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을 통해 본 일제와 현대 [썩은 뿌리 자르기]
[썩은 뿌리 자르기]
번역을 통해 본 일제와 현대
글: 강경표 (중앙대 박사과정수료)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진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청산하지 못한 슬픈 근대 이야기, 역사적 가정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지워버리고 싶은 수치스러운 역사, 우리는 이 시대를 일제식민시대라고 부른다. 학문의 수용 과정에서도 일제식민시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학문 용어의 대부분이 일본을 통해 수입되고 정리된 서구의 용어들이라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진화(進化)’ 또한 일본에서 수입되고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과학 용어다. ‘과학(科學)’이라는 용어 또한 일본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물론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라고 해서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니다. 청산해야 할 과거의 유물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용어가 번역이 되고 개념이 형성되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일제식민시대를 거치면서 자리 잡은 학문용어들에 대한 반성은 불가피하다.
안타깝게도 근대 서구 학문을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시대에 우리는 중국과 일본을 통해 ‘진화(進化)’라는 개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일제식민시대에는 사회적?제도적 제약으로 이?공학 분야에서 전문 연구자로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조선인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진화(進化)’라는 개념 또한 학문적 또는 과학적으로 수용되었다기보다는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수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과학용어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관찰용어와 이론용어로 구분할 수 있다. ‘진화(進化)’라는 용어는 관찰용어라기보다는 이론용어에 가깝다.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이론체계가 성립된 이후 ‘진화(進化)’라는 용어의 사회적 파급력은 대단했다. 그렇게 탄생한 학문이 바로 사회진화론이다. 그러나 사실 사회진화론은 학문이라기보다는 당시 서구열강의 우월함을 이론화하고 정당화한 교리에 가깝다.
사회진화론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일본을 포함한 서구열강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배를 받는 약소국과 식민지에서도 계몽의 논리 또는 자강의 논리로 사회진화론이 수용되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 사회진화론이 유입된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근대 유학생 1호로 알려진 유길준에 의한 미국식 사회진화론과 윤치호를 통한 일본식 사회진화론, 박은식, 신채호,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중국식 사회진화론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가 서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특징을 갖는다. 미국식 사회진화론과 일본식 사회진화론은 서구열강의 강자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그 맥락이 비슷하지만 중국식 사회진화론은 당시의 중국 사정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측면에서 강자의 논리를 극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진화(進化)’라는 용어가 수용되는 과정에서도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은 거의 동시적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중국식 개념은 사라지고 일본식 개념만이 남았다.
‘Evolution’의 번역과 수용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직접적으로 진화 개념의 형성을 살펴보자. ‘진화(evolution)’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에볼루티오(?vol?t?o)’에서 유래한다. ‘에볼루티오(?vol?t?o)’는 ‘풀어 가는 행위(action de d?rouler)’, ‘굴러가면서 실어 나르다, 두루 돌아다니다(parcourir)’라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다. ‘에볼루티오(?vol?t?o)’는 ‘두루마리처럼 말린 것이 펼쳐지는(unrolling)’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되기도 했다.
또한 우리 중 일부는 ‘진화(evolution)’라는 개념이 다윈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용어를 진화론적인 의미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지질학자 라이엘이다. 그는 『지질학의 원리』 제 2판에서 개체발생(ontogeny)과 계통발생(phylogeny)을 ‘진화(evolution)’라는 하나의 용어로 모호하게 뭉뚱그려 사용했다. 이는 진화 개념이 처음부터 다의성을 함축할 수밖에 없었음을 뜻한다.
