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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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下)

 

이지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프로이드의 오해와 진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권력 구조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와 착취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진 억압이자 모든 억압의 근본 구조이다. 따라서 노동, 인종, 동성애자 등의 소수자 억압의 문제는 먼저 여성 억압의 문제가 해결될 때에만 참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파이어스톤은 그 장구한 시간 동안 여성이 남성에 지배를 받아온 장소인 ‘가족’을 먼저 탐색한다. 그는 치명적 오류에도 불하고 프로이드가 이전까지 누구도 보지 못했던 진실을 파악한 사상가임에는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프로이드는 마침내 성sex 즉 섹슈얼리티가 인간 삶의 핵심적 문제임을 파악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드가 아들과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쟁탈전을 다룬 ‘가족 극장’을 문명화의 본질 동력으로 보고 심리학의 측면에서 이를 다룬 것은 완전하게 헛다리짚은 것이다. 이는 문명의 본질 동력도 아니며 원본능의 심층 심리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권력’의 문제다. 가부장적 가족 및 사회 안에서 작동하며 행사되는 ‘권력’의 사회 맥락 문제다.프로이드는 이것을 보지 못했다.

아들은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경쟁하다 힘센 아버지가 사랑의 도구인 페니스를 거세하리라는 거세 공포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에로스적 사랑을 스스로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 가족 안에서 아버지는 집안의 권력자이며 모두를 지배한다. 그는 가족들을 부양하는 대신 성을 포함하는 여성의 온갖 서비스, 자식들의 존경과 복종을 당연한 대가로 취한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을수록 더 무력해지며 남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은 더욱 심화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지배당하고 자주 학대당하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애착을 거두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어머니의 감옥 같은 닫힌 세계를 벗어나 드넓고 자유로운 아버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를 외면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애처롭게 생각하지만 그녀를 벗어나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사람, 아버지의 분신이 되어야만 한다. 어머니 또한 아들을 딸보다 더 사랑한다. 아들에게 끌리는 에로스적 원본능 때문이 아니라 가족 밖 넓은 세계로의 진출을 애초에 사회 구조적으로 차단당한 딸은 자신의 답답한 운명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기 때문이다. 딸에겐 별다른 희망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들은 마침내 자유와 권력을 얻을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깊은 한숨과 오랜 고통에 대한 보상이자 대리 만족의 대상이다. 이것이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진실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족외혼이 성립됨에 따라 강화된다. 종족의 여인이 아니라 다른 씨족의 여성을 사랑할 것. 여성은 교환되고 이성애는 공고화된다. 동성애가 병적인 것으로 진단받는 것은 프로이드의 진단처럼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족외혼의 이성애만을 정상으로 수용하고 강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부장적 가족은 여성 억압과 재생산의 핵심 도구이자 아동 및 성소수자 억압의 근원이다.

 

  • 아동 억압

 

가부장제 가족은 가족 밖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지배와 차별의 근원이다. 사회는 이 가족 모델의 확장판이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 가족 안에서 억압 받는 것은 여성뿐만이 아니다. 아동 또한 억압당한다. 외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프로이드의 치료법은 그 자신의 정신치료 접근법과 모순된다. 억압된 기억, 이드의 해방을 통한 정신 치료를 주장해온 것과는 달리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억압된 본능, 상처를 인지하고 그 억압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아버지와의 심리적 화해, 사회화가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어스톤은 이와 같은 프로이드의 자기 모순을 지적하면서 억압에 기인한 상처는 그것을 수용함으로써 치유될 수 없으며 그 억압에서 벗어날 때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함을 지적한다.

