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대학강좌] 퇴계의 『자성록』과 일상의 마음공부
퇴계의 『자성록』과 일상의 마음공부
김정철(한국학중앙연구원)
유학에서 이해하는 마음
유학에서 마음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이번 시간에는 유학의 마음공부 경敬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경敬은 이미 『논어』 「헌문」편에서 군자의 덕목으로 언급됩니다.
자로(子路)가 군자(君子)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군자는 자신을 닦기를 경(敬)으로써 한다.” 자로(子路)가 물었다. “이와 같을 뿐입니까?” “자신을 닦음으로써 남을 편안하게 한다.” “이와 같을 뿐입니까?” “자기를 닦음으로써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하니, 자기를 닦음으로써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요순(堯舜)께서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다.”
子路問君子, 子曰修己以敬. 曰如斯而已乎? 曰修己以安人 曰如斯而已乎? 曰修己以安百姓, 修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주역》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 육이효六二爻에 공자가 말씀하기를 “군자가 경敬하여 안을 곧게 하고 의義로워 밖을 방정하게 한다. 그리하여 경과 의가 확립되면 덕德이 외롭지 않다.”
易坤之六二曰, 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
경敬은 유학의 마음 수양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학에서 마음을 중시하는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용』의 첫머리는 스케일이 크면서도 인간이 가야할 길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성性을 따르라는 말인데, 성을 따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잘 보존하고 함양해야 한다고 성리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하늘이 시키는 것을 성性이라고 하고, 성에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中庸』 1장
유학자들은 마음을 매우 위태로운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위태로운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를 도덕적인 마음(道心)에서 찾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도덕적인 마음을 타고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은 위태롭고 도덕적인 마음은 미약하기 때문에 오직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기준을 가지고 중을 잡으라.”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書經』 「虞書 大禹謨」
– 심학도心學圖(자료 참고)
그냥 보면 상당히 낯설지만, 자세히 보면 유학이 왜 마음에 주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한 몸을 주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은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에도 수록되어 있는 심학도心學圖입니다. 이 그림은 이황이 직접 그린 것은 아닙니다. 심학도는 원나라 때 학자 정복심(程復心)이라는 사람이 유학의 경전에서 마음과 관련된 구절들을 정리하여 그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정복심은 그림에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 요점은 모두 경敬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 마음은 한 몸의 주재이고, 경은 한 마음의 주재이다. 배우는 자들은 ①주일무적主一無適의 설과 ②정제엄숙整齊嚴肅의 설, 마음을 수렴하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③기심수렴-④상성성其心收斂-常惺惺의 설을 익숙하게 연구하면 공부함을 다하여 넉넉히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用工之要, 俱不離乎敬. 蓋心者, 一身之主宰, 而敬又一心之主宰也. 學者熟究於主一無適之說, 整齊嚴肅之說, 與夫其心收斂, 常惺惺之說, 則其爲工夫也盡, 而優入於聖域, 亦不難矣.
이 글에서 정복심은 유학에서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단 일상의 공부가 敬과 떨어져 있지 않음을 강조하고, 그 방법을 4가지로 나누어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그림 자체는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조선시대에 『심경부주』라는 책과 함께 언급되면서 선비들의 기본적인 마음 수행 교본이 됩니다. 특히 이황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경 공부를 중시했지요.
2. 『심경부주心經附註』와 『근사록近思錄』
경敬은 주자학의 전형적인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敬을 중심으로 유학의 마음공부를 정리한 책은 앞서 보았던 『심경부주心經附註』입니다. 본래 『심경』은 중국 송나라 때 진덕수(眞德秀, 1178~1235)가 유교 경전에서 마음가짐 관련 구절들을 모아서 편집한 책입니다. 여기에 명나라 때 정민정(程敏政, 1445~1499)이 관련된 주석을 덧붙여 『심경부주』를 완성한 것입니다. 사실 주자(朱熹, 1130~1200)는 이 책을 전혀 몰랐다고 할 수 있지요. 오히려 주자가 직접 편집한 책은 『근사록近思錄』입니다. 근사近思라는 말은 『논어』 「자장」편에 나옵니다.
