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바보, 그 가부장성에 대하여 [배운년, 미친년, 나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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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 그 가부장성에 대하여 [배운년, 미친년, 나쁜년]

김세서리아(성신여대 연구교수)

 

‘딸바보’라는 신조어가 있다.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란다. 어떤 연예인은 ‘딸바보의 원조’라 하고 또 다른 연예인은 ‘딸바보의 종결자’라 불리운단다. 주변의 남자 선후배들 역시 딸바보 임을 자처하는 이가 많아졌다.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을 딸아이의 핸드폰 번호로 저장하기도 하고 컴퓨터, 핸드폰의 바탕화면을 딸아이의 사진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게다가 딸 아이 사진을 서슴없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자랑까지 한다. 이처럼 아버지와 딸 관계가 남달라지고 ‘딸바보’라는 용어가 새로운 남성상을 대변하게 된 세태를 두고 가부장제가 그만큼 약화된 것을 증명하는 것일까? 이제는 어머니-자녀의 관계, 모성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자녀의 관계, 부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이르게 된 것이라 말해도 좋을까?

 

모성과 가부장제의 변주곡

가부장제와 모성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이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은 거의 일반화된 논의다. 모성을 여성의 본질적 특성으로 규정하고 여성 일반에게 강요하는 것은 확실히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과 부합하며 이러한 생각에서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모성을 여성억압의 원천으로 간주한다. 지나온 역사 속에서 모성과 가부장제가 상호 긴밀하게 연관되고 모성이데올로기가 가부장제에 봉사하였던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처럼 가부장제가 모성 강조에 언제나 협조적인 것은 아니다. 그 둘의 관계 양상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모성과 가부장제는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지만 종종 갈등하고 모순 관계에 놓인다. 그래서 가부장제 질서를 위하여 모성이 포기되거나 모성의 강조가 가부장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상황을 산출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 유교 사회에서 모성은 출산-태교-자녀교육의 과정으로 이어지면서 여성들의 중요한 규범적 책무로 되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모성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전통 유교 사회에서 모성이 강조되는 궁극적인 목적은 가부장 질서를 유지하고 공고화 하는 데 있었고 따라서 어머니-자녀의 직접적이고 친밀한 관계 보다는 어머니-자녀 관계에서 나오는 정서(모성)를 다른 사람들에게로 얼마나 잘 확장하였는가가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보다 부모 봉양이나 조상의 제사가 더 우선시되는 전통 유교의 정서는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통 유교 사회에서 출산과 자녀 교육의 의미는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부모와 조상에 대한 효,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가부장제 질서를 공고히 하는 것에 있다. 때문에 자녀와의 친밀한 정서보다는 자녀를 기르는데 부지런히 애쓰고 그 성공을 바라는 것의 목적이 가문을 이어가며 죽은 사람을 잘 보내고 살아있는 사람을 잘 봉양하려는 것에 두어져 있다.

열녀 이 씨의 이름은 아무개로 선비 김 아무개의 아내이다. 나이 스물 하나에 그 남편이 병들어 죽자 바로 머리를 풀고 짚자리를 깔고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입관한 뒤에 관에 기대 곡을 하고 말했다. “장례가 끝나면 따라 가겠습니다.” 달을 넘기면서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졸곡(삼우제 뒤에 지내는 제사) 때 곡을 하며 말했다. “홀몸이 아니니 감히 당신의 자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일 년 뒤에 따라 가겠습니다.” 해산을 해서 아들을 낳았으나 아들로 여기지 않고 여종을 골라 그에게 젖을 먹이게 하였다….“제가 복이 없어서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아내로서 마땅히 따라가야 합니다. 이제 저 어린 아이로 핑계를 대고 남편이 제게 말한 것을 어찌 감히 지키지 않겠습니까?” 아이를 불러 이마를 세 번 어루만지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니 유모와 종들이 그를 엄하게 지켰다. ··· 여종이 자리를 정돈하고 베개를 편히 하자 손을 바로 해서 배에 얹고 눈을 감고 죽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정려를 내렸다. (이옥李鈺, 「열녀이씨전烈女李氏傳」)