파이어스톤에 따르면 아동 억압은 중세말까지의 대가족 제도 안에서는 오히려 찾아보기 힘듬을 논증한다. 중세까지 가족은 다양한 세대 구성은 물론이거니와 하인, 하녀 등 무수한 사용자들이 함께 동일 공간에서 생활하는 군체였다. 가부장은 이들 모두를 지배하고 이들 위에 군림했다. 이 군집 생활에서 아이는 부모와 현재와 같은 유대 관계를 갖지 않았다. 자기 자식을 직접 키우는 부모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음은 명백하다. 아동은 유모나 다른 여자들의 손에 의해 자라났다. 아동은 성인의 축소판으로 덩치 작은 성인이었다. 그들은 현대 아동학이 주장하는 연령별 학습을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들의 타고난 재능에 따라 동일한 성을 가진 어른들 속에서 배우고 스스로의 재능을 드러냈다. 신동이라 평가받는 모차르트 같은 이는 이 시대엔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아동들은 나이에 맞는 장난감을 지급받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놀이감을 만들어야 했다. 이것은 아동들의 창조성과 창의성을 극대화시켰다. 현대 학교는 사실 감옥과 다를 바가 없다. 아동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지능과 재능에 따라 자신의 고유 리듬에 맞춰 성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심신은 철저하게 구속당하고 성적 욕망은 억제되고 죄악시 당한다. 근현대의 아동의 발명, 아동학의 발전, 학교 교육은 아동을 아이답게 보호한다고 말하면서 사실 그들을 억압하고 병들고 획일적인 노예 정신의 소유자들로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부부 가족의 존속 이유가 아이의 생산과 양육에 있는 이상 이 아동기는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오히려 계속해서 연장된다. 여성 착취와 억압 위에 세워지는 가부장적 가족에 기초하여 이 사회가 유지존속되는 한 아동에 대한 각종 억압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불구의 사랑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이 이상화되는 이 시대에도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파이어스톤은 진단한다. 사랑은 사실 언제나 불구의 모습으로만 존재해왔다. 가부장적 아버지의 모습을 수용하며 그의 길을 내면화해온 남성에게 마침내 중성화되고 그렇게 이상화된 어머니를 제외하고 다른 여성들은 하찮고 별 것 없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나 어머니, 여성의 사랑 안에서 자라날 수밖에 없었던 남자들은 동시에 여성의 사랑, 정서적 보살핌을 갈구한다. 이 비틀어짐이 왜곡된 사랑으로 남자들을 이끈다. 사랑은 평등한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멸시와 사랑은 함께 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성들을 이상화한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다른 한심한 살덩어리들에 불과한 여자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인위적 가짜 이상화는 깨어진다. 그는 결국 그녀를 멸시하게 되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녀를 떠난다. 사랑은 여성들에게도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교육과 직업 세계에서 배제되며 그 어떤 사회적 재화도 자신의 힘으로 얻는 것을 원천 차단당한 여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남자의 사랑을 얻고 그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것은 사랑의 문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허용된 작금의 상황 속에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극적으로 개선된 것이 없기에 여전히 여성은 사랑 외의 이유로 남성에게 매달린다.

 

  • 파이어스톤의 혁명적 결론

 

