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꽃이 지는 아침에는 울고 싶을까? [퍼농유]
우쑵니다.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이 무더위를 시원하게 해드릴 소식이라도 전해드려야 하건만 지난번에 이어 다시 홍보질입니다. 넵넵 ~~~ 더워 죽겠는데 더욱 짜증나게 하시겠지만 이 더위에 에어컨도 없는 방구석 컴퓨터 앞에서 이러고 있는 저는 오죽 갑갑하겠습니까. 정말 울고 싶어지는 한 여름 밤입니다. 막걸리라도 한통 마시고 ……. 쿨럭. 혜량하여 주십시요.
왜 꽃이 지는 아침에는 울고 싶을까? – 맹호연(孟浩然) 춘효(春曉)
1
봄잠에 새벽이 온 걸 깨닫지 못하니(春眠不覺曉)
곳곳에 새 우는 소리다(處處聞啼鳥)
밤에 온 비바람 소리에(夜來風雨聲)
꽃은 또 얼마나 떨어졌을까(花落知多少)
맹호연(孟浩然)의 ‘춘효(春曉)’다. ‘봄날 새벽’은 기이하다. 늦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봄날 새벽의 청신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늦잠에서 깨어 듣는 요란한 새 소리 때문에 봄날 새벽의 서글픔이 더욱 깊다. 어쩌라, 서글퍼한다고 비바람이 멈추는 것도 아니다.
새벽이 온지 왜 몰랐을까? 어쩌면 새벽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잠결에 비바람 소리는 또 어떻게 들었던 것일까? 그 모진 비바람에 꽃이 지고 있다. 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일까? 천만에 이것은 전원시가 아니다.
물론 맹호연은 전원시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가 묘사하는 전원은 한적하거나 밝지 못하다. 오히려 세상을 한탄하거나 울적하여 분위기가 밝지 않다. 그래서 청신한 새벽에 느끼는 울적함은 애처로움의 미학이다.
육유(陸游)라는 시인은 촉(蜀) 땅으로 들어가던 중 스스로 자문하였다.
이 몸은 시인이나 되라는 걸까?(此身合是詩人未?)
가랑비 속 나귀 타고 검문을 지났으니(細雨騎驢過劍門)
육유의 이 표현은 자신이 일개 시인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마음이 담겨 있다. 주목해야할 것은 ‘나귀를 탄다’는 표현이다. 나귀를 타는 것이 왜 시인을 상징하게 되었을까? 맹호연 때문이다. “못 보았는가,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시 읊는 것을. 눈썹은 찌푸리고 어깨는 불쑥 솟은 산 같은 모습을.”(又不見, 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 소동파가 맹호연을 묘사한 이 말 때문에 눈 속에서 나귀를 탄 시인의 이미지는 고착되었다.
당연히 그림의 소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맹호연의 초상은 아니, 시인의 초상은 나귀를 타고 눈 속을 걷는 것으로 묘사된다. 나귀를 타는 모습을 그린 기려도(騎驢圖)는 너무 많아서 나열할 수 없을 지경이다. 조선조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의 기려도와 함덕윤 기려도가 인상적이다.
눈을 밟고 매화를 찾는다는 ‘답설심매’(踏雪尋梅)나 파교에서 매화를 찾는다는 ‘파교심매’(灞橋尋梅)라는 이미지도 모두 맹호연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답설심매’와 ‘파교심매’도 마찬가지로 나열할 수 없을 지경이다. 심사정의 ‘파교심매도’가 유명하다.
맹호연의 ‘춘효’와 관련하여 내가 주목하는 그림이 있다.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의 ‘백악춘효’(白岳春曉)라는 그림이다. 1915년에 백악과 경복궁의 실경을 그린 작품이다. 여름본과 가을본 두 점이 전해진다. 여름과 가을 풍경을 그린 것인데 제목이 왜 봄날 새벽을 뜻하는 ‘백악춘효’일까?
심전은 ‘백악춘효’에서 백악산과 경복궁을 실제에 가깝게 묘사했다. 그러나 이 그림은 1915년 당시 경복궁 모습이 아니라고 한다. 이 그림을 그릴 무렵 경복궁은 일제의 탄압 아래 파괴되고 있었던 것이다. 파괴되는 경복궁 모습은 몰락하는 조선 왕조의 모습과도 같았다.
