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시행과 우리 현실에 대한 릴레이 기고-③ 개정된 강사법의 시행령 확정에 앞서, 교육부의 단호한 의지를 촉구한다 [침몰하는 대학]

강사법 시행과 우리 현실에 대한 릴레이 기고-③

 

※ 이 글은 필자의 2018년 가을 학단협 연합 심포지엄 발표문의 일부입니다. 필자의 동의로 게재함을 밝힙니다.

 

개정된 강사법의 시행령 확정에 앞서, 교육부의 단호한 의지를 촉구한다

 

유현상(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협력위원장)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내부의 시선 교원으로서의 지위 획득과 시간강사로서의 처우 개선 사이에서

 

여름 방학부터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딸아이가 건강보험에서 떨어져 나가 직장 건강보험 가입대상이 되었다. 1년 일하면 퇴직금도 준다고 한다. 기가 막힌다. 이른바 4대 보험 가입자가 된 것이다. 지난 추석에는 의기양양하게 선물 세트도 받아왔다. 20년 이상 시간 강사 경력 동안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는 처우를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몰랐다. 어느 시간강사가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에 대한 처우보다 대학의 시간강사 처지가 더 열악하다고 강변한 현실을 딸과의 비교를 통해서 실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대학의 시간강사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후 몇몇 분들의 헌신적이고 끈기 있는 투쟁 덕분에 국회에서 시간강사법 제정에 이르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획득은 흔들릴 수 없는 전략적 목표이다. 그렇기에 그간의 성과가 매우 소중하다. 일각의 주장대로 부족한 점은 추후 개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보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강사법은 몇 년째 유예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이번 년도에는 실시가 확정되어 내년부터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듯도 하다.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그 어떤 주장이 옳고 그른지를 일일이 살펴 따질 생각은 없다. 전략적 목표가 같다면 전술적인 방법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자가 경험한 부당함의 내용에 따라 시급한 현안에 대한 방점도 다른 곳에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첨언하고 싶은 것은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을 가벼이 여겨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목표 수립에만 매달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가에 대해서 숙고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노무현 정권 초반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청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당시 필자는 입법적 조치가 필요한 목표는 장기적으로 추진하더라도 강사료 현실화라고 하는 문제부터 압박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시 그러한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취급되었다. 교원지위만 확보되면 그에 따르는 처우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논지에 강사료 현실화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비하면 강사료가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20년 가까이 차이 나는 세월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나마 국공립대의 경우에만 강사료가 대폭 올랐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강사료는 한 번 정해지면 최소 5,6년은 동결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이슈가 되었던 반값 등록금 문제는 강사료 인상을 방해하는 대교협의 또 다른 명분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필자가 십 수 년 전의 일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그 때 필자가 했던 주장이 옳지 않았느냐 하는 점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시간강사법이 제정되고 유예를 반복한 마당에 지금이라도 강사 처우 개선에 대한 문제도 본격적으로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 주변의 후배들 중에는 강사료 소득만으로는 연간 소득 2,000만 원 이하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비단 철학 전공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확인해 봐야 정확한 추계를 할 수 있겠지만 시간강사들의 수입을 연간 500만 원 정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림잡아 3,500억 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전국의 강사 수를 대략 7만 명으로 고려한 수치이다. 이를 정부와 전국의 400여개 대학이 공동으로 부담한다고 생각하면 그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학문 후속세대 관련 지원 예산 등을 통합 관리하고 정부의 고용 안전 자금 예산과 유사한 방식의 지원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일자리 안정을 위한 정부 예산이 민간 기업에도 지원이 되는데 공공적 성격이 강한 대학의 일자리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인지 그 원칙에 대한 문제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영업자도 지원하고, 유치원도 지원하고, 중소기업에도 지원하는 데 시간강사는 이등 국민이라 지원하지 않는 것인가?

