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대학강좌] 정도전의 『불씨잡변』과 유학
정도전의 『불씨잡변』과 유학
김정철(한국학중앙연구원)
1. 정도전의 불교비판 배경
– 시대배경
불교는 고려 귀족사회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반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고, 다양한 변신을 거듭하며 토착화되어 있었지요.
어떤 나라든, 망할 무렵이 되면 각종 폐단이 드러납니다. 고려 말기에 나타난 불교의 폐단은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본래의 정신에서 벗어나 토지를 겸병하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던 불교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신진사대부들은 이런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유학, 정확하게 말하면 성리학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위진남북조와 수-당대를 거친 뒤 송나라 때 성리학이 성립하던 배경과도 유사합니다. 성리학 역시 불교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지만, 성리학자들은 강력하게 불교를 배척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주자의 학문은 이러한 노력의 종합적인 결실이었던 것이지요. 특히 남송 시대에 주자는 당시 정신적인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군사적으로 거란과 여진에게 밀려 송나라가 남쪽으로 쫓겨나고, 사상적으로는 불교의 위협을 받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정작 성리학은 송나라 때에는 크게 유행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거짓학문으로 몰려 위기에 처할 정도였으니까요. 성리학은 송나라를 지나 원나라 때 전체적으로 정리되면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고려의 신진사대부들이 본격적으로 접한 성리학은 바로 원나라 때 정리되었던 성리학이었죠.
주자를 비롯한 학자들이 불교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이유는 단순히 이단을 배척하고자 했던 의지 뿐 아니라, 실제로 당시 사회 전반에 불교가 유행하고 있었고 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폐단을 눈앞에서 봐야만 했던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이 이런 배경을 지닌 성리학에 주목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2. 『불씨잡변』 읽기
① 불씨잡변?
부처의 잡소리? 부처의 여러 주장에 대한 비판!
– 1398년 정도전이 죽기 몇 달 전에 저술한 마지막 작품.
유학자 정도전의 면모를 이론적으로 살펴볼 수 있음.
②윤회론 비판
– 유학의 입장을 대변하다
“사람과 만물이 생겨나고 또 생겨나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천지의 조화가 운행하여 그침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태극에 움직임과 고요함이 있어서 음양이 생겨났고, 음양이 변하고 합함에 따라 오행이 갖추어졌다. 무극과 태극의 참됨과 음양오행의 정수가 묘하게 합하여 엉기면서 사람과 만물이 계속 생겨나고 생겨난다. 이렇게 이미 생겨난 것은 가서 지나가버리며,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은 와서 계속 이어지니, 이 가는 것과 오는 것 사이에 한순간의 정지도 용납되지 않는다… 하늘과 땅 사이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아서 만물을 낳기도 하지만, 만물이 모두 녹아 없어지기도 한다. 어떻게 이미 흩어진 것이 다시 합하여지며, 이미 간 것이 다시 올 수 있겠는가?”1)
– 정도전의 윤회설 비판
부처는 “사람은 죽어도 그 정신은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다시 몸을 얻어 태어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윤회설이 흥기했다…불교의 윤회설에서 보면 혈기가 있는 모든 것은 스스로 정해진 수가 있어 오고 또 가고, 가고 또 가도 그 총합은 다시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이 창생하는 것이 도리어 농부가 이익을 내는 것보다 못하게 된다. 또 혈기를 가진 생물이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조수 어별 곤충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수에 일정함이 있다면 이것이 늘어나면 저것은 반드시 줄어들고 이것이 줄어들면 저것은 반드시 늘어날 것이며, 일시에 다 줄어들 수도 없고 늘어날 수도 없을 것이다.2)
– 불교의 입장
불교에 따르면 인간은 흙, 물, 불, 바람(地水火風)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또 육체를 지니면서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며,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식별해낸다. 이것을 ‘오온(五蘊)’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죽으면 그 정신은 없어진다. 다만 오온만이 남아 이것이 이전 생에 지은 업(業)의 힘에 따라 다음 생에 전달될 뿐이다. 불교는 유교와 세계관이 다르다. 이 세상에만 생물들이 있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불교의 세계는 훨씬 넓기 때문이다.
③ 불교의 인과론-업보(業報) 비판
– 어떤 이의 질문
“그런데 사람 중에는 지혜롭고 어리석고, 어질고 어질지 않고, 가난하고 부유하고, 고귀하고 비천하고, 장수하고 요절하는 차이가 있네… 하늘이 만물을 낳음에 하나하나에 명을 부여함이 어찌 이렇게 치우쳐서 고르지 못할까? 이로써 보면, 살아있을 때 지은 선악의 업에 보응이 있다고 한 부처의 말에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3)
– 정도전의 반박
“불교의 주장처럼 화복과 질병이 음양오행과 관계없으며 모두 인과적 응보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우리 유가의 음양오행 이론을 버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설로 사람의 화복을 예측하고 치료하는 사람이 어째서 한 사람도 없는가? 불교의 주장이 황당하고 오류투성이어서 믿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은데, 그대는 아직도 미혹되어 있는가?”4)
– 유학에 다시 질문하기
유학에서 음양오행에 따라 설명하는 방식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겪는 불평등과 모순을 음양오행의 순환에 따른 우연의 결과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유학에는 이러한 불균형을 맞출 수 있는 자기수양을 강조하는 것이다. 똑같이 선한 본성을 타고났지만, 기질의 차이로 각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은 본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기질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④ 불교의 자비를 비판하다.
