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 계속 크기를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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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 계속 크기를 생각하다 [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문성원(부산대교수)

 

중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어찌 구보씨뿐이겠는가. 많은 이들이 중국을 주목한다. 구보씨 친구 중에는 M과 조금 다른 시선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이도 있다. C는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는 자칭 정치평론가다. 정치를 업으로 한다는 친구가 사람 만나는 건 즐겨하지 않아 이름만 걸어놓은 작은 출판사 사무실에 틀어박혀 지낸다. 여하튼 그도 중국에 관심이 많다.

 

“M 그 친군 노무현 때부터 중국에 들락거리더니, 여태 그러고 있군.”

 

“지 말로는 장사꾼들 딱까리 한다던데?”

 

“그게 그거지. 장사하려면, 특히 중국에서 필요한 게 뭐겠어.”

 

“요즘 보시라이 건도 그렇고 중국도 복잡한 거 같아.”

 

“글쎄, 이전 같을 수야 없겠지. 어차피 변화는 불가피할 테니까.”
▲시진핑(習近平)과 펑리위안(彭麗媛)
“지난 번에 M은 시진핑 얘기 많이 하더군. 시진핑이 차기 주석으로 낙점되기까지의 뒷이야기들… 펑리위안인가 하는 시진핑 마누라, 그 여자가 중국에선 유명한 가순데, 장쩌민에게 시진핑이 점수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나…어떻든 내부에 갈등이야 있겠지만 지도부는 그래도 연속성이 있는 것 아닌가?”

 

“하…그새 M은 장쩌민이나 시진핑하고 어울리나 보지? 그렇더라도 성장 패턴도 바뀌고 장쩌민 시대랑은 이미 다르겠지. 그 와중에 사람도 바뀌고, 대외관계도 조정이 될 테고…”

 

“그런 거, 원래 M이 잘 하잖아, 세태에 따라 움직이는 거.”

 

“… 잘 하겠지.”

 

“M은 중국이 북한을 놓아줄 리 없다고 그러던데. 남한도 경제적으로 이미 중국 영향권 안에 말려들어갔고…”

 

“뭐, 놓여날 힘도 없잖아. 그리고 중국한테는 북한이 있는 게 중요하니까.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역사라면?”

 

“이를테면 6.25를 생각해 봐. 중국에게는 북한이 대만을 포기하고 지켜야 할 정도로 중요했다고. 사실 6.25가 그 때 일어난 것도 중국하고 무관하지 않지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당시 중국공산당으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었지. 모택동은 계속 반대했어. 전쟁 발발을 막으려 했다구. 중국 본토를 장악한 직후였으니까, 사실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거라고도 할 수 있어. 6.25가 1950년에 일어난 건 중국공산당이 1949년에 본토를 통일했기 때문이라는 말이지.”

 

“허, 그거 말이 돼?”

 

“소련이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만하잖아. 소련도 불안한 면이 있었다구. 바로 턱 밑에 중공이라는 대국이 형성되었으니 말이야. 스탈린은 중국과 붙어 있는 한반도에서 변화를 꾀할 만 했을 거야. 그래서 스탈린은 김일성을 부추겼지만, 전쟁에 직접 개입은 하지 않았지. 미국과 맞부딪히는 게 싫기도 했겠지만 북한이 미국에 넘어갔을 때 위험한 건 소련보다는 중국이었으니까. 중국으로선 결국 대만을 목표로 배치했던 군대를 돌려서 압록강 너머로 투입할 수밖에 없었어. 이 결정을 둘러싸고 중국 공산당에선 며칠간 격론이 벌어졌지. 그러나 다른 선택은 어려웠을 거야. 북한을 내준다면 대만인들 쉽겠어?”

 

“하긴… 소련과 중국은 그 이후에도 계속 삐꺽거렸지. 그러고 보면 이념이라는 게 참 무색한 면이 있어.”

 

“지금은 또 러시아랑 군사훈련을 하잖아. 러시아 군함이 중국을 들락거리고. 미국에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북한도 다른 길이 없으니 중국에 붙는 거지. 그러니 김정일도 죽기 전에 중국을 조심하라는 말을 남겼고…”

 

“그랬나?”

 

“그랬지. 뭐,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잖아.”

 

“음…그런데 말이야, 세상엔 왜 큰 나라가 있고 또 작은 나라가 있는 걸까?”

 

“뭐?”

 

“이상하지 않아? 세상엔 200개 넘는 국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큰 나라는 몇 개 안 된다구. 왜 어떤 나라는 크고 어떤 나라는 작냐 이 말이야.”

 

“허, 그건 세상엔 왜 호랑이도 있고 고양이도 있느냐랑 비슷한 문제 아냐? 그런 건 구보 너처럼 태평한 철학자들이나 따져볼 문제 같은데…”

 

“아냐, 이거 중요한 문제라구. 역사적으로 봐도 말이지, 중국이라고 항상 큰 나라였던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 큰 나라도 항상 그 시초는 작은 데서부터 출발하거든. 주변을 정복하거나 병합하거나 해서 일단 큰 나라가 생겨나면 주변 나라들은 먹히거나 피해를 보거나 최소한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거야…그런데 국가는 또 한없이 커질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커지는 데는 한계가 있어. 그렇다면 도대체 국가의 규모는 어떻게 정해지는 거지?”

