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집단살해 유해발굴 현장기록-파주이야기[지미갤러리]

Spread the love

민간인 집단살해 유해발굴 현장기록-파주이야기[지미갤러리]

 

 

글/사진 윤지미(한철연 회원)

 

민간인 집단살해 유해발굴 현장기록 (2월24일~3월4일)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지_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 인근, 민간단체 공동조사단의 발굴과정 >

발굴단은 3월 3일 현장보고회에서 2월 24일부터 3월 2일까지 발굴된 유해를 발굴 규정에 의해 최소 단위로 발표하였다. 최소 35구.

그러나 그날 오후 안경과 함께 3구가 더 발굴되었다. 공식적인 보고서에는 38구가 발표될 예정이다.

유품은 나중에 발굴된 안경을 제외한 버클과 고무줄, 여름옷의 흰색단추, 탄피와 탄두, 옷핀 등 82점으로 발표되었다.

학살당한 유해의 발굴은 곧 역사의 발굴이라고 한다.

발굴된 유해를 통해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전후의 혼돈기에 많은 민간인이 군과 경찰에게 집단 살해를 당했다.

1950년 7월,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할 겨를도 없이 군경에 의해 확인 사살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2014년 2월 25일 오전, 습기 많은 산성토양에서 부스러지고 조각난 유골들이 나타났다. 나무뿌리가 뼛속에 스며들도록 60여 년의 시간을 갇혀있던 유해가 드디어 비통하고 참혹했던 죽음의 순간을 생생하게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증언이 끝나고도 같은 민족이 겨눈 칼빈 총구 앞에서 급하게 떠올랐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살아서도 단순히 갑, 을, 병 등으로만 분류되었던 ‘보도연맹 사건’의 민간인들,?혹은 혼돈의 시기에 정치범으로 분류되어 진주형무소에서 갇혀있던 민간인들이 2014년 3월 4일?으깨진 두개골과 부서진 허벅지 뼈와 정강이뼈, 팔뼈, 치아, 그리고 잡뼈 등으로 분류되어 회색 컨테이너 속에 다시 갇혔다. ‘1950년 7월,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 인근에서 군경에 의한 민간인 집단 살해가 있었다’고 증언한 목격자도 살아있는데……..

진주시 유족회 개토제

진주시 유족회 개토제

2014년 2월 28일

2014년 2월 28일

유해 첫 발굴

유해 첫 발굴

유골

유골

유해 발굴 진행

유해 발굴 진행

유품

유품

발굴

발굴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