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꽃이 지는 아침에는 울고 싶을까? [퍼농유]

우쑵니다.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이 무더위를 시원하게 해드릴 소식이라도 전해드려야 하건만 지난번에 이어 다시 홍보질입니다. 넵넵 ~~~ 더워 죽겠는데 더욱 짜증나게 하시겠지만 이 더위에 에어컨도 없는 방구석 컴퓨터 앞에서 이러고 있는 저는 오죽 갑갑하겠습니까. 정말 울고 싶어지는 한 여름 밤입니다. 막걸리라도 한통 마시고 ……. 쿨럭. 혜량하여 주십시요.

 

 

왜 꽃이 지는 아침에는 울고 싶을까? – 맹호연(孟浩然) 춘효(春曉)

 

1

봄잠에 새벽이 온 걸 깨닫지 못하니(春眠不覺曉)

곳곳에 새 우는 소리다(處處聞啼鳥)

밤에 온 비바람 소리에(夜來風雨聲)

꽃은 또 얼마나 떨어졌을까(花落知多少)

 

맹호연(孟浩然)의 ‘춘효(春曉)’다. ‘봄날 새벽’은 기이하다. 늦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봄날 새벽의 청신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늦잠에서 깨어 듣는 요란한 새 소리 때문에 봄날 새벽의 서글픔이 더욱 깊다. 어쩌라, 서글퍼한다고 비바람이 멈추는 것도 아니다.

새벽이 온지 왜 몰랐을까? 어쩌면 새벽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잠결에 비바람 소리는 또 어떻게 들었던 것일까? 그 모진 비바람에 꽃이 지고 있다. 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일까? 천만에 이것은 전원시가 아니다.

물론 맹호연은 전원시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가 묘사하는 전원은 한적하거나 밝지 못하다. 오히려 세상을 한탄하거나 울적하여 분위기가 밝지 않다. 그래서 청신한 새벽에 느끼는 울적함은 애처로움의 미학이다.

육유(陸游)라는 시인은 촉(蜀) 땅으로 들어가던 중 스스로 자문하였다.

 

이 몸은 시인이나 되라는 걸까?(此身合是詩人未?)

가랑비 속 나귀 타고 검문을 지났으니(細雨騎驢過劍門)

 

육유의 이 표현은 자신이 일개 시인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마음이 담겨 있다. 주목해야할 것은 ‘나귀를 탄다’는 표현이다. 나귀를 타는 것이 왜 시인을 상징하게 되었을까? 맹호연 때문이다. “못 보았는가,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시 읊는 것을. 눈썹은 찌푸리고 어깨는 불쑥 솟은 산 같은 모습을.”(又不見, 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 소동파가 맹호연을 묘사한 이 말 때문에 눈 속에서 나귀를 탄 시인의 이미지는 고착되었다.

기려도김명국

당연히 그림의 소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맹호연의 초상은 아니, 시인의 초상은 나귀를 타고 눈 속을 걷는 것으로 묘사된다. 나귀를 타는 모습을 그린 기려도(騎驢圖)는 너무 많아서 나열할 수 없을 지경이다. 조선조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의 기려도와 함덕윤 기려도가 인상적이다.

기려도함윤덕

눈을 밟고 매화를 찾는다는 ‘답설심매’(踏雪尋梅)나 파교에서 매화를 찾는다는 ‘파교심매’(灞橋尋梅)라는 이미지도 모두 맹호연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답설심매’와 ‘파교심매’도 마찬가지로 나열할 수 없을 지경이다. 심사정의 ‘파교심매도’가 유명하다.

파교심매심사정

맹호연의 ‘춘효’와 관련하여 내가 주목하는 그림이 있다.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의 ‘백악춘효’(白岳春曉)라는 그림이다. 1915년에 백악과 경복궁의 실경을 그린 작품이다. 여름본과 가을본 두 점이 전해진다. 여름과 가을 풍경을 그린 것인데 제목이 왜 봄날 새벽을 뜻하는 ‘백악춘효’일까?

