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방법서설>[철학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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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방법서설>?[철학자의 서재]

 

박정하 (성균관대학교 교수)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 한 것임을 알립니다.

 

 

1. 데카르트, 그는 누구인가?

데카르트는 17세기 초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서, ‘근대 철학의 아버지’ 혹은 ‘근대성의 아버지’라 불린다. 데카르트가 산 시대는 결코 평온한 시대가 아니었다. 그 시대는 중세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근대라는 새 시대가 탄생하기 위한 해산의 고통을 겪던 격변기요 과도기였다. 사회적으로는 종교 개혁 때문에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종교 세력이 복잡한 갈등 속에서 30년 전쟁(1618~48)을 치렀고, 오랜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상태에서 고통 받던 시대였다. 사회가 불안했기 때문에 신비주의와 미신이 널리 퍼져 정신적으로도 혼미한 상태였다.

르네 데카르트(Rene-Descartes, 1596~1650)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데카르트는 젊은 시절 전쟁터에 뛰어들기도 했고 세상을 배우기 위해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방랑 생활도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세상 온갖 일의 허무함, 무의미함을 느끼고, 혼자 숨어살면서 오직 진리 탐구를 위해 일생을 바치려고 노력했다. 그런 진지한 삶의 역정을 겪은 끝에 데카르트는 합리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떠올라, 길 잃은 나그네처럼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이 중세의 낡은 사고방식과 세계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주체의 확립’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근대성의 기초를 닦고 문을 열어젖히는 역할을 하였다.

<방법서설>은 데카르트 사상의 주제들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요약하고 있어서 그의 사상 전체를 아주 잘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방법서설>의 제4부에서만 간략히 다룬 철학의 주제들에 대해 체계적이고 완전한 설명을 제시하는 책은 1640년에 나온 <성찰>이다. <성찰>에 대해서는 당시 중세 철학을 고수하던 철학자는 물론이고 중세 철학에 반대하여 새로운 철학을 추구하던 사람들도 가세하여 열띤 찬반 논의를 펼쳤다. 이론적인 반박만이 아니라 무신론과 신성 모독죄로 공공연히 고발당하는 사태까지 겪으면서 데카르트는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2. 근대성(modernity)의 아버지

 

▲<방법서설>(르네 데카르트 지음, 최명관 옮김, 서광사 펴냄). ⓒ서광사

 

이 책들에서 데카르트는 근대성(modernity)의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근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각 개인을 주체로 확립했다는 것이다. 흔히 중세의 신(神)중심주의에서 근대의 인간중심주의로 넘어왔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때 ‘인간’은 개인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서양 고대도, 특히 그리스의 사상도 인간중심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인간은 사회에서 독립된. 사회 이전에 더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서 비로소 자기 정체성을 부여받는 공동체적 인간이다. 폴리스라는 도시국가 안에서 사회적 역할과 지위를 부여받음으로써만 개인은 개인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충족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폴리스에서는 좋은 인간이기 이전에 좋은 시민으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흔히 ‘정치적 동물’, 혹은 ‘사회적 동물’로 번역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명제는 정확한 의미를 따지자면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이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근대의 인간은 이러한 공동체적 인간, 즉 공동체 속에서 의미와 정체성을 부여받는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으로서의 원자적인 인간이 먼저 있고, 사회는 이 인간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성립된다. 사회가 개인에 의해 의미 부여되는 것이다. ‘사회 계약론’이라 부르는 근대의 주류 사회철학 이론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근대 계몽주의의 완성자라 평가받는 칸트는 근대 주체의 모습을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계몽이란 우리가 스스로 책임져야할 미성년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미성년의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런 미성년 상태의 원인이 [신체적이거나 환경적인 요인 등으로 인하여] 이성의 결핍 자체에 있을 경우에는 물론 그렇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도 스스로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고자 하는 결단과 용기의 결핍에 있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마땅히 스스로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몽의 표어로 우리는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즉 ‘과감하고 지혜롭고자 하라! 너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라고.”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이처럼 어떤 다른 권위나 힘의 강제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자율적인 근대 주체의 모습이다. 결국 주체를 주체이게끔 만드는 실질적인 내용은 바로 이성인 셈이다. 자신의 이성을 스스로 사용할 수 있을 때 주체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주체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개인을 주체로 확립했다는 것은 각 개인이 바로 이렇게 자율적으로 이성을 사용할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확립했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렇게 인간이면 누구나 다 이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스스로 사용할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바로 데카르트는 근대성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초판본(1637) ⓒgreenbee.co.kr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한다.

