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출구』(상) “여성은 자기 육신을 글로 써야 한다. 여성은 난공불락의 언어를 창안해 내야 한다.”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3.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출구』(상)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
“여성은 자기 육신을 글로 써야 한다. 여성은 난공불락의 언어를 창안해 내야 한다.”
연효숙(여성과철학분과, 연세대)
엘렌 식수(Hélène, Cixous, 1937~ )는 뤼스 이리가레,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함께 제3세대 페미니즘을 이끈 여러 페미니스트들 가운데 신(新)프랑스 페미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다. 이들은 헤겔, 프로이트, 라캉 등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고, 라캉에게는 직접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플라톤 이래 서양 전통 형이상학, 즉 남성 이성중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해 왔고, 나아가 이를 전복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들이 썼던 주제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 가운데 공통적으로 꼽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주제는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가 될 것이다. 특히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의 선두로 평가될 수 있으며, 이 글에서도 이를 주목할 것이다.

<사진 2> : 『메두사의 웃음/출구』 한글본|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57495&srsltid=AfmBOopiOG8q9cPl24ee6udTp7GYMs0HWsNys-69QJHN5yqTUs-lfZC-
식수의 『메두사의 웃음』(1975)과 『출구』(1975)(『메두사의 웃음/출구』, 박혜영 옮김, 동문선, 2004, 이하 인용에서는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를 분리해서 쪽수 표기)는 그녀의 다양한 저작들 가운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식수의 저작 목록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있다. 그녀는 특별히 철학자라고만 불리지 않고, 작가, 극작가, 문예 비평가로 더 주목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저작 목록에는 적지 않은 소설들과 연극 대본들이 있다. 페미니스트로 평가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저작인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 등은 철학 저작이기보다는 에세이로 분류된다.
식수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자전적인 기록이 있다. 이는 『출구』의 앞부분의 ‘타자 살해’의 부분으로 식수가 태어난 배경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본인이 겪었던 성장 배경을 잘 적고 있는데 꽤 난해하다. ‘여성의 글쓰기에 다다름’ 바로 뒤에 이 부분을 식수가 배치해 놓았는데, 식수 자신이 왜 ‘여성적 글쓰기’에 다다르게 되었는지가 자신의 탄생 배경, 기원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식수의 국적은 프랑스이며 유대인으로 알제리의 옛 수도인 오랑에서 1937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유대인이자 내과의사로 식수가 어렸을 때 죽었고, 어머니는 독일 출신의 유대인으로 남편이 죽은 후 산파(간호사)가 되었으며, 알제리에서 다른 프랑스 의사들이 마지막에 추방당했을 때 알제리를 빠져 나왔다. 식수는 프랑스인이지만, 프랑스령인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다양한 인종 차별, 소수자 차별을 경험했다. 이때의 경험을 『출구』의 ‘타자 살해’에서 상세히 적고 있다. 그녀는 18세 이후에 결혼(10년 후 이혼)과 더불어 프랑스로 건너가서 영어 교수자격 시험을 보고 『율리시즈』를 쓴 제임스 조이스로 박사 논문을 쓰면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식수의 연구 활동에서 철학 연구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가늠이 안 되지만, 그 주 무대는 주로 문학, 창작의 영역이었고 발표한 글들도 소설, 비평, 에세이들이 많다.
식수는 어렸을 때 겪었던 다양한 차별들의 경험으로 활발한 현실 참여를 하였다. 특히 미셸 푸코와 1970년대 초반 GIP(Group d’information sur les prisons : 감옥정보그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녀의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를 읽어 보면, 곳곳에서 그 당시 겪었던 차별적 경험들이 새로운 글쓰기 문체로 바뀌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진 3> 메두사의 웃음 영어본│https://0701.static.prezi.com/preview/v2/ssgknompkvnhpnbnhboyng4ww76jc3sachvcdoaizecfr3dnitcq_3_0.png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에서 ‘메두사’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카락 가닥가닥이 뱀의 얼굴인 여성 괴물이다. 메두사는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을 돌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가지며, 그만큼 남성들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역사적으로 남성들은 자신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알 수 없는 신비의 대상을 늘 악마화해 왔는데, 중세시대에 똑똑한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을 시킨다든지, 잔 다르크를 마녀사냥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면에서 이 마녀사냥의 원조가 메두사인 여성 괴물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식수가 메두사를 택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고 탁월한 전략이다.