백악춘효

심전은 ‘백악춘효’에서 백악산과 경복궁을 실제에 가깝게 묘사했다. 그러나 이 그림은 1915년 당시 경복궁 모습이 아니라고 한다. 이 그림을 그릴 무렵 경복궁은 일제의 탄압 아래 파괴되고 있었던 것이다. 파괴되는 경복궁 모습은 몰락하는 조선 왕조의 모습과도 같았다.

쓰러져 가는 조선왕조를 보며 심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심전 안중식은 나라가 망해가는 상황에서 이왕직의 요청에 따라 심혈을 기울여 ‘백악춘효’를 완성한다. 조선왕조의 봄날이 오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그렸던 것은 아닐까? 심전은 분명 맹호연의 이 시를 의식했을 것이다. 어젯밤 모진 비바람에 또 얼마나 많은 꽃들이 떨어졌을까? 봄날 새벽은 언제 오려나.

 

2

꽃이 지기로 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근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의 ‘낙화’이다. 맹호연의 ‘춘효’를 읽을 때면 항상 함께 떠오르는 시다. 맹호연은 모진 비바람에 지고만 꽃잎을 근심하지만, 조지훈은 꽃이 졌다고 해서 비바람을 탓할 순 없다고 한다. 꽃은 질 수밖에 없는 때가 오면 지게 마련이다. 어쩌란 말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일한 가신이었던 박지원은 2003년 교도소 가는 길에서 시를 읊었다.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 나는 의아해했다. 아니, 정치인이 교도소에 가면서 이런 시 구절을 읊다니. 낭만적이라서 놀랐던 것은 아니다. 그가 내뱉은 시 구절에는 묘한 상징적 대비가 있었다.

박지원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비바람은 누구겠는가? 박해하는 사람들이다. 꽃은 누군가? 박해를 받는 자신이 아닐까? 자신은 부당한 비바람에 의해서 비록 박해를 받지만 아름다운 꽃이기에 탓하지는 않겠다는 대범한 자신의 마음을 이 시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맹호연의 시를 봄날 한가함과 청신함을 노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봄을 시샘하는 비바람과 함께 덧없이 지고 만 꽃의 허무함을 담담히 바라보는 모습을 읽어낸다. 탐미적이면서 허무한 서글픔이 배어 있는 달관적인 태도다.

그러나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꽃과 바람을 생각한다면 맹호연의 시는 그렇게 한가하지만은 않다. 바람은 부당한 소인배들의 세력이 벌이는 횡포이고 꽃은 그 횡포에 억울하게 당한 군자들이 아닌가? 맹호연은 꽃이 또 얼마나 떨어졌을까라고 근심하고 있다. 정의는 또 얼마나 부당한 세력들에게 박해를 받았던가.

<주역>에는 바로 소인들의 세력이 군자를 박해하는 상황을 상징하는 괘가 있다. 스물세 번째 괘인 박(剝䷖)괘이다. 산지박(山地剝)으로 읽는다. 괘의 모습이 산을 상징하는 간(艮☶)괘가 위에 있고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괘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다섯 개의 음(陰⚋)효와 하나의 양(陽⚊)효로 이루어졌다. 음이 아래에서부터 생겨나서 점차로 자라 극성한 형세로 발전하여 하나의 양을 몰아내고 있는 모습이다. 소멸이며 박멸이다. 빼앗긴다는 뜻이 있다. 모진 비바람에 꽃잎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마지막 하나만이 남아 있다.

이 마지막을 상징하는 효가 박괘의 가장 위에 있는 양효이다. 이 마지막 여섯 번째 효의 말은 이렇다.

 

큰 과실은 먹히지 않는 것이니, 군자는 수레를 얻고 소인은 그의 집을 없앤다.(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여기에 유명한 말이 나온다. 큰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인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이 ‘석과불식’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했다. 신영복은 석과(碩果)를 씨과실로 푼다. 그는 ‘석과불식’을 “씨과실을 먹지 않는다”고 풀면서 희망을 읽었다.

