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와 삶 ? 『베니스의 죽음』과 『파이드로스』 <도봉도서관 청춘과 함께하는 인문학> 1
에로스와 삶 ? 『베니스의 죽음』과 『파이드로스』 <도봉도서관 청춘과 함께하는 인문학> 1
이지영(한국철학사상연구회)
1. 토마스 만 ? 『베니스의 죽음』
토마스 만 : 토마스 만(Mann, Thomas 1875-1955)
– 뤼벡의 시민 계급 출신.
– 북부 독일의? 자유 시민 특유의 냉정, 명석, 자제의 정신 태도를 견지. 또한 일면 남미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민감한 감수성, 공상력, 음악성, 그리고 상처받기 쉬운 신경을 물려받았다고 평가받음.
– 그는 작품 속에서 인간과 인생에 대한 단면이 아니라 세계와 인생을 깊이 있게 제시. 토마스 만의 작품은 이중적 의미 제시와 문장의 난해함으로 대중성을 얻는 것에는 실패. <<베니스에서의 죽음>>, <<마의 산>>, << 요제프와 그의 형제들>>, << 파우스트 박사>> 등의 주요 작품을 남김.
1) <<베니스의 죽음>> 내용 – 주인공 아셴바하는 시인으로 명성과 지위를 얻은, 도덕가의 풍모가 돋보이는 예술가였으나. 베니스에서 절대미를 가진 소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사랑과 미와 관계에 대한 통찰을 얻을 뿐더러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명성이 거짓된 광대짓, 허위였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절대미, 절대적인 에로스의 경험은 언어로 잡아낼 수 없는 것, 그는 베니스에 만연한 콜레라에 전염되어 사랑하는 소년의 모습을 두 눈 속에 담은 채 사망한다.
….구스타프 아셴바하는 거의?탈진 상태에서 일하는 모든?사람들, 과중한 부담에?허덕이는?사람들,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사람들, 아직은 그래도 꼿꼿이 자신을 지탱해 가고 있는 사람들, 신체도 허약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한 중에도 초인적인 의지와 현명한 자기 관리로 적어도 얼마 동안이나마?영향력을 발휘한 그 모든 업적주의 도덕가들의 시인이었다. 그런 도덕가들은 많았으며, 그들이 이 시대의 영웅들이었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하셴바하의 작품 속에서 그들 자신을 재발견했고, 자기 자신들이 그 속에서 인정받고, 고양되고 예찬되는 것을 알았으며 그에게 감사했고,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민음사 판,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 베니스의 죽음? p 430
2) <<베니스의 죽음>>을 지배하는 죽음의 이미지 :
소설 전반부: 산책에 나선 아센바하 죽음의 신을 닮은 남자를 만남
소설 후반부: 죽음의 전염병으로 가득찬 베니스
3) 죽음과 에로스의 만남 : 에로스, 즉 신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흔히 서구에서 죽음과 연결되어 왔다. 에로스는 유한자인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극복하는 한 방식, 혹은 생은 언제나 죽음을 그 조건으로 하여 가능함을 역설
ex ) 바타이유(사상) – <<에로티즘>>, 슈베르트(음악), 에곤 쉴레, 클림트(그림) – 소녀와 죽음, 사신과 에로스
2. 플라톤 (BC 427~BC 347)
–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 : 화이트 헤드
– 아테네 최고 정치 명문가 출신 : 아버지 아리스톤은 아테네 왕가의 후예, 어머니는 정치가 솔론의 후손
– 20살에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에 심취. 28살에 되던 기원전 399년 아테네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직접 민주제적 법정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모욕했다며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 이후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衆愚 정치로 판단.
– 이후 인생 행로를 바뀌어 정치가가 아닌 철학자의 삶을 선택.
플라톤의 에로스론 ? 『파이드로스』
– 상대에게서 발견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곧 사랑이다.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면 그것은 상대에게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 그것이 단순히 표면적인 것, 신체적인 것에 머물러 있으면 사랑의 부작용, 몰이성과 부덕함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고 그러한 사랑은 상대와 자신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고전주의자 중의 고전주의자인 플라톤의 해법은 당신이 발견한 아름다움 너머,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는 그 아름다움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안 변하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이성을 통해’ 발견하란 것. 그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머물러 단지 그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고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가 가진 비신체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러한 비신체적 아름다움을 아끼며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영혼과 영혼이 결합하게 되면 설사 둘이 헤어지게 되더라도 신체는 비록 멀어지되 서로의 영혼은 영원히 결합한 채로 남게 되리라 말한다.
– 플라톤은 에로스적 사랑이 육체에 대한 사랑에 머무르면 안된다고 역설한다. 육체를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본질을 정신으로 포착해, 두 사람의 결합이 신체의 결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정신적 성숙을 돕는 정신의 합일, 정신의 승리로 승화되도록 이끌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 『향연』에서 플라톤은 다른 등장 인물들의 입을 빌려 에로스에 대한 다양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주지만, 결국 에로스를 생산의 힘, 생산의 원동력으로 표현한다. 남녀의 사랑이 자식 생산으로 귀결되듯, 정신에 대한 사랑은 정신의 자식을 낳는다. 플라톤의 사랑관은 이처럼 플라톤답게 육체적 매력, 육체의 홀림을 뛰어 넘어 정신의 고결함에 이르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 이유는 파이드로스여,?잘 명심해라, 아름다움만이 사랑스러운 동시에 눈에 보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느낄 수 있는 자의 길이란다, 어린 파이드로스여, 예술가가 정신에 이르는 길이란다, 그렇지만 귀여운 애야, 이제 너는, 정신적인?것으로 가기 위해 감각적인 것을 통과하는 길을 걸어온 사람이 언젠가는 지혜와 진정한 품위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너는 이것이 오히려(결정은 네게 맞기마) 위험스럽고도 쾌적한 길, 즉 필연적으로 잘못에 이르게 하고 마는 정말 잘못된 길, 죄악의 길이라고 생각하느냐??…우리 시인들은 에로스가 옆에 와서 안내자로 나서주지 않으면 아름다움의 길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야…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열정이 곧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켜 주는 것이며 우리의 동경은 반드시 사랑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야…우리의 명성과 영예로운 지위는 일종의 익살극이고, 우리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지극히 우스꽝스러운 것이며, 예술로 국민과 젊은이들을 교육시키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며 금지해야할 계획이야…그 까닭은 말이지, 파이드로스, 인식이란?것이 결코 품위도 엄격함도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건 뭔가를 알면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뿐 정신적인 태도나 형식을 지닌 것이 아니란다…새로운 엄격성과 제 2의 자유와 형식을 존중한다는 말이지. 그러나 파이드로스, 형식과 자유는 도취와 탐욕으로 치닫게 되고…?????<같은 책, p 525>
3. 『베니스의 죽음』과 에로스의 이중성
– 예술, 삶의 길
– 파멸, 죽음 : 사랑의 도취 속에 죽다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Feel free to contrib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