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구보씨를 말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 생각]
요즘은 날씨가 참 궂다. 그래도 꽃은 핀다. 구보씨가 사는 곳은 한반도 남쪽 끝자락이라서 그런지 벌써 진달래도 피고 목련도 피었다. 아직 가지뿐인 나무들 틈새에서 갓 피어난 진달래는 속도위반이라도 한 처자처럼 약간 수줍어 보인다.
봄이 오면 꽃이 핀다. 여기 감상이 없을 수 없다. 상투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사람도 꽃처럼 가고 또 새로 오지만, 꽃 피고 지듯 매년 계절마다 그런 것이 아니라서 아쉬움이 더하다. 작년에도 많은 사람이 떠났다. 그렇게 간 사람들은 이제 우리 곁에 오지 못한다.
하긴 꽃이 다시 피듯이 한번 간 사람이 또 오는 경우도 있다. 구보씨가 그렇다. 이 봄에 다시 등장한 구보씨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1930년대다.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발표한 것이 1934년이니까 벌써 76년이 지났다. 그렇게 보면 구보씨의 나이가 이제 희수(喜壽)에 이른 셈이다. 하지만, 구보씨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새로 등장했으므로, 또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므로, 나이를 따지는 건 별반 의미가 없다.
최인훈이 60년대 말부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작을 발표하여 구보씨를 다시 불러냈다. 그 구보씨는 박태원의 구보씨와 좀 다르다. 먼저 한자 표기에서 차이가 난다. 박태원의 구보는 ‘仇甫’였는데, 최인훈의 구보는 ‘丘甫’다. 시대배경이나 무대도 다르다. 하나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하의 조선 땅 경성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 땅 서울이다.
90년대에 등장한 구보도 있다. 주인석이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라는 부제로 [검은 상처의 블루스]라는 소설 연작집을 냈는데, 여기 주인공인 구보에게는 한자 표기가 없다. 그는 80년대 격동의 상처와 90년대의 침울한 분위기 가운데서 번민한다. 무대는 전(前)근대와 포스트-모던이 공존하는 서울이다.
세 번의 구보는 다 구보이지만 다 다른 구보다. 마치 봄마다 피는 진달래가 다 진달래이지만 다 다른 진달래이듯이.
그런데 하필이면 이제 왜 다시 구본가? 특별한 이유는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그간의 구보가 지녔던 사색적인 소시민성 때문이라고 할까. 무엇보다 최인훈의 구보가 보여준 인상이 강렬했다. 최인훈의 구보 이후로는 어떤 구보든 시대를 걱정하는 반성적인 지식인상을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매번 다르지만 그래도 반복의 느낌을 주는 일종의 변주(變奏)처럼, 구보라는 이름은 나름의 울림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도 네가 구보라는 건 좀 뜬금없어.”
드디어 참지 못하고 Y가 끼어든다. 그녀의 약간 치켜 뜬 눈매는 어딘지 쨍하는 목소리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넌 소설가도 아니고, 또 그닥 젊은 축도 아니잖아.”
그거야 아무려면 어떤가. 구보가 꼭 소설가여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소설가와 철학자 사이에 넘지 못할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소설가 가운데 최인훈의 구보씨 정도로 사색적이고 철학적이었던 사람도 찾기 힘들다. 그런데, 젊지 않다는 건, 글쎄, 그건 좀 아픈 얘기다.
“Y야, 네 나이도 생각해야지. 젊은 친구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 더구나 철학자라면 말이야, 그래도 불혹(不惑)은 넘겨야 하지 않겠어?”
구보씨도 이런 게 좀 억지라는 건 안다. 젊은 철학자가 노숙한 철학자에 비해 못하라는 법은 없다. 왕필(王弼)이나 니체가 젊은 나이에도 훌륭한 업적을 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를 쓴 것은 서른이 채 안 되어서였으며,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을 발표한 것도 30대 때였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구보씨는 다 젊었다.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것은 20대였을 때고, 최인훈의 경우도 30대 초반, 주인석도 30을 갓 넘었을 무렵 구보를 그려냈다. 그래서 구보씨는 비판적이고 삐딱했을지언정 풋풋함과 패기를 잃지는 않았다. 철학자 구보씨는 그럴 자신이 있는 걸까?