석과불식1

옛날 사람들은 과일을 딸 때 모두 다 따지 않았다. 몇 알은 반드시 남겨 새들의 먹이가 되게 했다. 까치밥이라 한다. 씨과실은 상징적으로 낙엽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만 서있는 초겨울의 감나무를 상상하면 좋다. 앙상한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빨간 감 한 개가 ‘희망’을 상징한다.

씨과실은 사라지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씨를 남긴다. 가장 크고 탐스런 씨과실은 단 하나 남았더라도 희망이다. 씨는 이듬해 봄에 새싹을 피우기 때문이다. 스물세 번째 박괘 다음 괘는 무슨 괘일까? 스물네 번째 괘는 복(復䷗)괘이다. 지뢰복(地雷復)이라고 읽는다.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위에 있고 우레를 상징하는 진(震☳)괘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땅 아래에서 우레와 같은 양(陽)의 기운이 올라온다. 복괘를 자세히 보면 제일 아래에서 양(陽)효 하나가 여러 음(陰)들의 세력을 뚫고 올라오고 있다. 생명의 소생을 상징하는 괘다. 박괘를 이어 복괘로 이어지는 과정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생명은 소멸되지 않는다. 반드시 씨를 남기고 소생한다. 다시 빛이 솟아오르는 광복(光復)이다.

심전 안중식이 1915년 ‘백악춘효’를 그렸을 때 조선의 광복을 희망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봄날의 새벽 광복은 1945년에 왔다. 하지만 물어야 할 것은 단지 희망만이 아니다. 희망을 꿈꾼다고 해서 반드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희망의 근거다. 희망은 단지 환상적인 허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괘의 ‘석과불식’은 먹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먹히지 않았을까?

 

3

맹호연은 지고만 꽃잎을 서글퍼했지만 조지훈은 비바람을 탓할 순 없다고 했다. 탓할 수 없다고 해서 체념하고 포기해야한다는 말일까? 박괘에 달린 괘의 말은 이렇다.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멈추는 것은 소멸되어 빼앗기는 모습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군자는 자라나고 줄어들고 가득차고 텅 비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그것이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順而止之, 觀象也. 君子尙消息盈虛. 天行也.)

 

불의한 세력의 비바람에 의해서 박해를 받는 고난의 시대에 그 비바람을 탓할 순 없다는 것은 자포자기적 체념은 아니다. 힘겨워하고 두려워하면서 혼자 괴로워하는 일도 아니다. 분노하고 한탄하고 저주하는 일도 아니다. 무모하게 저항하는 일도 아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자조하는 것도 아니다. 냉정을 되찾는 일이다.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멈추”는 일이다.

“소멸되어 빼앗기는 모습을 관찰했다.”는 말은 그래서 비바람의 박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원인과 결과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자라나고 줄어들고 가득차고 텅 비는 과정”을 파악하여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시세의 부득이함을 냉정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이렇게 냉정하게 현실을 이해하면서 희망을 품는 씨과실은 어떤 비바람이 올지라도 먹히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눈물 흘리지 마라, 화내지 마라. 이해하라.”고 했다. 비바람에 꽃이 졌다고 해서 징징거리고 있을 수는 없다. 낙엽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만 서있는 겨울날 나무들의 신세를 직시하는 일이다. 어쩌다 이 가혹한 겨울이 왔던 것일까? 어쩌다 단 하나의 감만이 남아 비바람을 견디고 있을까?

