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유철의 유럽방랑기] -3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슬로베니아 남서쪽 끝자락 크로아티아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작디 작은 마을, 피란Piran. 수도 루블라냐에서 5시간, 국토 대부분이 산악지역으로 이루어진 슬로베니아에서 버스 외에는 변변한 교통수단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특히 피란은 바다를 앞에 두고 산으로 둘러 쌓인 지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차를 탄다 하더라도 근처 도시인 코페르Koper에서 버스나 택시로 갈아타야 한다.
벅차 오르듯 넓디 넓고, 새파란 바다가 보고싶어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길은 베니스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피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피란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탈리아 두이노, 미라마레, 슬로베니아의 코페르, 이졸라의 아름다운 경관은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를 그저 지나쳐 갈 수 밖에 없는 그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그저 다음에, 그리고 언젠가 다시 오리라 나를 위로해 본다.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해안도로를 빠져나와 피란으로 들어가는 길, 산비탈을 굽이굽이 넘어 내려오자 눈 앞에 펼쳐지는 경관은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배의 선수처럼 뾰족하게 톡 튀어 나와 있는 마을, 피란. 그리고 이를 둘러싼 새파란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유난히 맑은 하늘,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수평선의 경계는 모호하다. 이는 마치 아드리아 해가 하늘로 쏟구쳐 나를 삼킬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저 감탄사만 나올 뿐이었다.
옆 좌석에 앉은 노부부는 그런 나를 보며 웃는다. 그러나 그들도 나와 다를바 없다. 들썩이는 할아버지의 궁둥이나, 목을 내뺀 할머니의 모습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살짝 몸을 비틀어 드리자, 할아버지는 들썩이는 엉덩이를 들어 상체를 쑤욱 내밀며 오래되어 보이는 자동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찰칵, 지잉…’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중간쯤 어딘가의 카메라가 정겹다. 그러나 장담 컨데 그 사진엔 내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 뿐더러 반사광에 바깥 풍경은 그저 하얗게 나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내게 ‘엄지 척!’ 하며 웃으신다.
어린 시절, 아직 남은 필름이 들어있는 사진기를 집에서 몰래 들고나가 이것 저것 찍었던 기억이 난다. 난 그저 그 안에 있는 사진을 빨리 현상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선 24방, 36방을 빨리 채워버려야만 했다. 지금같이 원하는 것을 골라서 현상하거나 혹은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생각날 때 클릭해서 보는 그런 시절과 다르다. 무엇이 찍혔을지, 혹은 어떤 필름이 들어 있는지 하는 기대가 있었고, 그 필름이 현상되어서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다. 그런 노부부의 카메라를 보니 문뜩 그때 그 시절의 그리움이 싹튼다.

버스에서 내리자, 눈 앞에 펼쳐진 아드리아 해와 오늘따라 유난히 파란 하늘에 그 수평선 마저 모호한 그 곳에 내가 마치 던져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방파제 끝에 서로 마주한 초록과 빨강색 등대들은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랜즈’에서 고현정과 조인성이 이 방파제에 기대어 저 두 등대를 배경삼아 둘이 와인을 마시던 장면이 문뜩 떠오른다. 그러니 여기에 로멘틱함도 더해진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그 자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런 데서 셀카를 찍는 건 촌스러운거야!’ 셀카를 찍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가볍게’ 그곳을 지나친다.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호수 같이 잔잔하고 깨질듯 맑은 아드리아 해를 곁에 두고 그리고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그러자 눈 앞엔 타르티니 광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곳 한 가운데에는 피란이 자랑하는 이탈리아 바이올린 비루투오소이자, 작곡가인 쥬세페 타르티니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그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 사실 둘러보면 이 곳 마을은 타르티니 일색이다. 광장 입구에는 타르티니 호텔이 있으며, 동상 맞은 편 건물에는 타르티니의 생가라고 크게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의 동상 뒷 편 언덕 중턱의 성 프란시스 성당에도 마찬가지다. 성당에는 찬송가가 아니라 타르티니가 작곡한 소나타가 하루 종일 흘러 나온다. 지금 내가 서 있는 타르티니 광장도 마찬가지다. 타르티니 광장 한 가운데서 어린 꼬마의 바이올린 연주가 한창이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 두고선 타르티니의 명곡, ‘악마의 트릴’을 연주한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동전을 하나 둘씩 던져주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도도한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문 채 고개를 휘저으며 연주에 집중하는 꼬마 모습이 당돌해 보인다.

