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시간, 사랑 [시가 필요한 시간]
두 번째 시간, 사랑
마리횬
안녕하세요, 시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오늘 두 번째 시간으로 함께 이야기 해 볼 주제는 ‘사랑’입니다. 음, ‘사랑’하면 여러분은 가장 먼저 어떤 사랑이 떠오르시나요?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텐데, 오늘 이야기 할 사랑은 어떤 수평적이고 균형 잡힌 대등한 사랑이라기보다는, 한쪽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치 남녀 간의 짝사랑과 같이 말이죠.
‘짝사랑’… 짝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뭔가 어릴 때의 ‘첫사랑’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가장 처음으로 하는 첫사랑은 아마도 짝사랑일 테고, 혼자 가슴앓이 하면서 좋아하다가 어느 새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그런 ‘짝사랑’이나 ‘첫사랑’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녀간의 짝사랑도 짝사랑이지만, 부모님들의 자식사랑도 짝사랑과 같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만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해주고 이해해주는 존재는 없는데, 그런 부모님의 사랑을 때로는 너무 당연하게만 받아들이는 게 또 자녀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녀간의 짝사랑의 시로도 읽히고 또 부모님의 자식을 향한 마음으로도 읽을 수 있는 시가 있어서 가져와 보았습니다. 바로 김인육(1963~)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인데요, 2016년 7월에 <시가 필요한 시간> 방송에서 소개해드린 후에 드라마 <도깨비(2017)>에도 삽입이 되면서 유명해진 시이기도 합니다. 시의 내용을 들어보시면 왜 제목이 ‘사랑의 물리학’인지 알게 되실 거예요. 그럼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 듣고 오겠습니다.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 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네,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 듣고 왔습니다. 왜 제목이 사랑의 물리학인지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과학책에서 봤을 법한 ‘질량’이라던지, ‘부피’, ‘비례’ 같은 전혀 시와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시어가 나오니까,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런 조금은 딱딱하지만 나름 익숙한 용어들을 가지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묘사를 하고 있어서 뭔가 더 잘 와 닿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제비꽃 같이 작은 크기더라도, 꽃잎같이 가벼운 것이더라도 사랑이라는 대상 앞에서는 그것의 흡입력이 지구보다도 더 크다는 이 새로운 법칙. 물리학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법칙이죠. 그래서 그냥 물리학이 아니라 ‘사랑의’ 물리학이라고 제목을 붙였나 봅니다.
그런데 예전에 제가 이 시와 함께 어떤 사진 한 장을 같이 본 적이 있어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아 어쩌면 이 시가 단순히 남녀의 첫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겠구나’ 하는걸 느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제 막 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이불을 덮고 있는 사진이었는데요, 아빠의 큰 손이 살포시 아기를 감싸고 있던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 밑에 이 김인육 시인의 시가 적혀있었는데요, 이 시에서 말하는 제비꽃 같이 조그마하지만 지구보다 더 큰 힘으로 나를 끌어당긴다는 이 존재는, 어쩌면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감정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라는 작은 존재는 부모님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그런 특별한 사랑의 대상일 테니까요. 김인육 시인의 시를 이렇게 읽으니까 또 다른 감동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강허달림이라는 가수가 직접 작사작곡하고 부른 <사랑이란>이라는 곡 가져왔습니다. 목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인 가수인데요, 이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사랑이란, 다 주고도 남을 사람, 사랑이란, 다시 살아야 할 이유”…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도 아깝지 않을 사랑, 내가 다시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사랑이라는 노랫말이 김인육 시인의 시와도 잘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오늘 ‘사랑’이라는 주제로 들려드릴 두 번째 시는 한용운(1879~1944) 시인의 시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사랑하는 까닭… 사랑하는 데에 이유가 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보통 ‘이상형’이라고 해서,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해놓는 어떤 조건들이 있죠. 가령, 키는 어떻고, 스타일은 어떻고, 성격은 어떻고 등등. 그런 의미에서는 누굴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 편으로는 누군가가 정말 좋으면, 그 사람 자체 말고 어떤 또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요즘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이 빠르고 쉽게 변해버리는 세대에서는 누구를 사랑할 때, ‘내가 저 사람을 왜 좋아하는지’, ‘왜 사랑하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감정대로만 움직이는 경우들도 있는 것 같아요.
한용운의 시를 들어보면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는 것에 대한 세 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이유,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이유. 이 시는 부모님께 읽어드려도 정말 좋고, 아내나 남편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로가 고백하기에도 너무나 좋은 시입니다. 한용운의 시 ‘사랑하는 까닭’ 듣고 오겠습니다.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 들어보았습니다. 너무 멋진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한다’는 말에서 홍안(紅顔)이란, ‘붉은 얼굴’ 즉 ‘젊고, 잘생기고 늠름한 모습’을 말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의 홍안만을 사랑한다는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은 나의 잘 갖춰진 멋진 모습만을 사랑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 시에서의 ‘당신’은 ‘나’의 젊고 늠름한 모습뿐만 아니라 늙고 초라한 백발까지도 사랑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곧 나의 밝은 모습만을 좋아하지만, ‘당신’은 ‘나’의 눈물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당신’의 사랑이 이 시의 화자인 ‘나’에게 얼마나 크고 깊은 사랑으로 다가왔을지, 이 시의 어조를 통해서 느낄 수 있죠.
여러분은 이 시를 읽으면서 마음 속에 누구를 떠올렸을까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역시 가족, 부모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이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사랑일겁니다. 나의 건강뿐만 아니라 나의 ‘죽음’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이 시의 마지막의 구절은, 어떤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까지 보여주는데요, 이 정도로 깊이 나를 사랑해 줄 존재.. 여러분 마음 속에는 누가 떠올랐을지 궁금해지네요.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양희은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는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계절이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내 마음도 바뀔까 두렵’지만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그대’가 있어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 속에서의 ‘그대’는 한용운의 시의 ‘당신’과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의 삶에 가장 아름다운 말, ‘그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그대들, 부모님,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사랑을 담아 들려주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마음 속에 떠오른 그 누군가에게 이 시와 노래를 나눠보시면 어떨까요? 그럼, 저는 2주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필자 마리횬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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