종속 번식을 할 수 있다는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은 남성의 여성 지배와 착취를 낳았다. 그리고 가부장적 가족 제도와 함께 도덕적인 것으로 이데올로기화되며 고착 강화되었다. 가부장적 가족은 결국 모든 억압과 착취의 뿌리다. 여성은 생식과 육아 외에 어떤 재능도 꽃피울 수 없었고 가족 노예와 같은 위치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당해왔다. 여성은 남성에게 정서의 안정과 성을 제공할 뿐더러 남성이 사회, 문화, 정치 등에서 활약하며 주요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희생양이 되어왔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출산 능력이라는 자연의 질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고 나누는 남성 중심 문화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자연 과학을 필두로 하는 문화는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재정립하는 역할을 해왔다. 가부장적 질서는 여성과 아동을 직접적으로 억압하고 여타 다른 종류의 억압의 토대이다. 파이어스톤은 따라서 이제 여성을 해방시킴으로써 인간 사회의 각종 억압과 차별을 없애는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파이어스톤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여성을 생식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양육의 역할을 남성, 즉 사회 전체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인공 생식과 같은 자연 과학적 테크놀로지의 사용도 적극 고려되어야 하며 아동양육은 부부 양육이 아닌 사회의 공동 양육 형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2) 여성과 아동에게 경제적 독립에 기초한 정치적 자율성을 부여할 것. 파이어스톤은 사이버네틱 코뮤니즘을 말한다. 여성의 주변부적 노동, 직업에서의 해방을 가능하게 하려면 출산에서의 자유와 함께 인간 노동의 기계 대체가 필요하다. 여성의 돌봄 노동, 가사형 노동에 대해 사회가 정당한 지불을 해야만 하지만 그것은 이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현실화되기 힘든 일일뿐더러 노동 분업의 남녀 성별 구분이라 최악의 문제를 사라지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노동 계급에 대한 지배와 착취 또한 사라질 것이다. 3) 여성과 아이들을 사회에 전면적으로 통합시킬 것. 궁금적으로 아동 감옥의 다른 이름인 학교는 사라져야 한다. 자동화된 사이버네틱스의 사회에서 아동들은 스스로 필요한 것을 택하고 학습할 것이다. 4) 모든 여성과 아이들에게 성적 자유를 줄 것. 여성과 아이, 그들의 성은 남성의 사적 소유물로 취급되고 그들에 의해 통제당해 왔다. 이제 성은 자기 선택의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 모든 요구가 기존의 가족의 완전한 해체를 가정하며 이를 통해 모든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 파이어스톤의 현재성

 

파이어스톤의 논의는 지금 보아도 매우 급진적이다. 특히 가족의 해체, 여성의 출산에서의 해방 등의 주장은 많은 이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것이다. 가족은 여전히 신성화되어 있고 출산은 일면 여성의 유일한 역량으로 칭송받는다. 파이어스톤의 책은 1970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여성의 사회 진출, 정치 활동,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것 등을 방해하는 근본 원인이 바로 출산과 육아임은 부정되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사회적 지위가 많이 향상된 지금에 와서도 결혼과 함께 가족을 만드는 순간 성차별을 겪지 않았다고 생각해왔던 여성들마저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뼈아픈 체험을 하기 시작한다.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의 유습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혼은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아내, 어머니, 며느리 등의 역할이 강요되는 시작점이다. 출산은 여성에게 사회에서 물러나 가족이라는 틀거리 안으로 완전히 철수할 것을 고민하게 만들고 실제로 많은 여성이 그 길을 택한다. ‘경력 단절녀’라는 말이 상용어가 된 것은 이를 반영한다. 여성의 남성에 대한 경제 의존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된다.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할수록 결혼 거부를 가부장적 가족 거부 및 자유와 등치시키는 경향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파이어스톤의 분석이, 설사 그것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라도, 큰 진실을 폭로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1970년, 파이어스톤이 이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인공 생식은 하나의 공상에 불과했고 기계에 의한 인간의 노동 해방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인공 수정은 이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되었고 인공 자궁에 대한 연구 또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인공 지능발달에 따른 4차 산업 혁명은 인간의 노동에서의 해방을 과학 기술 발전이 이룩할 하나의 가능 세계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시점에서 오히려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정확하게 직관한 예언자로 파이어스톤을 바라봐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의 미래가 어디로 갈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파이어스톤의 여성 예속의 원인 분석은 근본적 지점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 출산에서 생물학적으로 자유롭지 않더라도 출산 여부의 결정권은 여성이 전적으로 주도해야 하며, 육아와 가사가 여성의 몫만은 아니어야 한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 제대로 된 직업을 얻는 것이 더 확산 정착되어야만 한다. 그럴 때 여성의 남성 예속과 남성의 여성 비하, 여성의 남성 의존성 또한 더욱 가속화되며 잦아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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