들을 단순히 책상머리에서 꿈꾸듯 써내려 간 것이 아니라 병들대로 병들어 있는 당대 아테네의 피폐한 현실을 헤쳐 가며 체득한 고뇌어린 성찰을 토대로 토로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그의 영혼론과 정의로운 정치체제론을 다룰 때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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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 역시 체조와 운동, 식생활의 관리 등의 방식으로 힘을 키우고 건강한 신체를 보전하는 것이 갖는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플라톤이 체육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하며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체육 교육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영혼의 훌륭한 상태를 도모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체육 교육의 목표와 시가 교육의 목표는 종국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체육은 몸을 돌보고 시가는 영혼을 돌보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잘못된 것이다. 그 둘 다 영혼의 훌륭한 상태를 위해 있는 것이고 그러한 대전체와 원칙 아래에서 체조와 운동 식생활 관리 등의 체육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영혼을 돌보는 시가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컨대 몸에 대한 영혼의 우위라는 근본 원칙 위에서 체육 교육과 시가 교육은 어느 곳에도 치우침이 없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 논의의 마지막 부분은 앞서 살폈듯이 시가 교육과 체육 교육이 부조화를 이루었을 경우 어떠한 심각한 지경에 이르는지를 아주 상세하고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모름지기 수호자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면과 기개적인 면을 적합한 정도에 이를 때까지 서로 당기고 풀어 가며 양 측면의 조화를 이루어 종국적으로 가장 시가에 능하고 가장 조화로운 사람으로 길러져야 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런 것들을 담보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정치체제와 그러한 체제를 나라에서 보존할 수 있는 어떤 감독자가 늘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이것들이야말로 교육과 양육의 규범 즉 정신적인 교육과 신체적인 교육의 기본 틀이라고 언급한다.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시가 및 체육 교육과 관련한 논의를 모두 마무리하고 마침내 이상국가론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정치체제와 그 체제의 보전을 위한 감독자로서 수호자 중의 수호자 즉 통치자에 대한 논의로 대화를 이끈다.
<체육 교육 끝. 다음 주제 : 통치자들의 선발과 자격, 건국신화(412b-41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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