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철학이지 뭐[철학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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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철학이지 뭐[철학의 유언]

이관형(서울대)

 

고등학교 때다. 철학과를 간다니까 친구들이 ‘괴짜’ 취급을 했다. 제법 맘이 통하던 녀석까지 ‘사는 게 철학인데 뭘 전공까지 하려 드느냐’고 했다.(근데 이 친구 나중에 철학과 갔다.) 이게 시작이었고 이후로도 간단없이 들은 말이다. ‘사는 게 철학 아니냐?’고.

난 다소간의 오기와 오만으로 이에 답하거나 무시해왔다. 그런데 막상 지금 와서 생각하니 ‘사는 게 철학 아니냐’는 질문(혹은 주장?)이 무슨 뜻인가를 헤아리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마 이런 뜻이리라. 인생은 누구에게나 녹록치 않다. 그러므로 이런 저런 일을 겪는다. 거기서 얻어지는 희로애락이 바로 철학이다. (꿈보다 내 해몽이 더 좋은가?) 아무튼 좀 더 줄여 보면 철학을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는 지혜’로 보는 듯하다. 또 하나 이런 뜻도 담겨 있으리라. 누구나 인생을 산다. 그러니 철학은 누구나 얻는 것이다. 그거면 됐지 그 밖에 뭐가 더 있나?

오호라, 이런 거였어? ‘사는 게 철학이지 뭐’가? 가뜩이나 인문학으로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데, 공납금 내고 시간 바쳐서 공부했더니 아예 전문성도 무시해? “아, 이건 나를 두 번 죽이는 거예요.”(정준하)

철학이 인생의 지혜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주지하듯 ‘철학’은 본래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철학을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요인은 차치하자. 누구나 지혜를 사랑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철학이 탄생한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은 자유민만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지혜에 대해 궁리할 ‘여가(schole)’가 있는 이들만 할 수 있었다. -오늘날 ‘학교, 학파’를 의미하는 ‘school’이 ‘여가’를 뜻하는 ‘schole’에서 왔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깨닫는 것은 누구라도, 심지어 노예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모두 철학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깨달음은 깨달은 자의 의견(doxa, 도그마)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견(도그마)은 철학이 추구하는 참된 앎(episteme)과는 관계없는, 나아가 배격해야 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서양철학은 그 출발점을 보통 이오니아학파로 잡는다. 이오니아학파는 우주세계에 관해 의문을 던졌다. 즉 서양철학은 우주론(존재론)적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반면 동양철학, 아니 중국철학의 출발이라 할 선진유가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른 것 같다. 서양식 학제에 따라 뭉뚱그려 철학이라고 하지만 선진유학은 서양철학의 출발이라 할 이오니아학파의 철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선진유학 역시 생산계급이 생산해 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선진유학은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서 안정된 세상을 만들 것인가가 주된 물음이었다. ‘사는 게 철학’이라는 말을 굳이 갖다 붙인다면 이오니아학파 보다는 선진유가에 붙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철학이 직업이 된 효시는 칸트다. 근대는 분업(경제), 분권(정치)의 시대였다. 철학도 칸트에 의해 진·선·미가 각기 다루어졌다. 그리고 칸트 자신이 분업의 시대에 걸맞게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철학자가 되었다. 분업이 그 효율성 면에서 얼마나 탁월한 것인지는 이후 진행된 근대 자체가 잘 보여주었다. 철학도 근대 들어 직업화함으로써 더욱 전문 영역화한다.

칸트에 이어 등장한 헤겔은 구두를 만드는 데도 숙련을 요하는데 그보다 훨씬 도야를 요하는 철학에 대해서만 아무런 수고 없이 접근할 수 있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하였다. ‘사는 게 철학 아니냐’는 말에 대해 직격탄을 쏜 것이다. 실제로 철학은 매우 어렵다. 말 그대로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가 되었다. 물론 철학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떤 학문분야이건 고도의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게 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헤겔이 비록 일침을 놓았지만 다른 학문의 전문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해명했는데도) 철학에 대해서만은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오해가 일상인의 무지 때문이라고 하면 되는 것일까?

