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 도덕(2)[대안도덕교과서]-12

통일과 도덕(2)[대안도덕교과서]-12

 

 

이원혁(건국대학교)

 

*이 글은 삼인출판사에서 출판 될 대안도덕교과서(가제)의 일부를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3. 나와는 다른 사람과 친해지기로서, 남북 화해와 통일

 

제일 처음 소개했던 민서와 지훈이의 에피소드에서 이 둘을 강제로 화해시키고 매일 같이 생활하게 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다고 둘의 다툼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둘의 성적은 올라갈까요?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쉽게 되진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다툼의 당사자들의 상처를 보듬는 것부터 시작해야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없이 진행되는 화해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 것입니다.

이는 남과 북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은 요원할 것입니다. 기나긴 시간 속에서 점점 커져왔던 상처를 치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넘어져 다쳤을 때 무턱대고 반창고부터 붙이지 않듯이 상처의 치료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우선 상처를 물로 깨끗이 씻고, 소독약을 바른 후, 적절한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순서가 일반적이지요. 상처는 피가 멎으면, 부기부터 가라앉은 후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아나겠죠. 마음의 상처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듯합니다. 상처를 깨끗이 하고 소독을 하면 피가 멎고 부기가 가라앉듯이, 남과 북이 분단의 상처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부기가 가라앉듯이 상호간에 안정과 믿음이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분단의 상황에서 나타나는 적대감과 이질감 그리고 분단된 각각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분열과 대결의식을 걷어내는 것은 상처에서 가장 중요한 처방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무언가 불완전하고 부족해보여 마음 속 불안감을 자아냈던 우리나라는 비로소 백수십년 전 조상들이 바라던 서로 돕고 웃으며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방법을 알았으니 이대로 진행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존중과 신뢰라는 말은 참으로 애매하고 추상적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민서나 지훈이에게 단순하게 “너희는 서로 존중하고 믿어야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입니다. 민서와 지훈이에게 가장 큰 문제점을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의 잣대로만 상대를 바라보고 상대가 자신과 닮기를 강요하는 것이죠. 그리고 둘 다 그 생각을 굽히지 않으니 사이가 좋을 수가 없겠죠.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남은 나와 대립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참 어떻게 보면 당연한 소리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봅시다.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대하거나 평가할 때 나의 기준에서 남을 ‘내가 가진 것을 가진 사람 혹은 가지 않은 사람, 혹은 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거나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내가 아닌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죠. 나와 다른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바로 나와 다른 사람은 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즉 이럴 경우 모든 다른 사람은 나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만 평가받고 인정되기 때문에 내가 없이는 다른 어떤 사람도 ‘없는 사람’ 또는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도, 친구가 될 수도 없는 것이지요. 민서와 지훈이는 자신의 가치관으로만 서로를 헤아리고 있기 때문에 둘은 끊임없이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때에는 그 사람의 본질을 그 사람의 내부에서 찾아야지, 자신이 믿는 특정한 가치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분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될 수 있는 사람이며 나와 다르지만 용납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상처를 진정시키는 단계로 서로간의 안정과 신뢰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그쳐서는 곤란한 일이 생깁니다. 나와 다른 사람이 정말 나와는 전혀 다른 그래서 나의 가치관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정말 ‘남’이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이 ‘남’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불편하고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겠지요.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결국 서로의 다름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정복하려 들거나, 반대로 숭배하거나 아니면 소통을 포기하는 외톨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상처가 진정되었다면 이제 그 갈라진 틈을 메우는 것이 중요하겠죠. 바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 그리고 동질성의 회복입니다. 역사책과 윤리교과서에서 많이 등장한 인물이죠. 원효대사는 ‘화쟁’이라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원효는 “다름이 있어야 같음이 드러나고 같음이 있어야 다름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서로의 다른 점은 서로의 닮은 점을 찾아낼 수 있는 좋은 힌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로 닮은 모습은 서로의 다른 모습을 돋보이게도 하는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봄으로써 상대에 대한 더욱 냉정한 평가를 가능하게 하며 ‘나’라는 작은 틀을 벗어나게 하여 ‘나’ 밖에 있는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 나의 위치는 나 자신한테만 있지 않으며, 타인 속에 있지도 않게 되겠지요. 그리고 비로소 이때 우리는 바로 다른 사람과 나의 중간, 즉 경계 속에서 서로간의 조화를 그릴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가 나와 다른 사람 사이를 드나들며 이루는 소통과 통일은 나의 입장으로 다른 사람들 묶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의 생각 속에 나를 귀속시키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논어 자로편에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어진 사람은 조화를 이루지만 똑같아지지는 않고 어리석은 사람은 똑같아지면서도 조화를 이루지는 못 한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런 조화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과 친해질 수 있으며, 소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민서와 지훈이 간의 화해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는 개인 간의 관계를 남과 북에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www.segye.com

출처: www.segye.com

 

남과 북의 적대감과 불통은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상처, 그리고 그 상처의 방치 혹은 잘 못된 처치로 악화되어 왔습니다. 하나였던 것이 분열되니 이질성이 생기고 그것이 적대성으로 나아갔지만 오히려 이러한 이질성과 적대성은 통합을 위한 에너지이기도하다. 남과 북 사이의 차이의 인정은 밉고 싫지만 평화공존을 위해 인정한다는 인내의 차원을 넘어 밉고 싫은 마음이 분단체제가 낳은 비정상적 산물이라는 지각과 그 지각에 뒤이어 동반되는 상호존중이라는 보다 성숙한 차원으로 나아가야합니다. 우리는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를 냉정히 판단함으로써 상대를 이해하고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상대도 나를 이해할 기회를 줌으로써 서로간의 조화가 가능해 질것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조화를 이뤄간다면 그 순간이 바로 통일이 시작이 되지 않을까합니다.

 

4. 아름다운 통일의 모습

 

통일의 효과에 대해서 많은 장밋빛 미래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통일한국이 경제적, 군사적 대국이 될 수 있다는 꿈들은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상은 통일을 손익을 따지는 계산기 속에서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기업이 새로운 사업진출 여부를 가리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이런 모습에서는 통일의 정당성이 현재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또 이러한 상상의 이면에는 우리가 앞서 경계한 나의 입장에서 상대를 결정하고 둘의 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살펴본 것처럼 이런 모습은 결코 진짜 통일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이것보다 조금 큰 이상과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은 임시적이고 한시적인 평화를 종결하고 영구적인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제입니다. 분단이라는 조건으로 남북 주민들에게 제시되었던 부담과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은 한반도라는 작은 지역의 평화가 아닌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화합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 간의 마지막 대치 장소는 그 긴장을 품으로서 서로 다른 세계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장소로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남과 북은 ‘부국과 빈국’, ‘동양과 서양’, ‘근대와 탈근대’가 대립하는 장소입니다. 세계에는 다양한 나라가 있습니다. 남한과 같이 경제적 선진국 또는 자본주의국가 그리고 서구문화에 익숙한 나라들이 있는 반면, 북한과 같이 경제적으로 낙후되거나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을 고수하며, 아직 근대적 가치에 많은 비중을 두며 서구문명이 이질적인 나라들도 있습니다. 남북은 각자 이러한 다양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의 다양한 대립을 축소해놓은 시험장이기도 합니다. 통일은 한반도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넘어 근대와 제국주의 시절에 자행되었던 세계 속의 수많은 대립과 갈등을 해소에 기여할 것입니다. 따라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은 세계의 화해와 조화를 이끌고 그 미래를 제안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입니다. 이땅의 통일이 한반도와 세계 속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어제와 오늘의 상처를 딛고 미래를 향해 웃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