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시간, 봄 [시가 필요한 시간]

열한 번째 시간, 봄

 

마리횬

 

안녕하세요, 시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코로나19로 여전히 많은 것들이 연기되고 멈춰 있지만, 가까이에 다가오는 봄기운마저 막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곳곳에 산수유의 노란 꽃망울이 올라왔고, 햇빛 비치는 곳에 서 있으면 따스함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봄’이 성큼 눈앞에 와 있네요. 아직 바람은 조금 차갑긴 하지만 말입니다.

 

봄을 기대하면서, 오늘 함께 읽을 시는 김종해 시인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입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속에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게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 쳐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 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인생을 이야기 하거나 삶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을 비유적으로 이야기 할 때,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으로 비유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인생을 항해로 표현했죠. 문득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도 생각이 납니다. 또 어떤 중요한 결단을 내린 후에 “우리 이제 한 배를 탄 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 비유가 이 시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인생은 항해다’라는 표현을 하진 않지만, “우리 살아가는 일속에/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어디 한두 번이랴”라고 하는 표현에서 그 비유가 드러나고 있죠.

우리가 살아가는 일속에는 기쁜 일도 많이 있지만,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일도 많이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고, 내가 열심히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죠. 생각해보면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한 두 번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럴 때, 그 파도에 흔들리면서 그 주체할 수 없는 기분에 나를 놓아버리지 말 것을 시인은 당부합니다. 오히려 그런 날은 ‘닻’을 내리라고 말하고 있죠.

 

우리 살아가는 일속에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닻을 내린다는 건 배를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요, 성난 파도가 일고 바람이 마구 부는 상황에서 배를 그냥 놔둔 채로 계속 항해를 한다면, 아무리 큰 배라고 하더라도 여기저기로 휩쓸려 버릴 것이고,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떠내려가게 될 겁니다.

그렇게 다 떠밀린 후에 그제서야 다시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을 찾으려면 여간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시인은, 내가 이리저리 흔들릴 것만 같은 그런 날에는 조용히 닻을 내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이 ‘닻’의 의미에 대해서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배를 고정시켜주는 닻을 살펴보면 무게는 상당하지만 크기가 꽤 작습니다. 배보다 큰 닻 본 적 있으세요? 평소에는 배에 싣고 다녀야 하니까 배의 몸체보다는 훨씬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훨씬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몇 십 배의 큰 배를 고정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닻이죠. ‘배’가 ‘나 자신’을 의미한다면, ‘닻’은 ‘작지만 나를 지탱해줄 힘이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배마다 닻이 하나씩 있듯이, 내가 흔들릴 때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이 ‘닻’과 같은 작지만 큰 무언가가 우리 모두에게 하나씩은 있다는 의미로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닻’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친구와의 전화 한 통, 부모님의 격려의 말 한마디,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 시 한 편, 맛있는 커피 한 잔 등 여러분 각자에게 무엇이 ‘닻’이 되는지 한 번 생각 해보세요)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뜻하지 않게 만나는 파도와 같은 일들, 바람과 같은 일들이 없을 수는 없겠죠. 그럴 때 그 파도와 바람에 흔들려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닻을 내리시고 그 일들을 잠시 묻어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파도가 지나고 바람이 멎었을 때, 그때 다시 내 방향대로 나아가면 되는 거예요. 분노가 치미는 일이나,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을 때, 괜히 애꿎은 다른 사람에게 그 화를 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본의 아니게 괜한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그 순간 잠시 한 숨 쉬어 가면서 내 마음 속에 닻을 내리는 겁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러면 나만 바보같이 참으라는 얘기냐!”라고 말이죠. 똑같이 짜증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나에게 상처를 줄 텐데, 나만 닻을 내리고 참으라는 거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그럴 때 시인은 마지막 연으로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시인은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상처받고 또 상처 줄 수 밖에 없는 삶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습니다.

겨울은 오게 되어있는데, 춥다고 아무리 불평해봤자 그만큼 시간이 빨리 흐르지도 않아요. 더 춥게 느껴질 뿐이죠.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도 ‘겨울’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텐데요, 시인은 우리의 삶에 있을 그 아픔과 상처의 시간들을 덤덤하게 위로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시간은 흐르게 되어 있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파도에 휩쓸려 더 긴 시간을 돌아 올 것인가, 닻을 내리고 내 방향을 지키며 그 시간을 버틸 것인가. 선택해야 하겠죠.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나요? 여러분 배의 닻을 내리고 그 시간들을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이제 곧 봄의 시간이 여러분 앞에 다가올 겁니다.

오늘 이 시와 함께 들려드릴 노래로, 홍이삭의 ‘봄아’라는 곡 가져왔습니다. 이 곡은 홍이삭이 제 24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던 곡인데요, 따뜻한 목소리와 가사가 봄기운을 느끼게 해 주는 곡입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과 잘 어울리는 것 같죠? 여러분, 조금만 더 힘 내시기 바랍니다! 꽃 필 차례가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그대 앞에 봄이 있습니다.

 

홍이삭 <봄아>https://youtu.be/_v7AKeXZqrc

 


필자 마리횬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