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상상력으로 읽는『주역』[고전은 숨쉰다]

의리역학자들이 해석하는 『주역』에 대해서 세 번에 걸쳐 소개하려 합니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괘들의 내용을 구체적인 현실과 연결해서 이해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필자)

어젯밤 바람에 우물가 복사꽃 피고(昨夜風開露井桃)
미앙궁 위 둥근달은 높기만 하네(未央前殿月輪高)
평양 애첩 춤과 노래로 새로운 총애를 받고(平陽歌舞新承寵)
주렴 밖 봄기운 차갑기만 한데 면포를 하사하시는구나(廉外春寒賜錦袍)

당나라 시인 왕창령(王昌齡, 698~755)의 춘궁곡(春宮曲)이다. 이 시를 궁녀들의 마음을 노래한 궁사(宮詞)나 사랑하는 이에게 이별을 당한 여자의 원한을 노래한 규원(閨怨)으로 흔히들 해석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왕창령은 어떤 사람인가. 일찍이 진사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지만 소행이 좋지 못하다 하여 좌천되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실은 조정의 거짓과 허위에 적응하지 못하고 직언했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왕따 당한 인물로서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했다가 그에게 앙심을 품은 자사(刺史)인 여구효(閭丘曉)에게 피살당했다고 한다.

이 시에서 주목할 단어는 마지막 구절 ‘차갑다’는 ‘한’(寒)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 대한 원한과 더불어 춤과 노래로 왕의 총애를 받고 면포까지 하사받는 애첩에 대한 질투가 묻어 있는 서늘한 한기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궁궐 내 궁녀들의 심리만을 표현했을 뿐일까. 궁궐 내부의 최고의 남자란 누구인가. 군주다. 그를 둘러싸고 총애를 얻으려 애쓰는 여인네들은 누구를 말하는가. 신하들과 사대부들이다.

미앙궁 높이 떠 있던 달은 누구를 상징할까. 군주가 양(陽)이라면 신하는 음(陰)이 아니겠는가. 양은 해요 음은 달이다. 해가 사라진 어둠 속에 높이 떠 있는 달이란 지조 높은 신하를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궁궐 안 최고의 남자인 군주와 그를 향한 여자들인 신하들의 ‘애정 게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점역(占易)에서 학역(學易)으로

먼저 『주역』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한다. 몽괘(蒙卦)에 나온 말이다. “내가 어린아이의 어리석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어리석음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匪我求童蒙, 童蒙求我)” 정이천은 이 구절을 군주가 예의와 공경을 다해 신하를 찾아오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신하의 오만함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애첩을 거느리고 춤과 노래에 빠져 있는 어리석은 군주에게 질투와 원한에 빠져 원망할 필요도 없고 사랑을 구걸할 필요 없다. 아쉬움 없이 뒤돌아서는 것이 좋다. 왜 그런가.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함께 할 군주가 도(道)를 진정으로 즐길 수 없다면 함께 정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다. ‘애정 게임’의 첫 번째 원칙은? 사랑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청춘 남녀들은 궁합을 보러 점(占)집에 간다. 군주와 신하 사이의 궁합은 어떠할까. 궁합(宮合)이란 별자리와 관련된다. 원래 점이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자리와 관련되었다. 점성술(Astrology)은 천체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전제로 하며 현대 과학으로서의 천문학(Astronomy)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어에서 공통적으로 들어간 ‘애스트로우(astro)’라는 말이 바로 별과 관련된 말이다.

우리는 왜 점집을 찾아 나서는 것인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어떤 지향점을 알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어두운 밤길과 바닷길을 가본 자라면 아주 미세한 별빛일지라도 운명의 길잡이가 되기에는 족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어두운 밤의 뱃길에 별빛은 ‘지향점으로서의 방향’이다.

『주역』도 점과 관련된 문헌이었다. 역학사(易學史)에서 역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하나는 ‘점역’ 혹은 상수역(象數易)이고, 다른 하나는 ‘학역’ 혹은 의리역(義理易)이다. 점치는 것과 관련된 상수역의 중요한 문제는 ‘우주 운행의 변화’이고, 의리역은 ‘인간과 역사의 변화’이다.

상수역이란 현대적 의미로 말하면 우주적 질서를 객관적으로 체계화하여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는 점에서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관찰과 예측은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관심보다는 국가의 통치 방식과 관련된 문제였고, 동시에 왕권을 견제하는 작용을 했다.

하지만 『주역』의 원리가 제 아무리 신비하다고 할지라도 우주 운행의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주역』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점술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서양의 현대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정확하고 빠른 길이다.

