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친절하신가요?[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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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친절하신가요?[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조주영(서울시립대 박사과정)

 

#1. 당신은 은행원입니다. 주 업무는 대출상담이지요. 그런데 오늘은 대출 조건에 맞지 않는 할머니 한 분이 당신을 곤란하게 하고 있네요. 수입, 담보 등 대출 규정을 말씀드려도 막무가내로 대출을 해 달라고 조르고 있어요. 상황이 어려운 건 알겠지만, 규정에 맞지 않는데 저라고 도리가 있겠어요? 그러니까요 할머니, 제발 다른데 가서 알아보시라고요!!!

#2. 당신은 운전 중입니다. 마침 신호 대기 중이라서 차도 한 가운데에 서 있지요. 그런데 맞은편 인도가 좀 소란스러운 것 같아요. 한 여자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지 도와 줄 사람을 찾고 있는 듯해요. 아니나 다를까, 뒤따라 온 한 무리의 남자들―서넛은 되는 것 같아요―이 여자를 잡아 마구 때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그냥 가던 길을 가고 싶어요.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의 일에 연루되는 건 귀찮기만 할 뿐이잖아요? 그런데 이놈의 신호가 참 기네요. 또다시 도망친 여자가 이번에는 당신 쪽으로 달려오는 것 같아요. 당신은 차 문이 잠기었는지 다시 확인을 합니다. 아, 마침 신호가 바뀌었어요. 재빨리 여기를 벗어나야겠어요.

#3.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아침부터 누군가 당신의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지난 번 운전 중에 보았던 그 여자가 결국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군요. 경찰들은 당신이 유일한 목격자이니, 증인 출석을 해 달라고 하고 있어요. 용의자는 있는데 물증이 없다나요? 다른 목격자들도 있을 텐데, 경찰은 왜 하필 당신을 찾아왔을까요. 당신은 이 모든 상황이 그저 귀찮고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아, 마침 어린 시절 친구가 고향에 한 번 내려오라고 전부터 전화며 편지며 해대던 게 생각났어요. 그래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서 며칠 푹 쉬다 오는 것도 괜찮겠어요.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위의 상황에 처한 인물은 해원. 위의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해원은 다른 사람들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신경 쓸 생각도 없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그런 인물이다. 이런 저런 상황이 복잡하던 차에 거의 해고 통보와도 다름없는 휴가를 받게 된 해원은 고향에 잠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마침 친구 복남이 오래 전부터 고향에 한 번 내려오라며 전화며 편지며 해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해원은 고향 무도에 가게 되고, 친구 복남의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포스터

타인의 외면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섬, 무도

복남, 복남의 딸, 복남의 남편(만종), 복남의 시동생, 복남의 시고모, 그 외에 친인척 관계로 여겨지는 할머니들 세 분, 치매에 걸려 하루 종일 이름 모를 풀만 씹어대시는 할아버지 한 분, 이렇게 아홉 명이 무도에 남아 있는 사람들 전부이다. 이 섬에서 해원이 목격하는 것은 시동생의 성적 학대와 남편 만종의 폭력, 그리고 마을의 모든 중노동을 견디며 살고 있는 복남의 삶이다. 사실 복남이 해원에게 그토록 고향에 한 번 내려오라고 사정했던 이유도, 복남에게 있어 해원은 섬을 떠날 수 있게 해줄 유일한 외부의 끈이었기 때문이다. 복남은 중노동과 학대, 폭력, 멸시 등 모든 억압을 참고 살아왔지만, 자신의 딸이 만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되자 딸을 위해 섬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실제로 딸이 성폭행을 당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딸이 유난히 아빠에게 집착을 하고, “가슴이 커야 남자한테 사랑받는다”는 식의 말을 하는 등, 복남이 의심 할 만 한 정황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해원은 복남의 의심에 대해 “너 미쳤니?”라고 말하며 사실을 확인해보려 하지 않고, 도시로 데려다 달라는 복남의 부탁에 대해 ‘도시에서의 삶도 여기랑 별반 다르지 않으며, 떠나는 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복남을 억압, 착취, 이용하는 마을의 질서가 해원의 방관으로 유지되는 순간이다.