Spinoza

이렇게 되어버린 시세와 형세의 원인을 이해하는 일이다. 꽃잎이 졌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요, 비바람을 탓할 필요도 없다. 자초한 일이라고 자학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때가 되면 꽃은 지게 마련이지만 꽃이 질 수밖에 없는 형세의 원인을 냉정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먼저 이해하라. 이해한다는 말은 언더스탠드(understand)이다. 언더스탠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의 언더(under)에 스탠드(stand)해야 한다. 사람들의 언더는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죽을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에 선다면 서글퍼하기를 멈추고 냉정하게 이해해야한다. 언더에 스탠드하는 일은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언더에 스탠드할 일이다.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삶을 이해해야한다. 하지만 먼저 사람들에게 가기 전에 자신의 무의식 아래에 깔려있는 편견과 오만과 증오 등의 썩어빠진 엘리트 근성들을 먼저 이해해야하리라. 그것을 먼저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맹호연에게는 봄을 시샘하는 비바람과 함께 덧없이 지고 만 꽃의 허무함을 담담히 바라보는 모습이 담겨있다. 인생을 달관한 태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달관한다고 해서 봄은 오지 않는다. 어떻게 하든 이 모진 겨울을 넘기면 다시 봄이 오겠지라는 안이한 태도를 가지고도 봄은 오지 않는다.

희망은 기다림이다. 그러나 기다림은 넋 놓고 기다리는 무기력이 아니다. 희망은 냉정한 자기 이해와 현실 인식에서 솟아오르는 부득이함이다. 이 부득이함은 어찌할 수 없기에 할 수밖에 없는 힘과 의지로 충만하다. 이 힘과 의지 때문에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기다림은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씨앗을 땅에 일구는 일이다. 씨앗을 땅에 심기 위해서는 더렵혀진 땅을 새롭게 일구는 작업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꽃이 졌다고 해서 서글퍼하는 일도 사치인지도 모른다.

왜 물기 머금은 꽃들은 금관성을 압도했을까? [퍼농유]

우쑵니다.

예전에  여기서 ‘고전은 숨쉰다.’라는 코너에 연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역>에 관한 글이었죠. 그때 시적 상상력으로 주역을 읽어보겠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한문에 대한 부족감을 절실히 느끼고 늦은 나이에 고전번역원을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장재한 선생님으로부터 ‘당시’를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를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담담하고 심심했고 어떤 것은 전혀 재미가 없었고 또 유명하다는 시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장재한 선생님께서는 그리 자세히 설명은 해주시지 않았지만 간단하게 툭툭 던지시는 말들이 있었죠. 그때 유종원의 강설을 읽으면서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주역>의 복괘가 생각난다는 간단한 코멘트를 하셨습니다. 졸린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주역의 복괘라니. 그때부터 당시를 읽을 때면 고전들이 얽혀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생각보다 당시에는 고전들의 흔적이 많았습니다. 얘기가 길어지는군요.

요점은 이겁니다. 제가 이번 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공모한 우수콘텐츠 사업에 응모하여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질하고 싶었던 것입죠. 쿨럭. 제목은 <시적 상상력으로 읽는 주역>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당시를 읽으면서 얻은 작은 흔적들입니다. 예전에 시대와 철학 ‘고전은 숨쉰다’라는 코너에 필자로 섭외해주었던  박영미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많은 선전과 홍보와 입소문을 염치없이 부탁드립니다. 11월 달쯤 글항아리에서 발간될 예정입니다. 이 가운데 몇 꼭지 맛이라도 …….. 보시라고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올려봅니다.

염치 없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꾸뻑.

 

호우시절1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를 가지고 썰을 풀었습니다. 근거가 없지는 않습니다. 허진호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었죠. 호우시절이라고 ….

호우시절2

 

왜 물기 머금은 꽃들은 금관성을 압도했을까? 두보(杜甫) ‘춘야희우(春夜喜雨)’

 

1

좋은 비 때와 절기를 알아(好雨知時節)

봄을 맞아 생기를 준다.(當春乃發生)

바람결을 따라 몰래 밤에 찾아 들어(隨風潛入夜)

만물을 적시네, 가늘어 소리도 없이.(潤物細無聲)

들길에는 구름이 온통 컴컴한데(野徑雲俱黑)

강위의 배 등불만 반짝거린다.(江船火燭明)

동틀 무렵 보리라 그 붉게 젖은 곳에서(曉看紅濕處)

물기 흠뻑 머금은 꽃들이 금관성을 압도하는 장관을.(花重錦官城)

 

“시어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는다(語不驚人, 雖死不休)”던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이다. 두보의 자는 자미(子美)이고 호는 소릉(少陵)이다.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 칭한다. 이 시의 첫 구절만큼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 문장은 없다. 호우시절(好雨時節)이라는 말로 유명한 구절이다.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라는 의미다.

