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추구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의 생산활동 [노동이야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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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추구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의 생산활동

?[노동이야기]-12

 

이 재 원(한철연 회원)

?1.?주인과 노예

겨울의 막바지,?봄이 오고 있다. P건설현장이다. H?인력회사에서 열 명 정도 함께 갔다.

아침 조회가 끝난 후 조별 모임을 했다.?나는 헬멧과 안전벨트는 이곳 하청화사에서 받았으나 각반을 준비하지 못했다.?나는 반장에게 딱 걸렸다. “당신은 돌아가.”?라고 반장이 말했다.?나는, “알겠습니다.?좀 여쭙겠습니다”라고 운을 떼었다.?반장이 말해보라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생존할 권리가 있지요?”?다시 반장이 수긍했다.?나는 거칠게, “돌아가라 하면 나는 무었을 먹고 살지?”라고 말했다.

내 딴에는 인권과 정의에 대해 말 한 것이었다.?인권 차원에서 모든 이는 생존권이 있다는 것,?이에 따라서 노동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는 의미였다.?그리고 사람을 기계의 부속품쯤으로 대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하기야 어떤 이들에게는 노예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더 이상 노예가 필요 없을 것이다.

그 날은 어찌 어찌 일했다.?함께 일하러 간 노인으로부터 들었다.?전에도 한번 모두 쫓겨 온 적이 있었다 한다.?그 와중에도 내 편을 들어 준 사람이 있었단다.?그러자 반장이, “모두 돌아가고 싶으냐”라고 했단다.?노인은 그 소리를 듣고,?또다시 쫓겨 가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단다.?그 날은 분위기 썰렁해서인지,?모두들 쉬지도 않고 일했다.

나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좋다.?노동은 인간 구원의 수단이자 해방의 도구로서,?노동을 통한 자기실현 과정에 있는 인간의 자기표현을 보여주는 낭만적인 글이요,?노동이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면서도 인간을 고양시키는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싸워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노예가 된다.?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처럼 비취진다.?주인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노예는 주인에게 봉사한다.?그러나 어느 순간 변증법적 역전이 이루어진다.?노예는 노동하면서 물질 법칙을 알게 되고 자연을 이용할 줄 알게 되면서?“일종의 ?자유(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게 이러한 변증법적 전환에 의해서 노예의 노동은 노예에게 자유를 되찾아 준다.?그러나 주인은 물질시계의 혹독함을 알지 못한다.?왜냐하면 그는 자신과 세계의 중간에 노예를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노예는 노동을 통하여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된다.?그러나 주인은 노예 없이는 살 수 없는,?노예의 노예가 된다.

며칠간의 아파트 천정공사 무임노동과 일주일간의 저임금 노동도 이 변증법을 믿기에 시작한 것이었다.

외국인?L과 둘이서 지방이서 일하는 천정 시공 작업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그러나 우리를 일 시켜주기로 한 팀장?Y의 제안을 듣고,?현명한?L은 즉시 자기는 일을 포기하겠다,?돌아가겠다고 말했다.

팀장은 처음 며칠간은 무임금 노동으로 일을 배우라고 했다.?그것도 우리가 목수이므로,?일을 이해하기 때문이라는 전제였다.?일을 배운 다음에는 때려먹기ㅡ일 한 만큼 공임을 받으라고 했다.

그러나?L이 돌아가자 상황이 변했다.?나는 졸지에 팀장?Y의 시혜대상이 되고 말았다.?나는?Y가 주는 대로 임금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2.?제골치기,?일명 때려먹기의 역사

농촌의 작업은 예전에는 모두 협동 작업이었다.?논의 김을 맨다 하자.?어렸을 때 본 광경이 눈에 선하다.?어디에서 그처럼 모여 들었는지 마을 앞 논들에 사람들이 가득,?일렬로 늘어서 이 논 저 논 할 것 없이 한꺼번에 김을 매어 나갔다.?그리고 내가 노동할 나이가 되어서는 모를 심거나 벼를 벨 때,?물결치듯 작업해 나가는 것을 배웠다.?앞 물결이 나아가면 뒤 물결이 밀려오듯,작업속도가 늦은 사람을 옆 사람이 조금씩 도와주다 보면 작업 대형이 비슷해진다.

