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후의 존재들과 나누는 ‘테스형’의 삶 이야기 ② [내게는 이름이 없다]

인류 최후의 존재들과 나누는 ‘테스형’의 삶 이야기 ②

 

글: 행길이

 

“내가 언제 악법도 법이라고 했냥?!”

 

덩치가 친구들을 모아놓고 시시덕거리며 놀고 있었어요. 얼마 전부터 사이가 틀어진 똘똘이가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가만보니 똘똘이는 고급 브랜드 점퍼를 입고 있군요. 덩치는 똘똘이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야, 똘똘이 너 오랜만이다. 새 옷 샀니? 우린 친한 친구니까 그 옷 좀 같이 나눠 입자. 친구끼리는 모든지 함께 나눠 쓰기로 정했거든.” 똘똘이는 억울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이건 내꺼라구.” 그러자 덩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흥, 아까도 말했다시피 친구끼리는 무엇이든 나눠 쓴다는 규칙을 만들었어. 그렇지 얘들아?” 주변의 덩치패들은 킥킥대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는게 어딨어. 그건 부당한 규칙이라구!” 어처구니가 없어진 똘똘이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호오, 부당한 규치~익? 역시 똘똘이는 똑똑해서 어려운 말도 잘 쓰네. 그럼 네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 할아버지가 한 말을 일러주지. ‘악법도 법이다.’ 나쁜 규칙도 지켜야 한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그 옷 내놔.”

‘아니, 힘만 센 덩치가 어느새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지?’ 당황한 똘똘이는 새 옷을 빼앗기고 말았답니다. 힘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똘똘이는 생각했어요. ‘정말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는 이상한 말을 했을까?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부당한 일을 그대로 두고 본 위선자가 되는 건데?’ 똘똘이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1. “널 고발한다. 소크라테스.”

 

아테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행위를 점점 거북하게 여기기 시작했어요. 소크라테스는 고대 민주주의가 자주 빠지게 되는 잘못을 지적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당시 아테네인들은 집단적으로 결정한 사항은 의심하지 말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부당하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태도는 대중의 독재에 아부하는 것일 뿐 진정한 정치는 아니라고 비판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반민주주의자로 보인 것이죠.

더구나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의 문답법(dialektike)을 흉내내면서 어른들을 골려먹고 기성 사회에 도전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소크라테스를 따르던 이들은 당시 아테네에서 촉망받았던 젊은이들이었어요.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알키비아데스(Alkibiades)는 적국으로 도망가 아테네를 위기에 빠뜨리는 매국 행위를 하다가 이국에서 암살당했습니다. 아테네인들에게 이것은 충격이었죠. 그들에게 똑같은 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어요. 아테네 사람들이 보기에 이들을 가만 놔두다가는 사회가 혼란해질 것 같아 보였어요. 그래서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고발했습니다. 아테네인들에게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고유한 정치 전통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젊은이들의 머리 속에 불순한 생각을 집어넣은 원흉으로 보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테네의 적이라기보다는 진실한 친구이고자 했어요.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 나가 자신을 변론했습니다. 당시에는 아테네 시민이라면 누구나 검사나 변호사가 되어 어떤 사람을 고발하거나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판결은 아테네 시민들의 투표로 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2. “날 사형시키려거든 맘대로 하세요.”

 

그에게 재판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시민들이 진실(진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제 정신을 차리는 것이 더 중요했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재판을 변론장이 아닌 철학적 토론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시민들은 당황스러웠어요. 소크라테스가 이상한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배심원의 정서에 호소하면서 무죄 판결을 청하는 수사술(rhetorike)을 펼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재판에 임하는 시민들의 영혼에 켜켜이 쌓인 잘못된 상식을 지적하면서 그들을 깨우치려는 변증술을 펼쳐나갔습니다. 이것은 시민들의 비위를 상하게 만들었어요. 당시는 배심원의 판결이 곧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민을 교육하려는 소크라테스의 이런 행동은 시민들에게 법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함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시민들의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었습니다.

 

“아테네인 여러분! 여러분은 제가 성가신 질문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그만두면 풀어주겠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제안을 거부합니다. 저는 늘 해오던 대로 말하고 돌아다닐 겁니다. ‘그대들은 재물을 얻기 위해 의논하는 데에는 힘쓰지만 지혜와 영혼이 훌륭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노력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요. 만일 당신들이 훌륭함을 지니고 있지 못하면서도 그걸 갖고 있는 양 거들먹거리면 저는 당신들에게 끝까지 질문하고 캐묻고 심문할 것입니다. 저는 재물보다는 자기의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설득하고 돌아다닐 것입니다. 이는 제가 여러분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입니다. 아테네인 여러분! 저를 무죄 방면하든 유죄 선고를 내리든 맘대로 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저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몇 번이고 죽는다 해도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이 법의 이름으로 내리는 판결을 따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것이 정의보다는 재물을 탐하는 정신에 기초하여 내려진 나쁜 판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다수의 힘을 근거로 하여 힘 없는 자를 압박하는 폭력에 다름 아닌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악법도 법인 이상 두말없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겠습니까?