 

 

사실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타르티니의 친구였던 프랑스 천문학자 요셉 랑드의 일기에는 그 이야기가 적혀있다.
음악에 심취한 타르티니는 좋은 악상을 떠올리기 위해 매일 밤을 전전긍긍하며 보냈다고 한다. 아마도 성직자가 되길 바랬던 부모를 배신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선택한 그리고 다시 그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고 음악을 선택한 그에게 남은 건 음악, 바이올린 그것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타르티니는 꿈을 꾼다. 그리고 거기에서 악마와 마주하게 된다. 어둠 가득한 곳에서 나타난 붉은 모습의 악마는 타르티니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살고 싶다면 당장 네 영혼을 내놓아라. 네가 영혼을 내놓는다면,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마치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한 제안을 마르티니가 받은 것이었다. 악마의 제안에 타르티니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악마에게 건내며 망설임 없이 답한다.

“이 바이올린으로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가장 황홀한 연주를 내게 들려 주시오.“

그러자 악마는 그와의 약속에 따라 타르티니를 위해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한다. 악마가 들려준 트릴은 타르티니가 지금까지 평생에 들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아름다운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꿈 속에서 들은 악마의 연주를 오선지에 옮겼는데, 그것이 ‘악마의 트릴’이라고 한다.

타르티니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작곡한 악마의 트릴, 만약 악마가 타르티니에게 한 제안을 누군가에게 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답할까? 당장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신앙상의 문제를 들먹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평화? 남북통일? 그 순간 이렇게 거창한 것을 말하는 이도 많지 않을 터, 그럼 박근혜의 종신형? 영생이나 막대한 금은보화? 그것도 아니면 세월호에서 숨진 이들의 생환?…

문뜩 동네에서 만난 백발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떠오른다. 아직 볕이 귀했던 영국의 겨울 어느 날, 오랜만에 허락된 햇볕을 만끽 하고픈 마음에 잽싸게 밖을 나섰다. 지금 해가 떠도 5분 뒤 비가 올 수 있는 것이 영국 겨울 날씨다. 시내를 거니는데 어디선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 온다. 오랜만에 허락된 햇볕과 함께 들려오는 바이올린의 선율은 내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바이올린 소리에 이끌려 간 곳은 광장 한 귀퉁이. 그곳에는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백발의 아시아계 노인이 있었다.
낡디 낡은 테일드 코트에 잘 다려진 흰색와이셔츠, 검정색 등산복 바지에 반짝반짝 광나는 구두를 신은 백발 노인. 군데 군데 하얗게 빛 바랜 바이올린은 그 기능이나 할까 싶지만, 그 노인의 활 놀림에 응답하며 아직 수명을 다하지 않았노라 외친다. 인상을 쓰다가 살짝 미소 짓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짓는 애잔한 그의 표정은 그 울림에 깊이를 더 하는 듯 하다.
초라하지만 나름 갖춘 그의 복장과 그의 바이올린 연주실력에 길을 걷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연주를 마친 그는 관객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파란 하늘을 향해 키스를 던진다. 그리고 관객에게 말한다.

“이번 곡은 제 아내를 위한 곡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들려줄 수가 없어요. 얼마 전 그녀는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녀를 대신해 여러분들께서 감상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의 말에 관객들은 박수를 보낸다. 노부부는 다시금 손을 꼬옥 부여잡았고, 맞은편 어린 아이는 그녀의 부모를 꼬옥 끼어 안는다. 아직 찬 공기에 나는 손을 모아 입김을 불고는 두 손을 비벼본다.
호흡을 가다듬은 노인은 다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한다. 그의 활이 바이올린의 현과 마찰하며 이전과는 또 다른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그건 건반악기가 주는 그런 직관적인 감동과는 다르다. 여러 개의 모노코드를 박자에 따라 혹은 화음 만들어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감동과는 다른 감동, 찰현악기가 내는 소리는 이보다 훨씬 감성적이다. 그 소리는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눈물이 흐르는 소리라고나 할까? 그의 연주에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마도 악마가 저 백발의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나타나 타르티니에게 한 제안을 한다면, 분명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내에게 나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게 해다오’ 하고 말했을 것이 분명하다. 먼저 떠난 아내에게 바치는 그의 연주는 무척이나 애절했고,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꼬마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뒤로 하고 광장을 떠나려고 하는데, 좀 전에 버스에서 마주한 노부부가 서로 번갈아 가며 광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필름 돌아가는 손맛이 그리웠던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제가 두 분을 찍어드릴까요? 두 분 같이 서 보셔요!”