사실, 그건 잘 모르겠다. 깨놓고 말하면, 철학자 구보가 이렇게 구보씨가 된 건 다분히 우연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 웹진을 관장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요청한 것은 일종의 ‘철학강좌’였다. 시장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비판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요청문을 보았을 때, 아이쿠, 싶었다. 자신이 없었다. 또 억지로 거기에 맞춰 쓴다 해도 그렇게 목적의식이 견고(!)한 형태로야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그래서 궁리 끝에 다시 끄집어 올리게 된 것이 구보씨 이야기다.
박태원 시절부터 구보씨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솔직했던 편이다. 소설 속의 인물로 나오는 까닭에 자전적(自傳的)인 이야기를 각색하여 표현하기가 쉬웠다. 그 과정에서 실제와 허구가 버무려지지만, 그건 나름의 실재(實在;reality)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원래 소설이라는 형식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철학자 구보씨가 소설을 쓰겠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필요한 만큼만 그 같은 형식을 차용하겠다는 얘기다.
“풋, 구보야, 그건 비겁한 거야. 철학자면 철학적 내용을 철학적으로 말하면 됐지, 왜 남의 틀이랑 이름을 빌리니? 또 그렇게 문학적 형식을 쓸 거면, 거기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거잖아. 말하자면, 문학적 가치도 있고 재미도 있어야 하는 거거든. 근데 넌 누가 그런 점에 대해서 불평을 하면 이건 사실 문학적인 게 아니고 철학적인 글이라고 발뺌할 거잖아. 그럼 그건 이중적으로 비겁한 거라구.”
또 Y다. 허 참… 그래, 너 잘났다.
네 눈엔 낫살이나 먹구 이런 글 쓰고 있는 내가 뭐 그렇게 속 편해 보이냐? 그렇게 요리조리 피할 길을 생각했다면 구태여 이런 걸 왜 쓰겠어? 그냥 못하겠다고 그러지.
그리고 네가 말한 그런 생각은 따분한 형식주의고 치사한 보수주의의 발상이야. 문학의 형식이 따로 있고 철학의 형식이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 내가 굳이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같은 걸 다시 거론해야 되겠니? 거기 나오는 인물들은 실제와 꼭 같지 않지만, 실제보다 더 유의미하고 더 생명력이 있잖아. 물론 구보씨를 내세워 철학을 논의하는 게 그런 대작들에 비할 만한 결과를 낳을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니야. 나는 그저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걸 얘기하는 거야. 괜히 고유한 형식이 어쩌구 하면서 엄격한 척하는 치들은 대개 자기 밥그릇에 대해 위엄을 부리는 거라구.
가만, Y에게 이렇게 성질낼 일이 아니다, 라고 구보씨는 생각한다. 뭐, 사실, 일리가 있는 말이지 않은가. 여기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오늘날에는 실제와 허구의 혼재(混在)가 바로 실재(實在)의 모습이 되었다는 식의 얘기는 어떤가. 이제 ‘가상현실’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게임이나 훈련용 시뮬레이션 따위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상업 광고를 보라.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품 간의 관계는 실제인가, 허구인가? 예컨대, 김연아가 광고하는 냉장고를 김연아가 정말 사용하고 있으리라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광고 효과는 실제적이며, 그래서 그 광고는 현실의 일부가 된다.
구보씨와 구보씨가 늘어놓는 철학 이야기 사이의 관계도 그럴 수 있다. 이렇게 실제와 허구의 섞임이 만연한 시대에는 구보씨 같은 인물이 등장해서 철학을 들먹이는 건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원래 박태원의 구보에서부터 구보는 이렇게 영역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의식(意識)의 세계와 실제 세계의 삼투(?透). 이런 점에서 구보씨는 이미 모더니스트였다. 하지만 그 삼투가 한 방향만의 것, 의식의 무력한 작위(作爲)만일 수 없었다는 것은 박태원의 이후 행적이 보여준다. 그는 좌익 문학 진영에 가담했다가 한국전쟁 때 월북하였으며, 그 후로는 역사소설을 주로 발표했다. 대표작 [갑오농민전쟁]은 실명(失明)과 전신불수의 병중에서 구술(口述)을 하여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6년에 78세로 사망했다.