고향 농민들 중에는 객지로 품을 팔러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그들이 배워온 작업방법이?<제 골 치기>이다.?누군가가?“제골 치기 해보자”고 제안 한다면 작업하는 사람들은 밭두둑 하나씩 맡아 오직 자기가 맡은 작업만 해 나간다.?다행히 이런 작업 방식은 그저 장난에 그쳤다.

사진-이재원

사진-이재원

제골치기는 지주들이나 마름들이 작업농민 등골 빼 먹기 위해 개발한,?농민 노동의 작업능률을 올리기 위한 방식이다.?지금도 남아있는 소작농 계약서에서 추측할 수 있다.?남쪽 지방의 지주들이 소작농과 맺은 계약에 지주는 소득의?7할을,?소작농은?3할씩 나누게 되어 있다.

풍성한 대지의 소작도 정작 당시의 농민들에게는 혜택이 아니라 저주였다.그토록 민란이 자주 일어난 것도 이유가 있다.?그리고 떨거지,?떼거지의 역사도 이런 소작 방식 때문이었다.?풍년 들면 소득의?3할로 근근이 연명하지만 흉년 들면 농민들은 먹을 것이 없다.?굶어 죽으나 난리를 일으켜 죽으나 죽는 것은 매 한가지 아닌가??또는 저항 대신 흉년 들지 않은 동네로 줄지어 얻어먹으러 고향을 떠나간다.?그리고 해를 넘겨 다시 농사지을 철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온다.?지주 일가의 신화 뒤에는 이처럼 농민들의 등골을 빼 낸 역사가 있다.

제골치기가 건축 작업 현장에 들어온 지는 정확치 않지만 오래 된 모양이다.일본인들이 말했다는,?노동판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놈들 우께(도급노동)?주면 죽을까봐 겁난다.”

어쨌든 때려먹기는 인간개인의 능력과 구성원들의 합의와 협동을 고려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건축 현장에서는 원청에서 하청으로,?하청에서 각 노동자에게?<때려먹기>식 노동 계약이 이루어진다.?벽돌공의 도급 노동은 한 장당?150원,?미장은 한 석방 얼마,?목수 내장 공사 한 세대당 얼마,?이런 식의 때려먹기가 현장의 현재 모습이다.?그 분야에서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자신의 밥 값 치르기에도 바쁜 구조가 때려먹기이다.

 

3.?천정 시공

천정 시공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무척 복잡하지만 방 천정 공사 작업 순서를 간단히 요약해 보련다.

우선 각재와 석고보드 등,?작업 재료를 작업 장소에 옮겨놓는다.

시공 레벨(높이)?지접에 먹금을 놓는다.

방의 커튼 박스를 짜,?먹선에 맞춰 창틀 위에 고정시킨다.

먹선을 따라 벽체에?3cm?각재로 반자 돌림을 고정시킨다.

반자틀을 기준으로 해서 우물 정자 형 반자틀을 만들어준다.

천정에 콘크리트에 못 밖는 타카를 사용하여 달대를 달아,?반자틀을 고정시킨다.

반자틀에 석고보드를 붙인다.

거실 천정 작업은 방 천정 작업보다 한 공정이 더 있다.?등받이 틀을 추가해야 한다.

도급작업은 대개 한 세대에 한사람이 들어가서,?혼자서 작업한다.

20년 전에는 이와는 다른 작업 방식이었다.?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눈빛으로 의견을 주고 밭으며 작업했다.

때려먹기 식의 노동에는 동료도 없다.?마치 월터 하프당크의 판화?“선차”(旋車?:Tretmuuhle)1)의 노예처럼,?소외되고 고독한 인간이 반자틀에 끼어있을 뿐이다.

그림출처 도로테 죌레, 사랑과노동,박재순 역, 한국신학연구소, 1987

1) 그림출처
도로테 죌레, 사랑과노동,박재순 역, ?한국신학연구소, 1987

그것이 문제였다.?혼자 작업하는 경우,?작업자들의 이야기는,?답답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외톨이 작업 과정 때문일까,?작업이 끝나면 그들은?“저렇게 먹어도 사람이 살 수 있는가”,?생각이 들 정도로 소주를 마셔 댓다.

내가 효자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적어도 술 먹는 방식은 술 배울 때 선친이 당부한 것을 평생 따랐다.

