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을 소개합니다[베를린에서 온 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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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을 소개합니다[베를린에서 온 편지]-1

 

 

한상원(한철연회원/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상원 회원이 인문학 동향이나 정치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왼 쪽이 칼 리프크네히트, 오른 쪽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무덤이다. 가운데 비석에는 “죽은 자는 우리를 깨우친다”고 씌어 있다.

왼 쪽이 칼 리프크네히트, 오른 쪽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무덤이다. 가운데 비석에는 “죽은 자는 우리를 깨우친다”고 씌어 있다.

구름 뒤덮인 흐린 하늘에서 겨울비가 서글프게도 내리던?2011년?12월?26일.이 날은 성탄절 연휴라 도서관도,?음식점도,?상점도 모두 문을 닫았다.?나는 오래 전부터 방문하고 싶었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무덤을 가보기로 했다.

S반(S-Bahn)?기차역에서 장미 꽃 두 송이를 샀다.?기차는 동베를린을 향해 달렸고,?나는 베를린 리히텐베르크( Lichtenberg) 지역에 있는?“사회주의자들의 묘”에 도착했다.?이곳은 독일의 저명한 사회주의자들의 묘지들이 안치된 곳으로,구동독 정부가 거대한 공원으로 조성해 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해 시민들에게 홍보하려 했던 곳이다. (물론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는?“스탈린주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비석도 공원에 추가되었다.)?묘지공원 안의 거대하게 조각된 동상에는?“죽은 자는 우리를 깨우친다”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고,?그 아래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의 무덤이 있었다.

미리 사 온 두 송이 장미를 하나는 칼 리프크네히트에게,?다른 한 송이는 그 이름도?“장미”라는 뜻을 가진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헌화했다. 1919년?1월,이 두 혁명가가 반혁명 군부 세력에 의해 납치되어 살해된지도?90여 년이 흘렀다.?그러나 매 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두 혁명가들이 밟았던 길은 단순히 과거의 지나간 역사일 뿐 아니라,?오늘날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현재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현재의 거울일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름을 딴?“로자 룩셈부르크 재단?(Rosa Luxemburg Stiftung, RLS)”에 장학금 지원서를 냈고,?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올 해부터 매달 생활비 보조를 받게 되었다. RLS는?1990년“사회분석과 정치교육 연합(Verein Gesellschaftsanalyse und politische Bildung e. V.)”이라는 명칭으로 출발한 교육 후원 재단이며,독일 연방의회 제3당인 독일 좌파당(Die Linke)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RLS는?2001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과?2003년 파리에서 열린 유럽사회포럼에 참여했고,?현재까지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적 활동들과 학술적 연구들을 조직하고 후원하고 있다. 1990년 이래 맑스 엥겔스 선집(Marx Engels Werke)의 편집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현재?MEGA라고 불리는,?맑스 엥겔스 전집(Marx Engels Gesamtausgabe)의 출간 역시 후원하고 있다.?전통적 좌파운동뿐 아니라 생태주의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도 후원하고 있으며,?그 이론적 성과들을 출간하고 관련 행사들을 개최하고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의 로고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의 로고

장학생 선발 과정에서도?RLS는 지원자의 학술적인 역량과 지도교수의 추천과 더불어 지원자의 사회적 참여도를 높은 평가 기준으로 세워놓고 있다.지원자가 정당,?노동조합, NGO,?정치단체 등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지,?또는 사회운동이나 난민 구호 같은 사회참여,?사회봉사 등의 활동을 수행한 경력이 있는지를 검토해,?지원자가 민주적인 사회 발전에 공헌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장학생으로 선발한다.?학술적인 지원과정을 통해 사회적 발전에도 기여하겠다는 재단의 취지가 장학생의 선발과정에도 녹아 있는 것이다.장학생 선발은 일반 전형과 외국인 전형으로 구분되지만,?일반 전형에 외국인도 지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여성과 외국인(특히 개발도상국가 출신)은 할당제를 적용해 선발 비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여성과 외국인 같은 소수자를 배려한 정책이다.