쓰러져 가는 조선왕조를 보며 심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심전 안중식은 나라가 망해가는 상황에서 이왕직의 요청에 따라 심혈을 기울여 ‘백악춘효’를 완성한다. 조선왕조의 봄날이 오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그렸던 것은 아닐까? 심전은 분명 맹호연의 이 시를 의식했을 것이다. 어젯밤 모진 비바람에 또 얼마나 많은 꽃들이 떨어졌을까? 봄날 새벽은 언제 오려나.
2
꽃이 지기로 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근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의 ‘낙화’이다. 맹호연의 ‘춘효’를 읽을 때면 항상 함께 떠오르는 시다. 맹호연은 모진 비바람에 지고만 꽃잎을 근심하지만, 조지훈은 꽃이 졌다고 해서 비바람을 탓할 순 없다고 한다. 꽃은 질 수밖에 없는 때가 오면 지게 마련이다. 어쩌란 말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일한 가신이었던 박지원은 2003년 교도소 가는 길에서 시를 읊었다.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 나는 의아해했다. 아니, 정치인이 교도소에 가면서 이런 시 구절을 읊다니. 낭만적이라서 놀랐던 것은 아니다. 그가 내뱉은 시 구절에는 묘한 상징적 대비가 있었다.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비바람은 누구겠는가? 박해하는 사람들이다. 꽃은 누군가? 박해를 받는 자신이 아닐까? 자신은 부당한 비바람에 의해서 비록 박해를 받지만 아름다운 꽃이기에 탓하지는 않겠다는 대범한 자신의 마음을 이 시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맹호연의 시를 봄날 한가함과 청신함을 노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봄을 시샘하는 비바람과 함께 덧없이 지고 만 꽃의 허무함을 담담히 바라보는 모습을 읽어낸다. 탐미적이면서 허무한 서글픔이 배어 있는 달관적인 태도다.
그러나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꽃과 바람을 생각한다면 맹호연의 시는 그렇게 한가하지만은 않다. 바람은 부당한 소인배들의 세력이 벌이는 횡포이고 꽃은 그 횡포에 억울하게 당한 군자들이 아닌가? 맹호연은 꽃이 또 얼마나 떨어졌을까라고 근심하고 있다. 정의는 또 얼마나 부당한 세력들에게 박해를 받았던가.
<주역>에는 바로 소인들의 세력이 군자를 박해하는 상황을 상징하는 괘가 있다. 스물세 번째 괘인 박(剝䷖)괘이다. 산지박(山地剝)으로 읽는다. 괘의 모습이 산을 상징하는 간(艮☶)괘가 위에 있고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괘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다섯 개의 음(陰⚋)효와 하나의 양(陽⚊)효로 이루어졌다. 음이 아래에서부터 생겨나서 점차로 자라 극성한 형세로 발전하여 하나의 양을 몰아내고 있는 모습이다. 소멸이며 박멸이다. 빼앗긴다는 뜻이 있다. 모진 비바람에 꽃잎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마지막 하나만이 남아 있다.
이 마지막을 상징하는 효가 박괘의 가장 위에 있는 양효이다. 이 마지막 여섯 번째 효의 말은 이렇다.
큰 과실은 먹히지 않는 것이니, 군자는 수레를 얻고 소인은 그의 집을 없앤다.(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여기에 유명한 말이 나온다. 큰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인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이 ‘석과불식’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했다. 신영복은 석과(碩果)를 씨과실로 푼다. 그는 ‘석과불식’을 “씨과실을 먹지 않는다”고 풀면서 희망을 읽었다.
옛날 사람들은 과일을 딸 때 모두 다 따지 않았다. 몇 알은 반드시 남겨 새들의 먹이가 되게 했다. 까치밥이라 한다. 씨과실은 상징적으로 낙엽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만 서있는 초겨울의 감나무를 상상하면 좋다. 앙상한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빨간 감 한 개가 ‘희망’을 상징한다.
씨과실은 사라지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씨를 남긴다. 가장 크고 탐스런 씨과실은 단 하나 남았더라도 희망이다. 씨는 이듬해 봄에 새싹을 피우기 때문이다. 스물세 번째 박괘 다음 괘는 무슨 괘일까? 스물네 번째 괘는 복(復䷗)괘이다. 지뢰복(地雷復)이라고 읽는다.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위에 있고 우레를 상징하는 진(震☳)괘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땅 아래에서 우레와 같은 양(陽)의 기운이 올라온다. 복괘를 자세히 보면 제일 아래에서 양(陽)효 하나가 여러 음(陰)들의 세력을 뚫고 올라오고 있다. 생명의 소생을 상징하는 괘다. 박괘를 이어 복괘로 이어지는 과정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생명은 소멸되지 않는다. 반드시 씨를 남기고 소생한다. 다시 빛이 솟아오르는 광복(光復)이다.