다윈이 『종의 기원』 초판에서 ‘진화(evolution)’라는 명사형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음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진화했다(evolved)’라는 동사를 한 번 썼을 뿐이다. ‘진화’ 대신 그가 썼던 것은 ‘변이를 수반한 계승(de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표현이었다. 그가 진화라는 단어를 선호하지 않았던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이 개념이 이미 목적론적인 발전 경향을 의미하는 방식으로 발생학에서 사용되었던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진화(進化)’라는 개념을 열렬히 전파시킨 사람은 다윈이 아닌 다윈과 동시대의 철학자 겸 사회학자 스펜서였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의 핵심은 생명체가 진화의 과정에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균질적인 것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지속적으로 진보해왔듯이 사회, 정부, 산업, 상업, 언어, 문학, 과학, 예술의 발전 같은 우주의 모든 것들의 진화가 동일한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었다. 스펜서에게 진화는 생명체와 사회를 포괄하는 원리였다.
‘진화(進化)’라는 개념이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우리도 사회진화론을 통해 진화 개념을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중국식 번역과 일본식 번역의 차이다.
중국에서도 처음에는 ‘Evolution’의 음가를 그대로 차용하여 ‘이허루샹(義和綠尙)’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후에 옌푸(嚴復)가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Evolution and Ethics』(1894)를 『천연론 : 天演論』이라고 번역하면서 진화를 ‘천연(天演)’이라고 옮기는데, 여기서 ‘연(演)’은 ‘드러남’이나 ‘전개’를 뜻하며 천연이라 함은 ‘자연의 펼쳐짐 또는 드러남’으로 원어인 ‘Evolution’의 뜻에도 가깝다. 물론 옌푸는 ‘진화’라는 말도 함께 사용을 하고 있다. 이때 진화는 인종의 교화 혹은 사회의 발전이라는 뜻으로 자연선택의 결과만을 일컫는 지금의 진화와는 다르다.
일본에서는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에 의해 사회진화론이 수용되고, 사회진화론적 맥락에서 진화론의 용어들이 번역되기 시작한다. 가토 히로유키는 일본 메이지시대의 대표적인 관변지식인이다. 그는 원래 입헌정치를 주장했던 인물이었으나 일왕에게 강의를 한 이후부터 사상을 전향한다. 그는 『진켄신세츠(인간신설) : 人權新說』(1882)에서 ‘우승열패(優勝劣敗)’가 ‘세계 운행의 법칙’이라고 말하며, 『쿄사노켄리노쇼코(강자의 권리 경쟁) : 强者の權利の競爭』(1893)을 통해 사회진화론을 바탕으로 하는 전제군주 중심의 국가유기체론을 주장하여 일본제국주의 이념을 기초를 다진다.
당시 서구 학문을 독자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진화론의 개념들을 받아들임에 있어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어떤 번역이 더 원어의 개념에 부합하면서도 잘 된 번역인가를 생각할 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진화(進化)라는 용어가 ‘Evolution’에 적절한 번역인가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비교를 쉽게 하기 위해 진화론의 주요 개념들 중 중국에서 만들어진 번역어들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어들을 비교해 보면 다음 표와 같다.
정리된 표에서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번역어들 중 상당수가 일본식 번역에서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일제침략을 같이 겪었던 중국 또한 현재는 일본식 번역을 사용하고 있다. 이미 고정되어 사용되고 있는 번역어들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사소해 보이는 용어 하나에도 역사적 아픔과 제국주의의 망령이 녹아들어있는 것이다.
부활하는 사회진화론과 진화
우리가 사용하는 ‘진화(進化)’라는 용어는 사회진화론의 토대 위에서 수용되었다. 사회진화론을 토대에 두고 번역이 이루어지다보니 진화(進化)는 자연스럽게 ‘진보(進步)’를 수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진화는 진보를 수반할까? 혹시 번역어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사회진화론의 망령을 아직도 떨쳐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부케티츠에 따르면 진보는 과학적 개념도 아니며 진화론적인 개념은 더더욱 아니다.