『메두사의 웃음』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나는 여성적 글쓰기에 대해, 여성적 글쓰기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여성은 여성 자신을 글로 써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들이 글쓰기로 오게 만들어야 한다.”(『메두사의 웃음』, 9쪽) 이 문장에서 우리는 식수의 이 책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왜 이 글을 쓰는가? 여성들 자신이 글을 쓰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다음 말이 더 극적이다. 여성적 글쓰기의 목표와 방법은 ‘여성들이 여성의 육체로부터 격리된 만큼이나 여성이 글쓰기에서 격리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식수의 여성들의 글쓰기의 특이점은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로부터 격리되어 있어, 육체를 매개로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해 식수는 과거, 옛것, 낡은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남성적인 옛것에서 벗어나 여성적인 새로운 것을 써야 함을 강조한다. 즉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에서 최소한 두 개의 얼굴과 두 가지 목표 즉 ‘파괴하기와 부숴 버리기’,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하기와 투사하기’를 들고 있다. 스스로를 감추고 들여다보지 않았던 여성들을 향해 ‘그대는 왜 글을 쓰지 않는가?’라고 식수는 외친다.
전통적으로 글쓰기가 특권층의 남성에 의해 전유되어 왔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글쓰기는 여성에게 너무나 문턱이 높지만, 여성들이 글을 써야 함을, 멀리에서부터, ‘바깥’으로부터 돌아와야 함을 촉구한다. 역사적으로 여성 작가의 숫자는 지극히 미미했으며, 글쓰기는 지금까지 남성적인 경제에 의해 주도적으로 경영되어왔고, 여성의 억압이 재생산되는 장소였다. 그러한 글쓰기의 장소에서 여성은 이제 자신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새롭게 가질 수 있으며, 전복적인 사상의 도약대가 될 수 있는 공간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여성은 자기 자신을 글로 씀으로써 새로운 반란적인 글쓰기를 창안해 낼 것이다. 그 변화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여성은 자신에 대해 글을 쓰면서 이제까지 몰수되었던 여성의 육체로 귀향하여, 육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가 이전의 남성들의 글쓰기와 전적으로 차이나는 점은 육체를 텍스트로 하는 글쓰기라는 점이다. 이성의 무기를 가진 남성의 글쓰기에 비해, 남성의 언어를 교란할 여성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의 언어는 자신의 육체에 기반하여 새로운 난공불락의 언어가 된다. 이러한 글쓰기의 행위가 이뤄짐으로써 여성에 의한 말의 장악이 나타나고, 여성 마음대로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식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성 정체성 형성의 고전적인 양성성의 발달을 비판하면서, 남성의 결핍으로 남겨져 온 ‘검은 대륙’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비유를 거부한다. 식수는 여성이 거세되었다는 최악의 진실에 맞서 실제로 여성은 거세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메두사의 이미지를 가져온다. 그리스 신화에 뱀으로 된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으로 묘사된 “메두사는 치명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운 존재”(『메두사의 웃음』, 29쪽)로 더군다나 웃고 있다고 식수는 새롭게 그린다. 메두사의 웃음은 무슨 뜻일까? 아마도 남성들을 조롱하고 비웃는 그런 웃음이 아닐까? 여성은 거세, 혹은 머리 잘림을 두려워하는 남성들의 공포 앞에서 흔쾌히 그 공포를 비웃는다. 그래서 식수는 정신분석적인 울타리 속에 갇히지 말고 그 안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가로질러 가라고 강하게 제안한다. 이제 여성들은 길들여지지 않고,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사진 4> la Jeune nee 책│https://images-na.ssl-images-amazon.com/images/S/compressed.photo.goodreads.com/books/1325352365i/1364294.jpg
『메두사의 웃음』이 분량이 짧고 간단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면, 『출구』(『출구』는 『새로 태어난 여성』에 수록)는 분량도 많고, 그 내용도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출구』는 엑소더스 즉 탈출을 의미한다. 어디로부터 탈출한다는 말인가? 지옥, 적들, 남성들 세계, 가부장 세계, 억압과 차별, 배제로 점철된 모순투성이의 현실로부터의 탈출이 아닐까 싶다. 『출구』는 억압된 현실 세계로부터 탈출하여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새로운 문인 셈이다. 헤겔 등의 철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그리스 비극, 문학 작품들과 근대 독일의 작가인 클라이스트 등의 문학 작품도 나온다. 『출구』의 전반부의 핵심 문제의식과 내용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남성 중심주의와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식수는 ‘여자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 속에는 남성 중심주의, 이성 중심주의의 유구한 전통의 추적과 그 비판이 담겨 있다. 그 전통과 역사에는 어머니, 여성의 자리가 없다는 것, 여성은 존재하지 않음이 전제된다. 출발점에 전통적인 이분법 도식이 굳건하게 자리한다. “능동성/수동성, 아버지/어머니, 지적인 것/감정적인 것, 로고스/파토스, 남자/여자”(『출구』, 49쪽)처럼 사고는 항상 대립을 통해 움직였다. 계급화된, 이중적 대립, 우월한 것/열등한 것 등으로 말이다. 남성의 특권은 대립성으로 유지되며, 전통적으로 성적 차이의 문제는 능동성/수동성이라는 대립과 짝지워 다뤄지고 철학 속에서 항상 여성은 수동성 쪽으로 정리된다.