이 시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대체로 두 가지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만물을 생기 있게 만들어주니, 농민들이 기뻐한다. 농민들의 마음을 묘사한 시라고 본다. 때맞춰 내린 비에 금관성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날 것이니, 아름다운 장관이다. 자연의 경치를 묘사한 정원시라고 보기도 한다.

고작 정원시일까? 천만에 천하의 두보가 누구던가? 그는 나라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자신의 갈등과 비애를 묘사하지 않았던가? 백성을 착취하는 위정자들을 폭로했고 전쟁에 고통 받는 백성들의 삶에 동정했다.

권력이 백성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물으며 정치와 역사에 대한 관심을 시로 표현했다. 백성의 고통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동틀 무렵 보았던 그 장관이 고작 백성들의 삶과 무관한 자연의 아름다운 정경일 뿐이었을까?

 

두보1

 

내가 주목했던 구절은 ‘물기 흠뻑 머금은 꽃들이 금관성을 압도한다’고 번역한 ‘화중(花重)’이라는 말이다. 왜 ‘중(重)’이라는 말을 썼을까? 많은 해석자들이 의아해했던 말이다. 글자 그대로 꽃이 무겁다는 뜻이다. 비가 와서 꽃들이 물기를 머금었기에 무거워졌다. 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궁금했다.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꽃들.

호우시절(好雨時節)이란 말은 대체로 사랑과 사업과 정치 등 어떤 영역에서건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로 이해한다. 그러나 타이밍 이전에 먼저 물어야할 것은 어떤 타이밍이냐이다. 만물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필요할 때 주는 타이밍이어야 한다. 만물이 필요로 하는 절박함을 먼저 경청하고 이해하지 않는 타이밍은 교활한 사기술이 되기도 한다.

호우시절(好雨時節)은 사랑을 주는 방식과 은택(恩澤)의 영향력을 상징한다. 덕(德)은 타인에게 덕택(德澤)의 영향력이 된다. 택(澤)이란 연못이고 물이다. 연못의 물처럼 소리 없이 스며들어 농작물을 소생하게 한다. 연못이란 비가 온 결과이기도 하다.

좋은 비는 집중호우나 폭우(暴雨)와는 다르다. 필요 없는 비를 지나치게 많이 쏟아 붇는다면 홍수가 날 뿐이다. 또한 필요한 비일지라도 폭력적으로 쏟아 붇는다면 만물에 해를 끼칠 뿐이다. 사랑도 안달하고 닦달하며 마구 퍼부으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사업도 그러하지 않던가.

시절을 아는 좋은 비는 만물이 필요한 것을 가장 적절할 때 베풀면서도 티내지 않는다. 은혜를 받은 만물도 비가 끼친 영향력을 의식하여 감사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한 생명력을 일으키며 꽃을 피운다. 비라고 해서 다 같은 비가 아니다. 시절을 아는 좋은 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봄비처럼 스며들어 꽃을 피우게 해준다. 아무런 대가와 자랑도 없이.

 

2

주목해야할 것은 바람결에 몰래 밤에 찾아든다는 표현이다. 바람결에 몰래 잠입하여 은혜와 영향력을 준다. 그러나 가늘어 소리가 없으니 은혜를 준 티를 내지 않고 영향력을 주었는데도 영향 받은 사람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가늘어 소리가 없다는 것은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을 모르듯이 흠뻑 젖어버렸는데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젖어버렸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영향력이다. 슬그머니 우리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바람결을 따라’라고 번역한 ‘수풍(隨風)’이라는 말이 수상쩍다. 왜 하필 좋은 비는 바람결을 따라 몰래 잠입해야만 했을까? 단순한 이 말은 스쳐지나가야 할 말이 아니다. 곰곰이 음미되어야할 말이다.