“양식(良識, good sense)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것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는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상으로 양식을 가지고 싶어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점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것은 잘 판단하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으로부터 가려내는 능력, 바로 양식 혹은 이성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나면서부터 평등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체의 확립을 선언하는 부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양식을 가지고 이에 기반해서 사고할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은 오늘날에는 너무도 당연시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상식(common sense)’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상식이란 개념은 바로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양식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지금이야 너무 일상화되었지만 근대 전체를 떠받드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사실 중세까지는 인간이면 누구나 다 양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세 신분제를 정당화하는 중요한 토대 중에 하나가 인간은 날 때부터 능력을 다르게 타고나기 때문에 다르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봉건 귀족 계급은 이성을 갖추고 양식을 타고난 계급이기에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있고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농노 계급은 이성을 갖추지 못한, 따라서 양식을 갖추지 못한 계급이기에 배워도 소용없고, 봉건 귀족의 지도와 지배를 받아야 하는 계급으로 규정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양식 여부에 따라서 신분을 나누던 시대의 끝자락에서 데카르트는 혁명적 선언을 했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양식을 갖추고 있다”라고. 이는 중세 신분제에 대한 마지막 진혼곡을 울리는 선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선언 이후 근대 사회는 이른바 상식에 근거한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사실 근대 초까지도 많은 정치철학자는 민주주의를 반대하였다. 이른바 ‘중우(衆愚) 정치’를 초래한다는 이유였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하는데 그러면 어리석은 대중이 머릿수로 밀어붙일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인간이면 누구나 다 이성을 갖추고 이를 스스로 사용하는 자율적인 주체라는 데카르트식 생각이 확보되면서, 그렇다면 다수가 찬성하는 쪽이 올바른 판단에 가까울 것이라는 결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저 선언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3. 방법적 회의

이러한 데카르트 사상의 핵심이 잘 응축되어 있는 책이 바로 <방법서설>이다. <방법서설>은 아주 짧은 책이다. 정식 제목은 “이성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모든 학문에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의 서설”이다. 6부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언뜻 엉성하고 치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사상 전체를 쉽고 간결하게 압축하고 있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은 데카르트가 과학과 철학의 전문가들보다는 일반 대중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쉽게 쓴 책이다. 당시에 학자들은 책을 쓸 때 어려운 라틴어로 썼는데 그는 이 책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프랑스어로 썼다.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학자들이 한문으로 책을 쓰던 조선 중기쯤에 한글로 쓴 격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데카르트 자신의 말에 따르면 학문을 잘 모르는 부인네들조차 무언가 깨달을 수 있도록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데카르트가 이 책을 통해서 제시하려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정말 대담하고 야심만만하게 철학의 기초를 새롭게 놓으려 했다. 그는 중세와 근세의 건널목에서 길 잃은 나그네처럼 방황하고 있는 철학에서 새로운 방법을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를 “방법의 철학자”라고 자주 부른다. 그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규칙을 4가지로 압축하여 제시한다.

“첫째는 내가 명증적으로 참되다고 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조심하여 피할 것, 그리고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을 정도로 아주 명석하게 또 아주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내 판단 속에 넣지 않을 것.

둘째는 내가 검토할 난제의 하나하나를 될 수 있는 대로 그것들을 가장 잘 해결하기에 필요한 만큼의 소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는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아가되,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위로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들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자연대로는 피차 아무런 순서도 없는 것들 간에도 순서가 있는 듯이 단정하고 나아갈 것.

그리고 끝으로,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매거(枚擧)와 전체에 걸친 통관(通觀)을 어디서나 행할 것.” (<방법서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진리 탐구를 위한 방법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진리인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 것. 속단과 편견을 피할 것.
둘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쪼개서 탐구할 것. (분석의 규칙)
셋째, 가장 단순한 것부터 시작하여 점점 복잡한 것에 다가갈 것. (종합의 규칙)
넷째, 문제의 요소들을 다 열거하고 그 중 단 하나라도 빠뜨리지 말 것.

그리고 유명한 이 4가지 규칙 외에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도덕으로 신중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을 제시하고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 규칙들을 보면서 실망 반, 비웃음 반으로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무슨 엄청나고 대단한 규칙인 줄 알았더니 그게 뭐냐면서 속았다고 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규칙들은 오늘날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고 초등학생들에게도 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워낙 상식적인 것이니까 이 규칙들은 어느 시대에서나 당연히 알고 있었고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독단적이고 공허한 중세 스콜라 철학이 지배하여 실제로 이 규칙들이 무시되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이런 규칙들을 철학 연구에도 적용하여 철학을 새롭게 세우려 했다. 이때 그가 제시한 규칙 가운데 특히 첫째 규칙이 잘 통용되고 있는 전형이 수학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수학의 정확한 방법을 철학에 도입하여 철학을 중세의 신비적이고 사변적인 암흑에서 끌어내고 철학을 수학, 특히 기하학과 같이 확실하고 명증하고 투명한 학문으로 확립하려 했다.