4월?11일과?12일에는 이번에 로자 룩셈부르크 장학금을 받게 된 학생들의 오리엔테이션 행사가 있었다.?이틀간 진행된 이 행사는 장학생들이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장학생들이 알아야 할 행정적인 규칙들과 절차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동시에?RLS에서 진행하는 여러 연구 프로젝트들과 연구모임들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들도 마련해 놓았다. RLS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유럽’?협동 연구과정”, “다원적 좌파의 재조직‘?연구과정”, “사회적 변형?:?사회-생태적 정의”?등이 있고, RLS?내에서 진행되는 자율적 연구모임들에는?“비판이론”, “비판적 심리학”, “페미니즘과 성 연구”, “아프리카 정책 연구”, “동유럽 정책 연구”, “법 정책과 인권”, “자본주의와 계급투쟁”, “유로화와 경체위기”?등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나와 비슷한 철학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명의 친구를 새로 알게 되었다.?터키에서 온 에크렘은 베를린 자유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생인데,?그는 자신의 논문 주제를?“알튀세르의 반국가적 코뮤니즘”으로 소개했다.?그에 따르면,?맑스주의는?20세

마리아나와 에크렘

마리아나와 에크렘

기 후반부터 심각한 위기를 겪었는데,이 위기는 단순한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존재론적 위기이며,?본인은 주로 알튀세르의 후기 저작들을 근거로,?알튀세르의 존재론적 연구들이 궁극적으로는 맑스주의의 존재론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작업이었음을 밝히겠다고 한다.?그는 이 때문에 알튀세르에게서 철학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는 분리될 수 없으며,?이러한?“이론 내에서의 계급투쟁”으로서 철학이라는 알튀세르의 구상은 그의?“반국가적 코뮤니즘”이라는 정치적 귀결로 이어져야 한다며,?이것이 그의 학위논문에 대한 구상이라고 소개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생이지만 베를린에서 거주하고 있으며,?앞으로는 빈에서 공부할 예정이라는(참고로 최근 빈 대학교 정치학과는 비판이론,?후기 구조주의,?맑시즘,?여성주의 등 젊은 급진 성향의 학생들이 선호하는 이론들이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정치이론의?‘메카’로 부상하고 있다.)?마리아나는 비판적 정신분석학의 재구성을 학위논문의 이론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고 한다.?그녀에 따르면, 1920년대 지식인들은 맑시즘과 정신분석학을 통합하려 시도했고 이러한 시도가?60년대까지 이어졌지만, 1960년대 이후 후기구조주의를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이 지닌 억압적 성격을 폭로하는 일련의 철학자들이 등장하면서,?정신분석학과 정치철학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큰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그러나 마리아나에 따르면,?이러한 후기구조주의의 반(anti)정신분석학은 반(anti)과학주의라는 이론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본인은 정신분석학을 새로이 전유함으로써 전통적 정신분석학의 억압적 성격을 탈피하면서도 후기구조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관점을 도출하고자 시도하겠다고 한다.

이렇게?RLS에서 나는 철학과 정치이론에 관심을 가진 다른 연구자 친구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었으며,?나의 관점을 넓힐 수 있었다.?나아가 구좌파의 획일성을 벗어난 다원주의적인 유럽 좌파의 재구성 같은 관심이 가는 주제들에 대해서 다른 연구자들과 관심을 교류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로자 룩셈부르크는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감했지만,?오늘날 그녀를 추모하며 그녀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붉은 로자’를 애도하고 있다.?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은 학술적 영역에서?‘이론적 실천’을 통해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세계를 위해 한 발 한 발,?무겁지만 동시에 사뿐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이 재단에서 재정적인 수혜와 더불어 폭넓은 학술적 교류 기회를 얻게 된 사실에 감사하며,?다시 한 번 그녀의 묘지를 찾아 장미꽃을 헌화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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