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고, 자유를 얻다-영화 ‘헬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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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고, 자유를 얻다-영화 ‘헬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조주영(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박사 수료)

 

 

그런 때가 있다. 잠은 벌써 깼는데 일어나기가 너무 싫어서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다 해가 중천일 즈음, ‘그래도 하루를 이렇게 보내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슬금슬금 일어나면서 속으로 걱정한다. 반나절 밖에 남지 않은 시간동안 뭐부터 해야 하나, 할 일은 많은데 왜 이렇게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걸까. 오늘 하루도 그냥 이렇게 흘려보내면 안 되는데. 공부는 해서 뭐하나. 남 줄 것도 아닌데. 아, 아니다. 남 주려고 공부하는 거였지. 그래도 하면 뭐하나. 글 좀 끄적거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나는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에 다달아 나오는 건 한숨뿐인, 그런. 요즘이 딱 그런 시기인 것 같다. 공부는 안 되고, 안 되니까 하기 싫고, 하기 싫으니까 잡생각만 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연애를 하기를 하나, 모아둔 돈이 있기를 하나, 아~ 인생 참 꿀꿀하다, 정말.

영화 <헬프>

?<헬프>, 누구도 묻지 않던 질문을 제기하다

때는 1960년대. 노예제도는 철폐되었지만 인종차별이 여전히 심했던 미국 미시시피 주 잭슨 마을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스키터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신문사에 들어간다. 장차 작가나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인 그녀에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은 바로 일간지에 실릴 칼럼을 쓰는 것! 칼럼의 주제는 양파 다듬을 때 눈물이 안 나는 방법이랄지, 와이셔츠 깃을 하얗고 빳빳하게 다릴 수 있는 방법 등 온갖 집안일의 팁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안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이 백인 아가씨가 그 방법을 알 리 없고, 해서 스키터는 친구네 집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에게 도움을 받기로 한다.

힐리(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역)는 가정부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스키터가 못마땅하다. 가정부는 꼭 필요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힐리는 가정부와 같은 화장실을 쓰거나 같은 식기를 쓰거나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는 없다. “그들과 같은 화장실을 쓸 수는 없어. 흑인들한테는 병균이 있대. 내 아이에게 병균이 옮으면 안 되잖아? 내 아이의 건강은 내가 지키겠어!”

가정부한테 자신의 아이를 돌보게 하고, 가정부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가정부가 청소해주는 집에 살면서 화장실은 같이 쓸 수 없다니!

“그렇게 하는 게 그들에게도 좋을 거야. 개인 화장실을 갖게 되니 좋지요, 에이블린?”

스키터 역시 흑인 가정부의 손에 자랐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왔을 때, 자신을 키워 준 가정부는 이미 해고된 후였다. 자신에게 가장 친밀한 존재였는데, 한 마디 말도 없이 해고해버리다니! “화장실을 따로 쓰게 하는 법안” 제출에 여념이 없는 힐리도, 긴 세월 함께 해 온 가정부를 단번에 해고해버린 어머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했던 스키터는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 바로 그들의 입장에서!

스키터는 어느 누구도, 당사자들조차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삶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에이블린,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삶은 어땠나요? 처음부터 가정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나요? 다른 삶을 꿈꾸었던 적은 없나요? 당신의 아이 대신 백인의 아이를 키우는 심정은 어떤가요?”

처음부터 가정부로 살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도 가정부였고, 할머니는 노예였다. 다른 삶은 생각해보기 힘들었다. 아들이 하나 있었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어느 날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그 위를 트럭이 밟고 지나갔다고 했다. 백인들은 다친 아들을 가축처럼 트럭에 실어 흑인들만 다니는 병원 문 앞에 던져놓고 경적만 한 번 울리고 돌아갔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손 쓸 방도가 없어 집으로 돌려보냈고 아들은 내 눈 앞에서 죽었다.

