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대가리[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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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대가리[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1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세월호 사고가 터지면서 우리 사회의 안전관리, 재난관리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오른다. 사실 2시간 가까이 두 눈 멀뚱이 뜨고서 수 백 명이 탄 배가 침몰하는 광경을 구경만하는 나라에서 재난시스템을 말한다는 게 우스을 지경이다. 허둥지둥 대처 시스템의 맨 위에 있는 청와대는 한 술 더 떠 재난 안전청을 만들겠다고 하고, 언론들은 안전관리 매뉴얼 타령만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다보면, 나는 이들이 정말 닭대가리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과연 이들이 이 사회의 최고 엘리트층이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인가 싶을 정도이다. 만약 그렇다면 국민들만 불쌍할 뿐이다. 지금 그런 관리청이 없어서 대처를 못하고, 매뉴얼이 없어서 허둥지둥거리는가? 수 십 년 동안 민방위 훈련을 하고 있지만 유사시 그것이 얼마나 형식적이었는가를 뼈저리게 알지도 모른다. 안전 관리나 생명 보호는 단순히 기술이나 기구의 문제가 아닌 생명을 중시하는 문화와 철학의 문제이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식민지도 경험하고 전쟁도 경험하고 보릿고개도 경험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에게 아마도 안전과 생명은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자살율과 재해사고율, 교통 사망율이 OECD 1위이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다. 우리 스스로 위험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다보니 더 이상 내 새끼들을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하고 싶지 않는다는 징표이다. 이런 문화와 사회 시스템이 바뀌리라고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을지 모른다. 재난 사고가 생길 때마다 온갖 호들갑을 떨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그냥 망각해버린다. 일종의 푸닥거리를 하는 느낌이다. 정부는 온갖 재난 대책으로 도배하고, 언론은 진실 여부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속보 경쟁만 하고, 국민은 분향소를 찾아 눈물 흘리는 것으로 면죄의식을 한다. 일종의 거대한 현대판 제의와도 같다. 이 제의는 무엇보다 사회적 망각을 감싸줌으로써 시간이 흐르면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한다. 우리 모두가 이 푸닥거리의 공범이 아닌지 모를 일이고, 그래서 우리들 모두가 닭대가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래 전에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F. 맥클러스키, 이 종철 역, 북섬, 2007)라는 책을 번역한 책이 있다. 이 책은 철학교수가 지역 소방관 활동을 자원봉사하면서 겪은 생생한 체험을 철학자의 눈으로 성찰한 책이다. 긴급 재난 활동가로 유명한 한비야가 추천한 탓에 한 때는 베스트셀러의 목록에도 오르고, 전국 소방관들의 필독서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이 책의 말미에 썼던 역자 후기 일부의 문제 상황은 지금 읽어봐도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모름지기 소방관들은 그 파괴의 현장에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인내와 헌신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구도 접근하기 꺼리는 곳으로 뛰어들어 파괴의 불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영웅들이다. 미국에서는 청소년이 바라는 직업의 1순위에 올라 와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방관의 이미지가 그와 같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가끔씩 티비 화면을 통해 큰 불을 끄다 순직한 소방관들 이야기를 보다 보면 그것은 기껏해야 고되고 위험해서 젊은이들이 지원하려 하지 않는 3D 업종 정도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화재나 재난은 일순간에 한 가정이나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릴 수 있는 위험한 사건이고, 날마다 화재 현장에 뛰어 들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소방관들의 활동이 없다면 우리의 재산과 안전을 누가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매일 같이 일어나는 화재 현장에서 생사를 가늠하는 전투를 벌이면서 인명 구조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드물게 전쟁 상황에 비교해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영웅적 전투가 이 사회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고 있음에도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다. 왜 그런 걸까?

 

그 이유 중의 상당 부분은 소방 활동을 표피적으로만 보도하는 대중 매체에 기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의 저변에서 묵묵히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배려가 낮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 경향에 기인한다. 또한 소방 현장에서 남다른 경험을 겪는 이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일반인들이 공감하는 형식으로 전달하는 작품이 드물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에 형제 소방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외화 [백드래프트]나 사이코 방화범과 소방관의 심리전을 다룬 방화 [리베라메]같은 영화는 일반인들이 소방관들의 위험하고 영웅적인 행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드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학의 철학교수가 10여년을 묵묵히 자원 소방관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체험을 기록한 이 글은 그 자체만으로 감동의 여지가 있을뿐더러 소방관들과 그들의 고난의 현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다.”

 

지금 와서 하나 더 덧붙이자면 비용이고 경제논리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사고와 재난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불필요한 우연적 비용 정도로 생각하고, 관련 인력도 사정이 어려울 경우 정리 대상 일순위이다. 신자유주의에 세뇌된 정부는 기업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안전관리에 관련된 규제부터 풀어버린다. 기업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노후 선박을 들여와 증개축을 한 것도 모자라 과적을 정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먹이 사슬로 얽힌 관리 감독청은 감독의 책임을 로비 비용이나 접대로 눈감아 버린다. 이들에게 국민과 승객의 안전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이다. 그동안 사고가 안 난 것이 우연인지 모르겠다. 세월호의 경우, 지난 한 해 안전과 관리된 선원 교육비용은 54만원인데 반해 접대비용은 6천만원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6,800톤급 선박의 항해 책임자가 1년 계약직이고 선원들의 절반 이상이 고용 1년이 안 된 계약직이라고 한다. 선내 서비스를 담당하는 대부분의 승무원들도 계약직이다. 승무원들의 연봉도 타 선사의 2/3 정도뿐이 안 된다고 한다. 이렇게 비용을 절감해서 거둔 수익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유병언 일가가 십 몇 년 사이에 청해진과 그 계열사로부터 무려 천억을 거두어갔다고 한다. 결국 걸레 짜듯이 쥐어 짜가지고 소수의 고액 연봉자들의 배를 채워 주는 셈이다. 이런 구조와 시스템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아울러 다수가 이런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소수의 탐욕자들의 삶과 지위가 과연 안전할 수 있는가? 과연 이것이 세월호만의 문제이고, 우리 사회의 다른 부분은 이로부터 자유로운가? 이번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은 산 자들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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