한시(漢詩)에는 용사(用事)라는 작법이 있다. 용사는 인용고사(引用故事)의 준말이니 고전이나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 어떤 생각들과 사실들을 단순한 단어나 말로 집약시키는 일이다. 표절이기도 하지만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높이 평가한다.

국화를 사용하여 글을 썼다면 그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국화를 좋아했던 도연명의 작품이나 취향과 연결되어 다른 의미와 함축을 생성한다. 본래의 뜻보다 더 새로워질 수도 있다. 이를 점화(點化)라고 한다. 용사는 비열한 표절의 도둑질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은 “두보의 시가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쓰되 흔적을 남기지 않아서, 자작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출처가 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시성(詩聖)이라는 칭호를 얻게 한 까닭”이라고 하며 용사를 적극 옹호했다고 한다.

다산은 문장의 글자마다 인용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자자유래처(字字由來處)’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준 떨어지는 글이다. 옛 사람들의 글쓰기에는 이런 묘미가 있다. 용사는 단순한 표절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시적 기술이다.

그렇다면 시성(詩聖)이었던 두보의 시에도 이런 용사가 없을 리 없다. 주목할 말이 ‘수풍’이다. 주역과 무관하지 않다. 쉰여덟 번째 괘가 손(巽☱)괘이다. 중풍손(重風巽)이라고 한다. 여기서 중(重)은 중첩된다는 뜻이다. 바람을 상징하는 손(巽☱)괘가 위아래 중첩되어 있다. 손괘의 「상전(象傳)」은 이러하다.

 

잇따르는 바람이 손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명령을 펼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象曰, 隨風巽, 君子以申命行事.)

 

여기서 ‘잇따르는 바람’이라고 번역한 말이 ‘수풍(隨風)’이다. 이 이미지가 손(巽)괘를 상징한다. 손(巽)은 흔히 유순함 혹은 공손함이라고 번역되지만 손(巽)괘의 상징은 바람이다. 바람은 ‘들어간다’는 ‘입(入)’의 뜻이 있다.

바람은 아주 미세한 틈일지라도 들어간다. 아무도 몰래 들어가기에 잠입(潛入)이기도 하다. 바람은 미세한 틈에 잠입하되 가늘어 소리도 없으니 아무도 모른다. 두보가 ‘몰래 온다’는 말을 ‘잠입(潛入)’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손(巽)괘를 의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손괘를 중풍손(重風巽)이라고 했다. ‘중(重)’은 무겁다는 뜻이 아니라 중첩되고 연결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잇따르는 바람’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수풍손(隨風巽)과 같은 뜻이다.

손(巽)괘가 상징하는 바람은 부드럽고 공손한 영향력이다. 저항 없이 들어가니 막힐 일이 없다. 군자는 이 바람의 모습처럼 명령을 펼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늘어 소리도 없지만 백성들은 기쁘게 복종한다. 바람의 영향력은 논어에서도 나온다. 공자는 계강자(季康子)가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이런 비유를 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에 바람이 가해지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君子之德, 風, 小人之德, 草, 草上之風, 必偃.)

 

3

물어야 할 것은 풀을 반드시 쓰러지게 만드는 바람의 영향력이 어떤 것인가이다. 공자에 따른다면 그것은 군자의 덕이다. 주역의 철학적 해설서인 「계사전(繫辭傳)」에서는 덕(德)을 상징하는 괘들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그 가운데 ‘손(巽)괘는 덕의 제재(制裁)이다’(巽, 德之制)라는 말이 있다.