할아버지가 내게 카메라를 건내려 하자,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잡아 끈다.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내게 카메라를 건내려 하자, 그녀는 마지 못해 그의 옷자락을 놓는다. 아마도 낯선 동양청년에게 ‘귀중품’을 맡긴다는 것이 불안했나 보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메고 있던 가방을 잠시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내 핸드폰을 놓았다. 그러자 비로소 되찾은 그녀의 미소.

“할머니! 할아버지랑 더 가까이 붙으셔요. 좀 더! 굿!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저매니~”

‘찰칵, 지잉..’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는 독일인 노부부, 할머니는 언제나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날씨가 좋아지는 시기인 봄, 그리고 절정인 여름마다 여행을 다닌다고 내게 말한다. 할아버지는 이에 덧붙이며 말한다.

“그래서 나는 늘 다음 여행을 미리 예약해.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죽을 순 없지. 이번 여름에는 두브로브니크!”
그러자, 할머니는 웃으시며 말한다.
“그래요. 두브로브니크, 갑시다. 그러려면 당신도 계속 운동해야 해요.”

할아버지는 손을 번쩍들며 여전히 자신이 건강하다고 표현한다. 아마도 이 노부부에게는 다음 여행, 그리고 그 다음 여행, 또 그 다음 여행이 악마와의 거래 대상이 될지 모르겠다.

그럼 나는? 나는 악마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지금 내가 내 영혼과 맞바꿀 정도로 갈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처지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박사학위 정도라 답하지 않을까? 박사논문 서론에 내 연구의 의의랍시고 쓴 거창한 포부는 말하기도 부끄럽다. 하지만 이것이 죽은 아내를 위한 바이올린 연주나, 늙은 노부부의 다음 여행과 같이 그 다지 로맨틱하지도, 그렇다고 작지만 영혼과 맞바꿀 정도로 절실하거나 절박한 것 같지도 않다. 어찌 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그저 시작했기에 하고 있는 것이고, 이를 마무리 짓기 위해 필요한 것들일 뿐 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내가 갈구하는 그것이 가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로부터 그냥 주어진 것이라면 영원히 가치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와 거래에서 이를 요구한다면 그건 하찮은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노부부와 백발의 바이올리니스트의 바람이 가치 있는 건 그들 인생의 전부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 했는가? 내가 이 과정에 충실해야 할 이유는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글 :  이유철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uchul83)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크로아티아 여행기 [유철의 유럽방랑기] -1

앞으로 영국에서 유학 중인 이유철씨가 유럽에서의 여행과 유학생활에 관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을 올릴 예정입니다. 웹진 게재에 흔쾌히 허락해 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은 앞으로 유럽 곳곳의 사진과 더불어 사람 사는 이야기가 활력있게 펼쳐지는 지면을 마주하실 있을 겁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이스트라 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풀라Pula는 그동안 내가 거쳐 온 ‘마을’에 비하면 ‘도시’에 가깝다. 엄청난 크기 아우구스투스 성전과 풀라 아레나는 과거 찬란했던 풀라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러나 모든 개발도상국들이 그러하듯 풀라 아레나 넘어 보이는 수 많은 크레인들과 현대식 항구는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군데 군데 위치한 클럽들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 보다 그 동안 지나쳐 온 조용한 테라스를 가진 카페를 그립게 만든다. 거짓말 아님…ㅎ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그렇게 지나쳐 온 ‘마을’들을 그리워 하며 걷는데, 저 멀리 교회 앞 작은 광장에서 꼬마들이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날씨가 꽤나 덥지만, 아이들은 열심히다.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가만있기 어렵다. 나는 말도 없이 자연스레(?) 아이들 공간에 침범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 하는 모습이었지만, 이내 웬 낯선 동양인의 공을 뺏기 위해 하나 둘씩 좇아 온다.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몇 분이나 뛰었을라나? 땀이 비오듯 하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날씨가 25도나 되지만 자외선 알러지가 있는 나는 옷을 벗지 못한다. 지쳐 길바닥에 누워버린 나를 보고 아이들이 웃는다.

“아저씨 저기 그늘에 누우세요”

꽤 유창한 영어로 내게 말하는 이 꼬마는 시몬이다. 2달 여전에 수도 자그레브에서 이사 온 시몬은 이 동네 똘똘이로 통한다.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고 한다. 주변 친구들이 쉬지 않고 자랑한다.

“어, 아저씨도 영어하네? 있잖아요, 시몬은 우리 학교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구요, 그리고, 그리고.. 뭐였더라? 맞아, 수학도 엄청 잘해요!”