<소주와 양주는 마시지 말아라.?맥주와 막걸리는 마셔라.>

왜 이렇게 나를 가르쳤는지 모르는 채 이 당부를 지켰다.?소주는 안 마셨다.한 잔에 기절한다.?선물 들어온 양주는 좋아하는 사람을 주었다(이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늙어서야 그 의미를 알았다.?소주,?독한 술일수록 중독이 빨리 된다는 것,?그리고 양주는 가짜가 많아 몸을 해친다는 의미이다.?고독하지 않다면 노동자들이 그토록 몸을 해치도록 술을 마시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4.?정의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시대,?그리고 봉사노동

나는 우께,?때려먹기 천정 공사에 적응하지 못했다.?내가 기능이 떨어지고 작업 속도가 늦은 것이 큰 이유였다.?또한?6시 반에 시작해서 늦도록 작업하는 탓에 체력과 관절이 견디지를 못했다.?강도 높은 노동에 비해 내가 차지할 돈이 작았다.?능력대로 돈을 받는 사회라면 나는 때려먹기 노동자 축에 끼지도 못하는 셈이었다.?따라서 나는 노동하지만 노동자는 아닌,?이상한 존재일 것이다.

노동자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기고 죽음으로 이 사회의 부당 노동 정책에 저항했다. “부의 불균형과 노동에 대한 비정당한 대가….?이건 자본주의가 아니야.?부의 균형,?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게 자본주의,?민주사회인데.”(고 이남종씨 메모-한겨레신문)

인간 권리,?존엄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든 인간은 생존이 보장되어야 한다.?이것은 민주주의에 해당하는 언사이다.?이에 비해?“능력에 따라서”?분배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입장이 될 것이다.?그러나 도급 노동,?때려먹기는 외향적으로는 능력에 따라서 임금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능력급도 아니고 인권의 입장에서 분배하는 것도 아니다.?그 출발점에서 원청,?하청,?재하청의 원환구조 끝에 자리 잡은 착취 구조가 있다.?애저녁에 공평한 분배 구조가 아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회 구성원들 간에 정의에 대한 동의 구하기가 참으로 어렵다.?출발이 공평하지 못한데,?계약 자체가 불평등을 가진 채 출발하는데 누가 이러한 노동 계약을 정의롭다고 할 것인가?

나는 극악한 시대에 있었던 노동 운동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대 공황기 미국에서 있었던 사례이다.?캄보디아 한국 회사에서 저임금 노동자에게 총을 쏘았듯이,?굶주린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고용한 총잡이들이 총알 밥을 먹이던 시대(포드 자동차)에, <노동 나눔 운동>이 있었다.?이 구성원들은 노동이 필요한 사람에게 무상으로 일을 해 주었고,자발적으로 녹색혁명을 이루는 노동에 참여했다.?봉사 노동이었지만,?이 노동이 사람들을 구했다.?뉴딜 정책은 이처럼 일하려는 사람들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었지,?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봉사노동의 분야는 지금도 무궁무진하다.?병든 사람,?늙은 사람 등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 노동도 있다.?또는?<아름다운 가계>에서 보듯이,?소외된 이들을 돕기 위한 봉사노동도 있다.?문제는 봉사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생활비를 누가 제공할 것이냐의 여부이다.?간신히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정신을 나누는 노동이 있다면 자기의 소유를 나누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마르크스의?<발췌>에서 보듯,?이윤추구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활동은 우리를 삶의 표현으로,?인간적인 욕구 충족으로,?인간 공동 본질 실현으로 인도한다.?이는 변증법적 구조를 갖는 논리이다.

이윤추구로서의 노동이 아니라면,?각 사람은 노동을 통해 자신과 타자를 상호 인정하게 된다.?왜냐하면 노동하는 사람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것이고,?이처럼 자기 표현으로서의 노동은 그에게 창조하는 기쁨을 맞볼 것이다.

상대방은 이 사람의 노동의 생산물을 향유하며,?기쁨을 느낀다.?모든 창조하는 이는 바로 이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생산물을 기꺼워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이것이 노동하거나 창조하는 자의 진정한 욕구이다.

따라서 노동하여 창조한 사람이나,?이 생산물을 향유하는 사람은 상호간의 존재를 보충해 주는 사람이 된다.?서로서로 각 사람의 사유,?사랑 안에서 상호 승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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