子夏가 말하기를, “널리 배우되 뜻을 독실하게 갖고, 간절하게 묻되 가까운 것부터 생각해 나간다면 인仁이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
이 구절은 공부하는 법을 말하고 있지만, 간절한 물음과 가까운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간절함은 직접적이고 가까움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정말 눈앞에 보일 듯이 절실할 때 비로소 질문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가까운 생각은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떠올려보라는 것입니다. 배움이란 따로 장소가 있지 않으며,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곳에서 진행된다는 뜻입니다. 근사近思는 바로 유학의 일상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사록』은 주자가 친구인 여조겸과 함께 약 1년 동안 함께 편찬한 책입니다. 이 책을 지은 이유에 대해 주자는 서문에 “초학자들이 들어갈 곳을 모르게 될까 걱정이 되어, 학문의 대체와 관련되어 있으면서 일상생활에 절실한 것을 선택하여 편찬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책은 주자가 직접 편찬한 유학의 기초 매뉴얼인 셈입니다.
3.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경敬공부
– 살아있는 마음, 달아나는 마음
마음은 반드시 몸속에 있어야 한다. 밖에 조금의 틈만 있어도 달아나버린다.
心要在腔子裏. 只外面有些隙罅, 便走了.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살아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끝없이 두루 움직여 한 모퉁이에 막히지 않는다.
人心常要活. 則周流無窮, 而不滯於一隅.
-경敬공부의 실제
①주일무적主一無適
어떤 사람이 물었다. “경은 어떻게 공부해야 합니까?” 답했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계명이 물었다. “저는 마음의 생각이 전일하지 못한 것을 근심한 적이 있습니다. 때로 한 가지 생각을 아직 끝내기도 전에 다른 생각이 어지럽게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했다. “좋지 않다. 이것은 성실하지 못함의 근원이 된다. 반드시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익숙해져서 전일하게 될 때 좋아진다. 생각할 때나 일에 대응할 때를 막론하고 모두 마음을 전일하도록 해야 한다.”1)
②정제엄숙整齊嚴肅
“엄격하고 위엄스럽고 근엄하고 삼가는 것은 敬의 道가 아니나 다만 敬을 지극히 함을 모름지기 이것(嚴威儼恪)으로부터 들어가야 한다.”2)
③상성성常惺惺
상채사씨(사량좌謝良佐)가 말하였다.“경敬은 항상 성성惺惺(마음이 깨어 있음)하게 하는 법이다.”3)
주자가 말했다. “성성惺惺은 바로 마음이 어둡지 않음을 이르니, 다만 이것이 곧 경敬이다. 지금 사람들은 경을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고 말하니, 참으로 옳으나 마음이 만약 어두워 이치를 봄이 밝지 못하면 비록 억지로 마음을 잡은들 어찌 경이라 할 수 있겠는가.”
朱子曰, 惺惺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今人, 說敬以整齊嚴肅言之, 固是,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爲敬. 『心經附註』 「敬以直內」장
4. 퇴계 이황의 일상과 경敬
–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
이황은 조선에서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걸출한 학자입니다. 당시 조선은 유학 곧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출발했으나, 이때는 토착화하기 전이었지요. 조광조를 중심으로 하는 사림士林들은 개혁을 시도했으나 이황의 나이 19세(1519년) 때 발생한 기묘사화로 개혁세력은 완전히 제거됩니다. 이황은 독학으로 성리학을 공부에 힘써 최고의 성리학자가 되었는데, 여기에는 학문에 대한 독실한 태도가 뒷받침되었습니다. 그는 나이에 상관없이 학문을 논하고 의견을 수정해나갔는데, 고봉 기대승과의 논쟁이 이러한 이황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또 이황은 사상적인 업적 뿐 아니라 제자 양성에도 매우 충실했던 교육자였다. 다음 시는 교육자로서의 자부심과 과거공부 위주로 돌아가던 당시의 풍경을 잘 보여줍니다.
