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각자도생을 하고 있나? [시대와 철학]

누가 각자도생을 하고 있나?

 

진보성(한철연 회원)

 

요즘 뉴스 기사나 개인 블로그 글을 읽다 보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을 자주 본다. 자본주의 무한경쟁 시대에 ‘각자 살기를 도모하다’라는 뜻의 이 용어는 팍팍한 현실에 남보다 먼저 안정된 사회 주도층의 대열에 합류하겠다거나, 자칫 사회의 변방에서 처량하게 서식할 자신의 처지를 경계하는 지금 사람들의 군상과 사회의 분위기를 너무나 잘 반영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인지 각자도생을 현대에 만들어진 신조어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실은 출전이 있는 꽤 오래된 말이다. 각자도생은 조선 시대에 국가적이고 공적인 위기 상황에서 종종 사용되곤 했다. 이 용어는 당시 국정의 책임자들 사이에서 발화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선조실록』 55권(선조 27년 9월 6일의 5번째 기사)에는 임진왜란 시기 평양 전투에서 패한 왜적이 퇴각하며 도성의 백성을 모두 죽인 일을 예로 들면서 ‘타지의 백성도 이를 미리 알게 하여 각자 살길을 도모할 것’이라는 내용의 문장이 보인다. 국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각자 목숨을 보전해야 했던 일차 대상은 일반 백성들이었다.

백성들의 각자도생을 일컬은 말은 국가 내부의 위기사태에도 등장한다. 『순조실록』 12권(순조 9년 12월 4일의 1번째 기사)에서는 광주 목사 송지겸이 흉년의 실상을 상소하면서 “<백성들이> 지금 살던 마을을 떠나 각자 살기를 도모하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폐허가 된 민중들 삶의 처참함을 묘사한다.

한편 각자도생은 ‘各自圖生’과 함께 ‘各自逃生’ 즉 ‘각자 달아나 살길을 찾는다’라는 용어와 혼용되었다. 역시 임진왜란 시기의 기록인 『선조실록』 32권(선조 25년 11월 17일의 2번째 기사)에는 국경 변방의 일을 담당하는 행정관청인 비변사가 “경기의 동쪽과 강원도 북쪽에는 통솔할 만한 장수가 없어 그곳 백성들이 각기 살길을 찾아 <난민이 되어> 산골짜기에 모여 있는데 남의 나라 땅 일과 같이 되어서 매우 미안하다”고 고했다는 글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각자 목숨을 보전하려 살기를 도모하는 것으로 묘사된 대상이 힘없는 백성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후금이 조선을 침략했던 1627년 정묘호란 때 왕족들도 그러했다. 『인조실록』 17권(인조 5년 10월 4일의 4번째 기사)에는 “종실(宗室)은 모두 나라와 더불어 운명을 함께 해야 할 사람인데 난리를 당하자 임금(인조)을 버리고 각자 살기를 도모한 것은 실로 작은 죄가 아니다”라며 위기 앞에서 무력했던 왕실 인사들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도 존재한다. 그런데 인조는 결국 피난에 임금을 호위하지 않았던 왕족들의 가볍지 않은 죄를 모두 사해주고 다시 국가의 녹봉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많은 사례를 살핀 것은 아니나 각자도생의 기록을 살짝 들춰본 뒷맛은 씁쓸함을 넘어 분노스럽다. 과거 백성들의 고단한 삶에 측은한 감정을 느꼈거나 역사적 사건의 실상에 각성했기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시국 동안 각자 거리 두기로 각자도생하던 사람들이 해방구로 몰려들었던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의 경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신이 살기 위해, 희생자가 희생자를 살리기 위해 다시 ‘각자도생’ 할 수밖에 없던 현실과 유가족들의 각자도생은 방관하며 자기 책임은 회피하려 들었던 국정 책임자들의 각자도생이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개개인의 삶의 양태가 각자도생으로 나가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긴 한데, 사람들이 각자도생을 안 하면 안 되게끔 만드는 국정 책임자들의 각자도생은 어떻게(어찌) 두고 볼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더 도망할 곳도 더 도모할 거리도 이제는 사라져 버리고 있다는 현실이 조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문제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