의리역이란 무엇인가. 한대 상수역의 번잡한 독해 방식을 일소한 사람이 바로 의리역의 효시라 칭하는 위진(魏晉) 시대의 왕필(王弼)이다. 왕필의 『주역』 해석 방식은 너무나도 유명한 “삶의 의미를 파악했다면 괘가 나타내는 상징은 잊어버려라[得意忘象].”는 말로 압축된다.

의미로 번역한 ‘의(意)’란 무엇인가. 뜻이다. 뜻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의미(意味)이며 그 의미의 지향이 의향(意向)이며 그 의미를 실현하고자 하는 숨은 전략이 의도(意圖)이며 그 의미를 실현하고자 하는 힘이 의지(意志)이다. 동아시아 문헌 가운데 역사적 경험의 누적 속에서 가장 많은 해석이 쌓여온 『주역』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바로 그들이 겪었던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왕필은 『주역』에서 우주론적인 체계나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혹은 재난이나 자연의 이상 현상을 통해 인간의 삶을 예측하는 방법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괘상(卦象)이나 효상(爻象)을 하나의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으로, 괘사(卦辭)나 효사(爻辭)를 괘가 상징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합한 행위를 할 것인가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읽었다. 그래서 『주역』은 현실의 사회?정치적 상황과 연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문헌일 뿐이다.

이런 해석 방식을 이어받은 송대 의리역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실천적 지침서(practical guides)로 독해했다. 이런 해석 방식의 대표적인 인물이 정이천(程伊川)이다. 정이천에게 점이란 결정된 숙명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의미 혹은 의리(義理)를 실현해 내려는 정치 ‘행위(action)’를 위한 지침서였다.

『주역』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왕창령의 시에 나타난 정경을 그려보자. 미앙궁을 중심으로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해는 산 아래로 넘어가고 달만이 높이 떠 어둠을 밝히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쩌면 왕창령은 소인들의 세력이 왕 주변에 몰려들어 총애를 받고 있음을 한탄하면서 변방 어딘가 주렴 안에서 술 한 잔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정경을 보면 『주역』의 명이괘(明夷卦)가 떠오른다. 지화명이(地火明夷)라고 한다.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위에 있고 불을 상징하는 이(離)괘가 아래에 놓여 결합된 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이란 태양을 의미하여 곤이란 땅을 상징한다. 태양이 땅 아래 있으니 어둠이다. 명이괘의 괘사는 간단하다. “리간정(利艱貞)” 즉, “어려움을 알아 정치적 신념을 지키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간단한 말이지만 이 말에 대한 주석은 인간의 심리와 정치적 상황에 대한 묘사로 가득하다.

정이천은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애정 게임의 첫 번째 원칙, 어리석은 남자에게 먼저 사랑을 구걸하지 말라. 그러나 그렇다고 냉소하거나 부정하지도 말라. 두 번째 원칙,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라. 그 상황의 어려움을 알아야만 정치적 신념에 대한 ‘사랑’을 지킬 수 있다. 자신의 귀중한 사랑을 지키는 일은 냉소도, 부정도, 무모한 저항도 아니다. 현실적 정황(context)과 그 정황이 이를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견지할 때 다른 여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사랑을 ‘수비’할 수 있고,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창조’할 수 있다.

어떻게 수비할까. 괘의 모양에 그에 대한 암시가 있다. 명이괘를 구성하는 곤괘란 부드러움(弱), 이치에 따름(順)을 상징하고 이괘란 문양(文)에 대한 밝음(明)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여유가 좋다. 까칠하고 강직한 태도는 예상치 못한 저항과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문양에 밝다는 것은 현실적인 판세의 지형도에 대해서 잘 안다는 것이다. 이미 드러난 세력의 흐름에 무모하게 거역(逆)하지 말고 순리(順)대로 따르라는 것이다. 이런 순종은 굴종이 아니며 타협도 아니고 기회주의적 태도도 아니다. 정치적 신념을 견지하되, 그런 세력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무모하게 저항할 때 가져올 수 있는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신중하게 고려하며 준비하라는 말이다.

또 “그 밝음을 어둡게 감추라(晦其明)”고 하면서 이를 실천한 인물로 기자(箕子)를 들고 있다. 기자는 “자신의 지혜를 감춘” 인물로 주왕이 폭정을 행할 때 미친 척하여 위기를 넘겨 치욕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을 지킨 사람으로 평가된다. 감추라고 번역한 ‘회’(晦)는 그믐밤을 의미하기도 한다. 달이 너무 높이 떠올라 밝게 빛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이천은 이 구절을 단지 자신의 안위를 지키라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다. 밝은 빛은 모든 것을 비춰 드러낸다. 물론 모든 것을 명명백백하게 따지고 물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둠이 장악한 때 과도하게 고집을 부릴 경우 각박해진다. 각박해지면 스스로도 분노와 질시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포용력과 관용이 부족하게 되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의심과 거부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자신의 지혜로운 밝은 빛이 오히려 반감을 일으켜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이천은 아무리 좋은 행위일지라도 그것이 가져올 정치적인 결과들에 주목하고 있다. 왕창령은 왜 죽임을 당했을까. 명이괘가 말하는 것은 ‘서늘한 한기’가 아니라, 부드러운 여유를 지니되 명확한 현실 인식을 견지한 냉정함이다.

