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편적인 시 / 〈작가 노트〉 [유운의 전개도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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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편적인 시

 

이유운

 

아무것도 모독하지 않고 문장을 끝내는 법

짐승이 되어가는 사랑을 견디는 법

 

수많은 개론서들 앞에서 자주 마음이 나빠지기 위해

학교에 다녔다

성실하게

 

이마에 붉게 찍힌 낙인을 문지르며

나의 마음을 읽고 쓰는 방법에 대해 물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들은 가르치기 어려웠다

 

    이것은 시입니다. 저것은 예술이고요, 이 방 안에서 당신은 여자라고 규정됩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어보세요. 걸음걸이마다 이름을 붙여봅시다. 그런 것을 우리는 문학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실재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생각 좀 해보세요, 누가 그런 걸 궁금해하겠습니까? 존재보다는 기분이 중요한 시대니까요. 자, 다같이 큰 소리로 읽어봅시다. 이것은 시, 저것은 예술, 당신은 여자.

 

잘 포장된 나

 

미래파적, 언어의 무용, 무해한 표현들, 상처받은 어린 화자, 탈피하고자 하는, 흰 공간……

대체로 시시했고 대부분 비슷했다

 

그러니까 진짜 웃기지 않니? 시라는 건

아무렇게나 말하고 이렇

행갈이만 하면 문학

지 않니

아주 문학 같다

퍽 예술 같기도 하지

 

뭉뚱그려 보편적인 시라고 거들먹거리며 걸어다닌다

 

 

작가 노트

 

어떤 행위에는 모종의 도덕성이 부여된다. 도덕성을 보유한 자와 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자는 퍽 다르며 둘 다 이런 시대에는 비겁한 자가 된다. 성실하고 도덕적인 자 보다 비겁하고 저열한 자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세상이므로 파편적이고 주변적인 시보다 보편적이고 규범적인 시를 쓰는 게 훨씬 더 쉽다고도 말할 수 있다. 보편적인 시와 보편적인 학습. 그것들은 대체로 비슷한 말들을 하고 있다. 무해하고 하얗고 깨끗하고 상처받은 자들을 치유하고…… 이런 말들도 행갈이를 하면 시 같을 것이다 보편적이므로.


필자 이유운은 시인이자 동양철학도. 2020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당신의 뼈를 생각하며>로 등단했다. ‘유운(油雲)’은 『맹자』에서 가져온 이름. 별일 없으면 2주에 한 번씩 자작시와 짧은 노트 내용을 올리려 한다. 유운의 글은 언젠가는 ‘沛然下雨’로 상쾌히 변화될 세상을 늠연히 꿈꾸는 자들을 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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