“나는 수학을 특히 좋아하였는데 이것은 그 추리의 확실함과 명증성(明證性)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참된 용도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학이 기계적 기술에만 응용되고 있음을 생각하고서 그 기초가 아주 확고하고 견실한 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위에다가 더 높은 건물을 세우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이와는 반대로 나는 도덕을 다룬 고대 이교도들의 저술은 화려하고 웅장하나 모래와 진흙탕 위에 세운 궁전과 같다고 본다. 그들은 여러 가지 덕을 대단히 찬양하고, 세상의 어느 무엇보다도 더 존중할 만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충분히 가르쳐주지는 못하고 있으며, 또 그들이 그토록 훌륭한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이 가끔 냉혹이나, 교만이나, 절망이나, 친족 살해에 지나지 않는다.” (<방법서설>)

그렇다면 수학을 모델로 해서 얻은 새로운 방법으로 철학의 물음들을 다룬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데카르트도 신의 존재라든가 인간 정신의 본질과 같은 중세 철학이 제기한 물음을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진정 학문으로 다루려면 신비적이고 추상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되고 확실한 토대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학이 엄밀한 학문일 수 있는 이유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공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다” 또는 “평행하는 두 직선은 만날 수 없다”와 같은 명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성을 가진 공리들이다. 수학은 이러한 공리들에서 출발하여 구성된 체계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 시간에 도형의 어떤 성질을 나타내는 ‘정리’가 참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증명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 바로 이 증명에서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공리’다. 그러나 ‘공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리는 스스로 명백히 참인 것이고 따라서 최초의 출발점, 제1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철학도 확실한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수학의 공리와 같이 직접으로 확실하고 명백해서 철학의 전체 구조를 떠받쳐 줄 수 있는 토대가 되는 한 점을 발견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절대 확실한 시작에 도달하려면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없이 진리라고 여겨 온 것들을 일단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대담하게도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뒤엎어 버리고 첫 번째 기초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철저한 의심 속에 자신을 내던진다. 데카르트의 이런 작업을 ‘방법적 회의’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근세 철학의 결정적인 일대 변혁을 이룩한 과정이었다.

4. 제1원리를 찾아서

데카르트가 활동했던 시기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회의주의의 시대였다. 당시는 아직도 과학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이는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믿을 만한 방법이 없던 시대였으며,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던 시대였다. 이렇게 회의주의가 팽배하게 된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바로 종교였다. 단 하나의 종교적 진리만을 인정하던 중세의 권위에 도전하여 다양한 문제제기가 등장함으로써 종교적 진리가 어떻게 획득될 수 있는가에 대해 백가쟁명식 논쟁이 벌어졌다.

데카르트도 바로 이런 회의주의라는 시대의 분위기 중심에 있었음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알 수 있다.

“철학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은 것만 말하겠다. 즉 철학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우수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연구되었으나, 논쟁의 여지가 없는, 따라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직 하나도 없음을 보고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해 나아가리라는 자부심은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문제에 관하여는 참된 의견이 하나 이상 있을 수 없을 터인데 실제로는 갖가지 많은 의견이 있으며, 또한 그것들이 학식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주장되고 있음을 보고서 나는 참인 듯 보이는 모든 것을 거짓에 가까운 것으로 여겼다.” (<방법서설>)

이런 회의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를 확고한 기초 위에 놓을 수 없는가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로 부각되었으며, 지식을 획득하고 축적할 방법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식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방법을 확립하려는 관심이 17, 18세기 철학의 주된 관심으로 부각된 것이다. 데카르트는 바로 수학적 방법에 의해 이 문제를 해결하여 보편학(mathesis universalis)을 확립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던 인물이다.