만일 이성 중심주의와 남성 중심주의의 연대성, 남성들이 세우고 떠받치는 주춧돌이 산산히 부서진다면, 위대한 철학적 체계들, 전반적인 세계 질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러한 이성 중심주의의 계획이 폭로된다면, 모든 역사는 달리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은 사고 가능하지 않은, 또 다른 사고가 온 사회의 기능을 변모시킬 것이라는 주장 속에 새로운 사고를 모색하고자 하는 식수의 의도가 명확히 보인다. 즉 여성에 의한 새로운 사유 혁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말이다.
남성, 이성 중심주의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심지어 타자를 살해해 온 적나라한 현실로 이어진다. 식수는 프랑스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타자가 되고 경계인이 되는 경험을 겪었음을 토로한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식수는 ‘타자 살해’(『출구』, 64-68쪽)에서 자전적 기록을 적는다. 특히 프랑스 점령 국가인 알제리에서 원주민들이 받는 억압, 탄압 등을 얘기하고 있다. 그들이 겪는 폭력, 타자로서 대접받으면서 타자가 되어 가는 상황, 즉 타자는 다른 곳에 바깥에 존재한다고 식수는 말한다.
출신 자체가 타자의 경험을 안고 있고, 체제 재생산을 강요받지 않는, 어떤 탈출구로 식수는 글쓰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의 나라는 신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어떻게 왜 식수가 글쓰기에 전념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식수는 힘과 권력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에서 심취했던 유년 시절의 헛된 꿈에서 벗어나 여성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억압과 남성의 성차별주의에 맞서 자신이 여성으로서 설 자리를 찾은 것이다. 식수는 타자와의 이런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가 ‘글쓰기’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여성의 욕망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문제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공주에 얽힌 동화를 읽고 자랐다. 식수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 동화를 언급한다. 동화 속 잠자는 공주인 여성은 절대적으로 무력하므로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남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옛날 옛적의 동화들은 여자의 사랑과 운명에 대해 똑같이 기만적이고 잔인한 도식을 반복한다. 각각의 신화와 이야기에 늘 되풀이되는 것은 “우리 국가의 업무 안에 여성의 욕망을 위한 자리는 없다.”(『출구』, 58쪽)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의 욕망 성취를 위험한 것으로 취급해 왔다. 여자는 그림자, 남자의 빛을 위한 밤, 남자의 흰 빛을 위한 검은 빛이다. 남성의 체계, 그 공간에서 여자는 배제된 존재에 불과하다. 여성은 검은 대륙으로 취급받았고 여자들은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했으며, 자기의 집을 탐험하러 가지도 않았다. 여기서 식수는 여성에 은유된 검은 대륙이 검지도 않고, 탐험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항변하고 있다. 검은 대륙은 아직 탐험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식수가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식수는 프로이트의 거세 이론을 비판한다. 식수는 여성이 거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성들의 자기 고유의 제국은 하나의 두려움으로부터 출발하며, 그 두려움은 전형적인 남성적 분리의 두려움. 즉 거세 위협의 충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이 세운 자기 고유의 제국이 거세 위협의 충격과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그에 비해 여성들에게는 그 왕국을 벗어나서 출구로 나가면서 다시 돌아와야 함을 식수는 권고한다. “나가자. 여자들이 멀리서부터, 영원, 바깥, 황무지로부터 돌아온다. 여자들은 어린 시절로부터 돌아온다. 검은 대륙에 비유된 여성들은 아름답다”(『출구』, 68쪽)라고 식수는 주장한다.