손괘는 바람과 같은 부드러운 능력으로 모든 일들을 제재하고 제어한다. 그래서 제압한다. 손괘가 상징하는 바람과 같은 덕에 의한 제재는 강압적인 금지나 폭력적인 처벌이 아니다. 때문에 「계사전」에서는 “공손함으로 권도(權道)를 행한다”(巽以行權)라고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권도란 권모술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권도의 의미를 「계사전」은 “공손함은 사물의 실정을 헤아려서 사업을 시행하지만 그것이 아무도 모르게 드러나지 않는다”(巽稱而隱)고 한다. 주희(朱熹)는 “사물의 마땅함에 걸맞게 행하면서도 잠겨서 숨어 드러나지 않는다.”(稱物之宜而潛隱不露)고 설명한다.

결국 손괘가 상징하는 것은 군주나 군자가 백성들이 처해 있는 실정을 헤아려서 그에 걸맞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시절에 알맞게 행하는 비와 같다. 그것이 권도라는 방식이다. 강압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영향력이다.

백성들은 그 영향력을 의식하지 못한 채 영향을 받아서 스스로 생명력 가득한 힘을 얻는다. 강제적이지 않으면서도 백성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동시켜 복종하게 만드는 잠입이다. 그래서 손괘에는 혁신의 의미가 담겨 있다.

「계사전」에서 설명하는 손괘의 내용들을 음미하면 두보가 왜 “바람결을 따라 몰래 밤에 찾아 들어, 만물을 적시네, 가늘어 소리도 없이”라고 표현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군주와 군자의 덕은 좋은 비처럼 시절을 헤아려 때에 맞게 바람결을 따라 몰래 잠입하여 아무도 모르게 어떤 영향력을 미친다.

그것이 명령을 통해서 법을 혁신하여 삶의 조건을 바꾸는 것일 수도 있고, 도덕적 영향력을 통해서 정신을 혁신하여 삶을 일깨우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런 영향력을 통해 생기를 얻어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면서도 복종을 굴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람결 따라 좋은 비를 내려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이 시에는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시의 후반부이다.

흔히 한시(漢詩)에서 절구(絶句) 형식은 기승전결로 나누고 율시(律詩) 형식은 수련(首聯)·함련(頷聯)·경련(頸聯)·미련(尾聯)으로 나뉜다. 대체로 전반부는 선경(先景)이라 하고 후반부는 후정(後情)이라고 한다. 선경은 앞부분에 정경이 펼쳐진 것이고 후정은 뒷부분에 감정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경련과 미련의 후반부는 시인의 상상과 정서가 가미된 후정(後情) 부분일 수 있다. 이 시의 경련 부분에서 들길의 어둠과 배 등불의 희미한 밝음이 대비되고 있다는 점은 실제적인 풍경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이다. 암흑과 빛의 대비이다. 이는 자연의 풍경이라기보다 시인 자신이 느낀 현실이 투사된 이미지다.

들판의 길이 구름이 깔려 어둡다는 것은 암담한 현실적 상황을 비유한다. 그렇다면 강가에 희미하지만 뚜렷한 배의 등불은 무엇을 상징할까? 늘 밝게 깨어 있는 외로운 지식인이 아닐까? 지식인이란 암담한 현실 속에서 고독하게 홀로 깨어 세상 사람들을 일깨워야 하는 빛이기 때문이다.

심사정(沈師正)의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라는 그림이 있다. 심사정은 조선 중기의 선비 화가로 자는 이숙(頤叔)이고 호는 현재(玄齋)이다. 증조부 지원(之源)이 영의정을 지낸 이름난 가문에서 태어났다.

 

 

강상야박도

 

그러나 할아버지인 익창(益昌)이 과거부정사건을 저지르고 연이어 왕세자 시해 음모에 연루되어 극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로써 집안은 몰락하고 평생 동안 벼슬길에 나갈 수 없게 되었던 인물이다.