여기에서 가장 덩치가 큰 마테오는 마치 자기 일인양 자랑하듯 목소리에 힘을 주며 내게 말했다. 쑥스러운 듯 구석에 한 여학생이 크로아티아어로 시몬에게 말한다. 그러자 시몬은

“아, 이 친구는 사라인데요, 영어를 잘 못해요. 그래서 뭐라고 하는지 묻는거에요.”

그러자 마테오는 사라에게 다시 크로아티아어로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곧장 도망친다. 얼굴이 빨개진 사라는 곧장 마테오를 쏘아보더니 그를 뒤쫓는다. 놀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러자 여기에서 가장 키가 작은 디노는 내게

“그게 아니구요, 사라가 요즘 사랑에 빠졌는데요, 방금 마테오가 자신의 이름이 사라가 좋아하는 남자애 이름이랑 같다고 이야기 한 거에요”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상기된 얼굴의 사라를 바라봤다. 그냥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마테오도 사라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새하얀 피부에 아드리아 해처럼 맑고 파란 눈을 가진 사라는 전형적인 크로아티아 여인이다. 그녀는 운동을 좋아하는 듯 보였고, 잠시 같이 뛰어 보니 실제 웬만한 남학생들보다 축구를 잘하는 듯 했다. 그런 사라는 친구들 사이에서 여자사람친구를 가장한 모두가 흠모하는 인기녀인 듯 했다.

마테오와 사라를 보고 있노라면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무척이나 부끄럼 많았던 나, 내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같은 아파트에 살았었다. 나는 7층, 그녀는 11층이었다. 그녀와 우연히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거나,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탈 때면 어찌나 떨리던지.. 숨을 못 쉴지경이었다. 그렇게 몰래 몰래 그녀를 흠모하던 중 내 마음을 전한건 내가 아닌 제 3자였다. 그녀도 나도 방문 학습지을 했었는데,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걸 알아차린 방문교사는 오작교가 되어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을 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입이 귀에 걸린 나를 보고선 방문학습지 선생님이 어찌나 웃던지. 그 때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 마음이 내가 사라와 마테오를 바라보며 드는 그런 마음이었을까? 그냥 마냥 이쁘기만 하다. 그리고 덩치만 큰 마테오가 아주 소심하게, 그리고 수줍게 사라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에 내 마음이 설렌다.

“근데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관광객이에요? 아시아인인데 영어를 어떻게 해요?”

그녀는 엘리다. 그녀는 키가 작고, 하지만 다부진 체격을 지닌 아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아시아인과 대화하는게 처음이라고 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관광객 상대로 장사하지 않는 이상 그들 인생에 대화해본 아시아인은 내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박사 공부를 하는 학생이고 영국에 있다고 하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리고는 뒤에 있던 마르코를 불렀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뭐라 이야기 하더니 갑작스레 내 앞에서 시퍼렇게 멍든 무릎과 넘어져 생긴 상처로 보이는 발뒷굼치를 내게 보였다.

“아저씨, 얘 농구하다 다쳤어요. 괜찮아 보여요?”

아마도 이친구들에게 영어 닥터가 의사로 이해 되었나 보다. 내가 다시 설명하자, 이제는 내가 정치인 지망생이 되어 있는 듯 싶었다. 아니라고 설명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이지 않았다. 내 영어실력이 문제일까? 여튼 나는 이야기를 돌렸다. 그들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너희들은 커서 뭐 하고 싶어? 꿈이 뭐니?”

아이들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저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싶어요. 그리고 영국도 가보고 싶어요! 영국에서 공부해 보고 싶어요”
“저는.. 슈케르 같은 축구선수가 될거에요! 돈도 많이 벌고, 세계를 여행할 수도 있고.. 부모님이랑 넓은 집에서 살고싶어요!”
“저는 학교 선생님이요! 우리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저는.. 배를 탈거에요! 바다가 좋아요.”
“저는 아저씨처럼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탐험가가 될거에요. 영국 가보고 싶어요! 영국은 어때요? 좋아요?”
“마르코, 아저씨는 그냥 여행객이야. 탐험가가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 여행은 탐험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어. 탐험가는 북극같은 곳을 가는 거란 말이야.”
“그런가? 하여튼 나는 탐험가 할래!”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티격태격하며 떠듬떠듬한 영어로 내게 말한다. 그들의 꿈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의사가 되고 싶은 시몬은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게 싫고 게다가 아픈 동생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한다. 의사가 되면 동생도 고치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도 없기 때문에 의사가 되고싶다고 했다. 작은키 다부진 체격의 엘리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 그저 넓은 집에서 가족이 화목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집안이 그다지 화목하지 않은 디노는 학교 선생님이 부모님 같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도 선생님이 되어 자신같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다고 했고, 아버지가 어부인 마르코는 아버지랑 배타러 나가는 게 좋다고 한다. 덩치가 산만한 마테오는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해외에는 어떻게 사는지, 뭐가 있는지가 궁금해서 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각자의 사연, 각자의 꿈. 하나같이 그들은 하고 싶은게 많다. 조금만 더 물어보면, 또 다른 미래, 자신의 꿈을 그린다. 하고 싶은게 너무나도 많고, 세상이 궁금하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내게 묻는다.

