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민주주의 권리 주체의 대응 매뉴얼’은 존재하는가? [철학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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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자가 우리 한철연과 인연이 많은 알렙 출판사에서 나온 새책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김영수 지음, 알렙, 2016)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 권리 주체의 대응 매뉴얼’은 존재하는가? 

송진완(논술개그 실장)

http://cafe.naver.com/nonsulgag/588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나는 20여 년 전에 친구따라 신림동에서 고시공부를 한 적이 있다. 고시원에 자리를 잡고, 용하다는 학원가를 전전하며 각종 고시과목의 족집게 강의를 듣는게 일상이었던 시절이다.

고시과목이 주로 ‘법’과 관련이 있다보니 찾아듣던 학원 강의도 대부분 헌법, 행정법, 민법 등이었다. 그런데 내가 법학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독 ‘헌법’과 ‘행정법’의 특징과 차이점이 기억에 남는다. 헌법 강의 교재인 각종 [헌법학 원론]들은 그 압도적인 두께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루는 내용은 매우 추상적이다. 주로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와 역사상 헌법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소개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그에 반해 행정법 책은 두께는 조금 얇아도 그 내용은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법체계가 매우 논리정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시공부 시절 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는바, ‘행정법은 국가의 것이고, 헌법은 국민(‘인민’이 더 정확한 용어겠지만…)의 것이다’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결론을 조금 더 자세하게 다듬으면 다음과 같다.

국가는 국민을 (합법적으로) 통제하고 착취하기 위해 ‘합법적이고 논리정연한 매뉴얼’ 즉, 행정법 체계가 필요했지만, 국민에게는 ‘두리뭉실하고 관념적인 권리장전’ 즉, 헌법학 원론만을 제공함으로써 권리의 작동체계가 매뉴얼화 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위와 같은 거친 논증의 핵심은 결국, 현실 민주주의는 국가에게만 유독 유리한 지형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현실 공산주의가 붕괴한 이면에도 똑같은 문제가 놓여있지 않은가? ‘당’은 체계적인 착취매뉴얼을 갖고 있지만 ‘인민’에게는 고작 ‘인민의 이름으로’라는 선언뿐이지 않은가. 공산주의라는 말이 경제시스템을 정의하는 차원일 뿐이지 공산주의 국가도 대부분 ‘민주공화정’을 표방한 이상, 권력과 권리의 불균형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균형은 독재왕정이 민주공화정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만하는 ‘현상’인가?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알렙출판, 2016)의 저자 김영수 교수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권력의 주체인 국가에게 ‘전가의 보도’인 행정법이 있듯이, 권리의 주체인 국민도 ‘관념적인 선언’ 이상의 ‘체계화된 권리 매뉴얼’을 연구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여년 전에 어느 고시생이 발견한 ‘행정법과 헌법 체계 사이의의 불균형 현상’은 정치학자인 김영수 교수에 의해 매우 세련된 진보적 민주주의 이론으로 ‘의식화’된다. 다음을 보자.

“(중략)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민주 국가에 살고 있는가? ‘민주 국가’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단 한번이라도 고민해 보신 적이 있는가? 만약 당신이 이런 질문을 케케묵은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 이미 민주화된 국가에서 ‘민주’가 무엇이고, ‘국가’가 무엇인가를 왜 고민하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되묻는 질문 속에 자기 스스로를 ‘무지의 폭력자’로 만드는데도 말이다. (중략)”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머리말 중에서

권리의 주체인 우리가 ‘헌법학 원론’에서 강제된 좁은 의미의 ‘선언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천적인 민주주의 매뉴얼’을 가져야 한다고 자각하는 순간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국가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자각이 무엇인지 짚어주고 자각 이후의 행동강령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1부. 현상 : 민주주의 배반하는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원초적 자각을 촉구한다. 시민혁명 대신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면서 민주주의의 선언적인 본질조차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반드시 자각해야만 하는 현실 현상을 제시한다.

[2부. 허상 : 행복을 짓밟는 국가, 국가를 소유한 가난뱅이]는 구체적 자각을 촉구한다. ‘헌법학 원론’이 가리고 있는 현실 민주주의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부. 상상 : 민주주의 상상하는 민주주의]는 방안을 제시한다. 권리 주체인 국민이 행정법 체계에 대항할 수 있는 고성능 무기를 고안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지금까지는 진보적 시민단체에게나 어울린다고 치부하고 외면해왔던 생소한 개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필수적인 실천적 개념으로 전환된다.

우리가 권력 주체로서 착취의 매뉴얼을 꿈꾸지 않는 이상, 우리가 권리 주체로서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민주주의 권리 주체 대응 매뉴얼’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 책이 그 꿈의 길잡이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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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알렙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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