무도에서는 법도 효력이 없다. 복남은 해원의 도움 없이 마을에서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복남의 계획은 이내 발각이 되고, 복남은 섬을 떠나기도 전에 만종에게 붙잡히고 만다. 바닷가에서 마을까지 질질 끌려오면서 복남은 만종에게 계속 구타를 당하고, 누구 하나 이를 말리는 사람은 없다. 보다 못한 딸이 아빠에게 매달리지만 폭력은 멈추지 않고, 그러던 중 내던져진 딸은 돌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만다. 사건을 조사하러 경찰이 왔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놀다 넘어진 것이라고 둘러대며 오히려 복남이 돈을 훔쳐 달아나려 했다고 고발한다.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 본 해원도 자신은 그 시간에 자고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며 경찰을 돌려보낸다. 무도에서는 법도 무용지물, 부정의로부터 복남을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복남은 태양을 노려보다 복수의 ‘낫’을 든다.

 

방관도 죄다

무도에서 복남에 대한 폭력 및 모든 학대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그것을 정당화하는 마을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엔 남자가 있어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그늘에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것이다.”, 등등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마을의 할머니들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마을의 유일한 남자인 만종 형제를 떠받들면서 복남을 억압?착취한다. 어떻게 보면, 마을에서 만종 형제는 일종의 신이요, 할머니들은 신을 모시면서 권력을 행사하는 지배집단이고, 복남은 그 피해자인 것이다. 복남은 해원을 통해 그 억압구조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해원의 방관과 무시로 그것은 좌절되었다. 딸의 죽음은 복남에게 자신을 보호해 줄 사회적 장치 또한 없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딸이 죽은 후 여느 때처럼, 아니 여느 때보다 더 일을 많이 하던 복남이 감자를 캐던 손을 멈추고 한동안 태양을 노려보다가, “너무 참으면 병난다”고 태양이 그랬다면서 자신에게 “가해자”였던 마을 사람들에게 낫을 휘두르는 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복남의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억압을 당해오던 한 사람이, 자신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달리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믿었던 사람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심지어 어떤 사회적?법적 장치도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즉 복남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만일 해원이 복남의 말을 들어주었더라면, 만일 해원이 경찰에게 딸의 죽음에 대해 목격한 그대로 말해주었더라면, 복남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복남은 이제 해원을 쫓는다. 난 이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난 잘못한 것도 없고 그저 보고 있었을 뿐인데 왜 나까지 죽이려 하는 거냐고 원망하는 해원의 물음에 복남은 대답한다. “넌 너무 불친절해.”

무도에는 가해자인 마을 주민들이 있었고, 피해자인 복남이 있었다. 타지에서 온 해원은 그 구도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복남을 외면하는 순간 그녀 역시 가해자가 되었다. 어떤 부정의가 저질러지고 있을 때, 그것을 방관하는 것은 그 부정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 일조하는 것이다. 부정의를 방관하는 것, 그것은 부정의를 저지르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그 구도 속에 나는 없다고, 나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믿고 싶겠지만, 부정의의 피해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부정의를 방관하는 순간, 나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다.

서울로 돌아온 해원은 경찰서를 찾아가 용의자를 지목한다. 영화 초반 폭행 치사 사건의 범인을 밝혀낼 수 있도록 증언을 해 준 것이다. 누군가의 삶에 끼어드는 것도, 누군가가 내 삶에 끼어드는 것도 싫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삶에 끼어들고 연루되는 것은 싫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버섯처럼 툭 튀어나온 홀로 떨어진 섬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의 삶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나와 상관없는 일,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도에서 살아남은 해원이 깨달은 것은 바로 이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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