필자의 짧은 과학적 견지에서도 근대의 사회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다. 이름을 바꿔 진화심리학이라고 부르든 사회생물학이라고 부르든 간에 사회진화론이 가진 사회?정치적 맥락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물론 현대의 진화심리학과 사회생물학의 과학적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현대에 들어와 사회진화론적 제국주의의 망령은 ‘통섭(Consilience)’이라는 번역에서 드러난다. ‘통섭(Consilience)’은 학문적 제국주의의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다른 학문들이 일방적으로 자연과학에 수직적으로 종속된다는 의미를 가진 이 용어는 ‘통섭(統攝)’이라고 해야 마땅하지만 한 국내 학자에 의해 ‘통섭(通攝)’이 되어 버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국내 역자는 ‘통섭(統攝)’이라고 번역함을 명시하지만, ‘통섭(通涉)’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번역도 하나의 창조물이고 번역자의 의도나 시대적 상황에 따른 의미가 추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번역의 자유는 있다. 그러나 번역어가 원래의 뜻을 왜곡하거나 또는 숨겨진 의도가 있을 때에는 번역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해야만 한다. 문제는 국내 역자의 의도를 떠나서 사회생물학을 피상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통섭(統攝)’을 ‘통섭(通攝)’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통섭(統攝)’은 ‘도맡아 다스린다’는 뜻으로 원래 불교와 성리학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다. 원효의 화엄사상에 대한 해설에서 자주 등장하며 조선 말기 실학자 최한기의 기(氣) 철학에도 등장한다.
‘통섭(通攝)’은 재미있는 신조어다. ‘통섭(通涉-사물에 널리 통함)’이라는 단어를 바탕으로 ‘통섭(統攝)’과 결합되어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단어는 굳이 말을 만들자면 ‘통하여 다스린다’는 뜻이 된다. 뜻을 달리하여 ‘끌어당겨 통하게 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번역의 억지스러움은 여전히 남는다. ‘다스린다’라는 말을 ‘끌어당기다’로 바꿔 이해한다고 해서 그 용어가 가진 원래의 뜻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통섭은 수직적 학문 통합의 의미인 ‘통섭(統攝)’에서 조금은 수평적이고 학제적 연구와 비슷해 보이는 ‘통섭(通攝)’으로 변모했지만 바뀐 것은 없다. ‘통섭(統攝)’이 생물학을 중심으로 한 학문 통합을 꿈꾼다면, ‘통섭(通攝)’은 유비쿼터스를 중심으로 인문학과 예술을 하나의 콘텐츠로 종속 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필자는 앞서 과학용어는 크게 관찰용어와 이론용어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섭(統攝)’은 어떠한 과학용어도 아니다. 다시 말해 과학적 탐색을 통해 만들어진 관찰용어도 이론용어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인간이 지식을 바라보는 하나의 태도에 불과하다.
서구 사회는 사회진화론을 근간으로 하는 우생학이 사회에 적용될 때 생길 수 있는 폐해를 아우슈비츠라는 공간을 통해 극단적으로 경험했고 그에 대한 반성 또한 철저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역사 속에 추정만 가능한 일제의 생체 실험과 우생학적 견지에서 시행되었던 나병 환자들의 격리와 불임 수술이 전부였고 그에 대한 비난은 있었어도 반성은 없었다. 사회진화론이 지배하는 근대적 틀 속에서 애국계몽운동을 하던 윤치호는 제국주의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강자의 논리에 순응하며 영원한 친일파로 남았다, 서정주는 스스로 자신을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라고 불렀으며 친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필자의 우려는 여기에 있다. 컨실리언스(Consilience)의 국내 역자는 자신의 번역은 ‘통섭(統攝)’이지만 통섭의 의미가 이중적이라고 했다. 통섭을 받아들인 다른 학자들은 통섭을 ‘통섭(通攝)’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통섭(通攝)’ 아닌 ‘통섭(統攝)’의 의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뇌 속에 각인되고 있다.
일제식민시대 사회진화론은 우리에게 자강과 독립의 의지를 심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자의 논리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태도도 만들어냈다. 또 다시 강자의 논리에 무릎 꿇는 지식인들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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