늙도록 경서 연구하여 도를 듣지 못했으나 / 白首窮經道未聞
다행히 여러 서원 사문을 창도하였네 / 幸深諸院倡斯文
어찌 과거의 물결 온 바다를 뒤흔들어 / 如何科目波飜海
쓸데없는 나의 시름 구름처럼 부풀리나 / 使我閒愁劇似雲
-이황의 일상과 마음공부
① 이황이 말하는 일상- 끝없는 일들의 연속
이른바 널리 행해지는 일상생활이란 천 가닥 만 가지 갈래이어서 진실로 끝이 없습니다. 어버이를 섬기는 일로부터 만사 만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단하니, 이렇게 끝없이 다단한 것을 일일이 흡족하게 하는 것은 궁리와 거경의 지극한 공력이 없으면 끝내 이루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의 학문하는 것을 보면 비록 밤낮으로 조심하고 노력하여 한 순간의 틈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4)
② 마음의 주인 되기의 중요성
마음은 사물이 이르기 전에 맞이해서도 안 되고, 사물이 사라진 뒤에 따라가서도 안 된다.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집주인이 항상 집에 머물며 주관이 되어서 집안일을 맡는다고 하자. 우연히 손님이 바깥에서 왔을 때 자신이 문정門庭에서 맞이하고, 떠날 때도 문정에서 전송한다면, 날마다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더라도 집안일에 어떤 방해가 있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고, 동서남북에서 손님이 어지럽게 올 때마다 직접 자신이 문정을 떠나서 멀리서 영접하고 가까이서 접대함을 쉬지 않고 분주하게 하며, 떠날 때 전송도 이렇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기 집은 도리어 주관할 사람이 없게 되어, 도적들이 들끓어 부서지고 황폐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딱한 일이겠는가?5)
③ 자연을 벗 삼아 즐기고 노래하는 일상
강산江山과 풍월風月은 천지 사이에 있는 공적인 것이다. 보고도 감상할 줄 모르는 자가 많다. 때로는 경치 좋은 곳을 차지하여 자기의 사유물로 아는 자가 있는데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6)
말을 타고 길을 갈 때 정서와 경치가 여기에 있다고 하자. 입으로 사물을 읊조리는 것은 이 몸과 마음이 사물을 응접하는 일이다. 경敬을 주로 하는 방법과 어찌 모순됨이 있겠는가? 독서할 때는 마음이 독서에 있고, 옷을 입을 때는 옷을 입는 일에 마음이 있는 것과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7)
<주석>
1) 或曰敬何以用功, 曰莫若主一. 季明曰昞嘗患思慮不定, 或思一事未了, 他事如麻又生, 如何. 曰不可. 此不誠之本也, 須是習, 習能專一時便好. 不拘思慮與應事, 皆要求一. 『近思錄』 「存養」
2) 曰 “嚴威儼恪, 非敬之道, 但致敬, 須從此入.” 『心經附註』 「敬以直內」장
3) 上蔡謝氏曰, “敬是常惺惺法.”
4) “但所云流行日用者, 千條萬緖, 儘無窮, 自事親以及萬事萬物, 儘多端, 以無窮處多端, 一一恰好, 非窮理居敬之極功, 卒難致之. 故觀古人爲學, 雖乾乾惕厲, 靡容一息之間斷.”
5) 來不迎, 去不追, 比如一家主人翁, 鎭常在家裏, 做主幹當家事, 遇客從外來, 自家只在門庭迎待了, 去則又不離門庭, 以主送客, 如是, 雖日有迎送, 何害於家計? 不然, 東西南北, 客至紛然, 自家輒離出門庭, 遠迎近接, 奔走不息, 去而追送, 亦復如是, 自家屋舍, 卻無人主管, 被寇賊縱橫打破蕪沒, 終身不肯回頭來, 豈不爲大哀也耶? 『退溪先生文集』, 卷28
6) 江山風月, 天地間公物, 遇之而不知賞者滔滔. 其或占勝, 而認爲一己之私者, 亦癡矣. 『退溪先生文集』, 卷23
7) 乘馬行路, 情境在此, 口占詠物, 卽此身心所接之事, 何疑於主敬之法乎? 此與讀書時在讀書, 著衣時在著衣者, 不見其有異也. 『退溪先生文集』, 卷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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