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와 인간의 삶: ‘나는 왜 쇼핑몰에서 해방감을 느끼는가?’<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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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인간의 삶: ‘나는 왜 쇼핑몰에서 해방감을 느끼는가?’<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3-2

조은평(건국대)

 

 

3. ‘소비의 사회’와 현대인 :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소비사회’라는 규정에 대해>

– 소비사회의 문제는 오늘날 여러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에 의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지그문트 바우만 같은 사회학자는 오늘날의 소비사회를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일종의 환상의 공동체라고 보고 있다.

조은평 표4

– 일단 ‘소비사회’라는 규정은 ‘상품을 대량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된 사회’를 의미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경제의 고도성장은 기존의 자본주의와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는데,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이것을 ‘소비의 사회’라고 지칭한다.
– 하지만 단순히 대량생산에 기초해서 대량소비가 경제적으로 가능해진 풍요한 자본주의 사회라는 의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드리야르는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소비개념과는 다른 소비개념을 통해 현대사회를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상품(사물)의 소비란 ‘사용가치’의 소비를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뛰어 넘는 어떤 행위이다. 그는 사물을 기호로 파악하고, 사회를 의미작용의 체계로 해석하면서 소비 행위를 특정한 상품(사물)에 대한 욕구가 아닌 차이에 대한 욕구로 규정한다.(‘사용가치’에서 ‘기호가치’로!)

<소비사회가 개인에게 가져온 변화>

1) 상품미의 무한 추구.
– 현대 소비 사회에서 사람의 취미를 형성하는 것은 ‘예술미’라기 보다는 ‘상품미’다. 상품은 이런 미적 가상을 불러일으키는 형식이자 자본의 수단이며, 소비자는 상품미에 현혹되어 욕망을 가상적으로 충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욕망의 허기가 생긴다.

2) 개인의 욕망구조도 변화.
–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 구조는 일과 생산을 통해 채우는 것이 기본 전략이었지만 현대 사회에서 욕망 구조는 놀이와 소비를 채우는 전략으로 변모했다. 놀이를 통해 채우는 욕망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생겨난다. (일과 생산 -> 놀이와 소비)
– 소비 사회에서 사람들은 상품의 ‘사용 가치’가 아니라 ‘기호 가치’를 소비한다. 사용 가치는 필요를 충족하는 수단이지만 기호 가치는 지위나 심리의 차이를 표시하는 수단이다.
– 그렇기에 소비 사회에서 욕망의 논리도 차이의 논리다. 소비 사회에서 욕망은 특정 사물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차이에 대한 욕망이다.

< ‘소비사회’라는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들>

1) 미국의 세계 지배를 상징하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구멍이 뻥 뚫려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아 얼이 빠져 버린 미국인들에게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보냈던 첫 메시지. -> “다시 (평상시처럼) 쇼핑하는 일로 되돌아가라to go back shopping!”
(cf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정부 관련 기사 “정부, 세월호 참사후 처음 ‘소비 둔화’ 우려 진단, 파이낸셜뉴스, 2014. 5. 6 / 현오석 부총리, “세월호 참사 후 서비스업 다소 부정적영향”, 아시아경제, 2014. 5. 6)

2) 아이 여성(child-women)의 출현 : 아동기에 대한 상업화!
–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침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어보거나 엄청나게 많이 수집해 놓은 구두나 핸드백을 신어보거나 걸쳐보면서 보내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 더구나 당시 그녀는 가슴 성형수술을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었지만, 좀 더 자신의 우상인 모델 조던처럼 되기를 꿈꾸면서 그 수술을 기다리는 일조차도 무척 힘들어했다는 이야기.
– 익숙하게 들었을 법한 이야기. 그러나 당시 그 소녀의 나이가 10살!
– 더구나 한 영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대다수의 10세 소녀들은 ‘헤어스타일이나 패션, 화장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 또한 그 소녀들 중 26퍼센트는 ‘자신들이 별로 날씬하지 않다고 느끼면서 몸무게 때문에 고민’. 말하자면 점차 어린 소녀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날씬하지도 않으며, 충분히 아름답지도 않다’고 느끼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잡지 속에 인쇄된 우상(아이돌)들의 그 불가능한 이미지’와 비교한다.