심사정의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는 두보의 ‘춘야희우’ 시 가운데 “들길에는 구름이 온통 컴컴한데, 강위의 배 등불만 반짝거린다”는 시구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화제(畫題)로 이 구절이 적혀있다. 심사정은 두보의 시에서 왜 하필 이 구절만을 따다가 화제로 삼았을까? 그리고 다른 것이 아니라 왜 강 위에 정박한 사공의 모습만을 적막하게 그렸을까?

사공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새벽 어스름 속에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공은 고독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사공 뒤에서는 새벽안개가 잦아든다. 잠시 후 어둠이 걷히고 나면 붉게 젖어 물기 머금고 있는 꽃들이 드러날 것이다. 안개가 걷혀 드러나면 알게 되리라. 간밤에 내린 비가 꽃들에게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4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책과 혁명이다. 부제가 ‘책과 혁명에 관한 댓새 밤의 기록’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혁명은 폭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사키 아타루에 의하면 반드시 선행하는 것이 있다. 문학이다. 단순히 소설과 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 전체를 의미하는 글의 힘이다.

고독하게 책을 읽고 다시 쓰는 것이야말로 혁명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힘이다.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근원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루터의 성서 해석과 번역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점을 단적인 예로 들고 있다. 혁명에서 폭력은 이차적인 것이고 선행하는 것은 텍스트를 새롭게 읽고 다시 쓰는 일이다.

문학이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폭우나 집중호우처럼 폭력적이거나 강제적이지 않다. 때를 아는 좋은 비가 바람결에 따라 소리 없이 스며들어 물기를 흠뻑 머금게 하듯이 문학은 초조해하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혁명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고독하게 기다리던 사공은 혁명에 선행하는 문학적 힘에 대한 상징은 아니었을까? 구름이 온통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밝음을 잃지 않는 빛이다. 문학을 읽어내고 창조하는 지식인들이다.

 

두보

 

그들이 동틀 무렵 보게 될 장관은 무엇일까? “물기 흠뻑 머금은 꽃들이 금관성을 압도하는 장관”(花重錦官城)은 어떻게 상상될 수 있을까? ‘중(重)’의 의미는 문자적으로는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모습이지만 ‘압도한다’는 말을 덧붙인 이유가 없지 않다. 손(巽)괘의 의미는 덕으로 이룬 제어와 제압과 관련된다. 또한 명령을 내려서 정치적 일들을 단행하는 혁신의 의미가 들어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이란 시다. 왜 김수영은 혁명을 통해 이룬 자유 속에서 피의 냄새와 함께 고독을 읽어냈을까? 피 이전에 고독은 사사키 아타루가 말한 혁명에 선행하는 문학의 힘이 아닐까? 고독하게 책을 읽고 다시 쓰는 문학의 힘이 사람들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믿음이다. 바람결을 따라 몰래 잠입하는 좋은 비, 호우시절이다.

그렇다면 ‘물기 흠뻑 머금은 꽃들’이란 고독한 문학적 힘이 바람결을 따라 내린 좋은 비처럼 만들어낸 무거운 눈물이 아닐까? 눈물 흠뻑 머금은 소생의 깨달음일 수 있다. 좋은 비가 꽃들의 생명력을 소생하게 만드는 것처럼 문학적 영향력을 받고서 노고지리처럼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자유로움이다.

온 도시 사람들이 바람결을 따라 때맞춰온 비를 맞고 생명력을 얻어 꽃을 피운다. 그리고 혁신을 꿈꾸며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자유를 외친다. 그 무거움이 쓰촨성(四川城) 수도 청두(成都), 금관성을 압도하는 것은 하나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관이다.

두보는 물기 흠뻑 머금은 꽃들이 금관성을 압도하는 장관을 동틀 무렵 보았지만, 나는 눈물 흠뻑 머금은 시민들이 시청을 압도하는 장관을 꽃잎 터져 울부짖는 함성 소리에 놀란 채로 보았던 기억이 있다.

 

Copyright for the NEWSIS [Photo Sales:02-721-7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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