책을 쓰는 일이 스키터에게는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에이블린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그 일은 꼭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되어버렸다. 에이블린에게도 스키터의 제안이 처음에는 탐탁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느 때처럼 길을 가다가 백인이 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던 시절이었다. 백인과 어울렸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서 책을 쓰는 일은 자신과 아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노라고, 여기 이렇게 살다 죽은 생명도 있노라고.

잭슨 마을의 가정부들 사이에 스키터와 에이블린이 하는 일이 은밀히 알려지고, 그들의 작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흑인 가정부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그렇게 책은 출판되었지만 마을의 문제는 여전하다. 흑인 여성들은 여전히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 일하고, 그들에 대한 차별도 여전하다. 스키터의 남자친구는 괜한 문제를 건드렸다며 화를 낸다.

“아무도 그들의 일에 관심 갖지 않아! 지금 이대로 좋은데 왜 문제를 만들려고 해?!”

하지만 스키터는 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그들 역시 지금의 삶에 만족 할 것이라는 건 우리 생각일 뿐이다.

 

공감의 힘

스키터가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깊은 공감으로부터 우러나온 진심이 흑인 가정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줄 용기를 갖게 만든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하나는 백인 고용주 셀리아(제시카 차스테인 역)와 흑인 가정부 미니(옥타비아 스펜서)의 관계가 점차 변화해 나간 것, 다른 하나는 스키터의 어머니가 스키터에게 가정부를 해고하던 날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장면이었다.

미니는 힐리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였지만, 집안에 있는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힐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미니가 도둑질을 해서 해고한 것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미니는 한동안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미니는 집에서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던 중 에이블린의 소개로 마을 외곽에 있는 세일라의 집에서 일하게 된다. 세일라는 마을 여자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미니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이다. 힐리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 미니는 백인 여자들과 거리를 두기로 결심하고 세일라에게 거리를 두려 하지만, 그녀가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고 괴로워 할 때 그 곁을 지켜주며 마음을 열게 된다. 세일라 역시 미니에게 위로를 받으며 그녀에게 의지하게 되고, 미니가 남편에게 맞아 눈에 상처가 난 걸 보고는 “당신은 맞서 싸울 힘이 있는 사람인데 왜 맞고만 있나요? 나라면 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날려버리겠어요.”라며 위로해준다. 용기를 얻은 미니는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다.

스키터의 어머니도 가정부와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손님들이 있을 때 가정부의 딸이 어머니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손님들은 흑인 가정부의 딸이 백인 주인집의 거실에 들어오는 게 못마땅했는지, 스키터의 어머니에게 여자를 당장 내쫓고 가정부도 해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눈치를 보던 스키터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가정부를 해고한다.

진실에 눈뜨게 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진실에 눈멀게 하는 관계가 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미니는 셀리아와의 관계에서 용기를 얻어 남편을 떠날 수 있었고, 아이를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셀리아는 미니와의 관계를 통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관계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반면에 스키터의 어머니는 집에 왔던 손님들보다도 가정부와, 그리고 그녀의 딸과 더 친밀한 관계였음에도 손님들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려워 자신과 가정부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밝히는 대신 가정부를 해고하는 쪽을 택한다. 어떤 관계는 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은 어떤 관계일까? 삶을 변화시킬 힘을 주는 관계일까 상처를 주는 관계일까?

영화의 마지막에 에이블린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내 삶에 대해 묻기 전에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삶을 뒤돌아보면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난 후 이웃들을 더 잘 보살필 수 있게 되었다. 진실을 말한 뒤 자유를 얻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며,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공부는 해서 뭐하나. 이까짓 글 좀 끄적거린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하는 한탄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 이 여성들이 보여 준 연대는 정말 소소한 일상적인 것―화장실 쓰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지 않은가? 내가 감지하고 있지 못할 뿐이지,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탄은 이제 접고, 진실에 눈멀게 하는 관계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나로 인해 관계들이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겠다. 그리고 나의 글쓰기가 세상을 바꾸는 작은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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