 

“….”

 

C는 심드렁했다. 뭐, 그런 뻔한 것을 묻느냐는 표정이다. 하긴 이런 일이 새삼스러울 건 없다. 요즘 들어 구보씨가 늘상 당하는 일이니까.

 

“내 말은 왜 국가가 그렇게 커야 하느냐는 거야. 그 국가의 크기가 기여하는 바는 뭐지? 다른 국가를 제압하고 통제하고 이용하고 착취하기 위해서? 근데 그게 누구한테 좋지? 큰 나라의 일부가 되느니 독립하겠다는 지역들도 많잖아. 세상에는 그래서 수백 개나 되는 나라가 있는 거고. 큰 게 좋다면 이들은 왜 서로 합치질 않는 거야?”

 

“쯧… 구보야, 국가에는 정해진 크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 되는 한 팽창하려는 경향이 있는 거겠지. 또 그 팽창은 최소한의 동질성이 확보되는 한, 유지되는 거고. 그것이 강제에 의해서든 이익의 분배에 의해서든 말이야. 그러니까 큰 규모의 국가는 그 규모의 힘을 이용해 외부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한 계속 팽창을 시도할 수 있겠지. 그게 바로 제국(帝國)의 형태일 테고. 하지만 그 팽창의 이익이 임계점에 도달하면?그게 외부의 저항에 의해서건, 내부의 동질성 유지 비용에 의해서건? 팽창을 멈출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건 대답이 안 돼. 그렇담 무수한 작은 나라들은 뭐야? 걔들도 팽창을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서 못하고 있다는 거야?”

 

“그렇지 않을까. 당장 우리도 봐. 천오백년 전 고구려 이야기가 아직까지 매력적인 이유가 뭐겠어?”

 

“그러니까 네 말은 모든 국가가 서로 팽창하려 하는데, 그게 다 자기중심적인 팽창이라서 서로가 외적인 제약 조건이 된다는 거겠네. 그렇담,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래서 침략의 이득이 그로 인한 위험부담이나 손해보다 커지면, 언제든 제국주의적 팽창은 일어난다는 거잖아.”

 

“에이,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지. 옛날엔 그랬을지 몰라도 오늘날엔 국제 질서가 명시적으론 그런 걸 허용하지 않으니깐. 하지만, 실질적으론 그런 면이 있잖아.”

 

“그건 결국 큰 게 좋다는 얘기네.”

 

“글쎄, 아무래도 규모가 힘이니까… 이를테면 미국은 그 덩치에서 나오는 힘으로 세계 곳곳의 자원과 요로(要路)를 장악하고 패권을 유지해서 굉장한 이익을 보고 있잖아. 적어도 그 이익의 일부는 자국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데 쓰인다구. 그런데 만일 그러지 못한다고 생각해 봐. 그러면 이제 군사력은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할 테고, 조만간 미국은 그 규모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거야. 다민족이지만 독특하게 유지해왔던 미국적 애국심도 훼손될 테고. 그런 사태가 계속되면 미국이라는 나라도 쪼글어 들게 되겠지.”

 

“그 말도 결국 유지할 수 있는 한 큰 게 좋다는 얘기고…”

 

“허, 뭐, 꼭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면야…그럼, 구보 넌 큰 게 나쁘다는 거야?”

 

“반드시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부담스럽다는 거지. 적어도 우리는 크지도 않고 또 충분히 크기도 어렵잖아. 그런 처지에서 크기에 집착하다간 자칫 사대(事大)에 빠질 위험이 있다구.”

 

“사대? 사대주의 말이야?”

 

“그래. 난 중국을 생각할라치면 맹자 양혜왕(梁惠王)편의 한 구절이 자꾸 떠올라. 지혜롭다는 것은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기는 것이다(惟智者 爲能以小事大),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기는 것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以小事大者 畏天者)… 중국엔 옛부터 사대를 조장하는 이데올로기가 준비되어 있었다구.”

 

“구보야, 나도 중국의 영향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좀 오버센스 같은데…”

 

“글쎄 말이야, 내 생각에도 내가 좀 과민한 것 같긴 해. 얼마 전엔 <카운트다운>이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사대주의 생각을 했다니까.”

 

“카운트다운?”

 

“그래, 거기선 전도연이 사기꾼 여자로 나오거든. 이 여자가 술집에 앉아서 미리 찍어둔 남자를 꼬시는 거야.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나름 교태를 부리고 나선 이렇게 묻지. 당신 건 큰 편이에요? 난 좀 큰 게 좋아요.”
▲영화 《카운트 다운》중에서
“허허…”

 

“근데, 이 남자 당황해하면서 말하는 거야. 네, 동양인치고는 큰 편입니다.”

 

“쩝…”

 

“그 친군 그래서 결국 신세 조진다구. 사대주의의 슬픈 종말인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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