최인훈이 분단과 냉전의 시기인 60년대 말에 구보를 다시 불러낸 것은 아마 이런 이중의 삼투를 염두에 두어서였을 것이다. 최인훈의 구보는 소시민의 일상을 살지만, 그를 둘러싼 세계는 그의 일상에 간단(間斷)없이 침투한다. 중국의 유엔가입이나 월남전, 군사훈련반대 데모 따위가 구보의 생각을 멈추게 하거나 끌고 간다. 그는 ‘남북조(南北朝)시대’의 ‘난세’(亂世)를 사는 지식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조차 박정희의 유신독재 이후로는 사라져 버렸다.
최인훈은 근 20년에 걸친 침묵 끝에 1994년 소설 [화두]를 내놓았다. 철학자 구보씨는 당시를 생각하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최인훈이 한 TV 인터뷰에서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 책([화두])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자못 자랑스레 말하던 장면, 이문열이 [화두]에 대해 ‘지성의 장엄한 황혼’을 보는 것 같다고 한 말을 크게 부각시킨 그 책의 신문 광고. 두 가지 다 씁쓰레한 웃음을 짓게 했던 기억이다.
“어, 그건 또 왜?”
이번에는 Y의 참견이 반갑다. 사실 그녀는 여러 모로 기특하고 사랑스런 존재다. Y가 없는 세상, 그건 생각하기 싫다. 지루한 평화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것이므로.
“이문열이 한 그 말의 초점은 ‘황혼’에 있었거든.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그게 칭찬이라기보다는 이제 수명이 다했다는 걸 강조하는 뜻으로 읽혔다는 거지. 꽤 긴 그 소설의 마지막이 소련이 무너진 러시아를 배경으로 끝나는 것도 시사적이고 말이야. 그리고 [화두]는 나름대로 진지한 자전적 작품이지만, 뭐, 20년 동안 그걸 준비하고 있었다고 자랑스러워 할 만한 건 아니다 싶어. 그러니까 이문열의 말이 기분 나쁘긴 하지만, 완전히 틀린 건 아닌 셈이지.”
무엇에나 수명이 있기 마련이다. 박태원의 구보에도, 최인훈의 구보에도. 그러나 구보의 수명이 다한 것은 아니다. 구보는 여럿이며 또 이어질 수 있으니까. 모름지기 개체를 절대화해서 볼 필요는 없다. 그렇게 보는 건 역사의 무대에 개인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한 근대 이후의 사고방식일 따름이다. 생각하고 느끼는 거야 언제나 개체지만, 그 생각이나 느낌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전파되지 않는가. 구보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을 수 있고, 이 시대에도 저 시대에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 이 자리에서 구보가 꼭 해야 할 어떤 역할이 있을까?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웹진에 소설가 아닌 철학자 구보가 등장해야 할 어떤 까닭이 있는 걸까?
글쎄, 자꾸 그렇게 물어볼 일은 아니다. 꼭 필요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누구 말대로 이명박과 강호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런 식으로 사태를 따지는 건 우스꽝스럽다.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 아닌 세상에서는, 아니 그런 세상이기에, 구보씨에게도 뭔가 할 일이 있지 않겠는가.
“하긴, 삼성의 이건희가 회장님으로 복귀하는 판국인데, 구보라는 작자가 뭐로 되돌아오든 그게 뭔 대수겠어? 아무튼 난 이건희 때문에 누가 복귀한다고 그러면 짜증부터 나는 거야. 마치 거기가 정당한 제 자리였다는 듯이 구는 게 역겹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구보야, 너도 괜한 설레발치지 말고 하려거든 ‘정직’하게 잘 해 보라구. 오늘이야 대충 이렇게 끝낸다고 해도 당장 다음부터는 뭔가 내용 있는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
문성원(부산대) / admin@ad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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