심전 안중식이 1915년 ‘백악춘효’를 그렸을 때 조선의 광복을 희망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봄날의 새벽 광복은 1945년에 왔다. 하지만 물어야 할 것은 단지 희망만이 아니다. 희망을 꿈꾼다고 해서 반드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희망의 근거다. 희망은 단지 환상적인 허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괘의 ‘석과불식’은 먹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먹히지 않았을까?
3
맹호연은 지고만 꽃잎을 서글퍼했지만 조지훈은 비바람을 탓할 순 없다고 했다. 탓할 수 없다고 해서 체념하고 포기해야한다는 말일까? 박괘에 달린 괘의 말은 이렇다.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멈추는 것은 소멸되어 빼앗기는 모습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군자는 자라나고 줄어들고 가득차고 텅 비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그것이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順而止之, 觀象也. 君子尙消息盈虛. 天行也.)
불의한 세력의 비바람에 의해서 박해를 받는 고난의 시대에 그 비바람을 탓할 순 없다는 것은 자포자기적 체념은 아니다. 힘겨워하고 두려워하면서 혼자 괴로워하는 일도 아니다. 분노하고 한탄하고 저주하는 일도 아니다. 무모하게 저항하는 일도 아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자조하는 것도 아니다. 냉정을 되찾는 일이다.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멈추”는 일이다.
“소멸되어 빼앗기는 모습을 관찰했다.”는 말은 그래서 비바람의 박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원인과 결과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자라나고 줄어들고 가득차고 텅 비는 과정”을 파악하여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시세의 부득이함을 냉정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이렇게 냉정하게 현실을 이해하면서 희망을 품는 씨과실은 어떤 비바람이 올지라도 먹히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눈물 흘리지 마라, 화내지 마라. 이해하라.”고 했다. 비바람에 꽃이 졌다고 해서 징징거리고 있을 수는 없다. 낙엽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만 서있는 겨울날 나무들의 신세를 직시하는 일이다. 어쩌다 이 가혹한 겨울이 왔던 것일까? 어쩌다 단 하나의 감만이 남아 비바람을 견디고 있을까?
이렇게 되어버린 시세와 형세의 원인을 이해하는 일이다. 꽃잎이 졌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요, 비바람을 탓할 필요도 없다. 자초한 일이라고 자학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때가 되면 꽃은 지게 마련이지만 꽃이 질 수밖에 없는 형세의 원인을 냉정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먼저 이해하라. 이해한다는 말은 언더스탠드(understand)이다. 언더스탠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의 언더(under)에 스탠드(stand)해야 한다. 사람들의 언더는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죽을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에 선다면 서글퍼하기를 멈추고 냉정하게 이해해야한다. 언더에 스탠드하는 일은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언더에 스탠드할 일이다.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삶을 이해해야한다. 하지만 먼저 사람들에게 가기 전에 자신의 무의식 아래에 깔려있는 편견과 오만과 증오 등의 썩어빠진 엘리트 근성들을 먼저 이해해야하리라. 그것을 먼저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맹호연에게는 봄을 시샘하는 비바람과 함께 덧없이 지고 만 꽃의 허무함을 담담히 바라보는 모습이 담겨있다. 인생을 달관한 태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달관한다고 해서 봄은 오지 않는다. 어떻게 하든 이 모진 겨울을 넘기면 다시 봄이 오겠지라는 안이한 태도를 가지고도 봄은 오지 않는다.
희망은 기다림이다. 그러나 기다림은 넋 놓고 기다리는 무기력이 아니다. 희망은 냉정한 자기 이해와 현실 인식에서 솟아오르는 부득이함이다. 이 부득이함은 어찌할 수 없기에 할 수밖에 없는 힘과 의지로 충만하다. 이 힘과 의지 때문에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기다림은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씨앗을 땅에 일구는 일이다. 씨앗을 땅에 심기 위해서는 더렵혀진 땅을 새롭게 일구는 작업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꽃이 졌다고 해서 서글퍼하는 일도 사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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