방법적 회의는 바로 이런 보편학을 확립할 수 있는 토대를 찾는 작업이다. 어떤 회의주의보다도 저 지독한 회의를 통해 어떤 회의주의도 승복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토대를 확보하자는 전략인 것이다. 적의 무기로 적을 무찌르는 역설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문제마다 의심스럽고 잘못하기 쉬운 점들을 특히 반성하면서, 전부터 내 정신 속에 스며들어 있던 오류를 모두 차츰 뿌리 뽑았다. 그렇다고 내가 의심하기 위해 의심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는 회의론자를 흉내 낸 것은 아니었다. 이와 반대로 내 모든 계획은 내 스스로 확신하고, 무른 흙이나 모래를 젖혀 두고 바위나 찰흙을 발견하자는 것이었다.” (<방법서설>)

그런 확실한 토대를 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제1원리’라고 부른다. 바로 이 제1원리를 찾기 위한 실험적인 작업이 방법적 회의인 것이다. 보편학의 토대가 될 제1원리는 어떤 회의주의도 무너뜨리기 힘들 정도로 ‘확실(certain)’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돌다리도 두들겨 가는 심정으로 이 확실함을 굉장히 강하게 규정한다. 확실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데카르트에 따르면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오직 진리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앞에서 했던 것과는 반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법서설>)

현재 의심하지 않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의심 불가능한 것을 찾으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이다”라는 주장은 확실한 것인가? 아마 여러분은 대체로 이런 주장을 참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아무런 의심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도 데카르트에 따르면 확실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의심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한테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시간에 어떤 이유 때문에 수도를 다른 곳으로 바꾸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그동안 우리가 참된 지식으로 믿고 있던 것들의 확실성을 하나씩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을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어떤 사람이 사과를 한 바구니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몇 개가 썩어 버려서 나머지 성한 사과도 썩게 될지 모른다고 하자. 그래서 썩은 사과들을 내버리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우선 모든 사과를 바구니에서 꺼내 놓고 나서 하나씩 자세히 검사하여 썩지 않은 것만 골라 다시 바구니에 담은 다음 나머지는 버리지 않겠는가?” (<성찰>)

데카르트는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한 것이라고 여겨온 것의 토대를 의심해 보자마자 모든 것이 흔들거리기 시작함을 느꼈다.

▲ <방법서설/성찰/철학의 원리/정념론>(데카르트 지음, 소두영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 ⓒ동서문화사

우선 감각적인 지식부터 의심해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많은 사물이 정말 내가 보는 대로 내 밖에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우리 눈은 우리를 속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속의 막대기가 휘어져 보이는 빛의 굴절 현상이나 똑같은 색이 바탕색에 따라 밝기가 달라 보이는 착시 현상 등에서 종종 경험하듯이 감각은 우리를 자주 속이기 때문에 100퍼센트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의심 속에서도 최소한 내 몸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을까? 그러나 조금만 주의해 보면 그 확실함도 무너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꿈을 꾸면서 내 몸이 벼랑에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땀을 흘리기도 하고 물에 빠진 것으로 착각하여 두려워하기도 한다. 따라서 내 몸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이 절대로 꿈일 리 없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흔들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또 하나의 진리가 있다. 예컨대 “2+3=5″라는 수학의 진리나 “물체는 무게를 가진다”는 과학의 진리는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모든 인식의 기초가 되는 이런 진리마저도 데카르트가 근원적으로 철저히 회의하자 무너져 버리고 만다. 실제로는 2+3=5가 아닌데 만일 신이 인간을 2+3=5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면, 즉 신이 인간을 근본적인 기만과 본질적인 왜곡과 비진리 속에서 살도록 창조해놓았다면 어떻게 되는가? 신이 과학과 철학이 끊임없이 주장해 온 ‘진리의 원천’이 아니라 ‘기만하는 신’ 또는 더 나아가 ‘악의에 가득 찬 악마’라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수학의 원리까지도 의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그런 문제를 추론하면서 까지도 오류를 범하였으며, 지금은 오류라고 밝혀진 것을 이전에는 확실하고 자명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창조한 신은 모든 것을 자신이 바라는 대로 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물에 대해서까지 도 우리가 항상 속임을 당하도록 신이 우리를 창조하였는지 아닌지를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철학의 원리>)

이런 얘기는 억지 주장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데카르트도 신성모독의 위험 때문에 주춤거린다. 그러나 중세 전체를 통해 절대시된 신에 대해 감히 가설로라도 대담하게 의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근대로 한 발짝 더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최고의 권위인 신조차도 비판적 이성의 회의 대상으로 놓고자 하는 진정한 근대적 자율적 주체의 모습을 몸소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나는 진리의 원천으로서 최고선인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악령이 존재하며, 그 악령이 나를 속이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가정해보겠다. 또한 나는 하늘, 대기, 달, 색채, 외형, 소리 그리고 모든 외계의 대상들이 단지 허황된 꿈에 불과하며 악령이 나의 고지식함을 이용해서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고 가정해 보겠다. 또 나 자신은 손도 귀도 살이나 피, 감각 기관도 없는데 단지 자기가 이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는 잘못된 신념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겠다. 나는 이런 생각을 굳게 지니면서 다음과 같은 결심에 따를 참이다. 즉 이제껏 내가 생각해 온 것처럼 어떤 진리를 알아낼 힘이 내게 있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잘못된 것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며, 또 나를 속이는 자가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할지라도 그가 나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도록 가만히 있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성찰>)