– 유학의 입장을 대변하다
“인(仁)의 마음은 육친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람과 사물에까지 순차적으로 베풀어진다. 이는 흐르는 물이 첫 번째 웅덩이에 가득 찬 후에야 둘째, 셋째 웅덩이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그 근본이 깊으면 그 미치는 바도 심원하다. 나의 인애가 미치지 않는 천하의 사물은 없다.”5)
– 불교를 비판하다
“하지만 불교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동물에 대해서는 승냥이나 호랑이 같은 맹수나 모기 같은 미물에 자기 몸을 뜯어 먹혀가면서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가리지 않고,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먹이려 들고, 추위에 떠는 자에게는 옷을 입히려 드니, 이른바 보시(布施)이다. 그런데 부모 자식 같은 지극히 가까운 관계나, 군신같이 지극히 공경하여야 할 관계에 대해서는 반드시 끊어버리려 하니, 과연 이것이 합당한가?… 자기 부모형제 보기를 길 가는 모르는 사람 보듯이 하고, 공경해야 할 바를 쓸모없는 것 대하듯이 하니, 이미 그 근본을 잃어버린 것이다.” 6)
⑤ 불교가 인륜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 논변함.
명도선생이 말씀하셨다. “도 밖에 사물이 없고 사물 밖에 도가 없다. 하늘과 땅 사이 어디를 가도 도가 없는 곳이 없다. 부자(父子) 간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친함에 도가 있고, 군신(君臣) 간에는 군주와 신하의 구별이 엄격함에 도가 있다. 부부와 장유와 붕우 간에도 각각의 도가 있으니,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즉 불도가 인륜을 훼손하고 사대(四大-불교에서 말하는 수상행식受想行識)를 버리니, 도에서 떨어져 멀어졌다고 하겠다.” 또 “그들의 말과 행위가 두루 미치지 못함이 없지만, 실제로는 윤리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하였으니, 선생의 지적이 지극히 옳다.7)
– 정도전의 입장에서 보다
이 글은 정도전이 확고한 주자학자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배의 글을 인용하여 자신의 설에 힘을 보태는 것은 유학자의 오래된 전통이기도 합니다. 불교가 인륜을 무너뜨린다는 비판은 유학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했습니다. 유학자에게는 지금 보이는 현실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깨달음을 얻고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가를 해야 하는 불교의 모습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3. 『불씨잡변』의 의미와 한계
『불씨잡변』은 당시에 불교를 가장 체계적으로 비판했던 책이었지만, 완벽한 이론비판서는 아니었습니다. 불교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인 맥락을 무시하거나 이론적인 비판에는 무리한 부분이 있었죠. 그렇다고 해서 정도전의 비판과 개혁정신을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씨잡변』은 현실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와 열정이 낳은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정도전은 불교에 정통한 사상가가 아니라, 철저한 유학자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분투했던 사람이었죠. 그가 지적했던 불교의 문제점들은 모두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전개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1) 人物之生生而無窮, 乃天地之化, 運行而不已者也. 原夫太極有動靜而陰陽生, 陰陽有變合而五行具. 於是無極太極之眞, 陰陽五行之精, 妙合而凝, 人物生生焉. 其已生者往而過, 未生者來而續, 其間不容一息之停也…天地間如烘爐, 雖生物, 皆銷鑠已盡, 安有已散者復合, 而已往者復來乎.
2) “佛之言曰, 人死精神不滅, 隨復受形, 於是輪廻之說興焉…今以佛氏輪廻之說觀之, 凡有血氣者, 自有定數, 來來去去, 無復增損, 然則天地之造物, 反不如農夫之生利也. 且血氣之屬, 不爲人類則爲鳥獸魚鼈昆蟲, 其數有定, 此蕃則彼必耗矣, 此耗則彼必蕃矣. 不應一時俱蕃, 一時俱耗矣.”
3) “或曰, 子言人物皆得陰陽五行之氣以生, 今夫人則有智愚賢不肖, 貧富貴賤壽夭之不同…天之生物, 一賦一與, 何其僞而不均如是耶. 以此而言釋氏所謂生時所作善惡, 皆有報應者, 不其然乎.”
4) “信如佛氏之說, 則人之禍福疾病, 無與於陰陽五行, 而皆出於因果之報應, 何無一人捨吾儒所謂陰陽五行, 而以佛氏所說因果報應, 定人禍福, 診人疾病歟? 其說荒唐謬誤無足取信如此, 子尙惑其說歟.”
5) “仁心之所施, 自親而人而物, 如水之流盈於第一坎而後達於第二第三之坎, 其本深, 故其及者遠. 擧天下之物, 無一不在吾仁愛之中.”
6) “佛氏則不然, 其於物也, 毒如豺虎, 微如蚊蝱, 尙欲以其身餧之而不辭, 其於人也, 越人有飢者, 思欲推食而食之, 秦人有寒者, 思欲推衣而衣之, 所謂布施者也. 若夫至親如父子, 至敬如君臣, 必欲絶而去之, 果何意歟?…視至親如路人, 視至敬如弁髦, 其本源先失.”
7) “明道先生曰, 道之外無物, 物之外無道, 是天地之間, 無適而非道也. 卽父子而父子在所親, 卽君臣而君臣在所嚴, 以至爲夫婦爲長幼爲朋友, 無所爲而非道, 所以不可須臾離也. 然則毀人倫去四大, 按四大受想行識, 其分於道遠矣. 又曰, 言爲無不周徧, 而實則外於倫理, 先生之辨盡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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