프로이트가 설정한 여성적 상황의 ‘숙명성’은 사실 해부학적 ‘결함’의 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비도는 단 하나밖에 없으며, 리비도는 본질적으로 남성적이다. 성적 차이는 팔루스적 단계로부터 출발해 새겨진다. 소년, 소녀는 이 단계를 거치는데, 소녀는 일종의 작은 소년으로 취급된다. 두 성 모두에게 최초의 사랑의 대상은 어머니이며, 이성의 사랑이 자연스러운 것은 단지 소년에게 해당한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식수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성적 차이는 단순히 해부학에 대한 판타즘(Phantasm)적인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 해부학은 대부분 시각 행위에 근거할 뿐이며. 이는 관음증 환자의 이론과 다르지 않다.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사람들은 질문한다. 그렇다고 이 질문이 여성의 욕망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속에서 여자의 욕망을 위한 자리는 거의 없다. 여성들은 자기 욕망에 대해 기본적인 인식도 없게 된다. 역사는 남성 중심주의만을 생산하고 기록했다. 식수가 보기에 이러한 남성 중심주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적이다. 남성 중심주의에서는 남자들도 불가피하게 손해를 본다. 물론 그 손해는 남녀, 다 심각하다. 그래서 식수는 이제 지금이야말로 변화시켜야 할 때이며, 또 다른 역사를 창안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세 번째, 여성적 글쓰기와 여성 주체성의 문제이다.
현존하는 남성적 언어 질서 즉 상징계가 아닌, 상상계의 언어는 가능할까? 식수가 시도하는 여성적 글쓰기는 일종의 여성적 상상계의 언어인가? 식수가 여성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여성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서 여성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것인가?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가 여성 주체성을 찾아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통로임을 보여 주려는 것인가?
식수는 “오늘날 글쓰기는 여성들의 것이다.”(『출구』, 98쪽)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여성적 글쓰기에는 ‘실천’이 중요하다. 그러나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에 대해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여성적 글쓰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단지 여성적 글쓰기를 여성적 글쓰기가 하는 ‘행위’ 안에서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실천은 결코 이론화되거나 제한되거나 코드화되거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적 글쓰기는 ‘이론’이기도 하다. 여성적 글쓰기는 어느 정도 ‘이론적’이지만,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의 비이론적, 경험적 측면을 전면에 내세울 것을 권한다.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가 무엇보다도 기존의 남성적 글쓰기와 차이가 나는 점은 ‘몸으로 글쓰기’라는 점이다. 이러한 몸으로 글쓰기의 전형을 식수는 어머니 됨에 있다고 본다. 어머니 됨은 자기-영속적이며, ‘남성적인’ 증여의 순환경제를 벗어나는 방법을 제공한다. 어머니 됨은 우리가 타자에게 ‘주는’ 증여/능력(gift)이다. 식수는 어머니 됨이 아마도 얻어질 수 있는 타자와의 가장 강렬하고 완전한 관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 내부의 경험, 타자를 위한 능력이라는 경험, 타자에 의해 유발되는 부정되지 않는 변화이자 긍정적인 수용성이라는 경험을 갖는다.”(『출구』, 155쪽)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여성이 다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충분한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새로운 주체를 삶으로, 낯섦 속으로 내놓는 것을 사유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의 일이다. 이런 과정이 ‘낳는’ 글쓰기는 상징계의 엄격함과 영적 공허함으로부터 일보 물러설 수 있는 글쓰기이다. 즉 언어-이전에-오는 것’의 잔향을 듣기 위해 귀 기울이며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발화와 달리 글쓰기는 자신만의 시간에, 자신만의 말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비난하는 시선에 의해 제약되지 않을 것이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글 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또한 해방의 공간이 된다. 이러한 해방은 ‘몸’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 몸을 재발견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이제까지 여성은 자신의 몸을 수치스럽게 여겨왔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식수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써야만 한다.’고 강하게 말한다. 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비-언어적’이고 ‘무의식적인, 본능적 충동들과 감각들에 귀 기울여야만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몸으로 글쓰기를 통해 여성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여성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식수는 몸의 언어로 침입해서 자신을 위해 언어를 전유하는 것, 언어를 소유하고 변형시키는 것이 ‘여성의 제스처’이자 ‘여성 주체성’이 확립되는 징표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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