 

5. 주체의 확립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앎의 모든 확실성이 무너져 버린 바로 그 자리에서 역설적으로 하나의 새로운 확실성이 생겨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을 전부 의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고, 내가 의심하는 한 의심하고 있는 나는 존재해야 한다. 의심하는 나에 대한 확실성은 신이 사기꾼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 신이 나를 속일지라도 속는 나는 존재한다. 이렇게 해서 데카르트는 유명한 명제,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사기 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에 이르게 된다.

“내가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려고 애쓰는 동안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야말로 반드시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이 진리,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견고하고 확실하여 아무리 과장이 심한 회의론자라도 이 진리를 뒤집어엎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이것을 내가 찾아 헤매던 철학의 제1원리로 받아들이는데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방법서설>)

“나, 바로 내 자신은 어떤 것도 아니란 말인가? 나는 이미 내가 감각과 육체를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였다. 이제 나는 이로부터 또 무엇을 생각해낼 수 있는지 주저하고 있다. 나는 육체와 감각들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것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가? 또한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즉 하늘도 대지도 인간의 정신과 육체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내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가? 거꾸로 만일 내 자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전지전능한 기만자가 있어서 항상 의도적으로 나를 속인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가 나를 속인다 할지라도 나는 존재한다. 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나를 속여보라고 하더라도 내가 내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끔 속일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심사숙고해 본 후에 나는 결국 ‘나는 존재한다’, ‘나는 현존한다’는 명제는 내가 그것을 말하건 아니면 마음속에 품건 간에 필연적으로 참이라고 결론짓게 된다.” (<성찰>)

데카르트가 철학의 기초로 세운 이 명제에 대해 그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말할 사람도 있음직하다. 그러나 이 명제는 상당히 깊은 의미를 갖는다. 이 명제는 근원적인 확실성을 신에게서 찾은 중세 철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사유, 인간의 자의식에서 철학의 토대가 되는 확실성을 찾음으로써 서양 사상의 새 장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명제가 갖는 사유하는 주체가 갖는 확실성이 모든 진리의 기준이 되고 참된 사고 밑에 놓여야 할 기초가 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 안에 사고하기 위해서 나는 존재해야만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 외에는 참이라고 보증된 어떤 사실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우리가 매우 명석하고 판명하게 사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참이라는 점을 일반적 규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성찰>)

이처럼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신이 아닌 인간이 진정한 주체로서 모든 확실성의 근원임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바로 ‘내’가 출발점이고 기초임을 보여 주었고, “사고하는 나”를 제1원리로 하여 형이상학을 구성하고, 이 형이상학은 자연학, 기술학, 의학, 도덕학 등 실천학을 근거 짓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이로써 인간이 자신의 두 다리로 서서 오직 자신으로부터만 솟아나는 확실성에 따라 진정한 주체가 되는 근대성의 특징을 데카르트는 최초로 정초하게 된다. 모든 것은 바로 또한 자연도 이제 중세 세계관에서처럼 신성한 피조물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며 토대인 인간이 적극으로 파악하고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된다. 결국 데카르트의 이 명제는 신 중심의 중세 세계관에 치명타를 먹이면서 근대의 인간에 대한 ‘주체성의 철학’이 확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해서 근대 주체는 지금까지 발전의 과정을 밟아왔다. 그 자세한 내막을 여기서 다 추적하기는 힘들겠지만, 중요한 발전 단계들을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다. 데카르트가 최초로 개인을 주체로 확립했지만 너무 개인 개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다보니 ‘나’에서 벗어 나오지 못하고 유아론(唯我論)적 성격에 빠져 버렸음은 잘 알려진 문제이다.

이에 대해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 이성의 활동인 수학과 과학이 가진 보편성을 토대로 하여 인간 이성이 보편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여 주체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구조를 밝혀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칸트의 주체는 보편성을 강조하다보니 탈역사적이고 탈시간적인 성격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헤겔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주체에 역사적, 사회적 성격을 부여하여,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는지를 해명하려고 하였다. 마르크스는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물론적 접근을 통해 주체의 사회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노동하는 주체, 계급으로서의 주체 개념을 확보하였다. 하버마스는 다시금 한 차원 더 넓혀 주체가 다른 주체와 맺는 관계가 중요한 측면임을 해명하면서 의사소통적 주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근대 주체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 발전되어 가는 첫걸음을 데카르트가 내디디고 있고, 그 면모를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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