 

3. “잘 들으세요, 나는 정의로운 법질서를 존중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롭지 않은 법의 판결은 존중할 마음이 없다고 말한 덕분에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소크라테스보고 몰래 탈옥하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부합니다. 나라에서 내려진 판결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그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행적은 겉으로 보기에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입장을 내보인 것으로 볼 여지를 줍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는 없어요.

우리는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세 번까지 재판을 받을 수 있어요. 세 번째 재판에서도 진다면 그 판결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세 번에 걸친 재판에서도 부당한 판결은 나올 수 있어요. 과거 우리나라에도 그런 일이 많이 벌어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탈옥을 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악한 판결이 정당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결코 악한 판결을 정의롭다고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존중한 것은 바로 오늘 내려진 악한 판결이 아닙니다. 재판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민주적 법제도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회 질서를 존중하고 신뢰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였어요. 그가 순순히 독배를 마신 까닭은 판결의 정당성을 수긍해서가 아니어요. 그가 살아왔고 살고 있었던, 그에게 수많은 권리와 자유를 제공해 주었던 아테네의 정의로운 법질서와 법의 정신을 존중해서였어요. 어렵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의 본래 정신에 대해서 한 번 알아봐야 해요.

 

4. 야수는 죽어야 한다.

 

서양에서 법이라는 것은 서로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표시해 주는 울타리에서 기원하고 있어요. 이것은 힘 센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것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법은 힘의 독점을 막기 위해 마련된 거랍니다. 여기서 법의 정당성이 확보돼요.

넓디 넓은 목초지의 울타리는 혼자서 세우기 힘들죠? 그래서 모두가 힘을 합쳐 울타리를 세웁니다. 법도 마찬가지여요. 공동체 모두의 힘을 합쳐서 법질서를 엮어나가요. 누구든 다른 사람을 함부로 지배해서도 안 되고 해를 끼쳐서도 안 돼요. 법질서는 이런 정의로운 마음을 담아 한땀 한땀 엮은 거랍니다.

그런데 가끔 자기 힘만 믿고 법의 울타리를 넘어서 자기 욕심만 챙기는 이들이 있어요. 이런 이들은 울타리를 넘어서 양을 물어가는 늑대와 같은 취급을 받아요. 그들은 사회의 혼란을 가져오는 야수와 같기에 처벌을 받습니다. 공동체의 약속인 법질서 자체를 무시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한다는 것은 모두의 적이 될 각오를 하는 것과 같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영원히 추방하거나 심하면 죽여 버리기도 해요.

 

5.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나는 정의로운 법의 정신을 준수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양치기 개들 중 몇 마리가 양고기 맛을 알게 돼서 남의 양을 잡아먹고 시치미 뚝 뗄 때는 어떻게 하죠? 동료였던 많은 이들이 야수가 되어 이웃 사람의 양을 탐할 때는 어쩌죠? 당시 아테네 사람들도 법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을 위협하거나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는 야수 같은 짓을 종종 벌였답니다. 이것은 법질서 자체가 악해서 벌어진 문제가 아니어요. 법질서를 악용하는 이들의 부도덕함이 문제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인들이 잠시 현혹된 부도덕한 정신을 고발하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소크라테스에게 아테네의 법질서는 애초부터 악하지 않아요. 그는 아테네인들의 법질서가 정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믿었어요. 그는 아테네인들이 자기에게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아테네의 법 원칙이 악하다고 주장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테네인들이 정의로운 법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당한 판결이 나왔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아테네의 법을 준수합니다. 그것이 악한 법이라도 법이기에 따른 게 아니었어요. 아테네의 정의로운 법 원칙과 법 정신을 존경하고 그것의 회복을 신뢰했기 때문에 독배를 마신 거여요. 법 원칙이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이해 못한 사람들이 잘못을 범했을 뿐이라는 거죠. 그는 뼈 속까지 아테네의 정치 및 법질서를 신뢰한 사람이었어요.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87년

 

6. 잘 가요, 소크라테스

 

사형 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작별을 고합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어요.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테죠. 하지만 우리들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곳으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신을 제외하곤 말이죠.”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으로서는 너무도 담담한 말입니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지도, 아테네인들의 무지를 깨닫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에게 실망하지도 타인을 원망하지도 않았죠. 소크라테스는 어느 누구보다도 지혜로웠지만 자기의 지혜를 내심 자랑스러워하며 과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재판에서의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며 살아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귀하고도 용감한 모습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밝혀주는 사람이 되길 바래요. 안녕 여러분, 안녕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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