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영웅들에게 바치는 헌사 [나인당케의 단상들]

<로그원:스타워즈 스토리>는 여지껏 본 스타워즈 시리즈중 가장 덜 스타워즈 같은 느낌이었다. 단적으로, 엔딩크레딧이 흐를 때 눈물이 찔끔 났던 경험을 다른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겪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군은 단 한 차례도 광선검을 사용하지 않고, 죽은 자들은 피를 흘리며 최후를 맞는다.

가장 어둡고 무겁고 또 비장한 스타워즈. 과격파 반군은 마치 무자헤딘 류의 과격파 이슬람 반군을 연상시키고, 제다 시티에서의 시가전은 바그다드나 팔루자에서 미군과 현지 저항군의 전투를 보는듯 했다. 국가연합인 저항군의 보수성과 관료성의 민낯을 보여주고, 이에 불복종해 독단적으로 적진으로 뛰어드는 전사들은 게릴라 빨치산의 느낌으로 전투를 수행한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어른이 된’, 그리하여 더 이상 세상이 스타워즈가 그리는 선과 악의 단순 이분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유년시절의 스타워즈 팬들에게 헌정된 것 같은 느낌이다(때마침 같이본 사람들은 나와 20대를 같이 보낸 과후배들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선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결말이 떠올랐다. 종말, 폐허 그리고 구원. 이윽고 컴퓨터그래픽의 힘을 빌려 나타난 그녀. 무참한 대량살육을 견뎌내고 지켜낸 희망이라는 단 한마디.

<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영웅들의 모험담이 아니라, 거대 악에 맞서기 위해 싸우다 이름없이 쓰러져간 전사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발터 벤야민이 말하지 않았던가. 역사는 이름 없이 쓰러져간 자들의 것이라고. 옛날옛적 은하계 영웅들의 모험을 다루던 스타워즈는 이렇게 현실을 향해 진화한다.