칸트는 진리를 사유와 대상의, 판단과 사유법칙의 합치로 파악하고 그 적용범위를 과학적 지식으로 국한하였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진리·비진리를 판단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적 물음들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였다. 만약 칸트의 말이 옳다면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상인들이 철학에 대해 오해하는 이유의 일단이 드러난다.

사람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이 세상은 없지 않고 있을까’, ‘세상에서 옳은 것은 무엇인가’, ‘신은 있는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물음을 (꼭 이와 같이 정리된 방식으로는 아닐지언정) 물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게다가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았건 아니건, 확고하건 아니건) 생각이나 입장이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나 입장이 ‘개똥철학’이라고 불릴지언정 말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사는 게 철학 아니냐’는 일상인들의 오해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 아닐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거기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다는 자신의 믿음을 내비치면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로마는 철학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로마인)들은 오로지 현실을 직시했다. 철학은 오히려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철학 전공자들 중 많은 이가 시오노 나나미의 말에 쉽게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근거가 있을 것이나 하나를 꼽자면 이런 지적이 가능할 것이다. ‘철학’의 내포와 외연은 깊고도 넓다. 다시 말해 시오노 나나미의 입장 자체가 하나의 철학적 입장일 수 있다.

만약 시오노 나나미의 언급이 철학과 현실의 괴리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철학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반성은 있어 왔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망각’이라는 말로 이를 표현하였다. 그의 영향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아렌트(Hannah Arendt)도 이렇게 말한다. “과학자나 철학자는 일상생활에서 탈피하였을 때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생활을 결코 변화시키거나 퇴색시키지는 못하는데, 이것이 일상생활의 위력이다.”

결정적으로 그 이전에 맑스는 “지금까지의 철학은 세계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바 있다.

나는 독일관념론을 전공한다. 진리가 고작 참인 사태의 다발, 혹은 참인 명제의 다발이라는 데 대해 실망해서다. 그래서 진리는 그보다는 차원이 높은 곳에 있다는 관념론, 특히 헤겔의 관념론에 마음이 갔다. 반대로 영국 경험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영국 경험론은 진리를 경험의 차원에서 다룬다. 그 논리적 귀결로 학적 진리의 보편타당성 내지 필연성을 부정하는 회의주의에 이른다. 고작 회의에 이르기 위해서 철학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 생각이 뿌리서부터 흔들린다. 흔히 칸트의 철학은 앞서 언급한대로 학적 진리의 논리적 근거, 학적 진리의 보편타당성과 필연성을 정초했다고들 한다. 그리고 인간이 운명적으로 제기할 수밖에 없는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이율배반을 낳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나는 학적 진리마저도 안티노미를 낳는다는 생각을 한다. 대체 어떤 진리가 보편타당하고 반드시 그러한 것인가?

20대에는 우리를 밝혀주고 우리가 따라야 할 별(루카치)이 있다고 믿었다. 역사를 믿었으며,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고 주체라고 믿었다. 언젠가는 평등의 이념이 현실에 구현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 길을 같이 걷는 동료들을 믿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외화하여 그 말씀의 진리됨을 입증하는 전 과정을 보여준 철학(헤겔)도 말씀(관념)을 떼어내고 ‘나름 현명하게(?)’ 받아 들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루카치의 별이 남긴 잔영이 사라지기도 전에, 재빨리 지혜(?)를 터득한 우리는 ‘언젠가는’을 ‘지금 당장’으로, ‘평등’을 신분상승의 막차를 타기위한 ‘경쟁의 평등’으로 받아 들였다. 소위 386은 고시를 봐서 그를 터전삼아 어린(?) 나이에 선량이 되거나 벤처회사를 차려 대박이건 쪽박이건을 찼다. ‘현명한 유물론자들’은 이념이 ‘밥 먹여 주지 않음’을 간파했다. 최영미가 극구 오해라고 말하는 ‘서른 잔치의 끝남’을, 그(최영미)의 말이 옳다면 386은 ‘창조적 오독’을 통해 실현한다.