3)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익숙해지는 쇼핑과 쇼핑몰 문화?
– 어린 시절부터 갖고 노는 쇼핑카트!(뽀로로 쇼핑카트)

4) 쇼핑몰이라는 공간의 전략.
– 백화점과 쇼핑몰 건물에서 상품이 본격적으로 진열된 곳에 공통적으로 없는 그 무엇은 뭘까?
– 광고처럼 모든 쇼핑몰의 공간(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도 포함해서)은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전략적으로 구성된 공간. 그처럼 마케팅 원칙에 따라 구성된 공간에 들어선 소비자는 당연히 포획당할 수밖에 없다. (참조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5부작 중 2부 ‘소비는 감정이다’)

조은평 사진2-1

 

4. ‘소비 사회라는 동굴’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가능할까?

– 그렇다면 이런 동굴과도 같은 쇼핑의 약국 속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아니 왜 탈출해야 할까? 이렇게 좋은 자유로운 약국에서 말이다.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 듯.

1) 우선 ‘왜 탈출해야 할까?’
– 사실 소비를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소비사회처럼 결국에서는 구매력에 따라 위계가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고, 또 ‘소비의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그 누군가의 희생에 기초해서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면, 이러한 사회는 ‘소비의 자유’라는 이데올로기에 지탱되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일 것이다.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다른 세계’를 꿈꾸기 위해서도 탈출을 고민해야 한다.
– 또한 ‘소비의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 스스로 주체적이고 자유롭다고 느끼지만, 이는 그저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일 뿐이다. (환상의 공동체) 좀 더 다른 형태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고민하기 위해서도 탈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2)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 소비사회라는 동굴, 쇼핑몰이라는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 그냥 소비를 줄이고 검소하게 살기? 과연 가능할까?
: 합리적 소비자로 생활하기?
: 소비자 운동을 통해 저항해보기. 불매 운동(예. 광고 불매 운동, 녹색 소비자 연대 등등)
: 소비 하지 않기? 아마도 가장 두려운 현상일 것!! 예) 9.11 이후 부시 대통령의 말!
자본 – 상품 – (불려진) 자본( M-C-M’ / C-W-C’)
– 말하자면 ‘소비사회’를 지탱하는 ‘자본의 순환 운동’에서 탈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 아마도 대부분 회의적일 것. 아니면 너무 이상적이고 공상적인 이야기로 여길 듯.
–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비사회’를 유지하고 만들어 낸 ‘자본의 흐름’을 변혁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탈출은 불가능하다는 점.
– 결국 이것은 ‘정치적으로 앞으로의 세계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가’라는 실천적인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 그럼에도 일단 ‘탈출을 가능하게 해줄 지점’을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 사실 우리는 자본주의 생산-소비 체계를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런 현실을 그대로 따라 쫓아가야만 생존할 수도 있고, 어쩌다 성공도 할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 500만년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자본주의가 출현한 시간은 23:59:56! EBS 다큐프라임)
– 이데올로기는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그저 잘못된 현실 인식이나 단순한 오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허위의식’이라는 과거의 이데올로기 개념처럼 말이다.
– 오히려 슬라보예 지젝의 말대로, ‘이데올로기의 수행성’에 주목해야 한다. 믿음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치 티벳 승려들이 기도할 때 기구를 돌리는 것처럼, 교회에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의식을 수행하면서 우리는 믿음을 형성하고 확고히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시스템이나 위계질서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면서(또 여러 역할을 수행하면서) 우리는 현재의 동굴 상황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얻는다.
– 다시 말해 현재의 소비 시스템(소비사회의 전략)을 따라 소비를 수행하면서, 우리는 되풀이해서 ‘소비사회’라는 신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셈이다.
–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는 다시 이런 ‘이데올로기의 수행성’에 주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에는 기존의 시스템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의 형태, 삶의 관계들을 형성하려는(수행하려는) 노력 속에서 또 다른 탈출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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