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시간, 어머니 [시가 필요한 시간]

열네 번째 시간, 어머니

 

마리횬

 

어버이날을 기념해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한 주 미루다 보니 조금 늦어버렸네요. 더 늦기 전에 소개해드릴 시가 있어 가져왔습니다. 고두현 시인의 <늦게 온 소포>입니다.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이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요즘 웬만한 물건들은 가까운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온라인 쇼핑몰도 구성이 잘 되어 있어, 전자기기, 식품 등 다양한 상품들을 주문당일이나 다음날 새벽에 샛별처럼 빠르게 로켓과도 같은 속도로 받을 수가 있죠. 얼마나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여기, 늦게 온 소포 하나가 있습니다. 남해에 사시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소포입니다. 행여 어디 부딪혀서 생채기라도 날까, 유자 아홉 개를 싸고 또 싸고 무명실로 겹겹이 감아 조심조심 포장해서 보낸 소포를 봅니다.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시 제목에서 분명 “늦게 온” 소포라고 시작했지만, 다름아닌 어머니가 보낸 것임을 아는 순간, 밤 늦게 받은 소포는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을 만큼 재빨리 날아 온 소포가 됩니다.

시의 화자는 겹겹으로 동여맨 매듭에서 어머니의 주름진 손마디를 읽어내고, 속에 것보다도 더 무겁게 포장된 마분지에서 겹겹이 쌓인 두터운 어머니의 마음을 보아냅니다. 포장된 종이를 한 장 한 장 벗겨낼 때마다 나의 낯선 서울 살이, 분주한 생활의 겉꺼풀도 하나씩 벗겨지는 것을 느끼죠. 그리고 마치 그런 자녀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어머니의 쪽지가 눈앞에 툭 떨어집니다.

마치 실제 어머니의 쪽지를 마주하는 듯, 시의 원문에는 어머니의 말투로 된 시행이 고스란히 삽입되어 있습니다. 서툴고 맞춤법도 안 맞는 촌스러운 편지, 투박하게 싸맨 유자, 빠르고 편리한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늦게 온 소포…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 더 큰 위로를 주는 듯 합니다.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어머니가 한지더미로 꽁꽁 싸서 보낸 것은 사실 유자가 아니라, 혹시 내 아들 딸이 바빠서 챙겨먹지 못할 까봐, 그저 몸에 좋은 거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사랑이었겠죠. 유자를 포장했던 종이들을 버리려고 접었다가, 어머니 생각에 다시 펼쳤다가… 접었다 펼쳤다 하는 그 손길에서 어머니를 향한 말 못할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그리고 새벽에 내려 녹고 있는 눈을 핑계 삼는 시인의 눈물도 엿볼 수 있습니다.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이 마지막 연에서 나타나는 눈물은 슬픔, 쓸쓸함, 외로움의 눈물이 아니라,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아 흘리는 눈물,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지 않을까요?

이 시를 읽으며 함께 생각난 시 가운데 이대흠 시인이 쓴 <어머니라는 말>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에서 시인은 “어머니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입이 울리고 코가 울린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가만히 살펴보면 ‘어머니’라는 단어에는 한국어의 비음에 해당하는 자음 ㅇ,ㅁ,ㄴ이 들어있습니다. 비음은 공기가 코로 나가서 코를 울려서 내는 소리를 뜻하는데, 이 세 가지 비음이 모두 사용되고 있는 단어가 바로 ‘어머니’인 것이죠. 어쩌면 그래서 “엄마”라고 입으로 부르기만 해도 우리의 콧등이 시큰거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원한 그리움이자 영원한 울림의 이름, ‘엄마’, ‘어머니’…

오늘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이설아의 <엄마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곡 가져왔습니다. 몇 년 전 “K-pop Star”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작곡으로 소개가 되었던 짧은 노래인데요, 가사가 참 가슴 먹먹해지는 노래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늦게 온 소포>와도 잘 어울리고, 어버이날을 지내면서 많이 생각난 노래이기도 합니다. 5월이 지나가기 전에, 우리의 부모님께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꼭 전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2주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이설아 – 엄마로 산다는 것은, https://youtu.be/8EHdwo2ux6U

 


필자 마리횬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