반응이 더뎠던 이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이들은 세상이 주는 비판을 좀 더 경험했을 따름이다. 세상살이의 녹록치 않음을 경험하던 차에 불어 닥친 IMF는 아노미(anomie)나 반성을 읊조릴 틈을 주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늦었든 빨랐든 386, 아니 우리 모두는 ‘정신을 바짝’ 차린다.
‘인생 뭐 있어’가 유행어가 된다. 이 말의 핵심은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이심전심의 공통감(?)에 있다. 이념 웃기고 있네, 역사법칙 웃기고 있네, 윤리·도덕 웃기고 있네. 민중? 좋아하네. 인생 뭐 있어 한 세상 잘 즐기다 가면 되지. 인생 뭐 있어 결국 돈이지!

이런 시대정신(?) 앞에서 모든 이념은 존립의 근거를 잃는다. 남은 이념이 있다면 그건 물신(物神)의 이념뿐이다. 교회에 가도, 절에 가도, 직장에 가도, 동창회에 가도 물질의 소유는 축복이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 구멍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구절은, 왕좌를 물리치고 보리수 아래서 행한 고행은 더 이상 설교·설법의 주제가 아니다. 완전한 세상의 실현으로 여겨지던 성과 속의 일치가, 종교 간의 화해(?)가 ‘물신’을 통해 실현되었음을 목도한다.

우리는 청춘기의 이념(철학)을 잃고 물신을 얻었다. 왜 전경에게 두들겨 맡고 철창을 드나들었던가? 이후로도 오랫동안 쫓기는 꿈에 가위눌려야 했던가? 출세가도를 달리는 우리도 있지만 왜 적잖은 우리는 연락을 끊고 숨어버렸던가? 왜 사회 부적응자가 되었던가? 왜 조국을 떠나 이민을 택했던가? 왜 같이 활동한 선·후배·동료들과 서로 상종 못할 ‘웬수’처럼 되었던가? 이러려고?

나는 386과 나의 이야기를 통해 좋았던 과거와 나쁜 현재를 대비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과거가 좋았냐고? 난 대학생활이 터널 같았다. 지금이 좋냐고? 아직도 터널 속이다. 그러나 반대로 과거에는 별(루카치)이 있어서 좋았고 지금은 별이 없어서 좋다.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좋았고 필연과 당위에 눌리지 않아서 좋다.

‘사는 게 철학이지 뭐’의 요즘 버전은 ‘인생 뭐 있어’다. ‘사는 게 철학이지 뭐’에는 물음의 의미가 다소나마 들어있다. 그러나 ‘인생 뭐 있어’는 대답이지 물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신’의 총애를 받을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혹여 총애를 받았다 해도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생 뭐 있어’는 ‘인생에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절박한 물음이기도 하다.

그런데 철학은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철학은 본래의 의미인 ‘지혜 사랑’을 잃어 버렸다. 지혜는 인간(人間)에, 즉 ‘사람 사이’에 있는 것 아니던가? 철학이 편애해 온 존재론에, 인식론에 일상의 삶과 지혜가 있는가? 아렌트의 말대로 이미 과학이 가져가 버린 ‘진리’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에게 남은 ‘의미’는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

‘사는 게 철학이지 뭐’는 옳다. 오히려 삶을 배제한 철학, 삶의 의미에 대해 답하지 못하는 철학은 ‘유언’으로만, 철학사적 관심으로만 남을 것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푸른 생명의 소나무라고 말해 주었는데 나는 회색을 쫓았구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했는데 내가 만난 부처를 움켜잡았구나. 사는 게 철학 아니냐고 물을 때 난 독사와 에피스테메를 나누고만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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