“당신은 이 미망인을 염려하지 마시고 편안히 지하로 돌아가십시오. 저는 당신이 죽으면서 남긴 부탁 때문에 차마 바로 죽지 못합니다. 당신의 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아이의 나이가 5살이 되고 그때는 아이가 혼자서도 보전할 수 있겠지요. 그날이 되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탈상이 다가왔는데 딸이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시부모는 그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눈치 채고 여종에게 지켜보라고 주의를 주었다. 하루는 여종을 시켜 딸의 약을 구해오게 하고는 지니고 있던 남편의 작은 띠로 들보에 목을 매고 죽었다. (황용한黃龍漢, 「열부함양박씨전烈婦咸陽朴氏傳」)

열녀 함양박씨 정려비/ 출처: 함양군 문화관광사이트 http://tour.hygn.go.kr

이와 같이 가부장제 이념이 우선하는 사회에서 모성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기는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성 강조는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모성은 무시되어야 했다. 따라서 가부장제를 강조하는 만큼 모성이 강조되는 구도를 지니지만, 또한 가부장제 강화와 부계혈통을 잇는 목적의식이 강한 그만큼 어머니-자녀 관계에서 나타나는 친밀한 정서는 은폐되거나 축소되었다. 모든 여성에게 부과되는 모성이라는 본질적 의미로서의 정체성과 가족 구조의 재생산을 위해 부과되는 규범적 의미로서의 정체성은 가부장제 안에서 통합되는 상보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이 둘은 종종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된다. 또 가부장제 이념과 정서적 모성이 상충했을 때에는 가부장제 이념이 더 우선한다.

 

어머니/딸, 아버지-딸, 그리고 가부장제

전통 사회는 현대 사회보다 훨씬 더 가부장제적이라고 여겨지고, 그래서 모성도 더 강하게 부추겨졌다고 간주된다. 분명 이념과 질서, 가문의 영화와 존속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이해되었던 전통 사회에서 어머니-자녀의 관계는 강조된다. 하지만 그 관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 가족에서만큼 어머니-자녀의 친밀감과 정서적 유대가 강조되지는 않는다. 즉 현대 가족이 모성에 근거한 자녀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그만큼 어머니의 직접적인 보살핌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비하면, 전통 가족에서의 어머니 역할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전통 사회에서 모성의 핵심은 어머니-자녀 관계가 남성 혹은 가부장제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달려 있었고, “가부장적인 친족체계 하에서 여성은 남성의 자녀를 갖는 자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씨(seed)라는 개념”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모성을 강조하는 목적 자체가 가부장제 옹호와 부계혈통 강화에 있었으므로, 아이를 남성의 소유로 계승시키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의 존재는 가능한 은폐되거나 축소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머니-자녀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강조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하게 무시되어야 한다. 출산이라는 여성의 일을 본성으로 규정하면서 그에 수반하는 여러 가지 보살핌의 실천과 심리들을 통해 거대한 모성 이데올로기를 산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출산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철저하게 모성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통 유교 사회의 씨받이 같은 제도는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공고화하기 위하여 출산과 연관한 모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모성을 무시하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는 딸들이 어머니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신에게 남근을 주지 않아서라고 본다. 또 어머니-아들의 관계는 어머니 자신의 낮은 지위와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 아들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는 기대로 설명된다. 때문에 어머니-딸의 관계와는 다른 위치에 놓인다. 아들을 위해 딸을 희생시키는 어머니는 딸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위치에 있다. 이에 반해 어머니를 대신하는 자상한 아버지는 남성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때때로 “나는 여성보다는 남성과 친하고 남성에게서 동료애를 더 느끼며 남성에게서 더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하는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하였다고 일컬어지는 여성들을 만난다.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 어느 누구라도 자신을 도와주고 힘을 북돋는 사람에 대해서는 감사와 호의의 마음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도 자체가 여성들의 지위를 상승시키거나 혹은 가부장제를 약화시키거나 남성과 여성의 화해 무드로 나아가게 하지는 않는다. 딸이 아버지와 친하게 되는 상황에는 여전히 아버지의 힘이 자리하고 있으며, 딸은 아버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남성들은 자기 아내에게는 주지 않을 도움, 사랑을 딸들에게는 아낌없이 준다. 이렇게 보면 아빠들의 딸바보 행진은 가부장을 넘어서는 길목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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