“한국은 어디에 있어요?” “중국하고 달라요?” “한국은 영어 써요? 아니면 중국말?” “영국은 좋아요? 옥스포드 가보셨어요?”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그것을 상상하면 마냥 즐겁고, 장미빛인 이 꼬마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 없이 때묻은 나를 발견한다. 하고 싶은 것 보다 할 수 있는 것, 되고 싶은 것 보다 될 수 있는 것, 나의 미래와 꿈을 상상하면 눈 앞이 캄캄해 질 수밖에 없는 현실. 그들의 행복한 미소와 상상이 나에겐 그리 많지 않다.

사진출처 : 이유철 페이스북

크로아티아에 오기 전, 나는 슬로베니아 서부를 크게 한 바퀴 돌며 여행 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인 대학생 한 명을 만났다. 언론을 전공하는 대학교 2학년 학생이자, 휴학생인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요리를 그만두기 작정하고 그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긴 여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지방대를 다니는 자신에게 부모님이 바라는 그리고 부모님이 걸어온 그 ‘평범’한 길은 사실 어렵다며, 그리고 자신은 요리가 너무 좋지만 인정받기 어려울 것 이라며, 그래서 이를 잊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 방도를 찾기 위해 두 달간의 여행을 떠나 왔다고 했다.

그와 같은 도미토리에서 묵게된 나는 율리안 알프스에서 셀수 없이 많은 별이 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밤새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단어들을 주고 받았지만, 그는 내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조언하지 못했다. 어쩌면 정해진 삶을 수용하느냐 마느냐만 남았다는 것을 둘 다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조선 땅에서의 삶은 만족하는 삶이라기 보다 생존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밤새 마신 술과 오랜 여독에 실신한 듯 잠들어 있는 그에게 편지 한 통 남기는 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위로의 전부 였다.

‘…. 00군, 아직 젊어요. 하고 싶은 것 한 번 해봐요. 응원 할게요. 좋은 여행되길…..’

새빨간 거짓말. 물론 응원한다. 그리고 그가 하고싶은 것을 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선택이 무엇이 될지 나도, 그도 알고 있다. 게다가 하고 싶은게 뭔지도 모르는 내가,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는지도 모르는 내가 그에게 하고 싶은 것 하라는 조언이 가당키나 한가? 오히려 그건 아마도 내게 하는 말일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도통 책이 읽히지 않는다. 게다가 글쓰기를 할 때면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그건 아마도 물리적인 문제만은 아닐터, 최근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면역성 질환들을 경험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제 원형탈모까지 생겼으니.. 이제 내게서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 다시 내게 묻는다.

‘유철아, 공부하는게 즐겁니? 왜 공부를 그토록 하려고 하니?’

나이라는 것은 내게 이런 질문을 묻게할 만큼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내 안에서 찾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헛된 나이가 되지 않을까? 이 여행에서 찾고 싶은 것, 내가 욕망하는 것을 찾아야지.

우물쭈물 하던 사라가 내게 말한다.
“저는 운동하는게 좋아요. 남들 보다 잘 하는게 많지 않은데 운동은 남들 보다 잘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뛸 때 가장 행복해요.”

사라가 대답하자, 마테오가 옆에서 외친다.
“마테오랑 결혼할거 아니야?”

그렇게 마테오는 다시 또 이곳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사라는 놀리는 것이 마냥 싫지 않은 듯 천천히 그를 쫓는다. 그리고 다시 각자 내 옆에 앉는다. 그들이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떻게 기억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시간 나는 그들과의 기억이 행복하다. 그리고 짧지만 잊혀질 것 같지도 않다. 나를 뒤돌아 보게 한 그들의 꿈들과 그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는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사진/글 :  이유철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uchul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