사실 앞서 언급한 공청회에 참석한 당시 교육부 관계자의 언급은 이러한 방식의 문제 해결 가능성을 비추기도 했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교육부에서는 국립대학 기준 시간당 강사료 100,000원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사립대의 경우도 강사료를 현실화하는 방식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법률 제정이 필요한 요구에 대해서는 속도를 조절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보장에 대한 요구 역시 그 때도 느긋한 사안은 아니었기에 교육부 당국자의 발언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공청회 자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서 관료의 발언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유리한 모든 것은 일단 챙기고 봐야 전술적 목표도 전략적 목표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강사료 올려주었다고 해서 교원 지위 보장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간 시간강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대학들은 ‘대학교육협의회’를 중심으로 담합에 가까운 대응을 보여 왔다. 비정년트랙이라는 제도를 만드는가 하면, 겸임교수, 연구교수, 강의전담교수, 초빙교수 등의 여러 가지 변형된 형태의 비정년 강의자를 양성해 왔다. 여기에는 어김없이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사장의 논리가 좋다면 시장의 논리 안에서도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강사료 현실화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너무 추상적이다. 일반적인 노동 시장에서 비정규직이 요구하는 기준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 상품 이용의 측면에서 단기 임대 재화는 시간당 이용료가 더 비싸게 책정된다. 카메라 한 대를 몇 년간 렌트해서 이용할 바에는 아예 구매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 상품 역시 단기 사용 노동에 대해서는 시간당 보수를 더 책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장의 원리에 맞다.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기준은 불합리하다. 오히려 비정규직 우대임금이라고 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강사료 현실화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현재 전임교수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에서 강의에 대한 수고에 해당하는 금액만 따져 봐도 현재의 강사료보다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강사료의 현실화는 무엇보다 대학의 강사들도 생활인이고 자식을 교육시켜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실존을 인정하면 당연하게 성취해야 할 목표인 것이다. 자신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자기 자식의 대학 진학에 앞서서는 등록금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처지의 강사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뿐만 아니다. 강사들은 금융 이용에서도 많은 제한을 받는다. 하기야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봐야 갚을 처지도 못될 수도 있긴 하다. 대학의 강사는 더 이상 전임교원으로 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 아니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직업 활동을 강사로서 마치게 된다. 그것도 아무런 노후대책도 없이… 어쩌면 학위기는 운전면허증보다도 자부심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아닐까.

2018년 현재 강사료는 국립대의 경우도 10만원이 못되고, 사립대의 경우는 더더욱 빈약하다. 강사료 현실화 없는 교원지위 보장은 자칫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대학들은 강사료 인상 없이 방학 중에도 급여를 지급한다는 명목 하에 8개월분의 강사료를 12로 나누어 지급하는 술책을 실시하거나 획책 중이다. 국가는 대학의 강사들을 이등 국민으로 생각하고 대학은 강사들을 원숭이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대학이 강사를 고용하는 경제적 부담이 클수록 안정적인 교원으로서의 전환을 더욱 재촉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말고 그들

 

개정된 고등 교육법, 이른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많은 대학들은 강사 수를 줄이기 위한 각종 편법을 강구하고 있다. 강사법 시행에 따른 대학의 재정 부담 가중을 부풀리면서 대규모 강의를 늘리고, 전임교수들의 강의 시수를 늘이고, 졸업 이수 학점을 줄이는 방식 등으로 강사 수를 줄이려고 한다는 사실은 대학 스스로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한 대학의 그러한 술책에 동조하고 동의하는 대학 구성원들 역시 대학의 본령은 망각하고 자신들의 직장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대학이 그러한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자 한다면 먼저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우리들의 돈벌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고백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재학 중인 대학원생들에게 하루 빨리 학업을 중단하고 다른 길을 알아보라고 권고해야만 그나마 양심적이라는 평가를 들을만할 것이다.

대학의 졸렬한 대응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강사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대학들에 대해서 교육부는 단호한 방침과 의지를 가지고 불이익을 주어야 할 것이다. 대학에 지원되는 재정의 불이익을 주고 교육부가 주관하거나 한국연구재단을 통해서 지원하는 프로젝트 선정 과정에서도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방침을 마련하면 된다. 그로인한 불이익의 크기는 강사법의 취지를 무력화해서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크게 설계하면 대학은 강사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이 문제에 대해 교육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면 교육부는 학문 생태계 파괴의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강사법을 무력화하는 시도는 학문 후속세대의 단절을 야기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할 것이다. 더구나 학문 후속세대 문제는 비단 시간 강사들만의 문제일 수 없다. 앞으로는 현재 학위 과정에 있거나 박사 수료 후 현직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후학들의 문제는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는 없다. 강사법이 실시 적용되면 교원 지위를 획득하게 될 강사들의 경우는 1년 단위로 계약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3년간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이후의 후학들이 그나마 강사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해질 것이다. 강사라는 신분으로 버틸 수 있던 연구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들의 미래는 더욱 비관적이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과거 전임 교수들이 강사 문제에 무관심했듯이 교원이 된 강사들이 무관심해도 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으면 한다. 힘은 없다. 전임 교수들도 그랬다. 하지만 강사 문제 해결을 수십 년 동안 방해한 사람들은 전임 교수에서 총장이 되고, 이사장이 되고, 교육부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이다. 힘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힘이 있어도 못한다. 진정한 학문 후속 세대는 우리가 아니다. 현재의 강사들은 학문 후속세대가 아니라 대개는 중견 연구자들이다. 이 글에서도 학문 후속세대 하면 시간 강사들을 먼저 떠올리는 방식으로 다루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진정한 의미의 학문후속세대들은 그들이 겪어야 할 고통의 첫 맛도 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니고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