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릴레이 시국선언⑤-‘민주주의’라는 유령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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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유령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조은평(건국대 비정규직 교수 노동자)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이 유령에 맞서 집권세력들은 ‘종북’과 ‘안보’라는 낡아빠진 카드를 들이밀며 이 유령의 출몰에 대응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허울 좋은 명목을 내세워 낡고 늙은 보수주의자들의 결집을 호소한다.

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라는 유령의 출몰을 초래한 것은 바로 집권세력 자신들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이 국정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죽음을 애도하며 분노하는 외침이 시작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절차에 국가 기관이 개입한 사건. 그래서 대통령 선거라는 중요한 민주주의적 절차를 훼손한 사건.

이런 민주주의의 죽음을 애도하며 전국에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 긴 세월을 거쳐 비로소 민주주의 공화국을 탄생시킨 시민들은 민주화의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유령이 배회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미 ‘민주주의’는 죽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저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고 믿으면서, 보다 민주적인 현실이 실현되리라 기대하고만 있었을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실재는 단지 ‘지연된 미래’에 불과하다는 걸 우린 잘 알고 있었다.

언론이 제대로 된 말을 전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무참히 쫓겨나 자살을 택했을 때, 빈민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교육 현장이 더 이상 제대로 된 현실을 가르치지 않게 되었을 때, 이미 ‘민주주의’는 한 걸음 씩 뒤로 밀려나 죽어가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지연된 미래’에 대한 기대감마저 철저히 무너져 내렸을 때, 오늘날처럼 ‘민주주의’라는 유령은 다시금 그 봉합된 틈새를 뚫고 출몰하는 법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 유령이 배회하는 오늘날의 상황은 더 의미심장하다.

집권 세력은 점점 더 초조해 하며, 이 유령의 출몰을 어떻게든 봉쇄하려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출몰한 유령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거리를 채우고 있는 촛불의 물결은 이제 점점 더 큰 물결로 넘쳐날 것이다. 그리고 그 물결 속에서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건을 경험한 우리들이 단지 책임 있는 사과나 국정원의 개혁만을 요구하며 머뭇거릴 때, 앞으로 또 다시 새로운 ‘민주주의’의 유령은 언제든 다시 출몰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국의 민주주의자들이여 단결하라! 각자의 민주주의 슬로건으로 이 유령의 출몰에 함께하라!’고. 아마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민주주의자들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기에 이 슬로건은 터무니없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유령의 요구가 무엇인지. 어쩌면 바디우가 말한 ‘모두의 귀족되기!’, 그래서 우리 모두가 우리 삶을 좌우하는 현실에 관여할 수 있기를 요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령이 요구하는 민주주의다. 당신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게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내라! 그리고 함께 이 유령의 출몰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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