이렇듯이 의리학자들이 해석한 『주역』의 괘들은 음과 양의 세력들이 길항하는 권력의 장이며 ‘애정 게임’이 벌어지는 무대이다. 무대의 배경은 조야(朝野)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권력의 중심인 조정(朝廷)으로서의 조(朝)와 권력의 변방인 광야(廣野) 혹은 민간(民間)으로서의 야(野)이다. 등장인물은? 군주와 신하 그리고 광야를 떠도는 사대부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백성들이다. 관객이면서 동시에 심판은? 하늘이다.

이들이 하늘 아래 땅에서 벌이는 게임은 권력을 중심으로 한 사랑의 소용돌이며 정치 세력이 흥망성쇠(興亡盛衰)와 굴신왕래(屈伸往來)를 거듭하는 변화의 장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느끼며 그들이 가진 의향과 의도와 의지를 독해해낼 수 있다.

그림 속의 시, 시 속의 그림

『주역』은 음양이 서로 섞이고 착종된 64개의 괘(卦)와 그에 붙어 있는 설명인 괘사(卦辭)로 구성되어 있다. 64개의 괘는 인간이 처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상징하고 있고, 괘사는 괘가 상징하는 상황에 대한 진단과 치료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각 괘에는 6개의 음양의 효(爻)와 그에 대한 설명인 효사(爻辭)가 달려 있다. 효는 전체 괘에서의 특수 상황을 상징하고 효사는 전체 괘가 상징하는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의 특수한 경우를 설명하고 특수한 충고를 암시한다.

괘사나 효사는 시처럼 모호하고 함축적인 상징과 말로 이루어져있다. 괘는 여섯 개의 효로 이루어져서 6획(劃)으로 구성된다. 획이란 화(畵), 즉 그림과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6획으로 구성된 괘란 그림이고 그림에는 시(詩)가 담겨 있다. “시 속의 그림이요, 그림 속의 시이다.(詩中畵, 畵中詩)” 시를 읽는 것은 ‘언어 이면에 담긴 의미(言外之意)’를 이해하는 것이다.

괘에 담긴 상징들도 마찬가지다. 『주역』에 대한 철학적 해설서인 ?계사전(繫辭傳)?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書不盡言,言不盡意.)” 그래서 “성인은 괘효의 상징을 만들어 뜻을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했다.(聖人立象以盡意.)” 시 속의 그림이고 그림 속의 시라면, 문제는? 언어 이면에 담긴 성인이 드러내고자 한 의미이다.

정이천은 『주역』을 ‘결의(決疑)’, 즉 ‘의심의 결단’으로 설명한다. 개인은 항상 어떤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를 빌린다면 ‘괘상-안-존재’이다. 시세의 흐름으로서 어떤 상황에 처한 개인은 그 속에서 불안과 욕망과 유혹과 갈등에 처해 있다. 그럴 때 『주역』이란 자신의 진실과 욕망의 갈등을 파악하고 지향해야 할 방향을 결단하도록 하는 지침서로서 ‘정신분석학적인 윤리서’이다.

또한 정이천은 ‘진퇴존망(進退存亡)의 도리’가 담긴 문헌으로 『주역』을 규정한다. 진퇴란 권력의 중심부에 대한 나아가고 물러남을 의미한다. 존망이란 무엇일까.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아남고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 그렇다면 『주역』은 권력이 길항하는 장의 흐름 속에서 정세 판단에 근거하여 하늘의 이치에 따라 자신이 위치해야할 시공간의 좌표를 결정하고 실천적 방향을 지향하는 ‘정치적 전략서’이다. 나는 이런 의리역의 관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주역』은 ‘실천적 지침서’이지만 단지 ‘시뮬레이션 게임’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궁극적으로는 버려져야할 책이다. 모든 ‘시뮬레이션 게임’이 다 그러하듯이 가상공간에서의 연습일 뿐이며 그 곳에서의 생생한 현실감은 주어진 착각일 뿐이다.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용감한 군인일지라도 실제 전투에서는 겁쟁이가 될 수도 있다. 리얼한 현실은 다르다.

그러니, ‘시뮬레이션 게임’일랑 집어치워 버리고 어서 저 생사가 넘나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애정 게임’에 오직 자신의 진실 하나를 견지하고 몰락하시길. 그곳에 진짜 살 떨리는 역(易)이 있으니.

심의용(서울예대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